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오르다 - 김웅서 박사의 심해탐사기
김웅서 지음 / 지성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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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오르다, 김웅서, 지성사, 2005

지은이 김웅서는 한국해양연구원 책임연구원이다. 북태평양해양과학기구 등 국제기구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여러권의 저서와 역서가 있다. 이 책은, 2004년 4월하순부터 약 50여일간 프랑스 국립해양연구소의 연구선 아탈랑트를 타고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동안의 일기를 사진과 함께 펴낸 것이다.

아탈랑트는 과학자(프,미,영,독,일 한국 등) 20명, 의사 1명, 잠수정 기술자 8명, 그리고 선원 서른명 정도를 태우고, 멕시코의 만사나요항을 출발, 태평양을 동남쪽으로 가로질러 누벨칼레도니의 누메아에 도착할 때까지 심해환경을 탐사하였다.(해수, 퇴적물, 망간단괴 등 채집, 생물포획과 촬영 등)  3천 600톤 규모의 아탈랑트는 유인잠수정인 노틸(수심 6천미터까지 잠수가능)과 무인잠수정 빅터6000의 모선이다. 노틸은 무게 20톤, 길이 8m, 높이가 약 4m인데, 티타늄으로 만들어졌고 조종실은 지름 2m의 구형이라고 한다. 노틸에는 광물이나 생물을 채집할 수 있는 로봇팔과 여러 개의 조명장치, 비디오카메라와 사진기, 그리고 추진장치인 프로펠러와 수중음향탐지기가 달려있다. 이번 탐사에서 김웅서는 한국과학자 최초로 수심 5000미터 아래로 잠수정을 타고 내려갔다왔다.

노틸은 조종사 두 명과 과학자 한 명 씩을 태우고 잠수하는데, 보통 한 번 잠수하는 시간이 약 10시간이다(오르내리는 시간 약 3시간 반) 내부가 매우 좁아 일어설 수도 없고(나중엔 다리에 쥐가 났단다) 오줌도 플라스틱통에 누어야 한다.(여자과학자의 경우는 깔때기도 준비해야 한다고 함) 오줌 때문에 잠수 중엔 물론이고 그 전부터도 물 먹는 것을 자제해야한다고 한다. 산소측정기로 산소의 농도를 조절해서 산소가 공급되고, 숨을 내쉴 때 나오는 이산화탄소는 수산화칼슘을 이용해 제거한단다. 만일을 대비한 비상식량으로 사탕과 과자 등이 있는데,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식수를 절약하기 위해 물먹는 양이 정해져 있다한다(처음 24시간은 마시지 않고, 그다음 24시간은 0.5리터 이하, 며칠 후부턴 0.1리터 이하) 심해저의 수온은 1.4도, 조종실 벽은 얼음처럼 차가운데 안에 세 사람이 내쉬는 숨 때문에 벽에 물방울이 맺히고, 끝날 때쯤엔  물받이에 물이 흥건히 고인다고 한다. 탐사 중엔 비디오카메라가 돌아가고, 모든 대화가 블랙박스에 기록된다고 한다.

노틸이 내려가기 전에 먼저 모선에서 시료회수기를 떨어뜨린다. 그 속에 들어있는 채취기를 가지고 퇴적물 샘플을 채취해서 다시 시료회수기에 담는다. 그런 다음 수중음파분리기를 작동시켜 시료회수기에 붙어있는 추를 떼어내면 시료회수기는 저절로 수면으로 떠오른다. 퇴적물을 채취하는 이유는, 그 속에 살고 있는 미생물을 추출해서 배양하기 위해서이다. 그 미생물을 연구해서 약을 만들 수도 있다. 망간단괴는 그 자체도 연구대상이지만, 거기에 붙어있는 생물들도 역시 실험대상이다. 이렇게 채집해서 위로 올려진 샘플들을 가지고 심해저와 온도가 비슷한 저온생물실에서 관찰 및 실험에 들어간다. 생물을 관찰하고 사진을 찍은다음에는 포르말린과 함께 보존하거나 냉동한다. 이후 DNA를 추출해서 분석하기도 한다.
심해저에 사는 생물로는 여러 가지 색깔의 해삼과 불가사리, 말미잘, 바다나리, 해면, 그리고 망간단괴에 붙어사는 갯지렁이, 유공충, 히드로충 등이 있는데, 물론 이름도 모르는 것들도 많다. 지은이 김웅서가 채집한 생물 중에는 눈이 없는 물고기가 있어 모두의 주목을 끌었다한다.
망간단괴는 분쇄기에서 갈린 후 동전처럼 생긴 펠릿으로 만든다음 원소분석기에 넣어서 망간, 구리, 코발트, 니켈 같은 원소가 얼마나 함유되어 있는지 측정된다. 잠수하며 탐사한 내용에 대해서는 보고서를 작성하고 바로 선상의 세미나에서 발표한다.

과학시간에 어울리는 이상의 지식 외에도, 이 책에는 재밌는 내용이 많다. 무엇보다도, 좋아하는 일을 하며 자기가 좋아하는 바다를 늘 벅찬 심정으로 대하는 저자의 열정적인 모습이 매우 부럽고 보기 좋았다. 해양생태학을 전공한 저자에게, 국가적 차원의 중요성을 떠나 개인적으로도, 이번 탐사가 얼마나 신나는 경험이었을까? 악천후 때문에 노틸에 타는게 거의 불가능해졌을 때,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그러다 다시 동전던지기로 없어질 뻔한 기회가 다시 찾아왔을 때, 종교의 유무를 떠나 틀림없이 그는 감사의 기도를 드렸을 것이다.

좋아하는 일이 있다는 것 자체도 기쁘고 감사한 일이지만,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또다른  문제다. 신체적, 경제적 제약도 제약이겠지만, ‘운’이라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번에 대학원 입학시험(이라기보다는 면접)을 보며 다시 한 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이외의 것 때문에 나의 미래가 결정되는 일이, 사실 얼마나 많겠는가? 대학원 가는 게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보이지만, 나도 이번에 합격하고 나서 얼마나 기쁘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던지-. 그런 점에서 저자는 거의 행운아라고 불러도 될듯하다.

물론 책을 쓰기 위함에서이기도 했겠지만, 그는 참으로 부지런히 사진을 찍고 올리고 자료를 정리하고 동료과학자들에게서 정보를 수집한다. (나중엔 거의 아탈랑트의 공식사진사로 여겨지는 듯 하다) 신기한 음식을 먹으면 음식에 대한 정보를 얻고, 여러 나라의 과학자들에게 말도 배우고, 침대에 장난을 치면 침대의 구조를 조사한다. 잠깐씩 머무는 항구에서도 관광서를 섭렵한 다음 관광(이라기보다는 견학, 공부)을 한다. 42일간의 여행 동안 네 권의 책(그냥 가벼운 소설책이 아니다)을 읽고, 독후감을 쓰고, 동아일보로 기사를 써 보내고, 한국의 연구소와도 끊임없이 연락을 주고받는다. 배 안이라 운동을 잘 못하니 비좁은 선실에서 매일 윗몸일으키기와 체조를 하고, 프랑스요리를 좋아하면서도 고기섭취량을 염려해서, 아침은 바게트 한 조각과 커피정도로 절제한다. 그는 매일 해 뜨는 것과 해지는 것을 보곤 아름다움을 느낀다.

그는 매사에 호기심이 많고 부지런하며 감수성이 풍부하다. 한 마디로 말해 학자의 자질을 두루 갖추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생활을 잘 관리하며 절제할 줄 안다. 이는 단지 행운을 받았기 때문만은 아니란 걸 나는 안다. 호기심, 부지런함, 감수성, 이런 것들도 충분히 노력의 산물이 될 수 있음을 난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점에 감사드린다. 학자의 자질을 타고나지 않아도, 반복과 연습에 의해 그런 것들을 충분히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학자인 남편을 옆에서 보며, 소위 지적활동이라는 게 얼마나 단순노동이 많이 필요한 일인지를 날마다 느낀다. 아이디어는 순간 떠오를지 모르나,(물론, 쌓여있는 지식과 성찰이 없으면 그것도 없다) 그것을 구체화시켜 하나의 결과물로 내놓기까지는 소위 ‘짜증나는’ 시간들이 얼마나 많이 필요하던가? 문장 하나하나를 몇 번에 걸쳐 다듬고, 표 하나를 조금이라도 보기 좋게 고치고, 단지 표현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할 것인지를 고민한다. 난 예전엔,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라고 주장하며, 그런 ‘보기 좋게’ 만드는데 들이는 시간이 아깝다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가령 이 책이 나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단지 내용만이 아니라 지은이의 글솜씨, 적재적소에 깔끔하게 삽입된 사진들도 크게 한 몫 하는 게 아니던가? 여기 나오는 한 컷의 사진을 위해, 저자는 비숫한 사진을 적어도 다섯 장 씩은 찍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낭비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건, 부지런함과 꼼꼼함이라는, 아주 중요한 학자적 자질이 없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과학자들이 벌이는 천진한(?) 장난이 없었으면, 42일간의 탐사는 다소 지루했을 것이다. 심해잠수정에 처음 타본 사람은 소위 신고식을 해야하는데, 진흙양동이에 엉덩이을 깔고 앉아 이상한 음료를 먹고 이상한 가면을 쓰고 얼굴에 진흙범벅, 시궁창범벅이 된 후 찬물세례를 받는 것이다. 또 배가 적도를 통과할 때는 바다의 신 넵튠에게 고사를 지내고 통과허가증을 받아야하는데, 물세례를 받고 넵튠부인의 발에 묻은 구역질나는 액체를 핥아야 한다. (근데 죄인들은 가슴에 ‘반넵튠해방전선’이라고 쓴 티를 입고 있다)

서양인들은 장난을 참 좋아하는 것 같다. 메이져리그에 진출한 우리나라 야구선수들이, 팀원들의 장난에 적응 못해 힘들어한다는 기사도 보았다. 이들의 장난은, 말하자면 유머의 다른 모습, 여유의 다른 모습일 것인데, 우리나라는 이런 것들이 참 드문 것 같다. 교수는 근엄해야하고 나이 먹은 사람은 점쟎아야 하고 등등의 고정관념, 휴식의 가치는 거의 인정되지 않고 일만 중요시하는 풍토, 미학적 표현을 비롯해 ‘미’에 대한 교육의 전무, -- 아마도 이런 것들 때문이 아닌가싶다.

프랑스의 떠벌림과 자기과시는 역시 이 책에서도 빠지지 않았다. 프랑스과학자들 역시 자국의 탐사선에 대한 자랑을 빠뜨리지 않았다 하고, 탐사에서 찍은 사진은 허락을 받아야만 사용할 수 있고, 특히 노틸에서 찍은 사진은 프랑스국립해양개발연구소의 로고를 넣고 노틸에서 찍은 것이라고 명시해야한다고 한다.(앗, 그런데 이 책에 나온 사진들은 로고가 없다!) 디스커버리채널에서 과학다큐를 보면, 프랑스에서 만든 것은 금방 알아보는데, 하도 자랑이 심하기 때문이다. 세계최초로 잡은 화면이라느니, 이걸 찍기 위해 아주 대단한 가시광선증폭기(정확한 이름은 기억안남)를 사용했다느니,-- (그러면서 정작 중요한 화면은 얼마 안된다) 사실 다른데서 찍은 다큐도 그 정도는 다 기본인데 말이다. 그러나 어쨌든, 노틸은 20년 전에 만들어져서 그 동안 세계 곳곳의 심해를 누렸지만, 우리나라는 이제야 유인잠수정을 만들고 있으니, 뭐 기분 나빠도 자랑을 다 들어주는 수밖에는 도리가 없다.

심해 5000미터에도 여러 가지 생물들이 산다는 사실, 사실 이게 가장 신기할 일이지만, 나는 과학교사인 관계로 이미 비디오로 보고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탐사선 안에서 일어나는 구체적인 일들과 과학자들의 생활을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쓴 글은 또 다른 읽는 맛이 있었다. 외국에서는 자연과학자들에게도 글을 잘 쓰는 훈련을 필수로 시킨다고 하던데, 학술논문도 논문이지만, 이런 대중적인 글이 많이 나와서, 많은 사람들, 특히 어린나이의 학생들이 과학에 대한 꿈을 많이 가졌으면 좋겠다. 내가 과학에 관심이 많아진 것도, 문제해결의 짜릿함보다는, 첫째는 자연에 대한 아름다움과 신기함을 느껴서가 아니던가? 지금 우리나라 학생들이 직접체험의 기회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마당에, 이렇게 쉽게 재밌게 읽히는 좋은 책들은, 가장 훌륭한 간접체험의 수단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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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반향초 2022-06-26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해생물 특히 해파리등을 좋아하는 7세남아를 위해 심해책을 찾다가 댓글을 보게되었어요. 해양관련책이 너무 없고(아이들이볼 용도로) 직접보긴 더 어려워서 댓글을 다 읽어보거든요 아이가 좋아할만큼 사진도 많은지 그사진이 찍힌과정또는 설명은 어떤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