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빨 자국 담쟁이 문고
조재도 지음, 노정아 그림 / 실천문학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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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빨 자국

표지 사진에 의좋은 형제가 있다. 그러나 동생 승재에겐 말 못할 고민과 슬픔이 있다. 큰 형 승운이가 태어나서 경기를 하고 침을 잘못맞아 정신박약과 반신불수라는 사실, 또 바로 위 형 승모가 저수지에 빠져 죽은 것...

충남에서도 시골인 청양에서 자란 지은이가 써낸 성장소설.... 세대가 많이 변했다 하여도 변치 않는 것은 가족애와 연민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일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녹아 있다.

지은이가 겪었던 60년대와 70년대의 풍경을  컴퓨터, 농촌 총각을 애태운 사기 결혼, 새내기 교사와 함께  성장해가며 격려하는 모습을 담은 마인드비전 중학교 2학년 교실 등을 배치하여 지금의 농촌 현실로 옮겨 놓았다.

아이들은 관심 속에서 칭찬을 받으며 또는 꾸중을 들으며 자아를 만들어 갈 것이다.

누구나 다 몸과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 갈 것이다. 그런데 그 상처가 아물며 흔적이 사라지는 것도 있을테지만 선명하게 자국으로 남는 것도 있을 것이다. 그 상처를 화인처럼 평생 안고 원망하며 살아 갈 것인지 아니면 지난 날의 성장통으로 여기고 살아갈 것인지는 각자의 몫일 것이다.

학부모(교사)가 먼저 읽고 초중생자녀들에게 선물로 주며 이야기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이 가을이 더욱 풍성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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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 미국 진보 세력은 왜 선거에서 패배하는가
조지 레이코프 지음, 유나영 옮김 / 삼인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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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바야흐로 가을이다. 봄에 뿌린 씨앗을 거둬들이는 계절이며 책 읽기에 좋은 때다. 우리는 책을 통해 고금동서를 시공간적으로 나들이하고, 세상의 넓이와 깊이에 대해 통찰할 수 있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삼인 출판사, 유나영 옮김)’는 미국의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가 쓴 책이다. 인지언어학은 입과 귀에 익은 말이 아니지만 ‘무의식적인 마음의 작용을 탐색함으로써 언어의 성질을 이해하는’ 학문이다.
지은이는 서민과 가난한 사람들이 ‘왜’ 부자와 대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코끼리로 상징되는 보수정당에 투표하는지를 분석한 뒤 미국의 ‘진보’를 위해 프레임을 어떻게 조작하고 작동시킬 것인가에 대해 썼다.

사회 의제 창출로서의 프레임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은 ‘프레임(frame)’이다. 프레임의 사전적 풀이는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이다.
프레임은 ‘우리가 추구하는 목적, 짜는 계획, 행동하는 방식, 행동의 좋고 나쁜 결과를 결정한다. 정치에서 프레임은 사회 정책과 그 정책을 수행하고자 수립하는 제도를 형성한다’는 말처럼 사회 의제와 밀접하다.
또한 ‘강력하게 확립된 프레임이 사실과 부합하지 않으면, 사실은 무시되고 프레임은 유지된다는 것이 보편적인 연구 결과다’를 통해 알 수 있듯 양파 껍질을 하나하나 벗기듯 말(프레임)의 껍질을 자세히 벗겨 생각하면 그 속엔 사실과 고도의 정치적인 속셈이 뒤섞여 있다.

‘엄격한 아버지’형의 정부와 ‘자상한 부모’형의 정부
책을 읽으면서 아! 라는 탄식과 함께 고개를 끄덕인 부분은 가정을 통해서 본 미국 사회의 분석이다.(어디 미국뿐이랴?) 미국 사회에는 ‘엄격한 아버지’형과 ‘자상한 부모’형의 두 가지 가족유형이 존재한다. 이것을 정부에 투사한 지은이의 예리한 통찰이 놀랍기만 하다.
‘자상한’ 유형은 ‘공감’과 ‘책임’을 통해 타인들이 위험으로부터 보호받고, 충만한 삶을 살고, 공정하게 대우받고, 자유를 누리고, 열린 쌍방향 의사소통을 나눌 수 있기를 바라며 사회 정책들을 이끌어 낸다. 예를 들면 사회 안전망과 정부 규제의 형태를 띤 정부의 보호는 물론이고, 군대와 경찰, 보통 교육, 시민적 자유와 평등한 대우, 책임, 공공 서비스, 열린 정부,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경제 발전 등이다. 세금은 이러한 문명화된 사회에서 살기위해 부과되는 것이며 대외 정책에서 국가의 역할은 국제 협력을 증진하고 이러한 가치를 증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엄격한’ 유형은 아버지가 가족을 지원하고 방어하는 도덕적 권위자로서, 어머니에게 무슨 일을 할지 지시하고 자녀들을 그릇된 길에서 바르게 지도한다. 그러한 지도는 고통스러운 체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선량한 시민이란 잘 훈육된-즉 이미 부를 축적했거나 최소한 경제적으로 자립한- 혹은 그 과정에 있는 시민을 의미한다.
사회복지 프로그램은 사람들을 버릇없게 만든다. 직접 일해서 벌지 않은 것을 그냥 주어 그들을 의존적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복지 프로그램은 악한 것이며 제거되어야 한다. 기업 활동을 촉진하고 지원하는 것이야말로 정부가 해야 할 일이며, 얼마나 부를 쌓았느냐는 얼마나 잘 훈육되었느냐를 알려 주는 척도이다. 최소한도 이상의 세금은 선하고 잘 훈육된 사람들에 대한 벌이다. 왜냐하면 선한 사람들이 열심히 일해서 번 것을 빼앗아 스스로 일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구세주와 도둑 쥐 프레임의 작동 : 달콤한 감세정책, 섬뜩한 미래
뭔가 오싹한 느낌이 오지 않는가? 지금 정부 여당에서 추진하는 ‘감세정책’말이다. 한 언론사의 여론 조사에 의하면 감세정책의 수혜층을 묻는 질문에는 ‘재산과 소득이 많은 사람’이라는 응답이 70.0퍼센트로 가장 많았고 ‘저소득층과 빈곤층’을 꼽은 응답은 3.5퍼센트에 불과했단다. 하지만 근로소득세 인하에는 77.6퍼센트가 찬성하고, 9억원 초과 주택의 장기 보유자 양도세 감면, 상속세·증여세(직접세) 세율 인하에는 찬성 의견이 각각 퍼센트, 57.3퍼센트로 나타나는 등 ‘감세’에 대한 찬성 의견이 절반을 넘었다고 한다.

즉 정부가 추진하는 감세정책이 ‘부자들을 위한’ 정책이고 ‘양극화를 가중시킬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감세정책에 찬성하는 한국구성원들의 이중성이 있는 그대로 잘 나타났다.
이는 이전까지의 정부는 국민들에게 지나칠 정도로 세금을 거둬들여서 국민들의 고통이 컸다. 이제 ‘경제를 살리고’, ‘소비를 촉진하기’ 위하여 현 ‘강부자’ 정부는 세금을 깎아 고통을 덜어주겠다는 것이다. 확실히 이전 정부와는 다르다는 차별적인 프레임이 작동한다. 그런 의미에서 현 정부의 감세정책은 ‘구세주(세금의 고통으로부터 구원해 주시는 님)’의 이미지를 얻는 데 일단 성공했다. 

그러나 적절한 세금이 미래에 대한 투자라면 세금의 축소는 곧 사회 안전망과 교육·환경 등 복지 예산과 지자체의 재정의 축소를 뜻한다. 재정자립도가 열악한 청양과 같은 지방의 몰락을 예고하는 것이다. 아울러 ‘구세주’ 정부는 부족한 재원을 공공시설의 민영화를 통해 충당할 것이다. 결국 물가는 오르고 소비를 통해 지출하는 간접세는 당연히 그전보다 더 많이 올라 우리 주머니의 쌈짓돈은 알게 모르게 빠져나가 허리띠를 졸라매는 상황이 올 것이다. 세금을 깎아주는 듯하지만, 쥐 마냥 미래를 야금야금 갉아먹을 감세정책이 섬뜩하기만 하다. ‘구세주 덫’에 걸린 순간 좀처럼 빠져 나올 수 없다. 게다가 보다 나은 삶을 위하여 부자들의 세금을 더 거둬들여 사회복지와 미래에 투자하라고 목탁을 두드리는 사람은 사탄으로 지목되어 정부여당과 보수언론, 그 추종자들에게 뭇매를 맞아야 한다.

먼 나라 프레임 즐기며 생각 다지기
동양에서는 ‘백성은 물이요, 군주는 배와 같다. 백성은 배를 띄울 수도 있고 엎을 수도 있다’고 했다. 오는 11월 4일에 미국 제44대 대통령 선거가 있다. 미국의 구성원과 선거인단이 민주당의 ‘자상한’ 버락 오바마 후보와 공화당의 ‘엄격한’ 존 매케인 후보가 흑백을 넘어 펼칠 프레임에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미친(美親)정부에서 살며 타산지석으로 눈여겨 볼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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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chamcn 2008-11-06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1월 5일 언론에서는 자상한 버락 오바마가 변화를 바라는 미국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대통령에 당선되었다고 대서특필하였습니다.
 
 전출처 : 로쟈 > 아나키즘과 맑스주의

 

 

 

 

온라인 저널인 '자율평론' 제16호(06. 04. 19)에서 하승우씨의 '아나키즘과 맑스주의: 오해와 차이'를 옮겨온다(필자는 폴 애브리치의 <아나키스트의 초상>을 우리말로 옮긴 바 있으며, <희망의 사회윤리 똘레랑스> 등의 저작을 갖고 있다). '맑스 새롭게 읽기'라는 기획하에 진행된 강연원고로 보이는데(맑스의 '정치문제에 대한 무관심' 읽기이다), 아나키즘과 관련하여 러시아 인민주의에 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기에 이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을 듯해서이다(오늘날 가장 유명한 아나키스트 지식인으로는 노엄 촘스키와 머레이 북친 등을 들 수 있겠다). 이 참에 나도 한번 읽어보고. 참고로, 인용문 전체에 대해서 따로 (-)표시를 하지 않았다. 나의 군말에 대해서만 (*)를 표시했다. 모든 강조와 이미지는 나의 것이다.  

1. 들어가며
오늘 같이 얘기할 텍스트는 아마도 이번 강좌 중에서 가장 짧은 글이자 가장 분명한 입장을 가진 글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듯합니다. 짧고 분명한 글이기에 우리는 이 글의 맥락을 짚어야 그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상 이 글에서 맑스와 엥겔스는 아나키즘을 분명하게 소개하고 난 뒤에 비판하지 않고 아나키즘과 아나키스트들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를 구성하면서 그들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분명 아나키즘과 맑스주의는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고 특히 정치적인 입장에서 차이를 드러냅니다. 그런 차이를 정확하게 파악하려면 아나키즘에 대한 우리의 오해부터 먼저 해소시킬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2. 하나의 아나키즘? n개의 아나키즘!
아나키즘은 하나의 단일한 이론적 내용으로 정리되지 않습니다. 당대의 유명한 아나키스트들인 프루동, 바쿠닌, 크로포트킨, 골드만, 베르크만의 사상은 조금씩 그 결을 달리 했습니다. 더구나 아나키스트들은 이론적인 노력보다 실천적인 투쟁을 더 중요하게 여겼기에 하나의 이론적인 흐름을 구성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대충 4가지 정도의 유파로 아나키스트들을 분류할 수 있을 듯합니다.

 

 

 



①아나키스트-꼬뮨니스트: 국가만이 아니라 사적인 소유권을, 조직을 거부하고 꼬뮨을 통한 대안사회 건설에 역점을 둠(대표적인 사상가로 표트르 크로포트킨)

②아나코-생디칼리스트: 노동조합을 통한 집산주의 사회건설을 목표로 삼음(대표적인 사상가로 미하일 바쿠닌)

③아나키스트-개인주의자: 꼬뮨과 노동조합 모두를 의심하며 자율적인 개인의 직접행동을 주장(대표적인 사상가로 막스 슈티르너)

④ 소박한(just plain) 아나키스트: 자신에게 어떤 접두사나 접미사를 붙이길 거부했던 아나키스트(대다수의 익명의 아나키스트들)

 

맑스가 “정치 문제에 대한 무관심”에서 비판하고 있는 프루동은 ‘역설의 사상가’(a man of paradox)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였고, “나는 체계적인 이론을 만들지 않겠다”, “나는 분파를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인물입니다. 이 인물은 체계적인 이론보다 신문을 만들고 정세를 비판하는 언론인, 평론가로 명성이 높았습니다. 그리고 평론을 쓰면서 비아냥과 역설을 적절히 구사했기 때문에 액면 그대로의 말만 가지고 프루동을 읽을 경우 오해의 소지가 많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엥겔스가 “권위에 관하여”에서 비판했던 바쿠닌 역시 마찬가지의 인물입니다. 바쿠닌은 “어떤 이론이나 이미 만들어진 체계, 이미 씌어진 책이 세계를 구하지 못한다. 나는 어떠한 체계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나는 참된 탐구자이다”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는 사회의 가장 소외된 계급들에서 혁명의 잠재력을 보았고 이론보다 본능적인 면에서 혁명의 가능성을 찾았습니다. 가장 민주적인 방식의 혁명을 주장하면서도 자기 스스로는 비밀조직을 만들었던 바쿠닌 역시 역설의 인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러시아의 인민주의 전통
아나키즘의 토대를 마련한 바쿠닌이나 크로포트킨 모두 러시아의 귀족 출신이었습니다. 그 자신은 귀족이었으나 인간답게 살아가지 못했던 농노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해방을 위해 삶을 바친 혁명가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그 모범이 되었던 러시아의 인민주의 전통이 있었습니다.



당시 러시아 짜르의 전제정치는 많은 반란을 자극했고, 스텐카 라친(*'라진'이다)과 에멜리안 푸카체프(*'푸가초프'이다. 영어식 표기는 'Pugachev'인데, 모음 'e'는 여기서 'yo'로 소리난다)의 반란이 대표적이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푸가초프에 대한 최초의 역사서를 쓴 사람은 시인 푸슈킨이었다). 이런 농민반란은 현실에 대한 저항과 증오를 자극했고, 나로드니끼라 불리던 인민주의자들은 러시아 민중에 대한 깊은 신뢰와 애정을 바탕으로 짜르에 대한 저항을 시작합니다.

귀족층을 중심으로 했던 인민주의자들의 활동은 테러를 비롯 짜르를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수용하는 과격한 방식을 취했습니다. 이는 그들의 사상과도 연관되는데, 이들은 러시아 인민이 로마법적인 재산관념, 즉 사유재산의 절대성에 대한 관념을 가지지 않았고 평화로운 농민공동체를 받아들인다고 생각했습니다. 반면에 국가는 적이었고 모든 권력은 악이고 죄라는 생각이 인민주의자들을 사로잡았습니다.

 

 

 

 


거기에 러시아 특유의 기독교 전통도 이런 경향을 강화시켰습니다. 두호보르 종파처럼 “신의 자식들에게는 짜르나 통치권력, 그밖의 어떤 인간의 법률도 필요하지 않다”고 선언한 종파도 있었습니다(*이 두호보르 종파가 탄압을 받게 되자 캐나다로의 이주 비용을 지원하기 위해 쓴 소설이 톨스토이의 <부활>이다. 실상 작가 톨스토이의 사상 자체가 아나키즘과 친연성을 갖고 있다).

그리고 레오(*Leo는 Lev의 영어식 표기이다) 톨스토이처럼 기독교에 바탕을 두고 인민주의를 실현한 사람도 많았습니다. 톨스토이는 소박한 영혼을 지닌 러시아 인민이야말로 역사의 핵심적인 동력이라고 봤습니다. 아나키스트는 인민에 대한 이런 신뢰를 이어받았고 대중이 결코 수동적이지 않다고 봤습니다(*이때의 '인민'은 물론 '농민'이다. 아나키스트들과는 달리 맑스-레닌은 농민을 신뢰하지 않았다).

이 인민주의의 전통은 러시아 급진주의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들은 인민에게 깊은 신뢰를 품었다는 점에서 동일했지만 그 신뢰를 드러내는 방식, 즉 혁명을 추구하는 방식은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톨스토이처럼 평화적인 방식을 추구했던 사람도 있고 트가체프처럼 짜르의 암살과 폭력만이 러시아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1881년 3월에는 인민주의자들이 실제로 짜르 알렉산드르 2세(*사진)를 암살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테러를 혁명의 방법으로 선택했던 이런 급진주의자들에는 인민주의자, 맑스주의자, 아나키스트, 허무주의자(니힐리스트)가 뒤섞여 있었습니다. 특이하게도 이 전통에는 네차예프라는 인물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 인물과의 관계 때문에 바쿠닌은 <인터내셔널>로부터 제명을 당하게 됩니다(흥미롭게도 로버트 서비스의 <레닌>에 따르면 레닌은 이 인물이야말로 조직을 가장 잘 이해했다고 칭송했다는군요).


 

 

 

 

4. 아나키즘과 맑스주의
사실 아나키즘과 맑스주의의 차이점은 목표보다 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납니다(아나키즘을 어떤 하나의 이념으로 분명하게 정의하기 어려운 면이 있기에 여기서는 가장 일반적인 특징을 중심으로 살피려 합니다).

첫째, 아나키스트들은 맑스주의가 강조하는 전위조직이나 계급독재를 거부합니다. 아나키스트들은 대중이 스스로 ‘직접행동’(direct action)할 때에만 새로운 사회가 건설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자연히 아나키스트들은 “노동해방은 노동자의 힘으로”, “농민해방은 농민의 힘으로”라는 구호를 외쳤지요. 서로간의 연대는 가능하고 필요하지만 실천적으로 운동을 이끌어갈 사람들은 반드시 그 당사자들이어야 하고 그 현실에서 생활하고 살아가는 일반 대중이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관점은 특정한 계급이 전체 운동을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을 거부하거나 의사결정과정이 중앙으로 집중된 조직을 반대하는 것으로도 드러납니다. 그리고 단순히 국가권력을 장악하는 정치혁명이 아니라 삶의 영역 전반에서 벌어지는 생활의 혁명, 즉 사회혁명이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둘째, 아나키스트들은 역사가 특정한 발전법칙(역사적 유물론 또는 과학적 사회주의)에 따라 실현된다는 생각을 거부했습니다. 아나키스트들은 새로운 사회의 구체적인 청사진이 미리 마련될 수 없다고 봤고 새로운 사회가 그것을 추구하는 과정을 통해, 운동에 참여하는 대중의 집단적인 활력을 통해 건설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관점은 아나키스트들이 과학적인 합리성과 의식보다 대중의 본능과 연대에 희망을 걸었다는 점에서도 드러납니다. 바쿠닌은 대중이 지닌 반란의 본능과 파괴적인 충동에 희망을 걸었고, 크로포트킨은 서로 돕고 보살피는 본능에 희망을 걸었습니다.

새로운 아나키즘 사회는 냉철한 이성이나 지성보다 창조적인 파괴를 지향하고 서로 보살피는 본능에 바탕을 뒀습니다. 그리고 이런 관점은 탁월한 지성과 능력을 갖춘 엘리트의 중요성을 감소시켰습니다(*때문에 지식인-아나키스트는 지식인-맑시스트와는 사뭇 다른 '애매한' 포지션을 갖는다).

셋째, 러시아를 중심으로 발전한 아나키즘 이론은 노동계급보다 농민을 중심으로 혁명 이후의 사회를 구상했습니다(프루동 역시 프랑스의 가난한 농민 출신이었죠). 물론 아나키스트들도 산업혁명이나 과학기술로 인한 생산양식의 변화를 감지하고 있었고 그런 변화를 긍정적으로 봤지만 대규모 공장체제를 수용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아나키스트들은 사회경제적인 변화를 잘 감지하지 못했고 농민공동체가 가진 본능적인 측면에 주목했습니다(*그런 맥락에서 아나키즘은 러시아의 전통사상 내지는 자생적 사상이며, 러시아 맑스주의는 (수입된) 서구의 사상이다. 오늘날 이것은 '농민의 사상' 대 '노동자의 사상'으로 대별될 수 있다). 또한 한 사회를 중앙화된 권력으로 통합하지 않고 각자가 자신의 삶을 결정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사회전체적인 이론틀이나 이론적인 청사진을 개발하지 않았습니다(*아래 그림은 프루동과 바쿠닌).

4. 맑스는 왜?
“정치 문제에 대한 무관심”에서 맑스는 프루동과 프루동주의자들을 격렬하게 비판합니다. 정당을 구성하지도 않고 파업을 반대하는 입장은 맑스의 말처럼 “어리석거나 천진난만하다”고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맥락을 조금 더 세밀히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처음에 맑스는 프루동의 <소유란 무엇인가>를 “통찰력이 뛰어난 책”이라며 그 가치를 인정하기도 했고, 그 뒤 <신성가족>에서도 프루동이 “위대한 과학적 진보이자 정치경제학을 혁명화하여 비로소 참된 정치경제학을 가능케 한 진보”를 이루었다며 찬사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1844년에는 파리에서 프루동과 만남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맑스와 엥겔스가 주도하던 <공산주의자 통신위원회>에 프루동의 동참을 요청했는데, 프루동은 그 취지에 동의했지만 “우리가 운동에서 앞서 있다는 이유만으로 새로운 편협성을 드러내는 지도자가 되지는 맙시다. 새로운 종교의 사도인 척 하지 맙시다”라고 주장했고 “문제제기를 결코 소모적인 것으로 여기지 맙시다”라고 전제를 달았습니다. 그리고 프루동은 혁명적인 행동을 개시하자는 주장에도 반대했습니다.

프루동은 “나는 가진 자들에 대한 성 바르돌로뮤의 밤[대학살]을 거행해서 그들에게 새로운 힘을 주는 것보다 소유를 천천히 불태우는 쪽을 좋아합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이 이후 프루동과 맑스의 관계는 깨지고 <철학의 빈곤>으로 맑스는 프루동과의 완전한 결별을 선언하게 되었죠.



프루동에 대한 맑스의 비판은 정당합니다. 프루동은 선거참여를 비판했고 노동조합이 파업을 일으키는 것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건 그 당시 프랑스에서 사회주의자로 이름이 높았던 프루동이 왜 그런 주장을 했을까, 라는 점이죠.

사실 프루동이 정치참여를 비판한 것은 이론적인 입장이 아니라 현실의 경험 때문이었습니다. 프루동은 1848년에 수립된 임시정부가 보통선거권을 도입하자, 보통선거권이 가지는 약점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보통선거권은 반(反)혁명이다”라고 부르짖었습니다.

<르 레프레젱탕 뒤 페플>이라는 자신의 신문에서 프루동은 “공화국은 모든 의지가 자유롭고 국민이 한 사람처럼 생각하고 말하며 행동하는 통치형태이다. 그러나 그 이상을 실현하려면 모든 사적인 이해관계들이 사회를 거스르지 않고 사회를 위해 움직이는 게 필수적인데, 그것은 보통선거권으로 가능하지 않다. 보통선거권은 공화국의 이기주의이다. 이 체제가 오래 유지될수록 경제혁명은 계속 이루어지지 않고 그럴수록 우리는 왕정과 독재, 야만주의로 퇴보할 것이다. 선거권이 더 늘어나고 합리화되고 자유로워지는 한 이 모든 건 더 분명해진다”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역설적이게도 프루동은 1848년 선거에 출마했고 의원으로 당선됩니다. 그러나 프루동은 1848년 6월 노동자들이 폭동을 일으키고 카베냑의 군대가, 노동자들의 군대가 자신의 형제들을 학살하는 것을 보고 난 뒤 의회에서 다른 의원들과 직접적으로 충돌하게 됩니다.



프루동은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과제를 정치적인 수단에, 더구나 선거라는 수단에 맡기는 것이 환상일 뿐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프루동은 “이건 더 이상 프롤레타리아트를 구원하는 문제가 아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쓰레기 더미에 버려졌다. 우리는 부르주아지를 구원해야만 한다. 하층 부르주아지를 배고픔으로부터, 중간층 부르주아지를 파멸로부터, 상층 부르주아지를 그 악마같은 이기주의로부터 구원해야만 한다. 6월 23일 프롤레타리아트의 문제는 오늘날 부르주아지의 문제와 동일하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도 참 역설적인 문체이죠. 언론인으로서 프루동은 이런 식의 표현을 즐겨 사용했습니다. 결국 이런 활동으로 프루동은 의원직을 제명당하고 감옥에 갇혔으며 선거를 통해 예견했던 루이 보나파르트와의 긴 싸움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 뒤 프루동은 “정치에 몰두하는 건 똥물에 손을 씻는 짓”이라고 선언했습니다.

루이 보나파르트가 자신의 쿠데타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보통선거권을 이용했을 때, 프루동은 선거와 정당이 현실을 변화시키는 수단일 수 없다고 확신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프루동은 투표거부운동을 벌이게 됩니다. 프루동은 정부의 책략에 가담하기를 거부하는 인민이 정부당국과 인민의 본질적인 갈등을 가장 잘 부각시킬 수 있다고 선언하며 투표거부주의자들(abstentionists)과 함께 했습니다.

이 운동은 적어도 두 가짐 점, 즉 정치행태에서 지배적인 요소이던 편의주의(expediency)를 거부하고(필자주: 어떤 문제를 처리함에 있어 근본적인 원인을 건드리지 않고 그 순간만을 적당히 넘기려 하는 주의. 근대정치의 본질적인 특성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투표를 보편적인 정치적 만병통치약으로 여기는 민주주의의 신화를 거부하는 운동으로, 특히 아나키즘과 생디칼리즘으로 이어졌습니다.

또한 프루동은 계급갈등을 가급적 회피하려고 했습니다. 프루동은 부르주아지에게 그들이 과거에 혁명적인 세력의 역할을 했다는 점을 상기시킴으로써 부르주아와 노동자를 화해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부르주아와 노동자 모두를 해방시킬 혁명을, 정치혁명이 아니라 사회의 경제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꿀 혁명을 촉진시키려 했습니다.

노동조합에 대한 프루동의 부정적인 생각은 노동조합을 부정해서가 아니라 조합이기주의를 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프루동은 자기 자신만을 위하는 조합이 독단으로 여겨지기에 잠재적으로 자유에 해롭지만, 더 큰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조합은 유용하다고 봤습니다. “노동자들의 조합은…그들이 달성한 결과가 얼마나 성공적인가가 아니라 사회공화국을 옹호하고 세우는 그들의 조용한 추세에 따라서 판단되어져야 한다.…노동자들의 노동의 중요성은 조합의 사소한 이해관계가 아니라 지난번 혁명이 건드리지 않고 남겨둔 자본가와 고리대금업자, 정부의 지배를 부정하는 데 있다. 그런 뒤에 정치적인 거짓말을 극복했을 때…노동자 집단들은 자신들의 타고난 상속물인 대부분의 산업을 접수해야 한다.”

또한 프루동은 노동계급이 정치적으로 무관심해야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정치적인 능력을 가져야 한다고 봤습니다. 맑스가 인용하는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 능력에 관하여>라는 책에서 프루동은 “정치적 능력을 가지는 것은 자신을 집단의 일원으로 의식하게 하고, 이 의식의 결과로 이념을 확정하며, 그 이념의 실현을 추구하게 만든다. 이런 세 가지 조건을 결합한다면 누구라도 가능하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프루동은 프랑스 노동계급이 실제로 세 가지 조건을 충족시키기 시작하고 있다고 봤습니다.

그런데 프루동은 노동계급의 이념을 상호의존의 이념으로 봤습니다. 프루동에게는 상호의존이라는 이념만이 (농민을 포함하는) 노동계급을 부르주아지와 분리시켰고 노동계급에게 진보적인 성격을 부여했습니다. 왜냐하면 상호관계가 발달하면서 결국에는 노동자들이 사회의 경제생활에 정의를 도입하고, 부르주아 계급의 반反상호주의적 정신이 실행을 막아왔던 평등주의 기반 위에 사회를 조직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정치적인 면에서 상호주의는 인민의 참된 주권을 보장할 연방주의로 표현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연방 공화국에서 권력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오고, 일련의 대표들이 인민의 일반의지를 실행하는 조절위원회들에 결합하는 ‘자연스런 집단들’에 의지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프루동은 자유의 건전한 성장에 해롭다고 여겼던 내전의 폭력 없이도 전체 공동체가 해방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사실 당시에 사회의 분할구조를 인식하고 사실상의 계급투쟁이 존재한다는 점을 깨달았지만, 프루동은 이 투쟁의 유동성에서 상호주의의 균형이 나타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프루동은 계급투쟁을 공식화해서 영원한 분할을 만들지 모를 어떠한 방법도 피하려고 노력했다. 파업에 대한 비판은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사족으로 얘기하자면 프루동의 인민은행 계획에 대한 비판은 주로 화폐와 소유를 잘못 이해했다는 점으로 얘기됩니다. 그런데 그런 비판은 프루동이 추구했던 것을 오해하게 만들기 쉽습니다. 프루동이 폐지하고자 한 것은 소유 자체가 아니라 소유의 축적이었습니다. 노동거래소를 통한 노동권의 유통은 단지 화폐를 노동권으로 교체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노동권이 축적이 불가능하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5. 엥겔스는 왜?
엥겔스는 “권위에 관하여”에서 바쿠닌을 겨냥해 비판을 가합니다. 그런데 바쿠닌은 권위를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바쿠닌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내가 모든 권위를 부정한다고? 그건 나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장화에 관한 한 나는 장화 만드는 사람의 의견을 구한다. 집, 운하, 철도에 대해선 건축가나 엔지니어와 협의한다.…그러나 장화 만드는 사람이든 건축가든 내게 자신의 권위를 강요하는 것을 나는 허용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롭게, 그리고 온당한 존경심을 갖고 그들의 말을 듣는다.…그러나 나는 어떤 사람도 절대적으로 믿지 않는다. 그런 믿음은 나의 이성, 나의 자유, 그리고 내 과업의 성공에 치명적일 것이다. 그런 믿음은 나를 즉각 어리석은 노예,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의 의지와 이익을 위한 도구로 전락시킬 것이다.”



그렇다면 왜 엥겔스는 바쿠닌을 비판했을까요? “권위에 관하여”가 씌어진 1872년과 1873년 사이의 시기는 <인터내셔널>을 놓고 맑스, 엥겔스와 바쿠닌간의 싸움이 격렬하게 벌어지다 결국 1872년 9월 헤이그 대회 때 바쿠닌이 <인터내셔널>에서 제명된 시기입니다.

 

 

 

 

맑스주의자들은 바쿠닌이 <인터내셔널> 내부에 분파를 만들고 조직을 장악하려 한 악당이라고 주장합니다. 소련공산당 맑스-레닌주의 연구소가 펴낸 <맑스 전기>는 바쿠닌이 “무력하고 억압받는 인민 대중들과 농부들 및 쁘띠부르조아들의 회의”를 대변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바쿠닌이 <인터내셔널> 내에 분파를 만들고 테러와 관련된 비밀조직을 운영했기 때문에 제명을 당했다고 주장합니다(필자주: 그리고 바쿠닌이 비밀조직을 만들었다는 점은 러시아 짜르의 오크라나라는 비밀경찰제도를 생각할 때 어쩔 수 없는 일일 수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유럽의 혁명가들과 달리 러시아의 혁명가들은 망명 이후에도 끊임없는 체포위협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레닌도 마찬가지였죠 *오크라나? '오흐라나okhrana'를 가리키는 듯하다).

그러나 아나키스트들은 전혀 다른 해석을 합니다. 아나키스트 작가인 조지 우드콕은 맑스와 바쿠닌의 대립을 개인적인 대립이 아니라 중앙집권적인 권위주의자와 반권위주의적 자유인의 대립으로 묘사합니다. 특히 우드콕은 <인터내셔널>의 다수를 차지했던 조합주의자와 상호주의자들이 바쿠닌을 지지한 반면 맑스의 총무위원회(general council)가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인터내셔널>을 지배했다고 비판합니다. 둘 중 누구의 주장이 옳은지는 선험적으로 판단할 수 없지만 이 글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앞서 살펴본 아나키스트의 분류에 따르면, 개인주의자나 소박한 아나키스트들은 분명 정치적인 권위를 절대적으로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아나코-생디칼리스트나 아나코-꼬뮨니스트들은 정치적인 권위를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아나키스트들의 권위에 대한 생각은 우크라이나에서 농민꼬뮨을 건설하려 했던 마흐노(N. Makhno, 1889-1934)의 연설에서 잘 드러납니다.

마흐노는 마을에서 백군과 지주들을 몰아낸 뒤 이렇게 연설했습니다. “형제들이여, 우리는 여러분을 도우러 왔습니다. 우리는 지주들과 그들의 마름들을 따랐지만, 이제 우리는 자유인입니다. 정의와 평등의 이름으로 여러분끼리 땅을 분배하십시오. 그리고 모두의 행복을 위해 동등한 관계에서 일하십시오.”

 

 

 

 

그리고 1936년 스페인 시민전쟁 때 국제의용군으로 자원했던 작가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얘기는 권위에 대한 아나키스트들의 생각을 잘 드러내 줍니다. “의용군 체제의 핵심은 장교와 사병간의 사회적 평등이었다. 장군에서부터 사병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똑같은 보수를 받았고, 똑같은 음식을 먹었고, 똑같은 옷을 입었고, 완전한 평등 관계를 유지하며 함께 생활하였다.…물론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은 알았다. 그러나 명령도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내리는 것이 아니라, 동지가 동지에게 하는 것임을 인식했다.…실제로는 그런 방법이 장기적으로 ‘효과’가 있다.…나는 명령을 따르게 하거나, 위험한 일의 자원자를 얻는 데 전혀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혁명적’ 규율은 정치적 의식에 달려 있다. 왜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지 이해하는 것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아나키스트들과 공산주의자들의 분열은 켄 로치의 영화 <랜드 앤 프리덤>(1995)에서도 잘 표사된다.)



아나키즘은 이를 위해 먼저 거대화된 권력을 잘게 나눠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권력은 크게 뭉칠수록 통제에서 벗어나고 그것에 영향을 받는 개인을 소외시키기 때문입니다. 반세계화운동과 아나키즘을 연관짓는 숀 쉬한(Sean M. Sheehan)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아나키즘은 스스로 없애려고 하는 권위주의의 씨앗을 내포한 관료제를 낳지 않으면서 자율적으로 조정되는 의사결정 구조를 개발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흔히 반세계화 운동으로 불리는 흐름이 지닌 긍정적인 측면인 친지역화(pro-localization)는 탈중앙화한 공동체들을 창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공동체들은 엘리트나 관료집단의 손에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크로포트킨은 스위스의 <쥐라연합>을 통해 이런 구상을 밝혔습니다. “우리는 사회란 마땅히 이래야 한다는 이론으로부터 이상적인 공화국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노동자들에게 현존하는 사회악을 인식시키고 토론과 집회를 통해 지금보다 나은 사회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사고하도록 유도했다. 국제대회에서 제기된 문제를 모든 노동조합의 연구주제로 추천했다. 그러면 한 해 동안 유럽의 모든 지부에서 직업과 지방의 특성에 맞게 토론되었다. 지부의 결론은 지역대회에 제출되었고 그것은 좀더 정리된 형태로 다음 국제대회에 제출되었다. 우리가 이상으로 삼는 사회구조는 이처럼 이론과 실천이 철저히 아래로부터 수렴되는 것이었다.”

이런 얘기는 엥겔스의 비판, “권위의 원리를 절대적으로 나쁜 원리인 것처럼 말하고 자치의 원리를 절대적으로 좋은 원리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권위와 자치는 서로 다른 사회 발전 양상에 따라 그 범위가 서로 다른 상대적인 것들이다.”라는 비판이 조금 어긋나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해 줍니다.

6. 오해를 넘어서 차이로
아나키스트들과 맑스주의자들은 분명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하나로 묶었던 것은 사회주의였고, 적기와 흑기가 함께 휘날렸던 적은 아주 많았습니다. 사실 아나키스트들의 가장 큰 적대자는 맑스주의 자체라기보다 그 지류인 볼셰비키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다중네트워크에 모인 분들도 볼셰비키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레닌을 제거한 맑스주의? 지젝식의 비유를 빌자면, '니코틴 없는 담배'나 '카페인 없는 커피' 정도가 되겠다).

그렇다면 이제 과제는 아나키즘에 대한 오해를 넘어서 그 차이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점입니다. 계속 낯선 이방인으로 배제할 것인지 아니면 조금 다르지만 함께 할 수 있는, 때로는 그 상대의 모습에서 배울 수 있는 벗으로 받아들일 것인지, 선택이 필요하리라 생각됩니다.

사실 맑스주의나 아나키즘 자체가 지금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우리가 배울 것은 누가 더 올바른가라는 점보다는 새로운 대안사회를 만들어나갈 단초를 찾아가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아나키스트들의 고민을 허투루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됩니다. 그들의 고민은 아직 가지 않은 길로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06. 0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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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국경을넘어 > 자유로운 영혼, 건강하시길
목수, 화가에게 말 걸다
최병수.김진송 지음 / 현실문화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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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해 어느 글을 통해서 그가 위암 판정을 받고 힘든 생활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잊고 있다가 이 책을 통해 최근 그의 소식을 알게 되었다. 위암 3기에서 위의 3분의 2를 도려내고 여수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책을 읽으면서 옛 생각도 나고 해서 서재 한 켠에 꽂혀 있는 <팔십년대 한국민중판화대표작품선>을 들춰 보았다. 최병수의 약력이다.

 

1960년생

민족미술협의회 회원

1987년 반고문전, 통일전





4.19때 태어나 87년이라는 곳에서 커다란 산을 만났다는 최병수. 87년을 정점으로 그는 쉴 새 없이 달려왔다. 87년 6월 항쟁의 한 복판에서 <이한열 초상>과 <한열이를 살려내라>를 만들어 냈고 <분단인>, <철새>, <장수매>, <장산곶매>, <노동해방도> 등도 그의 작품이다. 80년대 대학을 다녔다면 적어도 한 두번은 보았을 작품들이다. 북한산의 터널 공사, 새만금의 갯벌, 평택 대추리, 리우, 교토, 바그다드 등 생명 환경과 반전 평화를 외치는 곳이라면 국내외를 막론하고 그와 그의 작품(퍼포먼스를 포함하여)이 있었다.


그의 인생 역정은 말 그대로 파란만장하다. 화가가 된 것도 기이하다. 중학교를 중퇴하고 갖은 직업을 전전하던 최병수가 우연치 않게 시대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고 하는 것이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목수였던 그가 민중미술한다는 사람들 옆에서 벽화 그리는데 필요한 탁자 등을 짜주다가, 할 일이 없어서 그냥 앉아 있었는데 누군가 “너도 가만 있지 말고 그려” 하는 통에 우연치 않게 붓을 들고 개나리 몇 개 그린 것이 화근이었다. 정릉벽화 <상생도>사건에 휘말린 것이다. 경찰서에 끌려간 그에게 이상한 질문들이 던져졌다. 그림 속 태극기의 붉은 색이 북한을 상징하는 데 붉은 반원이 더 크게 그려졌다니(실제로는 청색이 더 크게 그려짐), 대나무는 왜 (죽창처럼) 뾰족하게 잘라졌냐라는 둥(대는 결이 있어서 자르면 뾰족하게 자를 수 밖에 없다), 그림 속 아이의 피부 색이 검은 것은 한국전쟁 당시의 혼혈아를 표현하는 게 아니냐는 둥의 질문이었다. 게다가 목수인 그는 이 사건에 엮이는 과정에서 화가로 둔갑하였다. 국가 기관이 인정하는(?) 화가가 된 것이다.


차츰 현실에 눈뜨고 87년 6월 항쟁 때에는 최루탄에 맞아 피를 흘리는 이한열을 사진을 보고 걸개를 만들고, 장례식을 위해 영정을 만들면서 깊숙이 빠져들었다(?). 불의를 보고선 참지 못하는 그의 성격이 한 몫 했을 듯싶다. 91년 강경대 치사 사건 때도 여지없이 그는 빠질 수 없는 존재였다. 최근에는 반전 평화 운동과 환경운동에서도 그는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를 과시했다. 20년 가까이 그는 우리 사회의 온갖 투쟁의 현장을 지켜온 사람이다. 우리에겐 이미 민중미술의 스타들이 여럿 있다. 그러나 최병수만큼 치열하게 몸을 던지면서 민중과 함께 미술 운동을 펼쳐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는 계속 새로운 역사를 써가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건강하기를...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최병수. 그가 아이들과 함께 환경학교에서 했던 일을 들춰 보자. 화분에 마음을 심거나 꿈을 심으라고 말하면서 설명을 해주었어. 아이들은 화분에 칼이나 빗자루나 쓰레받기가 꽂혀있는 의미를 처음엔 모르지. 그래서 ‘쓰레받기와 빗자루는 선생님의 화분이다. 세상이 더러워서 청소하려고 그러는 거야’ 그렇게 말했어. 화분에는 전구를 심은 화분도 있었어. 그걸 돌리면 불이 들어오게 돼 있었지. 불을 켜고는 ‘이건 누구 화분인 거 같냐?“ 했더니, 한 놈이 ’에디슨‘ 그러는 거야. 이제 아이들이 화분에 무엇을 심어야 하는 지 이해를 한 거지. 다음 날에는 화분에 그림도 그리고 장식을 하고는 자신의 마음을 심고 발표하게 했지. 연필, 볼펜, 붓 뭐 그런 게 꽂혀 있었지. 물어보면, 볼펜을 심은 애는 기자가 되겠다고 하고 연필을 심은 애는 소설가가 되겠다고 하는 거였어. 그런데 한 애는 숟가락을 심었다라고 ’이걸 왜 심었니?”하고 물어 봤더니, ‘사랑을 퍼 주려고 심었습니다’ 그러더라고 … 나는 정말 아이들한테 약간 힌트만 준 거다. 그랬더니 아이들이 우주같이 되더라. 내가 일일이 가르쳐 준 게 아니었는데도 아이들이 이렇게 크게 되돌려 주더라. 가르친다는 것은 서로 교환하는 거 같더라. 그래서 아이들한테 많이 배웠다.


이 글을 쓴 김진송이 풀어 본 최병수의 작품 세계이다.

최병수 아니 그의 작업과 작품에 담긴 생각들은 사람들이 요구하는 방식대로 나오는 게 아니라 그 스스로 요구하는 방향에서 이끌어진 것이다. 그가 기존의 사고와 이성이 만들어 놓은 질서에 충돌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는 장승을 주문받아도 천하대장군이나 지하여장군을 멋지게 잘 깎는 데 관심이 없다. 그건 사람들의 요구다. 그는 갯벌을 바라보고 거기 꿈틀거리는 생명을 자신의 마음에 담아 생명의 솟대를 무수히 깎아 놓는다. 그건 단순한 아이디어나 기발한 착상과는 거리가 멀다. 또한 자연이나 환경을 주제로 했기 때문에 동물을 등장시키는 발상과도 거리가 있다. 어떻게 하면 멋있고 그럴듯하게 보일까를 고민하는 작가적 욕심과도 다르다. … 동물이든 식물이든 자연에 자기의 생각이나 의식과 감정을 전이시키는 방식은 단순히 상징과 은유로 전이되는 것이 아니다. 그게 자신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자기와 동류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전이는 불가능하다.



그의 <펭귄이 녹고있다>는 생각이나 아이디어가 아니라 펭귄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등장할 수 있다. 새만금의 솟대들에서 망둥이나 갯지렁이가 쉽게 나오는 것은 그리고 배를 세워 하늘로 오르게 하는 것은 갯벌에 살고 있는 물고기와 어부들을 생각하지 않으면 쉽게 나오지 않는다. 미술이나 운동이나 투쟁이 아니라 거기에 살아가는 사람들과 동물들의 생각 속에서 저절로 솟대가 세워지고 하늘로 올라가고 싶은 배가 세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깎은 ‘얼음 펭귄’은 호텔의 그럴듯한 파티와 행사장에 놓이는 얼음 조각보다 낳을 리 없지만 뜨거운 한낮의 내리쬐는 태양 아래 놓여 녹아내리면 지구의 온난화를 말하는 데 더 이상의 말이 필요없는 ‘사라져 가는’ 펭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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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우리 헌법 이야기
한상범 지음 / 삼인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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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학자가 법대생이 대상이 아닌 일반 사회인들을 위하여 쓴 헌법의 역사와 기본 정신을 나타낸 헌법입문서라고나 해야할까?

  민족문제연구소장, 의문사진상규면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 저자의 이력에서 알 수 있듯이 헌법 속에 반영된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에 의미에 대하여 알 수 있다. 서양과 일본의 법을 통하여 우리 헌법이 어떻게 제정되었는지도 알 수 있다.

  한글로 풀어 쓴 헌법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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