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사회운동 사이에서 - 68에서 게놈프로젝트까지
존 벡위드 지음, 김동광 외 옮김 / 그린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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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글의 목적이라고 했다. 유전학자이자 '인간게놈프로젝트의 사회적 법적 윤리적 함의를 다루는 실무그룹' 위원인 저자인 둘 다를 성공적으로 해냈으며, 그런 자기읙 경험을 담담히 적고 있다. 하지만 둘 다를 하는 것이 물론 쉽지는 않았다. 동료과학자들로부터 배신자 소리를 들어야 했고 하바드교수직을 잃을 뻔도 했다. '과학의 정치적 오용'이란 말이 이제는 상당히 보편화되었지만, 바로 그 문제들을 선구적으로 제기하고 앞장서서 행동했던 사람이 바로 저자이다. 책을 읽고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시작하는 사람이 있기에 지금이 있다'는 것이다.

   과학의 오용을 우려하는 사회운동가로서 저자의 주장은 책의 뒷부분에 주로 나와있는데, 1.편견없는 '객관적' 과학이란 허구라는 것, 그리고 2.과학자들의 결과물이 언론을 통해 세상에 공개될 때 얼마나 왜곡될 수 있는가 하는 것, 그리고 3.과학의 발전을 막을 수는 없으며 과학자들이 자기 연구의 결과물이 사회적, 정치적으로 어떻게 쓰일까에 대해 훨씬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하고 필요하면 행동까지 해야한다는 것이다.      

사회생물학에 대해 윌슨과 대척점에 서서 토론을 했다고 했지만 자신이나 윌슨의 주장이 모두 왜곡되게 전해졌다는 점에서는 공통됐다고 한다. 내가 윌슨의 '통섭'을 읽어본 바로는, 윌슨은 결코 유전자결정론자가 아니다. 도킨스 역시 마찬가지다. 인문학자들이 자꾸 사회생물학을 유전자결정론인 양 말하고 허수아비 공격을 하는 것은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도 똑같은 것 같다. 인간게놈프로젝트는 이야기가 좀 다른데, 르원틴의 책에 의하면 제약회사에서 직접 돈을 챙기는 유전학자들이 꽤 있다고 한다. 그들은 분명 과학자라기보다는 장사꾼이고, 자기가 과학자인 양 해서는 안된다.  

부러운 것은, 인간게놈프로젝트의 사회적 윤리적 측면에 대한 연구비를, 바로 그 프로젝트의 책임자인 왓슨이 마련해주었단 것이다. (저자도 과학적 발견과 그것의 영향에 대한 연구가 동시에 시작된 것이 처음이며 하나의 모델로 인정받고 있다고 썼다) 3~5%에 이르는 적지 않은 돈을 지원해주면서도, 결코 독립성을 훼손하지 않았다는데 우리나라에서도 과연 가능한 일일까 싶다.  

또 하나 부러운 것은, 과학과 인문학 사이에서 계속해서 왔다갔다할 수 있었던 지적 풍토다. 대학에서 과학을 전공하면서도 심도깊은 인문학 수업을 듣고 게다가 즐길 수 있기까지 하는 풍토, 물론 저자 역시 자기가 (개방적인) 지도교수를 잘 만나서 가능했다고는 하고 있지만, 고등학교는 물론 대학에서도 소위 '교양'이란 것을 거의 배우지 않는 우리에게는 먼나라 이야기로만 들리는 것이 사실이다.   

또 하나 중요한 이야기는, 과학논문을 꼭 지금과 같은 형식으로 써야 할까 하는 저자의 문제제기다. 지금의 논문형식은 실패한 이야기, 논리와 거리가 먼 우연이나 행운 등의 이야기는 싹 지워지고, 모든 게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로부터 수학적으로 도출된 것이 과학이라는 느낌을 주는데, 그것이야말로 과학을 왜곡시키고 신비화시켜 '객관적인' 과학이라는 환상을 씌우는 굴레이며 과학이 권력이 되게 하는 장치라는 것이다. 그런 깔끔함이 과학의 매력이라는 데 동의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그럼으로써 과학이 인간, 그리고 인간이 살고 서로 싸우는 사회와는 괴리된 무엇인 것처럼 여겨진다는 것이다. 충분히 공감이 가는 이야기다. 이반 일리치가 '탈학교사회'에서, 나쁜 학교와 나쁜 선생이 문제가 아니라 학교제도 자체가 인간을 억압하는 기제라고 말했듯이, 과학 논문의 형식 자체가 과학에 권력을 주는 도구라는 말인데, 과학 논문은 과학자 말고는 아무도 안 읽지만 그것을 이야기처럼 써 놓으면(이 책처럼)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읽지 않을까?  

그는 또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고등학교 교사들에게 주장을 알리고, 고등학교에서의 수업자료를 만드는 데도 관심을 쏟는데, 우리나라의 소위 통섭운동 교수들을 만나면 내가 요구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왜 우리나라 교수들은 중고등학교 교육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지? 왜 교사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려는 생각을 하지 않는지?  

여하튼, 저자는 과학과 사회운동 둘 다 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했지만, 그 두개가 가능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토대는 바로 '언론의 자유'일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이것이 없으면 아무 것도 가능하지 않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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