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의 고독
홋타 요시에 지음, 이종욱 옮김 / 논형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국전쟁 때 일본이 호황을 누리며 번영의 기초를 쌓았다는 사실은 우리나라에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당시 상황이 어땠는지를 알려 주는 작품은 한 번도 본 기억이 없고, 소개조차 받은 적이 없었다. 이 작품은 바로 그 때를 배경으로 한다. 이것만으로도 번역되어 출판될 자격이 있는 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시대배경 자체가 경계적 성격을 가지지만 등장하는 인물 또한 그러하다. 주인공 기가카는 신문사에서 번역 알바를 하면서 동거녀 쿄코와 함께 아르헨티나로 이주할 궁리만 한다. 주변 인물도 마찬가지다. 이런저런 이권에 개입해 한 몫을 챙기는 국제사기꾼이자 오스트리아 귀족인 티르피츠, 미국계 일본인이었다가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에 참가했던 도이, 중국인 기자 장궈쇼우 등도 정도와 입장 차이만 있을 뿐 부평초 같은 신세이다.

 

공간적으로 보면 도쿄를 그리 벗어나지 않지만 등장 인물들의 머릿속에 등장하는 공간은 의외로 글로벌하다. 상하이, 미국, 파나마, 아르헨티나, 베트남, 스위스, 프랑스 심지어 소말릴랜드도 등장한다. 길지 않은 작품이지만 세계를 담았다고도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여러 모로 시인 김수영이 생전에 작가 훗타 요시에를 주목했었다고 하는데, 그럴 만하다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작품이기도 하다.

 

소설에서 가장 인상깊은 장면은 일본인이 지배하던 중국과 동남아의 소년과 성인들이 일본인의 허드렛일을 해주며며 푼돈을 받던 때의 표정과 미군의 잡일을 해주는 일본인들의 표정이 같다는 것이다.

 

이 책에는 <광장의 고독>외에 <매국노漢奸> 이라는 제목이 붙은 단편소설 한가 더 실려있다. 일본어로 번역된 초현실주의 작품에 빠진 안드레 安德雷 라는 삼류 시인이 패전 후 상하이에서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를 다룬 작품이다. 희극적 주인공의 비극이라 할 수 있는데, 동정이 가면서도 너무 순진하게 살면 어떤 대접을 받는지도 생각하게 만들었다. 불행 중 다행이지만 안드레는 죽음을 당하지는 않았다.

 

심도 있는 작품해설도 읽어 볼 만 하며. 태평양 전쟁 직후 일본과 중국의 내면을 알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하는 작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