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최근에 나온 책들(74)

 

 

 

 

최근에 나온 책들 가운데, 가장 강조할 만한 책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뉴욕 지성계의 여왕, 대중 문화의 퍼스트레이디, 새로운 감수성의 사제"로 불렸던 수잔 손택의 <강조해야 할 것>(시울, 2006)이다. "2004년 작고한 20세기의 대표적 예술평론가이자 작가인 수전 손택의 에세이 41편을 모"은 책으로 "고전이 된 첫 에세이집 <해석에 반대한다> 출간 이후 40여년만에 발간된" 것이며, "그녀의 마지막 에세이집"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책은 <해석에 반대한다>(이후, 2002),  <급진적 의지의 스타일>(현대미학사, 2004), <우울한 열정>(시울, 2005)에 이어지는 것이다. 지난번에 이 연재에서 다루었던 <우울한 열정>을 미처 다 읽기도 전에 <강조해야 할 것>이 도착했으니 대략 난감이다. 덥석 집어물 형편도 아니면서 무시할 수도 없으니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미국 지성계의 여왕'이란 별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만한 여성 지성인이 많지는 않다는 것. 그리고, <강조해야 할 것> 이후에 (그녀의 소설들이 남아있지만) 더 나올 만한 책도 없다는 것.  

친절한 소개나 리뷰를 미리 참조하고서 책을 손에 잡는 게 유익할 듯싶은데, "총 3부 구성으로, 해박한 교양 지식과 다독으로 유명한 지은이답게 수많은 예술 작품에 대한 글들, 그리고 '행동하는 지성인'으로서 지은이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글들로 채워져 있다. 1부 '내가 본 것들'은 영화와 회화, 오페라, 연극, 사진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를, 2부 '내가 읽은 것들'에서는 그녀 스스로 정전으로 생각하는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돈키호테, 롤랑 바르트 이외에도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을 상당수 다루고 있어, 독자들에게는 예술에 대한 안목을 한층 더 넓힐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고. '안목을 한층 더 넓힐 수 있는 기회'도 되겠지만, 맥락을 알 수 없기에 헤맬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되겠다.

그리고, "3부 '그곳과 이곳'에서는 수전 손택의 사적인 이야기가 그녀의 사유와 얽혀들어간다. 첫 출간 30년 후 <해석에 반대한다>의 현재적 효용성은 어떠한가에 대한 논의, 전쟁중인 사라예보에서 <고도를 기다리며>를 공연한 에피소드와 번역의 문제 등에 대한 이야기를 펼치고, 그 가운데 지식인의 의미와 그에 따르는 책임을 날카롭게 설파한다." 나라면 3부부터 읽기 시작하겠다.

 

 

 

 

두번째 책은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삼인, 2006). 주말에 각 언론에서 생각보다 많이/크게 다루어서 의외라고 생각한 책이기도 하다. 지난 2004년에 출간된 <도덕의 정치>(백성, 2004)에 대해서는 비교적 잠잠했었기 때문이다(<도덕의 정치>는 당시 러시아로 떠나기 전에 내가 마지막으로 산 책으로 기억된다. 한편 알라딘에는 이 책의 저자가 '조지레이 코프'로 잘못 기입돼 있다). 레이코프는 자주 공동작업을 하는 마크 존슨과 함께 현대 인지언어학계를 이끌고 있는 대표적인 언어학자이다(그러니까 포스트-촘스키의 선두주자쯤 된다). 별로 읽을 짬은 내지는 못했지만, 그가 출간한 모든 책을 나는 챙겨둔다(물론 번역서들이다). 참고로 말하면, 러시아에서도 몇년 전부터의 그의 책들이 하나둘 소개되고 있다.

언어학자의 정치론이 그다지 낯설지 않은 것은 물론 촘스키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변형생성문법의 창시자와 인지언어학의 거목은 관점이 약간 다를 수도 있지 않을까? 나의 일차적인 호기심은 그것이다. 물론 공통점도 있을 텐데, 그건 당연히 '언어(말)'에 대한 관심일 터(우연찮게도 같이 나온 촘스키의 최신간의 제목은 <여론조작>(에코리브르, 2006)이다). 

소개의 말을 잠깐 따라가본다: ""문제는 말[언어]이다." 노엄 촘스키와 함께 세계적인 언어학자로 꼽히는 지은이가 2004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미국 정치를 바라보며 내놓은 결론이다. 왜 말일까? 그건 말이 유권자들이 세계를 보는 프레임[생각의 틀]을 결정짓고, 이는 곧 정치적 입장과 투표 성향을 드러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바로 이 언어의 문제에 주목하여 미국 민주당의 선거 승리전략에 대해 실제적인 지침들을 조언으로 제공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2004년 출간 이후 민주당원들의 입소문을 타고 20만 부가 넘게 판매되었고, 정치와 언론에서 '프레임' 개념이 새로을 각광받게 만든 책이기도 하다." 어쩌면 정치언어학 도서로 분류될 수도 있지 않을까?



계속 따라가보면, "지은이의 전작 <도덕의 정치>를 기반으로 책이 내놓는 주장은 진보 진영이 보수 진영을 바라보는 관점을 새로이 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수 진영의 실패와 거짓말을 공격하고 진실을 드러내는 것만으로 유권자들이 진보 진영에 투표해 줄거란 환상은 버려야 한다는 것. 유권자들은 자기 이익이 아닌 정체성에 맞추어 투표하며, 그들의 프레임에 맞지 않는 진실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평범한 서민들이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겉으로 보기엔 이해 불가능한 현상을 명쾌하게 증명해낸 것." 우리의 경우엔, 언론학자 강준만이 언어학자였다면 썼을 만한 책처럼 보인다. 더불어 생각하게 되는 것은 '언어학자의 사회적 책임'이다.

"터미네이터를 연기한 배우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주지사 선거에서 승리한 배경에 대한 분석을 비롯하여 각종 미국 정치 담론에 말과 프레임의 힘이 어떻게 관여하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쉬운 내용 구성 안에서 언어학과 정치학이 흥미로운 결합하여 한국 정치 환경을 해석하는 데에도 강력한 시사점을 던져준다"고 하니까 선거의 계절을 맞이하여 한번쯤 읽어볼 만하다. 그런데, 내 <도덕의 정치>는 어디에 처박혀 있는 것일까?

 

 

 

 

세번째 책은 "<나의 서양미술 순례>, <소년의 눈물>, <디아스포라 기행>으로 잘 알려진" 저자 서경식의 <난민과 국민 사이>(돌베개, 2006). "지은이가 90년대 중반부터 발표한 시론·시평들을 책으로 엮"은 것이라고 하니까 분량에 비해서는 부담감 없이 읽을 수 있겠다 싶지만, 그건 글의 형식상의 문제이고 내용상으로는 책의 제목 만큼이나 무겁고 갑갑할 것이니 미리 각오하고 읽는 편이 낫겠다. "'"난민'도 '국민'도 될 수 없는 추방자(디아스포라)의 감수성을 지닌 재일조선인인 지은이의 주변을 둘러싼 일본과 한국 사회의 정치와 역사에 대한 사유를 담았다"는 책.

난민 얘기가 나오니까 떠오르는 건 작년 봄에 <씨네21>(2005. 05. 13) '유토피/디스토피아'란에 실렸던 이진경 교수의 칼럼이다. '난민이 필요한 나라'라는 제목. 이 참에 한번 더 읽어본다.

-난민, 어느 한 나라에서 정부에 항거하거나 지배체제를 전복하려던 꿈을 꾸다 체포를 피해 도망쳐야 했던 사람들이다. 망명, 여전히 전복의 꿈을 버리지 못해서, 혹은 전복을 꿈꾸던 삶을 등질 수 없어서 자신의 나라를 뒤로 한 채 이국 땅을 떠도는 행위다.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 자국 정부가 자신에게 할당한 지위에서 벗어나 떠도는 이탈자들이고, 새로운 체제나 삶의 방식을 만들어내고자 꿈꾸는 탈주자들이다. 그들은 최소한 자국 정부와 혹은 자신의 국가와 맞서는 위치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정부와 맞먹는 지위를 가진 자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나라 외부에서 살기에, 한 사회의 내부에선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안에서는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그 내부에선 할 수 없는 것을 하고, 만들 수 없는 것을 만들어낸다. 물론 그들의 시계가 망명하던 시간에 멈추어버린, 그래서 그렇게 할 능력을 잃어버린 경우도 적지 않지만 말이다. 또한 그들은 자신이 사는 나라의 외부자고 망명자, 난민이기에, 그 나라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듣는다. 이런 점에서 그들은 어디서도 외부자다. 내부에, 그 친숙함에 안주하려는 것을 방해하고, 익숙함의 관성에 따라가는 것을 막는다.

-이렇게 그들은 자신의 나라, 혹은 자신이 사는 나라에 긴장을 만들어내고 그 안에 없는 것을 밀어넣는다. 그래서 무언가 다른 것이 만들어지게 한다. 그들은 언제나 저주받은 삶, 피곤하고 힘든 삶을 강요받지만, 그것을 좀더 나은 삶으로 되돌려준다. 비록 그것이 의도된 것은 아니라 해도 말이다. 망명자나 난민의 이러한 역할은 그들이 꿈꾸는 것을 실현하는가 여부에 따르기보다는 차라리 어디서든 외부자라는 그들의 존재 자체에 기인하는 것이다. 따라서 망명자나 난민이 아예 없는 세상보다는 차라리 원하는 누구나 쉽게 그런 외부자가 될 수 있는 세상이 훨씬 더 좋아 보인다. 망명이 자유로운 사회. 그리고 되돌아오는 귀국도 자유로운 사회.(*'망명이 자유로운 사회'에서도 '망명자'는 여전히 '망명자'인가?)

-이런 점에서 보자면, 망명이 꼭 정치적 핍박과 목숨을 위협하는 억압에 의해 이루어져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국적을 던져버리고 떠나고 싶다는 생각 한번 안 해본 사람이 어디 있을까? 일전에 내가 아는 한 선배는 붕괴한 소련으로 늦은 유학을 떠나면서 자신의 소련행을 “문화적 이유에 의한 망명”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는 귀국할 수 없게 하는 위협이 없다고는 해도, 이런 망명이 결국에는 우리가 사는 사회에 무언가 다른 것을 만들어낼 것은 분명하다.(*그런 소련행을 환영할 '러시아인'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요즘 러시아에는 스킨헤드 경계령이 다시 떨어졌다.) 

-이른바 ‘임시정부’를 자처한 망명자들에 의해 수립된 나라, 가장 저명한 정치지도자가 오랜 망명생활을 한 끝에 대통령이 된 과거를 가진 나라, 그러나 난민협정에 가입하기 전에는 물론, 뒤늦게 가입한 뒤에도 10년이 넘도록 단 한명의 난민도 받아들이지 않았던 나라, 그리고 미얀마의 망명자들처럼 정치적으로 곤혹스런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난민보다는 불법체류자 다루듯 처리하는 나라, 목숨이 걸린 문제를 서류에 동그라미 치는 ‘서면회의’로 처리하는 나라, 난민된 사정이나 현재의 처지에 귀기울이기보다는 그가 돌아가도 결국 죽지는 않을 거라는(사람은 정말 얼마나 죽기 어려운 것인지!) 생각으로 안심하고 추방명령을 내리는 나라, 그 나라가 바로 우리가 사는 나라다. 이 나라에 정말로 필요한 것은 혹시 윤리적, 혹은 도의적 이유에 의한 망명자들인지도 모른다. 정말 난민이 필요한 나라다.

칼럼을 읽을 당시에 몇 마디 촌평을 페이퍼로 써볼까 하는 생각을 가졌었지만 다른 일들에 치여 흐지부지됐었다. 칼럼의 반어적인 문제제기에 일부 공감하면서도 내가 가졌던 소박한 의문은 '난민'과 '망명자'자 과연 같은 부류인가? '한번쯤 국적을 버리고 떠나고 싶다는 생각 한번" 해본 사람과 난민/망명자는 같은 부류인가? 하는 점. 그런 의문은 '노마드적 사유(노마디즘)'와 '노마드'는 구별되어야 한다는 나의 기본적인 입장에서 비롯된다. 물론 저자 서경식이 다루는 건 '재일 조선인'이라는 진짜 '난민', 혹은 국민도 난민도 아닌 어중간한 '난민'이다. 구체적인. 그리고 현실적인.     

책소개를 따라가자면, "총 3부 구성으로, 1부는 본격적인 시론과 시평에 앞서 지은이의 정치적 관점과 윤리적 감수성을 개괄할 수 있는 짤막한 에세이들을 실었다. 2부에서는 식민지배 시기부터 재일조선인의 과거를 구성하는 주요 사건들을 돌이켜보며 이들을 타자로 취급하고 차별하는 일본과 한국의 문제를 강도높게 비판한다. 국민의 영역 안에 들어와야만 제대로 된 대우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오류라는 것."

 



 

 

"책 전반에서 드러나는 근대 국가 체제에 대한 문제의식은 또다른 디아스포라들에 대한 애정으로 이어진다. 3부에선 윤이상, 에드워드 사이드 등 국가주의의 폭력에 저항한 이들의 삶과 죽음을 다루고 애도한다. 국가에 의해 배제당하고 추방당하고 희생되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과거사의 상처를 치유한다는 것, 우리 안에 숨어있는 근대의 문제를 극복한다는 것에 대한 고민을 독자들에게 던져준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고민거리'를 던져주는 책이다.

 

 

 

 

네번째 책은 팔 다리가 없는 장애를 딛고 화가가 된 여성, 앨리슨 래퍼(1965- )의 자서전 <앨리슨 래퍼 이야기>(황금나침반, 2006)이다. "태어남과 동시에 가족과 사회로부터 쏟아지던 편견과 배척을 이겨내고, 독창적인 예술가이자 당당한 엄마로 살아가게 된 자신의 인생이야기를 들려준다."그 래퍼가 23일(오늘) 방한했다.



'살아있는 비너스'라고 불리는 "앨리슨 래퍼는 양쪽 팔이 모두 없고 다리는 무릎 아래가 없이 넓적다리뼈에 발이 달려 있는 형상의, 이른바 '해표지증'이라는 기형을 갖고 태어났다. 태어날 때부터 얼마나 살 수 있을까를 모두가 의심했던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미술에 재능을 보였다. 그리고 대학 졸업 후 자신의 벗은 몸에 빛과 그림자를 이용하여 조각 같은 영상을 표현하는 구족화가이자 사진작가로 데뷔하게 된다." 그러니까 책은 그냥 한 예술가의 자서전이다.



그녀는 "이혼한 뒤인 1999년에 임신을 했고, 아이 역시 같은 장애를 가질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주변에서 출산을 반대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의지로 생명을 지키기로 결정하고, 건강한 남자아기를 낳았다. 임신 9개월의 앨리슨 래퍼의 모습은, 트라팔가 광장에 역사적 영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조각상의 모델이 되었다. 모성 및 장애에 대한 편견에 도전하는 앨리슨의 예술작품은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고, '2005년 세계 여성 성취상'과 대영제국국민훈장(MBE)이 그녀에게 수여되었다."

한마디로 대단하다. 더불어 드는 생각은 장애나 콤플렉스가 없는 미래 '생명복제시대'의 인간이란 '위대함'의 조건을 박탈당한 '평균인'이 아닐까란 것이다. 포스트-휴먼 시대의 초상은' 완벽하지만 위대하지는 않은' 인간들의 군집은 아닐까? 

 

 

 

 

끝으로 다섯번째 책은 '고전평론가' 고미숙의 <나비와 전사>(휴머니스트, 2006). 중앙일보의 리뷰는 "거침없는 '역사 비빔' 스페셜"이란 타이틀을 뽑았는데, 이 '비빔(퓨전)'에 있어서 저자의 솜씨는 단연 독보적이란 걸 우리는 이미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그린비, 2003)에서 확인한 바 있다. 저자가 다시 3년만에 내놓은 책은 "시공간, 인간, 성(性), 몸, 앎, 글쓰기 등을 주제로 2001년부터 5년여간 써온, 한국 근대성의 기원과 다양한 양상들을 살피고 탈근대의 미래를 논의하는 11개의 글을 실었다."

"책 전반에서 지은이가 시도하는 접근법은 근대, 18세기, 탈근대 이렇게 세 가지 시간대를 서로 충돌시키고 넘나드는 것이다. 즉 근대의 담론을 이질적인 다른 두 시간대의 담론에 '밀어넣음'으로써 근대성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 "푸코가 고고학적 탐사를 무기로 근대성의 지축을 뒤흔든 전사라면, 연암은 그 위를 사뿐히 날아올라 종횡으로 누비는 나비다!" '나비와 전사'라는 제목은 이 접근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거기에) 다산, 이옥, 옹녀와 변강쇠, 대장금, 그리고 허준, 노신, 달라이라마 등 18세기와 탈근대 담론을 이루는 다양한 요소들이 한데 어우러"지니 소문난 잔치상으로 충분하다. 챙겨먹는 건 독자의 몫이다.

 

 

 

 

다소 예외적이지만, 여섯번째 책도 꼽아본다. 존 릭던의 <1905 아인슈타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랜덤하우스중앙, 2006). 1905년, 러시아에서는 '피의 일요일' 사건이 일어나고, 우리에겐 '을사늑약'이 체결되던 해에 아인슈타인은 무려 5편의 세기적인 논문들을 써냈는데, 그 논문들 이야기란다. "당시 물리학의 상황배경을 설명하고, 아인슈타인이 이들 논문의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고 발전시키기까지의 과정을 함께 보여주어, 아인슈타인 특유의 사고방식과 독창성을 엿볼 수 있도록 했다. 에필로그에서는 1905년 이후 물리학계의 흐름을 다루어 아인슈타인이 미친 영향을 실감하게 해준다." 과학사 산책으로 더없이 유익해 보인다.

게다가 책은 "수식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본문 중간에 삽화를 삽입하여 일반인들도 큰 어려움 없이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아인슈타인의 인간적인 면보다는 학자로서의 면모에 집중하고, 상대성이론 이외에 아인슈타인이 남긴 과학적 업적들을 대거 다루어, 우리가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아인슈타인의 진면목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 여타의 '아인슈타인'까지 같이 챙겨서 읽어볼 만하다. 

 

 

 

 

그리고 일곱번째 책은 러시아 특파원으로 활동한 일본인 기자 에가시라 히로시의 <푸틴의 제국>(달과소, 2006). 몇년 전에 나온 <푸틴 자서전>(문학사상사, 2001)과 함께 현 러시아 대통령 푸틴과 그의 '제국'을 이해하는 데 요긴한 자료가 될 듯하여 꼽아둔다. 나로선 불가피한 '전공관련서' 범주에 들어가기도 하고(얼마나 새로운 내용이 들어가 있을지는 궁금하기도 하고 미지수이기도 하다).

소개를 약간 옮겨오면, "지은이는 일본 특파원 기자로 활약한 경험을 바탕으로 푸틴 정권의 권력 메커니즘을 파헤친다. 미디어와 의회를 장악함은 물론, 소련 해체 이후 엄청난 부를 획득한 신흥 재벌(올리카키)들이 차지한 자원사업을 다시 국영화하여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푸틴 정권의 활동상이 자세히 그려진다. 이와 함께 러시아와 체첸 간 분쟁이 푸틴 정권에게 의미하는 바는 어떤 것인지, 남북정당회담에서 드러난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놓지 않으려는 러시아의 야심 등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상대적으로 우리의 주변 4강 중에서 미, 일, 중에 대한 전문가들은 많다. 당신의 '희소가치'를 좀 살리기 위해서라면, '러시아'에 좀더 투자할 필요가 있다. 러시아 연구의 미답지들은 그 광활한 영토만큼이나 널려 있기에 5년만 공부하면, 자기분야의 국내 '전문가'가 될 수 있는 것이 러시아이다. 당신에게 러시아를 권한다.

06. 04.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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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최근에 나온 책들(67)

최근에 나온 책들 가운데 단연 눈에 띄는 책은 원저가 독일에서 발간된 지 25년만에 완역, 출간된 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이론>(나남,  2006)이다. 숱한 고전들이 아직 번역되지 않은 실정에서 '25년'이면 그다지 대단한 시간차는 아닌 듯도 하지만, 저자의 지명도와 국내에서의 명성을 고려해볼 때 이번 출간은 다소 뒤늦은 감이 없지 않다. 그러니 일단은 타박부터 터져나온다.

 

 

 

 

아마도 가장 적절했을 타이밍은 10년전, 그러니까 그가 방한했었던 지난 1996년쯤이었을 것이다.  당시에도 국내에는 하버마스 전공자나 연구자들이 결코 적지 않았었다(현재의 역자를 포함하여). 그건 방한에 맞춰 출간됐었던 <현대성의 새로운 지평>(나남, 1996)이나 국내 연구자들의 논문집 <하버마스: 이성적 사회의 기획, 그 논리와 윤리>(나남, 1997)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해서, 소위 하버마스 후기철학의 가장 대표적인 저작으로 꼽히는 책의 번역출간이 이렇듯 지체된 이유를 나로선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어쨌거나 '지각한' 번역서이지만 출간을 환영한다. 이젠 전공자들이 독어나 영어로 진땀을 빼가면서 읽지 않아도 되니까. 내친 김에 일반 독자들도 읽어볼 수 있게 됐으니까(번역은 민주주의에 기여한다).  

 

 

 

 

소개를 옮기자면, 이 책은 "<공론장의 구조변동>(1962), <현대성의 철학적 담론>(1985)과 함께 합리성 옹호의 3대 주저로 평가받는 책"이다. 더불어 (있으나 마나한 번역서란 얘기를 듣는) <인식과 관심>(고려원 1996), <사실성과 타당성>(나남, 2000)과 함께 이론적인 '주저'로 평가된다. 사회철학과 법철학, 윤리학 등을 망라하고 있는 '종합적인' 하버마스에게 단 하나 빠진 게 있다면 '미학' 정도인데, 언젠가 한 대담에서 그는 미학쪽의 책은 쓸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나는 이 '공백'이 하버마스의 사유에서 필연적이면서 그 비밀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하버마스의 미학'을 재구성하고자 하는 연구서들은 나와 있다). 


 

 

 

 

"이 책의 핵심 내용은 이 세계가 '생활세계(Lebenswelt)'와 '체계(System)'의 이중 구조로 이뤄져 있다는 것"과 "이때 생활세계는 언어와 행위의 주체로서 인간들이 합리적 토론을 통해 진리를 상호 검증할 수 있는 '의사소통적 합리성'이 가능한 세계"이며 "반면 체계는 화폐와 권력이라는 비언어적 매체를 통해 행위 조정이 이뤄지는 영역으로 윤리를 배격하고 오로지 합목적적 합리성(도구적 합리성)만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하버마스는 "이같은 구분을 바탕에 두고 체계의 논리가 생활세계에 침입해 생활세계를 식민지화함으로써 생기는 현대 사회의 병리현상을 지적한다." 거기에 수반되고 있는 것이 사회학 이론사에 대한 하버마스식 정리이다. 그는 "맑스, 베버, 뒤르켐, 미드, 파슨스에 이르는 사회학의 이론사를 체계적으로 수용하고, 인지심리학으로부터 언어이론, 행위이론, 문학인류학에 이르는 현대 사회이론을 총망라"한다. 가히 사회학 이론의 종합선물세트라 할 만하다.

 

 

 

 

그런데, 그러한 '종합선물세트'를 뜯어보기 전에 잠시 반성해볼 것은 고전적인 사회학 이론서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번역/소개돼 있느냐는 것. '맑스, 베버, 뒤르켐' 같은 3대 이론가는 아직 부족한 대로 입맛 정도는 다실 수 있지만, 미국의 사회학자 미드와 파슨스에 이르면 우리의 번역 살림이 매품이라도 팔아야 할 흥부네 처지와 별반 다를 바 없다는 걸 알게 된다. 한때 이들의 책들을 뒤적거렸지만, 미드에 관한여 내가 갖고 있는 유일한 책은 <미드의 사회심리학>(일신사, 1994)이며, 파슨스도 <현대 사회들의 체계>(새물결, 1999) 와 오래전에 절판된 <지식과 사회>(탐구당, 1972) 정도가 고작이다(사회체계론자이자 하버마스의 이론적 맞수인 니클라스 루만의 국내 번역/소개도 빈곤하기 짝이 없다. 일단은 방대한 주저인 <사회체계론>이 아직 번역되지 않았다).

해서, 한국어로 사회학 고전들을 읽는다는 건 아직은 언감생심이다. 그저 코저의 <사회사상사>나 터커의 <현대 사회학 이론> 같은, 혹은 앤서니 기든스의 입문서들을 참조할 수 있을 따름이다. 아마도 둘 중 하나인지 모르겠다. 한국사회에 대한 이해에 사회학 이론은 불필요하든가, 아니면 사회학의 고전이론서나 번역하고 있을 만큼 우리 사회학자(혹은 사회철학자)들이 한가하지 않든가. 정말로?..

 

 

 

 

두번째 책은 줄리아 우드의 <젠더에 갇힌 삶>(커뮤니케이션북스, 2006). 제목에서 팍 풍기는 바이지만, 여성학 교재로 쓰일 만한 책이다. 특이한 건 책을 낸 출판사와도 연관된 것이지만 젠더의 문제를 커뮤니케이션의 문제와 연관지어 조명한다는 점. 요컨대, '젠더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책이다. 그러한 연구가 지향하는 바라면 (커뮤니케이션 연구가 으레 그렇듯이) '해방적 커뮤니케이션'일 텐데, 아마도 그런 지점쯤에서 줄리아 우드는 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이론' 혹은 '커뮤니케이션적 합리성'과 만나게 될지 모르겠다.   

여성학 관련서들로 비교적 최근에 나온 책들로는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교양인, 2005), 김현미, <글로벌시대의 문화번역>(또하나의문화, 2005),  권혁범, <여성주의, 남자를 살리다>(또하나의문화, 2006) 등이 눈에 띈다. 주디스 로버의 교재용 이론서 <젠더 불평등 - 페미니즘 이론과 정책>(일신사, 2005)도 작년에 나온 책인데, 리뷰를 접해본 바 없어서 필독서인지의 여부는 모르겠다.

 

 

 

 

세번째 책은 안드레아 가보의 <자본주의 철학자들>(황금가지, 2006). 얼핏, 로버트 하일브로너의 <세속의 철학자들>(이마고, 2005)를 떠올리게 하는데, 차이라면 후자가 '위대한 경제학자들의 생애'를 다루고 있는 반면에 전자는 '위대한 경영학자들의 사상'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겠다. 거명되고 있는 경영학자들 가운데, 내게 좀 친숙한 이름은 테일러와 드러커 정도인데(사실 드러커의 책을 읽다가 테일러에 대해 알게 됐다. 워낙에 강조하길래) 자기 경영도 잘 못하고 있는 처지이므로 이 '20세기 학문'에 대한 '무지'가 새삼스러울 건 아니다.

소개에 따르면, "이 책은 프레더릭 테일러에서 피터 드러커에 이르기까지 현대 경영학을 만들어낸 열 세명의 사상가들의 이야기다. 그들의 개인적인 면모에서부터 그들이 어떻게 경영학을 발전시켜 나갔는지, 그리고 그렇게 해서 탄생한 사상들이 어떻게 거대 기업들을 좌지우지했는지 등을 세밀하게 그리고 있다."

보다 폭넓은 맥락에서 경영학은 시장과 정치라는 변수와 무관하지 않을 텐데, 그 시장과 정치를 묶어주는 키워드가 '자유주의'인 모양이다. 국내 학자들이 대거 참여하여 출간한 <자유주의: 시장과 정치>(부키, 2006)를 보건대 그렇다. 책은 '정치적 자유주의', '경제적 자유주의', 그리고 '동양과 한국의 자유주의 사상'이라는 3단락을 통해서, '자유주의, 민주주의, 그리고 한국'이라는 화두를 풀어나간다. 이런 주제로 이만한 부피의 책이 나오는 것도 흔한 일은 아니므로 치하(?)할 만하다.

역사적 전후관계가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로선 (논리적으로나 권리적으로) '경제적 자유주의'가 우선적이며, '정치적 자유주의'라는 것은 그 이해관계를 옹호하기 위한 파생적 논리(이데올로기)라고 생각한다(학생들에게 그렇게 가르쳤다. 한때 논술학원에서. 자유에 대한 나의 생각은 '러시아에는 얼마만큼의 자유가 필요한가'에서도 밝힌 바 있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자유주의 사상가들의 아이디어에 내가 어디까지 동행할 수 있는지 나중에라도 한번 확인해보고 싶다.    

같이 읽어둘 만한 책으론 김영진, <시장자유주의를 넘어서>(한울, 2005), 김비환, <자유지상주의자들, 자유주의자들 그리고 민주주의자들>(성균관대출판부, 2005) 등을 꼽을 수 있겠다. 읽다가 지루하면 문학평론가 이동하 교수의 <한국문학속의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새미, 2006)를 들춰보기도 하면서.

 

 

 

 

네번째 책은 미치오 가쿠의 <평행우주>(김영사, 2006)이다. '시장' 얘기만 읽다가 가슴 한쪽이 답답해질 경우에 딱 읽어볼 만한 책이겠다. 언젠가 한번 쓴 적이 있는데, 나는 미치오 가쿠의 <초공간>(김영사, 1997)을 오래전에 앉은 자리에서 다 읽은 적이 있다. 이후엔 저자 미치오 가쿠는 나의 '무조건 호감' 대상이다(그는 "뉴욕시립대학의 헨리 세매트 석좌 교수로 이론물리학 분야와 환경 및 평화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권위자이다").

'우리가 알고 싶은 우주에 대한 모든 것'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 신간은 원저 자체가 작년에 나온 것이니까 저자의 최신간인 듯싶다. 600쪽이 넘는 분량인데, 이론물리학 전공자들은 사회학이론 전공자들과는 처지가, 아니면 태도가 좀 다른가 보다(혹은 한가한 것일까?). 아무튼 반가운 출간소식이다. 사두고 아직 못읽고 있는 <엘리건트 유니버스>(승산, 2002)나 <우주의 구조>(승산, 2005)와 함께 언제 읽어볼 시간이 났으면 좋겠다. 모두가 박병철 교수의 번역인데, 그 열정에 새삼 경의를 표한다.   

 

 

 

 

<평행우주>와 겨룰 만한 책으로 동물행동학, 혹은 비교행동학, "즉 동물들의 행동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학문적 방법을 정립한" 동물학자이자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콘라트 로렌츠에 대한 세밀한 평전 <콘라트 로렌츠>(사이언스북스, 2006; 원저는 2003)가 있다. 100주년을 기념하여 오스트리아에서 출간되었는데, 로렌츠 입문서이자 필독서이겠다. 더불어 로렌츠가 들려주는 '개의 세상살이' <인간, 개를 만나다>(사이언스북스, 2006)도 나란히 출간됐다. 작년에 나온 김훈의 소설 <개>(푸른숲, 2005)와 같이 읽어보면 좋겠다. 한데, 로렌츠에 대해서는 이전에 한번 다룬 적이 있는 데다가 '개'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지도 않아서 나로선 미치오 가쿠를 선택했다.

 

 

 

 

이런 선택을 유감스러워 할 만한 책으로 박해철의 <딱정벌레>(다른세상, 2006)도 있다. 책은 '자연의 거대한 영웅 딱정벌레에 관한 모든 것'이란 부제를 달고 있으며 비슷한 책들 가운데에서 가장 두툼한 분량을 자랑한다. 저자는 곤충학자이면서 딱정벌레 전문가. 국내에는 아마추어 전문가들이 낸 <딱정벌레 왕국의 여행자>(사이언스북스, 2004)도 있고, 번역서로는 <딱정벌레의 세계>(까치글방, 2002)도 나와 있다. 말 그대로 '다른세상'이다. <딱정벌레>의 저자에 따르면, "현세를 딱정벌레의 시대라고도 한다. 그 이유는 이 땅에서 살아가는 딱정벌레들의 다양성과 뛰어난 적응성 때문이다. 알려진 생물 종의 1/4 이상을 차지하는 엄청난 다양성을 지닌 딱정벌레는 지구상에서 깊은 바다를 제외하곤 어느 곳에 가든 만날 수 있다." 딱정벌레의 시대라, 그걸 모르고 있었다니! 비틀즈, 딱정벌레들! 

 

 

 

 

다섯번째는 좀 가벼운 책으로 골랐다. 데이비드 노리스의 <조이스>(김영사, 2006)이 그것이다. 역자는 시인 이수명씨인데(나는 데뷔시집 <새로운 오독이 거리를 메웠다>(세계사, 1995)를 읽어본 기억이 있다), 같은 시리즈의 <라캉>, <낭만주의>, <데리다> 모두 좋은 번역이었다. 해서, <조이스>는 아일랜드 출신이 걸출한 작가 조이스의 세계에 대한 입문 가이드로서 요긴할 거란 생각이 든다. 소개에 따르면, "그의 대표작인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 대한 상세한 설명, <율리시스>와 그 원전이 된 <오디세이아>의 구조를 비교하며 <율리시스>의 상징과 신화적 구조에 대한 풍부한 해설을 곁들여 조이스의 작품에 한걸음 다가갈 수 있도록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다."  

 

 

 

 

<더블린 사람들>이란 초기 단편집도 있지만, 이번 계절에는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 한번 도전해보시는 건 어떨지. 읽을 만한 국역본이 4종 정도 나와 있다. 번역에 대한 보다 자세한 정보는 <영미명작, 좋은 번역을 찾아서>(창비사, 2005)를 참조할 수 있다. 조이스의 현란한 곡을 어떤 번역자-연주자가 솜씨있게 연주하고 있는지 비교도 해보면서. 젊음이 아직 다 지나가기 전에...

06. 03. 14.

 

 

 

 

P.S. 주문한 책 배송이 왜 늦어질까 생각해보다가 문득 소개에서 빠뜨린 책을 발견했다. 미레유 뷔뎅의 <사하라 - 들뢰즈의 미학>(산해, 2006)가 그것이다. 도서관에서 보던 불어본 책이 번역돼 나온 것인데, 저자는 생소하지만 '들뢰즈의 미학'에 대한 집중적인 조명/해부가 이루어질 듯도 해서 기대를 모은다.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불륜, 오리발 그리고 니체>(산해, 2006)도 신간인데, 뷔뎅과 마찬가지로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저자 루이즈 디살보는 작가이자 영문학자로 "한때 불륜을 저지른 남편과 함께 뉴저지 주 티넥과 뉴욕 주 새그 하버를 오가며 살고 있다"고. 그런 소개를 접하니 더더욱 종잡을 수 없는 책이다(그나마 '불륜'에 관한 책이란 건 분명해보인다). 그런데 '니체'는 왜? 하여간에 사하라-들뢰즈, 오리발-니체란 커플이 접속불가능한 것은 아니므로 사태는 더 두고봐야겠다. 이런 건 먼저 읽고 리뷰를 써줄 친구가 아쉽다...

P.S.2. '마감' 후에 눈에 띈 책으로 망구엘의 <독서일기>(생각의 나무, 2006)가 있다.

 

 

 

 

이미 <독서의 역사>(세종서적, 2000), <나의 그림읽기>(세종서적, 2004) 등으로 은근한 독자들을 확보하고 있는 알베르토 망구엘은 아르헨티나의 작가 보르헤스의 비서로서도 잘 알려져 있다. 내용인즉, "학창 시절 '피그말리온'이라는 서점에서 점원으로 일하다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를 만났다. 시력을 잃어가던 세계적인 문호 보르헤스에게 책을 읽어 주면서 그의 독특한 촌평에 문학적 영감을 받는다. 전에도 유별나게 책을 좋아했지만 이 만남을 계기로 더욱 독서에 탐닉하게 된다." 현재는 캐나다에 정착하여 그곳에서 최고의 작가로 명성을 누리고 있다 한다. 'A Reading Diary'는 2004년에 나온 그의 최신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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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최근에 나온 책들: 에피소드(16)

지난 주말에 여행을 다녀왔다(*이 글은 2003년 7월초에 씌어졌다). 4박 5일 동안 (부)자유로웠는데, 핸드폰과 인터넷, 그리고 시계와 책없이 지냈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그럴 생각은 아니었지만, 다른 짐들 때문에, 박상륭의 <산해기>나 주판치치의 <실재의 윤리학Ethics of the Real>을 들고 가려던 계획을 접었고, 덕분에 온전히 바다와 햇살 하고만 지냈다(다른 거 다 제쳐놓으면 그렇다는 말이다). 그렇게 헤어져 보면 안다. 우리가 길들이거나 우리를 길들인 이들이 얼마나 그립고 애틋한가를. 책이 얼마나 그립고 어쩌고, 젠장...

출판계가 유례없는 불황에 허덕인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지만(인터넷 서점의 할인폭이 커진 걸 보면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책은 계속해서 나오고 있고, 책값은 떨어지지 않고 있다. 아직은 버틸 만하다는 건지, 오기인지 잘 모르겠다. 황석영의 <삼국지>(창작과비평사)가 20일새 20만부가 나갔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소식도 있는 거 보면, 활로가 없지는 않은 모양이다. 이 참에 황석영은 노후대책을 확실히 마련한 것 같고, 창비는 제2의 '동의보감'을 발판삼아 다리 뻗고 잘 수 있겠다. 반응이 미지근한 <서유기>는 안타깝게도 문지 살림에 아직은 큰 도움이 못되는 거 같다(내가 남 걱정할 때인가...).

 

 

 

 

이런 즈음에 나온 책들 가운데 압권은 역시 푸코의 <광기의 역사>(나남) 완역본이다. 정가 38,000원에 867쪽. 내가 알기로는 아직 영어 완역본도 없는 형편이니(기존의 <광기의 역사>는 영어 축약본의 번역이다), 생각보다 빨리 우리말 번역본이 나온 것만은 틀림없다. 알다시피 책은 푸코의 국가박사학위 논문이자, 그의 출세작이다. 같은 급에 들어갈 수 있는 책들이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이것도 번역중이라고 한다. *알다시피 2004년에 출간됐다), 크리스테바의 <시적 언어의 혁명>(이것도 축약본이 번역돼 있다) 등이다. 푸코를 읽은 지가 오래됐지만, 신간은 다시금 그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나의 관심은 조금 제한적인데, 데리다와 벌인 논쟁에 국한된다. 기존의 <광기의 역사>에는 논쟁의 빌미가 됐던 텍스트가 빠져 있었다. 이 논쟁만을 다룬 책이 로이 보인의 <데리다와 푸코>(인간사랑)이다. 그리고 김현 교수의 푸코 연구서인 <시칠리아의 암소>(문학과지성사)도 한 장을 이 논쟁에 할애하고 있다. 또 그에 대한 간략한 스케치는 프랑수아 도스의 <구조주의의 역사 3>(동문선)에서도 읽을 수 있다. 단, 김웅권이 옮긴 <구조주의의 역사> 시리즈는 웬만큼 눈이 밝지 않고서야 내용을 짚어나가기가 쉽지 않다. 참고로, 데리다는 푸코 이외에 리쾨르, 가다머와도 논쟁을 벌인 바 있지만, 그에 대한 본격적인 소개는 아직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남들 논쟁에 왜 관심이 많으냐 싶을 테지만, 논쟁이란 각기 다른 사상가들의 사유가 첨예하게 충돌하는 지점이기 때문에 이들의 사유를 보다 효과적으로(예전에 많이 쓰던 표현으로 '쌈박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두번째 책은 얼마 전 세상을 뜬 스티븐 제이 굴드의 <인간에 대한 오해The Mismeasure of Man>(사회평론)이다. 600쪽이 넘는 신간의 원저는 1981년에 초판이, 그리고 1996년에 개정판이 나왔다고 한다. 저자는 다윈 이후에 가장 유명한 생물학자로 불리던 저명한 고생물학자/진화생물학자이자 지질학자이다. 우리말로 번역돼 있는 그의 책들에는 <다윈 이후>(범양사), <새로운 천년에 대한 질문>(생각의나무), <판다의 엄지>(세종서적), <풀하우스>(사이언스북스)가 있고, 몇 권의 공저도 번역돼 있다. 나는 <다윈 이후>를 읽고 적어도 그의 단독 저작들은 다 모으고 있는데(아직 번역되지 않은 책들이 많다), 입문서로서 가장 추천할 만한 책은 <유전자와 생명의 역사>(몸과마음, 2002)이다. 책의 원제는 '도킨스 대 굴드'인데, 진화생물학계의 두 간판스타가 벌이는 한판 대결을 흥미진진하게 관전할 수 있다.

 

 

 



세번째 책은 빌헬름 바이셰델의 <철학자들의 신>(동문선)이다. 가까운 시일내 내가 이 책을 살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그럼에도 이 책을 고른 가장 큰 이유는 책의 두께이다. 정가 34,000원에 711쪽짜리. 아마도 철학적 신학 계통에서 가장 두꺼운 책 중의 하나가 아닌가 싶다. 바이셰델이란 이름을 기억하게 된 건 <철학의 뒷계단>(분도출판사)이란 책 덕분이다. 철학의 '정문'이 부담스러운 이들에게 아주 요긴한 '뒷구멍'을 일러준 책인데, 나중에 <철학의 뒤안길>(서광사)이란 제목으로 다시 번역돼 나오기도 했다(둘다 절판됐지만. *이후에 나온 <철학의 에스프레소>(아이콘C, 2004)는 확인해보지는 않았지만, 짐작에 같은 책이다). 저자가 편집한 책으로 <별이 총총한 하늘아래 약동하는 자유>(이학사, 2002)가 있다. 부제가 '칸트와 함께 철학을 읽는다'인 칸트 철학 발췌서이다. 바이셰델은 실제로 칸트 전집을 편집하기도 했다고.


 


 

 

네번째 책은 <증언으로서의 문학사>(깊은샘)이다. 해방 이후 한국 현대문학사/문단사에 대한 11명의 원로 작가/비평가들의 대담/증언을 싣고 있다(*전체적인 문단약사는 김병익의 <한국문단사>가 유익하다). 최근에 20세기 한국 현대사에 대한 책들이 여러 권 나오고 있는데(강준만 등), 신간 또한 유익한 자료로서의 가치가 있어 보인다. 한홍구의 <대한민국사 1,2>(한겨레신문사)도 근래에 나온 필독서이다. 나는 이런 책들은 고등학생들이 좀 많이 읽었으면 싶다.

 

 


 


우리 문학 얘기를 좀 덧붙이면, '컬트 작가' 박상륭의 '차라투스트라 다시 쓰기'로, <신을 죽인 자의 행로는 쓸쓸했도다>(문학동네)가 나왔다. 책은 '(속)산해기'란 부제를 달고 있어서 뒤늦게 <산해기>까지 구입한 것인데, 사실 나는 박상륭 마니아가 아니다(문단에는 생색내는 마니아들이 꽤 많다). 그리고 그는 '소설가'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소설이 아닌 '잡설'을 쓰므로(잡설가라 해야 할까). 서양의 경우라면, 쿤데라도 포함되는 에세이 소설 양식이라는 걸 들 수 있을 텐데, 그의 잡설이 그러한 에세이에 견줄만한 것인지 나는 확신이 없다. 그는 후기 조이스에 견줄 만한 대단한 작가이거나 아니면 변칙/트릭의 작가이다.

 

 

 

 

다섯번째 책은 여이연(여성문화이론연구소)에서 낸 <페미니즘과 정신분석>(여이연이론5). 여이연의 정신분석세미나팀에서 낸 자료집이자 정신분석 주제사전이다(*그 후속작이 <다락방에서 타자를 만나다>(2005)이다). 열두가지 개념을 정리하고 있고, 실제비평 5편과 번역 3편을 싣고 있다. 대표필자인 임옥희의 표현에 따르면, '다락방의 미친년들'이 2년 넘게 공부한 결과물이라고 한다. 물론 책으로까지 낸 데에는 약간의 자부심도 한몫 했을 것이다. 그런데, 353쪽의 버틀러 번역에서 철자가 틀린 단어가 3개나 나오는 걸 보면, 잘 정제된 자부심은 아닌 듯하다.

5권이 나온 여이연 이론서 가운데, <여사서>를 빼고, 가장 중요한 책은 4권으로 나온 가야트리 스피박의 <다른 세상에서>이다. 인도 출신의 이 인텔리 이론가는 흔히 에드워드 사이드, 호미 바바와 함께 탈식민주의 3인방으로 불린다. 그리고 이들 각각을 대표하는 책들이 <오리엔탈리즘>, <문화의 위치>, 그리고 <다른 세상에서>이다. <문화의 위치>(소명출판)의 우리말 번역이 좀 부실한 데 비해서, 다행스럽게도 <다른 세상에서>는 최적임자가 번역을 맡은 책이라 그래도 읽을 만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잡다한 책들. 김근의 <욕망하는 천자문>(삼인)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독자들의 호응도 좋은 편이지만, 내가 당장 읽을 책은 아니어서 여기서는 제외했다. <월경하는 지식의 모험자들>(한길사)도 유용한 지식인 사전이지만, 이 책까지 사는 건 재정적인 '모험'이다. <우리는 매트릭스 안에 살고 있나>(굿모닝미디어)와 <매트릭스로 철학하기>(한문화)는 매트릭스 현상에 대한 철학자/과학자들의 개입이 얼마나 유효/무효한지는 보여주는 책들이고, 프란체스카 리고티의 <부엌의 철학>(향식)은 간식으로 딱 좋은 책이다.

 

 

 

 

굴드의 책이 아니었다면, 더 주목을 받았을 책이 니콜라스 험프리의 <감정의 도서관>(이제이북스)인데, 원제는 '내면의 눈'이고 부제는 '사회적 지능의 진화'이다. <유혹하는 본능>(참솔)이나 <호모 에로티쿠스>(청어람미디어)도 <비열한 유전자>와 함께 읽어볼 만한 책이다.

 

 

 



끝으로, 김수영 전집이 다시 나온 소식. 민음사에서 품절된 전집이 이번에 하드카바 개정판으로 다시 나왔는데,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지듯이 이런 책들도 웬지 사(주)고 싶어진다. 1권(시), 2권(산문)만이 우선 나왔는데, 별권으로 묶였던 김수영론은 좀더 두툼하게 나오지 않을까 싶다. 20세기 단 한명의 한국시인으로 고종석은 백석을 꼽았는데, 나는 백석과 김수영 중 아직 결정을 보지 못했다...


 

 

 

참, 김훈의 <밥벌이의 지겨움>(생각의 나무)도 나왔다. 이쯤되면, 김훈의 지겨움이라 할 만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사보는 수밖에. 그의 지겨움에, 그의 비애에 동참하는 수밖에. 얼마전에 나온 <아, 입이 없는 것들>의 이성복과 함께 그는 '비애적 세계관'을 대표한다. 그들은 항상 이렇게 말한다. 왜, 어떻게, 어쩌다, 어쩌자고, 어쩔 수가 없다, 나는 쏟아지는 책들을 어쩔 수가 없다...

 

 

 

 

덧붙임: 인터넷서점을 검색하다가 알게 된 건데, 앤드루 샌더즈의 <옥스퍼드 영문학사>(도서출판 동인)가 번역돼 나왔다. 정가 38,000원에 968쪽짜리이다. 두껍기로는 <철학자들의 신>이나 <광기의 역사>를 능가한다. 책의 모양새를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서평으로 보아 번역된 영문학사로는 가장 방대하며 가장 풍부하다. 번역의 질도 양호하다고 하나, 고유명사들을 현지음에 가깝게 표기한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이 문제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루도록 한다). 같은 출판사에서 <현대문학이론 용어사전>도 나왔다. 사전이야 많을수록 좋다는 건 상식이다. 778쪽이고, 정가는 역시 38,000원. 바야흐로 3만원대 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김홍경의 <노자>(들녘)도 거기에 속하는데, 880쪽에 정가 32,000원이다.

 

 

 



잡다한 책에서 빠뜨렸지만, 오강남의 <세계종교 둘러보기>(현암사)도 필히 장서용으로 꽂아둘 만한 책이다. 그의 <예수는 없다>(현암사, 2001)과 함께. 지각있는 기독교인들의 필독서이다. 종교학 관련으로 아주 따끈따끈한 신간은 존 D. 카푸토의 <종교에 대하여>(동문선)이다. 기독교철학쪽 전문가이자 하이데거와 데리다 전문가이기도 한 저자의 책으론 <마르틴 하이데거와 토마스 아퀴나스>(시간과공간사, 1993)가 번역돼 있다(절판됐다). 아직 번역되지 않았지만, 데리다와 함께 편집한 <호두껍질 속의 해체론Deconstruction in a Nutshell>은 (내가 읽은 바로는) 가장 유익한 데리다 입문서이다.

문제는 역자. 지젝의 <믿음에 대하여>의 번역자이기도 한데(이것도 종교와 관계가 있다고 번역을 맡은/맡긴 것일까?), 우리말 <믿음의 대하여>는 처음 인상만큼 읽을 만하지가 못하다(그래서 이전에 '읽을 만하다'고 한 발언은 취소한다). '모세의 형상'을 '모자이크한 모습'으로 옮기고, '인도'를 전부 '인디언'으로 탈바꿈시키고, 하이데거의 '현존재'는 난데없이 '실존성'으로, '뉴에이지'는 '신시대'로 옮겼다(뉴에이지는 신시대가 아니다!). '진리의 정치'를 전부 '진실의 정치'로 옮긴 걸로 봐서, 역자는 라캉/지젝을 전혀 읽어본 적도 없어 보인다. 그러니까 '대상 a'가 뭔지도 모르는 것은 아주 당연하겠고. 그런 역자가 열성적으로 번역에 나서고 있다. 좀 걱정스럽다(*<믿음에 대하여>에 대해서는 이후에 이 같은 내용의 리뷰를 올렸다).

2003. 07.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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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기인 > 바흐찐, 쉬클로프스키



 

시험때가 닥치니 또 안 읽던 책까지 막 읽게 된다. 앞으로 두 주 동안은 벼락치기의 연속과 스페인 소설 시험을 위해 스페인 텍스트를 무지하게 읽다가 결국 다 못 읽고 번역판을 구해 읽게 되는 만행으로 점철될 것이다. 점철. 참 이상한 단어네. 그래도 다사다난했던 한 학기가 다 끝나간다고 생각하니 홀가분한 기분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오랜만에 다니면서 많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재미있었다. 수업을 들으면서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얼마나 할 수 있는가, 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는 바람에 헛짓도 많았지만 그래도 헛공부가 헛섹스보다는 더 유익하다는 신념으로 후회는 않으련다. 살아있다는 게 어딘가. 살아있다는 게 언젠가.

  레포트가 하나 남았는데 스페인 소설 시간에 다룬 작품 하나랑 딴 작품을 비교해서 쓰는 거다. 특별한 주제는 없다. 돈키호테를 잡고 쓰려는데 처음엔 <담화의 놀이들> 뻬껴서 쉽게 쓰려고 디드로 <운명론자 자끄>를 골랐다가 너무 뻔히 보이는 것 같아서 그나마 조금 위장이 가능한 <트리스트럼 섄디>를 집었는데 그러다 쉬클로프스키가 <트리섄>에 관해 쓴 논문을 발견했다.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에게 <트리섄>이 자기들 이론을 설명해주는 원형적인 작품으로 받들여졌다는 건 처음 알았다. 얼핏 생각해도 그럴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은 들지만 쉬클로프스키가 자기 회고록 제목을<sentimental journey>라고 정할 정도였으니 역시 특정한 이론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 이론을 만들어낸 작품을 반드시 같이 읽어야 한다는 너무나 당연한 진리. 그래서 아직은 시간이 쪼옴 있으니 논문을 몇 개 읽어보고 주제를 잡아야 할 듯 싶다. <담화의 놀이들>은 정 주제가 안 잡히면 마지막 보루로 남겨두고 쉬클로프스키가 <트리섄>하고 <동키> 다룬 논문을 읽어야겠고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 1부를 써나가면서 소설을 'invent'했다는 논의가 담긴 <Novel according to Cervantes>라는 책을 읽을 것 같다. 조금 읽어봤는데 재밌다...어쨌든 쉬클로프스키랑 바흐친을 방학 때 읽어야겠다. 도대체 논리적 연관관계가 있는 글을 쓸 수 없다. 께하다 할아범한테 전염됐다. 그런데 2부로 넘어가면 돈끼호테랑 산초 둘 다 지나치게 논리로 무장해서 말도 잘 한다. 2부 첫부분은 재미있었는데 다 읽고 나니 1부가 더 재미있다. 돈끼호테가 죽지 않았다면 3부에선 목동으로 변한 '끼호띠스' 이야기가 이어졌을텐데...죽는 건 마음이 아프다.

  모임에서는 아직 다음에 뭘 읽을지 안 정했는데 나는 사드의 <규방철학>을 읽자고 제안할 테다. '엄마가 딸에게 읽도록 시켜야 한다 La mere en prescrira la lecture a sa fille'.

  점점 머리가 나빠져서 이대로 가다간 다빠지고 자빠질 것 같다. 숨이 가빠지고 나는 바빠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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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카
베네딕트 데 스피노자 지음 / 서광사 / 1990년 10월
평점 :
절판


제목의 말은 들뢰즈가 스피노자를 두고 한 말이다. 그리고 들뢰즈는 결국 스피노자주의자였다. 스피노자에 관한 책들이 몇권 번역되어 나와 있고, 그중 특히 관심을 끄는 책은 들뢰즈의 책(민음사에서 나온 '스피노자의 철학')과 네그리의 책('야만적 별종')이기는 하다. 하지만 난 그들의 책을 먼저 읽어 보기를 권하고 싶지는 않다. 그보다는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먼저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스피노자에 대한 평가는 시중에 나와 있는 여러 철학사책들을 일별해보더라도 언제나 한 chapter를 할애하는 존경을 보이면서도 그 해석은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알수가 있다. 어떤 이들은 신비주의자로, 어떤 이들은 유물론자로, 어떤 이는 관념론자 혹은 (신)플라톤주의자로, 어떤 이는 데카르트의 제자로, 어떤 이는 반테카르트주의자로 그를 해석하고 있다. 과연 그의 철학이 어떠한지를 알고 싶으면 에티카를 펼쳐야 할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스피노자에 관한 저서들을 권하지 않는 것은 그 책속에는 들뢰즈의 스피노자와 네그리의 스피노자가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 책을 먼저 접하고 에티카를 보면 스피노자는 보이지 않고 그들이 이해한 스피노자만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솔직히 그들의 책이 에티카보다는 훨씬 흥미있고 현대적이기는 하다.) 에티카는 어떤 한 해석에 사로잡히면 그것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에티카를 진가를 놓치고 묻어버리는 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역으로 에티카를 읽고 그들의 책을 읽는 것이 그들을 이해하기에도 유리하다.

서광사에 나온 이 책은 역자가 라틴어원저를 5년에 걸쳐 해석한 것으로 상당히 번역이 잘 되어 있다. 하지만 17세기철학 용어는 우리에게 너무나 생소한 것이기 때문에 이해하기가 무척 힘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스피노자는 많은 부분 테카르트의 용어를 전용하고 있고 또한 스콜라적인 용어들도 산재해 있기 때문에 요즘의 의미로 해석해서는 오해의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가능하다면 컬리가 편찬한 스피노자전집1권을 참조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될것이다.(일일이 확인해 보지는 않았지만 혜원사에서 나온 에티카는 이 책을 번역한 것으로 보인다.)

에티카는 한번의 숙독으로 그 참 가치를 알기는 힘이 드는 책이다.(물론 중요한 철학저서들이 다 그렇기는 하지만...) 몇번을 숙독하다보면 그때가 되어서야 스피노자가 하고자 하는 의미가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그때까지 포기하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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