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트라베이스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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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의 고백이 이토록 처연할 수 있을까. 자, 상상을 해보라. 고개를 푹 숙인 그가 걸어간다. 어깨는 축 쳐져 있고, 자기 키를 웃도는 커다란 콘트라베이스를 이고, 한눈에 보아도 너무나 소극적으로 보이는 그, 그런 그가 이야기를 시작한다. <콘트라베이스>는 흥미로운 소설가 쥐스킨트의 출세작이다. 모노극 형식의 희곡인 -콘트라베이스-는 내성적인 콘트라베이스주자의 멜랑꼴리한 고백이다.

그는 콘트라베이스가 얼마나 중요한 악기인가부터 인지시킨다. 그리고 여러음을 넘나들면서 인간과 비유한다. 마음속이 우주처럼 넓은 속성을 가진 자들이 그 모든 것을 표출 시킬 수 없는 것처럼, 이 커다란 악기도 같다라고 말한다. 그는 상당히 자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곧 오케스트라 안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비관한다. 정녕 오케스트라의 구성이 인간 사회의 모형이라고 말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 세계나 그 세계나 쓰레기에 관련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멸시와 조롱을 받기마련'이며 '희망이라곤' 전혀 없다고 말한다. 이처럼 자신의 위치를 나타내주는 것은 그가 짝사랑하는 여인의 이야기에 이르러 정점에 달한다. 그는 소프라노 가수인 세라를 사랑하지만 그녀는 그를 알지못한다. 결국 그는 그녀의 눈에 들기 위해 그로선 감당하기 힘든 일을 감행하기를 계획한다. 그가 일을 벌렸는지 벌리지 않았는 지는 알지 못한다. 일을 벌린다고 밝힌 순간에 이야기는 끝나 버리기 때문이다.

인간을 미래를 예측할 수 업는 결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생각엔 그가 평상시처럼 조용히 현실에 순응했을거라고 짐작한다. '그러니 제발 나를 놔두시오' 라고 외치던 좀머씨와는 반대로 자신의 존재를 인식시키기 위해 새로운 모험을 감행하는 그는 쥐스킨트의 여타 인물들보다 희망적인 성향을 지녔다.

<콘트라베이스>는 쥐스킨트가 내면묘사에 우등하다는 사실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수작이다. 걱정을 달고 사는 인생에서 커다란 콘트라베이스를 메고 걸어가는 그의 모습은 소박한 한 인간의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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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홍세화 지음 / 창비 / 199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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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나라를 다 갈수 있지만 꼬레만은 오지 못한다는 파리의 이방인 홍세화. 그는 파리의 택시 운전사다. 인텔리인 그가 시대의 문제를 조목히 항거하여 꼬레에서 추방된 이후 생존을 위해 운전을 하면서 스스로를 되뇌이는 기록과도 같은 책, 파리의 택시 운전사.
솔직히 당시의 상황을 간혹 들려오는 얘기처럼(마치 소문처럼)귀에 담은 터라 실감이 잘 나질 않는다.

홍세화는 미래를 모르는 건 차라리 기쁨이지만 과거를 알지 못한다는 사실은 불운이라 했다. 부정한 정권의 재빠른 교체와 혼란스러운 시대상황 속에 문제의식에 가득찬 학생들이 있었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 아니었겠는가 싶다. 방금 본 뉴스에서도 부시의 방한을 반대하는 젊은이들의 움직임을 보면서 그와 같은 투쟁이 선연히 스쳤다.

그가 프랑스에서 귀하게 배운 나와 다른 것을 존중하라는 똘레랑스가 새삼 중요하다고 느낀다. 작은 정신이지만 사람들이 인식하게 될땐 커다란 결과를 가져올 똘레랑스. 한사람, 한사람의 의식은 물론이거니와 브리짓 바르도나 조지 부시에게 꼭 그 정신을 알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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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딜 수 없는, 미쳐 버리고 싶은
밀란 쿤데라 외 10명 지음, 장석영 옮김 / 현실과미래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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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를 비롯해 D.H로렌스, 나다니엘 호손, 플로베르, 도리스 레싱등 세계 문학사에서 최고라 할만한 작가들의 단편 모음집이다. 이 책을 본 나의 느낌은 솔직히 말해 당혹스럽다. 소설이란 스토리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게다가 이 단편선에 실린 글들은 최고 작가들의 글들이다. 어찌된 일인지 모두 한 사람이 쓴 것처럼 수준 이하로 쉽고 같은 소리로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외국 작품들을 읽을 경우에 나타나는 단점이 바로 문체를 알 수 없다는 것이겠고, 그만큼 번역이 중요하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의 번역은 각 소설들의 제목조차도 자기식으로 바꿔놓았다. 어렵게 느껴지는 작가들의 글을 쉽게 해석해 놓은 것도 나쁘진 않겠으나 읽는 내내 느꼈던 서운함은 첫 책장을 넘길때의 기대를 뛰어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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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머 씨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장 자끄 상뻬 그림 / 열린책들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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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에 따르면 쥐스킨트는 유행 지난 스웨터를 입고, 개를 무서워 하며, 사람만나길 꺼리고, 햇빛을 싫어하고, 은둔자인 까닭에 일체의 문학상을 거부하며, 자신의 얘기를 하는 친구완 절교를 선언하는, 게다가 비위생적인 이유에서 사람들과의 악수도 꺼린다고 한다. 글쎄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그중 절반만 사실이라고 해도 그는 상당히 까달스런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는 나의 기억속에 그렇게 새겨진 사람이었다. 거의 문학계의 스탠리 큐브릭 아니면 테린스 맬릭 수준이다.

-좀머씨 이야기-는 쥐스킨트 자신의 모든 모습이다. 그는 자신을 궁금해 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 책에서 상당한 노출을 해 놓았다. 일차적으로 말하면 가슴 따뜻한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려 일으키는 한 소년의 짤막한 성장소설이다. 거기다 장 자끄 상베의 예쁜 그림까지 합세하여 소설의 맛깔을 한층 드높인다.

아무말없이 걷기만 하는 좀머씨. 그는 미스터리한 인물인 동시에 쥐스킨트 자신의 외적 모습으로 보인다. 은둔자란 명성대로 다른 사람과는 어울리지 못한다는 작가는 좀머씨의 모습 그대로다. 좀머씨는 '나'의 기억속에 딱 한마디를 할 뿐 여전히 걸으면서 침묵한다.그 말인즉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이다. 좀머씨 이야기를 들려주는 '나'인 소년은 너무 친숙하고 자연스러운 성장기를 보내고 있다. 그런 그의 사심없는 순수함이 쥐스킨트가 지닌 내적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고집스러운 인상 뒤로 연약하고 순수한 모습이야말로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모습이니까.

-좀머씨 이야기-를 읽고 난 솔직한 심정은 만족스럽지 못하다. 이 소설은 앞서 줄줄 나열한 대로 여러 매력을 지닌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그냥 허전함. 그 비어있는 느낌이 밀려온다. -좀머씨 이야기-를 순수하게 받아들이기엔 나의 동심이 모두 퇴색해 버렸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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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나를 만나기 전
줄리언 반즈 지음, 권은정 옮김 / 문학동네 / 199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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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인상적인 소설이다. 가볍게 시작해서 신랄하게 진행되다가 범상치 않은 결말에 다다른다. 망상이 현실을 장악할 때 포착된 인간의 모습은 너무나 분열적이다. 줄리안 반즈는 그 모습을 괴기나 엽기가 아닌 우스꽝스럽고 동정적인 모습으로 표현해 놓았다.
자신의 망상에 의해 파괴되어지는 그레이엄, 파괴의 대상인 앤, 결정적인 불씨인 잭. 잭의 말을 빌자면 그레이엄은 현대판 오셀로를 재현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파괴 대상이 아닌, 자신이 파괴되어진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존 파울즈나 업다이크, 그레이엄 그린이 추켜세운 말에는 다소 과장이 있지만 이 인상적인 소설을 보고 나면 반즈가 상당히 중요한 작가라는 말엔 공감이 간다. 그녀가 나를 만나기 전의 상황 때문에 우울하게 사라지는 건실한 영혼을 본다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안타깝다는 것은 그가 과거에만 매달린다는 사실이고,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 사실을 자신이 정확히 인지하면서도 파멸되어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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