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풀에서 줍는 과학 - 한 세기를 걸어온 생물학자 김준민, 생명과 자연을 관(觀)하다
김준민 지음 / 지성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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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1914년에 태어났으니 100살에서 겨우 5살이 부족한 연세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저자의 나이 많음을 종종 느끼게 되는데, 그건 전적으로 좋은 의미에서다. 우선 여유있는 태도로 인생을 관조하는 듯한 온화한 할아버지의 듣기 좋은 저음의 목소리가 느껴진다.(나는 저자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지만) 그리고 한 줄 한 줄 쉬우면서도 이해가 잘 가도록 다듬어진(아마 저자가 일부러 다듬지 않아도 저절로 다듬어져 나오는 것일 게다) 친절한 설명에서는, 자연에 대한 저자의 관심과 열정이 전해져온다. 책을 읽어갈수록 제목도 다시 뵌다. 들풀에서 줍는 과학, 제목도 얼마나 소박한가? 그러면서도 생태학연구가 과학에 있어 중요함을 잘 역설하고 있지 않은가?

나에게는, 과학책인데도 베토벤의 후기 피아노소나타를 듣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하는 책들이 몇 권 있다. ‘숲 속 수의사의 자연일기’가 그렇고 콘라드 로렌츠의 책들이 그렇다. (굴드의 책을 엄청 좋아하지만 그런 느낌은 아니다. 굴드의 글은 모차르트 협주곡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런 느낌이 들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참나무, 이끼, 진달래 등에 대한 얘기가 1장의 내용이다. 2장에서는 식물의 일반적인 생태에 대해(적지, 먹이, 적, 단풍 등), 3장에서는 사회적 이슈가 되는 생태문제 몇 가지(산성비, 지리산 반달곰, 아카시아, 지구온난화 등) 4장에서는 식물의 범위를 벗어나 토양, 기후, 지구, 생물다양성 문제, 그리고 마지막 5장에서는 인간생활과 관계된 식물이야기(속담, 소나무 숲, 산불)를 다룬다. 교과서처럼 딱딱하게 정리된 이야기가 아니라 저자 개인의 경험, 감상, 의견이 섞여있는 에세이이기 때문에, 재미있으면서도 생각할 거리가 많다.  

진달래가 양지에서 핀다고 하나 직접 관찰한 바로는 그 반대다, 우리나라 대도시의 대기오염이 심각하고 악화되고 있다는 근거가 없다, 대기오염물질이 산성비 문제를 악화시킨다는 주장 역시 증거가 희박하다, 지리산에 반달곰을 방사하는 것이 과연 가능하며 바람직한 일일까, 아카시아가 과연 다른 식물을 못살게 하는 나쁜 나무인가, 지구온난화의 근거는 과연 얼마나 과학적인가 등, 저자는 평소에 의문없이 그러려니 넘어갔던 문제들을 짚으며 계속해서 ‘과학’의 잣대를 들이댄다. 그런데 그 딴지가 트집으로가 아니라 상당히 설득력있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저자의 연륜 과 소박한 문체 때문이리라. 진달래에서 시작해 전 지구적인 생물종다양성으로 이야기가 넓어지는데, 저자를 잘 따라가다보면 진달래 한 송이의 문제가 결국은 전지구적 생태계 문제와 연결될 수밖에 없음을 무리없이 깨닫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자는 실제 자연에서의 관찰과 탐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래, 그런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번 방학에 읽은 몇 권의 책들(윌슨의 ‘생명의 편지’, 위에 쓴 ‘숲 속 수의사의 자연일기’와 몇 번 째 다시 읽은 로렌츠의 ‘솔로몬의 반지’, ‘즐거움-진화가 준 최고의 선물’, 데이먼드 모리스의 자전적 에세이 등)이 모두 강조하고 있는 게 바로 그것이다. (자연상태에서의) 직접 관찰-. 아니 그들이 직접 그것을 주장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책을 읽다보면 직접 관찰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감하게 된다. 윌슨은, 환경교육의 시작은 생명체 관찰의 즐거움을 알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잘 정리된 과학책이 아니라 현미경과 도감을 사주라고 말한다. 과학의 출발은 공식이 아니라, 주변의 사물에 관심을 가지고 크게 눈을 뜨는 것, 책이 아니라 생명체를 바라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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