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뼈로 점을 치는 풍습은 동아시아를 넘어 유라시아 초원 지역의 유목민 사이에서 널리 유행했다. 최근까지 카자흐인은 집안에서 대소사가 있으면 복골을 그슬려서 그 흔적으로 점을쳤다. 이런 복골은 흉노 고문을 발굴하면 꼭 귀족이나 왕의 곁에서 지골 주사위의 형태로 발견되는 유물이다. 이 점치는 주사위는 훈족의 이동을 따라 동유럽의 점치는 주사위로 옮겨갔다.
인골
무덤은 내세로 들어가는 관문을 상징하기 때문에 각 문화의 전통과 풍습에 따라 최선을 다한다.
말타듯 무릎을 세워서 묻는 유목민,
옆으로 웅크려서 묻어 어머니 자궁속의 태아의 모습으로 죽음으로 다시 태어남을 기원,
땅을 더럽다고 여겨 시신을 조장시키고 인골을 골호에 담아 보존하는 조로아스터교 지역민.
죽음과 소멸에 대한 두려움을죽음은 삶의 연장이라는 생각으로 무덤을 만들고 먼저 같 이들을 기억하는 축제인 제사를 지내며 그들이 우리와 함께 한다는 믿음으로 극복한다.
DNA
모계 유전인 미토콘드리아 DNA로 모계의 흐름을 밝혀낼 수 있지만 이것은 한계가 있다. 역사적으로 공동체 사회를 이루고 살았고, 근친혼을 금하며, 부계사회였기에 결혼할 때에는 여성이 자신의 고향을 떠나서 남편의 공동체로 들어가 사는것이 일반적이다. 이는 전주 이씨의 집성촌의 성인 여성은 전주 이씨가 아니라는 말이다. 원칙대로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를 분석하면, 전주 이씨의 집성촌이지만, 전주이씨의 유전자가 가장희미한 곳이 될 수 있다.
우리가 배운 농사는 근동지역의 비옥한 초생달 지역에서 처음 발생하여 세계로 퍼져나갔다는 설이 우세했으나, 지금 고고학계는 근동 기원보다는 다 지역 기원설을 지지한다. 신대륙에서는 1만 2천년 전부터 재배된 흔적이 발견되었다. 1만 6천년 전에 베링해를 건넌 이후에 독특한 방법으로 농사를 지은 증거가 나왔으니, 근동이나 아시아에서 새롭게 배웠을 가능성이 없이 독자적으로 발달시켰을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