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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 될 때 (100쇄 기념 리미티드 에디션)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11월
평점 :
품절
숨결이 바람 될때 - 폴 칼라니티
이 책은 읽기 전 아무런 정보가 없었고, 100쇄 라는 타이틀에 강한 호기심이 일었습니다. 책이라면, 읽지는 않았어도 제목 정도는 어느정도 인지하는데도 이 책의 제목은 처음 들었습니다. 얄따란 투명 비닐에 쌓인 책을 봉투에서 꺼낼 때만 해도 몰랐습니다. 전혀.
신경외과 전문의인 저자는 삼십대 후반 폐암을 선고받고 생을 마감한, 이미 고인이 된 분이셨습니다. 최근 12월에 들어서 읽은 책들이 ‘죽음’과 맞닿아 있습니다. 죽음은 죽음인데 저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죽음은 아니었습니다. 책들이 주는 메시지는 죽음 그 자체라기 보다 그것을 앞둔 선인? 지성인? 누구나 죽음을 앞에 두지만 쉽게 말하여 질 수 없는 것들을 글로 남겨 준 어른의 말씀들이었습니다. 슬프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일면 덤덤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나도 그렇게 살아야지나 지금 이 순간에 현존하자 따위로 정리를 하고 책을 다시 꽂아넣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단순한 공감을 넘어 저의 온 몸에 조금의 틈도 없이 철푸덕 달라 붙어 죽음을 온 몸으로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그 죽음이 저의 것이라면, 저의 죽음이라면 저는 괜찮을 수 있을까요? 기어이 친구의 옆자리에 앉아 뜬금없는 눈물을 왈칵 쏟아내고야 만 오늘을 저는 어떻게 정리해야 할까요.
신경외과, 그가 다른 과 의사였다면 저는 좀 괜찮았을까요? 지금 아이의 머리 속에 있는 자그마한 콩처럼 생긴 그 혹을 제가 몰랐다면 저자의 말들을 다른 책들처럼 그저 먼저 간 지성인의 당부나 조언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요? 머릿속 무수한 불순물로 인한 뇌질환 환자들의 이야기를 읽다 말고 책을 덮었습니다.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다시 책을 펴며 떠올린 생각은 저자를 위한, 저자를 향한, 저자의 목소리를 들은 것에 대한 저의 마음 깊은 애도였습니다.
잘 다듬어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절대로 죽을 일 없어, 그런 걸 왜 상상해?, 말이 씨가 돼, 상상으로라도 떠올리기 싫어! 그런 생각들을 쓸어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죽을 수도 있지, 나보다 먼저 갈 수도 있어, 말이 씨가 되는게 아니고, 계절이 바뀌듯 아침저녁이 다르듯, 어제와 오늘이 다르듯 그저 그렇게 자연스럽게 그 시간을 사는거야, 그 삶의 크기와 길이와 깊이가 다를 뿐이야. 나의 아이가 무조건 살아있어야 하는게 아니라 살아있음을 매 순간 느끼며 살면 되는거라 그렇게 생각하기까지 정말이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오늘, 모든 것들이 희미하게 지워지며 다시금 깊이 패인 음영이 명징하게 드러났습니다. 저는 아이가 없는 삶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두려움으로 지금 나의 삶이 조금씩 깎여가고 있다는 걸 무조건 인정하기로 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지금 이 자리에서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는 죽었습니다. 누구보다 다른 사람의 죽음에 초연했던 의사였던 그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아이를, 그 아이를 이곳에 두고 먼곳으로 떠났습니다. 그의 죽음이 아름답다 아니다, 그의 죽음으로 죽음을 이해했다 아니다, 죽음 앞에 우리는 이렇다 저렇다 따위의 말들이 모두 아무런 쓸모가 없어졌습니다. 저는 이 아이와, 너무나도 아름다운 이 아이와 하루라도 더 살고 싶습니다. 같이 살고 싶습니다.
거울 앞에 선 아이가 묶으려고 손으로 쓸어 담는 머리카락 중 한 두가닥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매일 아침 보고 싶습니다. 실연으로 힘든 아이가 고주망태가 되어 현관 앞 전실에서 잠이 들면 그런 아이를 일으켜 세워 소파에 뉘이고 싶습니다. 면접 전 떨려하는 아이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너를 뽑는 건 그 회사가 횡재하는거야!”라는 말을 해주고 싶고, 아이가 첫 월급을 받으면 축하한다는 의미로 고급스런 실크 잠옷을 한 벌 사주고 싶습니다. 아이의 모든 밤과 모든 잠이 부드럽고 편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이의 미래를 누구보다 축하해주고 격려 해주고 싶습니다.
하루라도, 단 하루라도 아이를 만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버석거리는 발바닥으로 비척 비척 걸어 나오는 아이의 발걸음 소리를 오랫동안 듣고 싶습니다. 누군가 허락한다면, 정말이지 그럴 수만 있다면 저의 모든 삶과 저의 모든 것을 오롯이 아이에게 줘 아이가 살아갈 수 있다면 열두번도 더 저를 내려놓겠습니다. 부디, 나의 아이가, 저 아이가 하루라도 더 살아갈 수 있도록 부디 보살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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