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외로움 다가와 마음을 흔들면 시선 시인선 95
임창연 지음 / 시선사 / 2013년 6월
평점 :
품절


시 앞에만 서면 한 없이 작아지는 나. 늘 그랬다. 시라고 하는 것은 내가 결코 넘어 설 수 없는 히말라야 산맥 그 이상이라고 느꼈었다. 늘 갈증과 허기에 지쳐 허겁지겁 먹어 치우던 책들 속에서도 시는 내가 손댈 수 없는, 먹을 수 없는 아니 다가서서는 안 될 그런 그 무엇이었다. 노력해 보기는 했었다. 나름 애송시라고 하여 묶여서 나온 시집들을 손에 쥐고는 한 번 그 세계 속으로 들어가 보리라 작심을 하고 페이지를 넘겨 보기는 했지만 그때 뿐 어느 사이엔가 그 시집들은 내 가방, 혹은 책상 위 어느 구텅이에 뎅그라니 놓여서 방치되곤 했었다.

 

그렇게 젊은 날을 보내고 이제는 불혹도 절반을 넘어선 지금, 이제야 무조건 빠른 것만이 최선이 아님을, 무엇이든 꽉 채우는 것이 성공이 아님을 서서히 느껴갈 즈음, 어쩌면 시라고 하는 녀석이 친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물현 듯 찾아 오게 되었다. 그래서 책장 구석에 꽂혀 그동안 천덕꾸러니 대접을 받고 있던 시집들을 다시 손에 들고 계면쩍은 대면을 하게 되었다.

 

아직도 낯설기는 하다. 하지만 예전만큼 그리 캄캄하지는 않다. 비록 시인들의 그 절제된 언어의 연금술은 지금도 결코 내가 훙내낼 수 없는 것이라 여겨지지만 젊은 날 그때처럼 열등감으로 까지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제는 사물을, 사람을, 생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을 따라갈 근력이랄까 아님 여유랄까..글로써 미처, 또는 외써 표현하지 않은 그 여백의 맛을 다소나마 느끼게 되었다고나 할까.

 

임창연 시인의 첫 시집이라고 한다. 젊은 나이도 아닌 듯 하다. 그래서 그런지 시인의 작품들에는 언어의 화려한 수식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사랑에 대한 뜨거움으로 인한 감정의 과잉도 보이지를 않고, 더불어 삶에 대해 절망적이지도 않다. 연륜에 의한 영향인가 어쩌면 시인의 내부 속에는 그런 감정들이 솟구쳐 올라왔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내게는 시인은 나지막한 차분한 목소리로 속삭이고 있는 것이라 받아들여졌다.

 

어차피 작품은, 특히나 시라고 하는 녀석은 작가의 손을 떠나는 순간 이제 작가의 것이 아닐 것이다. 오롯이 그 작품을 받아 들인 독자의 몫으로 남겨지는 것. 내게는 작품을 분석할 능력도, 그럴 의도도 없다. 단지 철저히 소비의 주체로 서 있을 뿐. 그래서 작품집 중 읽으면서 내게 공감이 되고 울림을 주었던 작품들을 접어 두고는 다시 읽을 때마다 소비해 보려고 한다. 물론 그렇게 읽어 나가다 보면 지금 나에게 간택 되지 않은 작품들 중에 또 다른 녀석들이 눈에 띄어 새로운 맛으로 읽혀지게 되겠지.

 

그 중의 하나.

삼계 숲속마을이다.

 

누가 켰을까 노을보다 먼저 켜진 붉은 네온 십자가

 

길 한켠의 야채 트럭이 확성기로 사람을 부르고 있다

 

보이는 것과 듣는 것 생각하는 것이 사는 일이라면

어둠이란 이 모든 것을 삭제하는 연습

 

끝없는 환한 낮이란 얼마나 끔직한 것인가

 

 

인생의 사건들을 마음대로 지우고 다시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기도 싫은 삶의 기억들이 순간순간 치솟아 오를때면 다시 이 놈의 삶을 리셋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모든 것이 드러나는 환한 낮만 지속되는 삶이란 얼마나 피곤하고 절망적일는지.. 이럴 때 정기적으로 찾아 오는 어둠이란 흥분된 나를 진정시키고 오늘의 부끄러움을 잊고 내일을 향해 다시 한번 희망을 품게 만들어 주는 축복의 공간.

 

결혼의 꽃”(p.86)은 언제적 작품일까 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 세월 아내를 맞이하면서 써 두었던 작품이었을까? 아님 혹시 늦장가라도 드신 것일까?

아내 생일날 케잌 꽂아 놓고 낭송해 주면 참 좋아할 것 같다라는 생각에 미소가 절로..

 

감사하다.

시란 녀석에게 한걸음 다가서는 징검돌로 이 시집은 나에게 의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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