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안선생의 사랑
시마다 마사히코 지음, 현송희 옮김 / 민음사 / 1996년 5월
평점 :
품절


피안 선생은 너무나 허구적이라 실재적이다. 시마다 마사히코를 처음 접하고 당혹스러움을 맞이 한다. 피안으로의 경지는 차안에서 가능 한가? 굉장히 실존적인 물음을 마지막까지 안고 있는 이 책은 때때로 물음의 무용에 읽는 이를 미궁으로 빠뜨린다. '생' 또는 '사'의 영역까지 뫼비우스띠처럼 하나의 고리로 보고 있는 피안 선생은 정체성이라는 물음안에서의 물음이다.

결국 선생은 피안에 이르기 위해 '고등 유민의 휴식처'인 정신병원에 오가면서도 정작 차안에서 벗어난 듯 보이는 사람은 선생의 연인 중의 하나인 교코이다. 기쿠히토는 선생에게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다가가지만 반러시아인으로 머무르고 만다. 시마다 마사히코는 단순히 한 젊은이에게 설교나, 희한한 인간인 피안 선생의 일상을 나열한 것일까?

차안에서 벗어난 교코는 피안 선생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전하고 있다. '선생님은 충분하고도 남을 정도로 분발해 오셨습니다. 사십대를 앞두고 이미 현세의 인생에서 몇 번이나 환생을 거듭해 버리신 것은 아닐까요? 하지만 선생님은 누군가로 변화된 것이 아니라 유일무이한 선생님 그대로인 채 미래를 향해 열려 있는 것입니다.' 이 글귀에서 나오는 선생님을 일본 문학으로 대처해 본다면 작가의 미궁같은 의도를 가듬 할 수 있을 듯 하다.

사랑으로의 피안 이야기 중에서 간간이 인용되는 나츠메 소세키나 돈 후안, 겐지 이야기는 분명 문학의 엿봄이다. 시마다 마사히코는 피안일기를 빌어 영원히 거짓말을 함으로서 연애나 청춘을 결코 끝나지 않게 하는 것이 소설가의 사명이며, 거기에는 체력이 필요하다. 일본문학의 근본적인 문제는 체력부족에 있다고 술회한다. 한마디로 이 소설은 진정으로 일본 문학의 아이덴티티를 고뇌한다. 피안 선생과 그의 여인들, 그의 친구들, 기쿠히토에 이르기까지 모두 차안에서의 소설, 일본 문학의 존재를 상징 하는 것처럼 보인다.

기쿠히토란 인물이 일명 돼지목 교수에게 듣는 의미 심장한 말은 이러하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명확한 답을 주지 않았다. 역으로 대답을 다 알아버리면 살아가기가 어렵게 되어버린 다는 것을 가르치려 했던 거다....'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어 보이던 제자는 아직 깨닫지 못 한듯 이 보이지만 답은 처음부터 없는 것이었다. 실존자체가 그러하니까.

이 소설대로 라면 시마다 마사히코가 생각하는 일본 소설은 긍정으로 노마드한 문학이다. 결국 피안 가까이 이른 교코가 말하지 않는가. '선생님은 누군가로 변화된 것이 아니라 유일무이한 선생님 그대로로 미래를 향해 열린 것이라고.' 아베 코보가 내뱉던 실존에 감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시마다 마사히코라는 젊은 작가의 실존론도 당황스럽긴 해도 일본 문학의 지속적인 신뢰감을 가져다 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