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엄마의 느림여행 - 아이와 함께 가는 옛건축 기행
최경숙 지음 / 맛있는책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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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과 여행자는 다르다. 관광은 소박하고 때로 천박하다. 관광객이 구경꾼이라면 여행자는 발견하는 사람이다. 여행자가 지녀야 할 필수 요건은 철학이다. 철학이 없는 여행은 낭비다. 세상에는 수많은 여행서가 있다. 여행서를 읽으며 지은이의 관점과 사유의 깊이를 측량해 볼 수 있다.(‘’-엄경희, p.87. 세움 출판사)”

언제가 저 글을 읽고는 가슴이 뜨끔한 적이 있었다. 관광객과 여행자를 구분한 것도 신선했지만 무엇보다 그 나누는 기준이 길 떠나는 자가 철학을 가지고 있는 자인가? 라는 점 앞에서 아무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가보지 않은 곳에 대한 남들의 감상과 그들이 찍은 사진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 그동안은 전혀 손대지 않던 분야었던 여행서를 꼭 저글을 대하고서는 아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손에서 펼치게 되었다. 아마도 그동안 구경꾼에 머물던 내 자의식이 차츰 여행자로 옮겨 가야 한다라는 강박속에 남들은 어떤 시각으로 여행지를 바라보았는지를 알고 싶었던 것 같다.

 

특히나 이제는 어디라도 떠날라치면 위로는 부모님을 비롯한 어르신들과 아래로는 아직 학생들인 자식들이나 직원들을 간수해야 하는 위치에서 방문하는 곳들에 대한 나름의 이야기들을 풀어 내면서 설명도 해주어야 하는 책임감도 절절이 느끼고 있어서 자연스레 유적지와 그 곳의 유물들에 대한 공부를 해야만 하기도 했다.

 

그런 공부 중에서도 특히나 제일 어려운 것이 옛 건축물들에 대한 것들이었다. 충남 서산에 공장이 있는지라 공장 방문을 위해 손님들이 방문하게 되면 잠시라도 주변의 해미 읍성, 수덕사, 개심사, 삼존마애석불상 등등 주변의 관광지를 둘러 보게 되는데 그때마다 별다른 지식이 없다 보니 데리고 가는 나나 따라 오는 사람이나 별 감흥 없이 휙 둘러 보고는 식당으로 직행하는 일이 다반사였기에 적어도 가이드하면서 설명해 줄 수 있을 정도의 지식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던 차였다.

 

그런 의미에서 건축가 엄마의 느림여행이라는 이 책은 여러모로 나에게 시사해 주는 점이 많은 책이었다. 건축가라는 자신의 전문적 지식을 가지고 답사라는 형식을 통해 바라보는 고건물들에서 느끼는 정취는 우리의 것하고는 분명 다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그 정취를 직업적 시각에서만이 아닌 어린 자녀들과 함께 누리고 느끼면서 길을 떠났다는 점이 순간적으로 나를 부끄럽게 하면서 또한 부럽게 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 책을 반갑게 집어들 수가 있었던 것은 우선은 전문가의 설명에 따른 옛 건물들에 대한 지식의 습득과 그 관점을 배우고자 하는 바도 있었지만, 엄마(부모)로서 아이들과 함께 공유하는 그 따스함을 행간에서 같이 느껴보고 싶기도 했었던 것이다. 저자가 딸자식들임에 반해서 나는 아들 녀석들만 둘이고 거기에 남자 녀석들의 특성상 여자 아이들 보다는 좀 더 일찍 부모로부터 떨어져 나가버려서 어디라도 갈라치면 고개부터 도리질 하는 녀석들에 대한 아쉬움이 컸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저자가 열네 번에 걸친 답사를 통해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 26개 지역의 유적지를 둘러본 글과 사진의 기록이다. 지면 탓이엇을까, 처음 기대했던 바와는 달리 유적지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부족해서 그 부분으로서는 흡족하지는 못했지만 전체적인 소개와 더불어 앞으로 그 곳을 방문했을 때의 관전 포인트에 대한 정보로서는 부족함이 없었다.

 

아니, 좀 더 솔직히 이야기 하면 유홍준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영향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다소 싱겁다라는 느낌이 들었다는 게 솔직할 것 같다. 저자가 만일 대중에게 더 다가가기 위한 책을 쓰기로 했다면 책의 분량도 단행본이 아닌 두 권정도로 늘려서 답사지에 대한 설명을 좀 더 친절하게 풀어냈어야 하지 않나 싶다. 하지만 그런 아쉬움은 오직 가이드 북으로서의 기능적 측면을 주시한 나의 욕심일 뿐이고, 작가가 엄마로서 자녀들과 함께한 기록, 그래서 훗날 자녀들이 자라서 엄마가 건네주는 선물이라는 관점에서라면 이 책은 작가의 자녀들 입장에서는 세상 그 어느 고전보다도 큰 울림이 잇는 책이 아닐까 싶다. 유적지의 사진들과 더불어 같이 실린 딸들의 사진은 그런 면에서 어느 유적지 사진보다 더 빛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저자는 말한다. “인생을 알아야 전통건축은 더 잘 보인다. 하지만 반대로 전통건축은 인생을 보게 한다(p.38)” . 짧은 일정에 증명 사진 찍기 위한 여행이 아닌, 전통 건축을 통해 그 안에 깃든 우주보다 무거운 수많은 인생을 반추해 봄으로 내 삶의 좌표를 다시 조정해 보는 여행가로서의 떠남을 원하다면 이제는 작가의 말대로 느리게 길을 떠나 보자. 그 느림 속에 사랑하는 자녀들의 웃음과 대화가 녹아든다면 그런 전통 유적지는 이제 저 옛날의 낯선 유물이 아닌 우리의 추억이 깃든 살아 있는 현재의 기념물이 될 수 있을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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