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감지 마라 마음산책 짧은 소설
이기호 지음 / 마음산책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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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만과 정용이라는 이십대 초반, 지방대학을 갓 졸업한 두 청년이 사회에 나오게 되며 부닥치는 현실을 원룸과 편의점, 치킨집과 라꾸라꾸침대, 불닭볶음면과 아르바이트같은 단어들로 가득 채운 연작 소설책이다.

처음에는 이기호 작가님 특유의 유머러스한 필체에 책장이 언제 넘어가는 줄도 모르고 희희낙락거리며 한시바삐 뒷장으로 페이지를 넘기며 읽는 재미에 푹 젖어 들었는데 희한했다. 뒤로 갈수록 웃음 포인트는 많은데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아니, 얘들은 왜 끝이 나지 않는 일들을 쉬지 않고 계속 하는 것인가. 왜 정해지지 않은 일들을 하며 정해지지 않은 돈을 달라고 말을 해야만 받을 수 있는 것인가. 왜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해야만 그 다음 일을 할 수 있는 것인가. , , 왜 그래야만 얘들은 살 수 있는 것인가.

 

왜 결국 눈을 감아야지만 끝이 나는 삶을 살아야만 하는 것인가.

 

 

 

생일 축하해줘서 고마워요. 엄마. 그리고 제 여자친구나 결혼 문제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엄마 아빠 때는 그래도 결혼도 해보고 이혼도 해보고 그랬지만, 우리는.... 아마 안 될 거예요. 하지만 그래서 엄마 걱정하는 나쁜 일도 생기지 않을 테니까 그러면 된 거죠 뭐. p86

 

너 왜 가난한 사람들이 화를 더 많이 내는 줄 알아? 왜 가난한 사람들이 울컥울컥 화내다가 사고치는 줄 아냐구!” “피곤해서 그런거야. 몸이 피곤해서.... 몸이 피곤하면 그냥 화가 나는 거라구. 안 피곤한 놈들이나 책상에 앉아서 친절도 병이 된다는 헛소리를 늘어놓는 거라구!” p112

 

진만은 생각했다. 왜 없는 사람끼리 서로 받아내려고 애쓰는가? 왜 없는 사람끼리만 서로 물고 물려 있는가? 울 리가 뭐 뱀인가? p141

 

정용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한편으론 자가격리라는 단어가 참 이상한 말이라는 생각을 했다. 자기 집도 없고, 자기만의 방도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자가 격리를 하는가? 뭐 마음으로 하는건가? p208

 

책 속에서는 선과 악이 따로 존재 하지 않는다. 이십대의 그들의 고난을 부추기는 기성세대들도 그 나름대로의 고충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세대를 갈라놓으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청춘들이기에 좀 더 혹독하게 느껴지는 것은 경험의 부재와 시간적 미숙함이 아닐까.

 

 

하지만 그 속에서도 아주 작은 장면에서 내가 발견 한 건 없는 우리끼리 손을 내밀고, 같이 나아가고, 뒤를 봐주고, 서로가 이해하고 배려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속에서 또 피어나는 인간애가 세상을 조금씩, 0.0000001도 씩이라도 덥혀주고 있진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노동과 17만원과 삶의 지속성과 수치심에 대한 생각들이 끊임없이 떠오르며 나의 지난했던 청춘이 떠올라 많은 한숨과 회환으로 마음이 무거웠던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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