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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나를 만나기 전
줄리언 반즈 지음, 권은정 옮김 / 문학동네 / 1998년 10월
평점 :
절판
상당히 인상적인 소설이다. 가볍게 시작해서 신랄하게 진행되다가 범상치 않은 결말에 다다른다. 망상이 현실을 장악할 때 포착된 인간의 모습은 너무나 분열적이다. 줄리안 반즈는 그 모습을 괴기나 엽기가 아닌 우스꽝스럽고 동정적인 모습으로 표현해 놓았다.
자신의 망상에 의해 파괴되어지는 그레이엄, 파괴의 대상인 앤, 결정적인 불씨인 잭. 잭의 말을 빌자면 그레이엄은 현대판 오셀로를 재현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파괴 대상이 아닌, 자신이 파괴되어진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존 파울즈나 업다이크, 그레이엄 그린이 추켜세운 말에는 다소 과장이 있지만 이 인상적인 소설을 보고 나면 반즈가 상당히 중요한 작가라는 말엔 공감이 간다. 그녀가 나를 만나기 전의 상황 때문에 우울하게 사라지는 건실한 영혼을 본다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안타깝다는 것은 그가 과거에만 매달린다는 사실이고,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 사실을 자신이 정확히 인지하면서도 파멸되어간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