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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일 아닌 것 같이
정민기 지음 / 하우넥스트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어제 저녁
어느 커다란 나무 아래로
책을 읽으러 나갔는데
하늘과 바람과 구름과 나무가 너무 좋더군요
책은 못 읽고
바람 부는 저녁만
읽다 왔습니다
아니면
내가 읽혔으려나?“
--- 책 서문을 대신하는 프롤로그 중에서 ---
작가는 참 얄미운 사람입니다.
눈을 닫고 싶어도 귀를 막고 싶어도 어쩔 수 없이 보여지고 들려오는 세상의 아귀다툼과 그 아우성들.. 그 속에서 찌들대로 찌들었던 모든 온 몸의 감각들이 갑자기 방음이 잘 된 실내로 들어와 한 순간 그 모든 것으로부터 단절된 듯한, 그래서 너무나 낯설은 그런 시공간이 마치 어울리지 않은 옷을 입은 듯한 느낌을 주는 그런 사진이고 글들입니다.
책을 읽을 수 있는 커다란 나무가 있는 곳, 그 밑에 앉아 시간의 흐름을 풍성하게 누려 볼 수 있는 여유로움, 바람을 읽어 보는 그 가슴의 넉넉함, 그리고는 바람에 내가 읽힌 것 아니냐며 혼자 미소지을 수 있는 그런 감성들...
이 책의 전반적인 사진들 그리고 글들이 꼭 그렇네요.
자연이 있구요, 그곳에서의 시간들은 천천히 흘러가는 곳들입니다. 바쁘게 움직이려면 외려 무언가 죄진듯한 느낌이 들것같은.. 그리고 그냥 왠지 모르게 넉넉해지면서 나도 모르게 웃음짓게 만드는 그런 사진, 그런 글들이네요.
가방에 무심코 넣어 두었다가, 손 가는대로 책상 위에도 올려 놓았다가, 어느 때 그냥 펼쳐서 두 서너장 읽다가 또 그렇게 나두고.. 꼭 처음부터 언제까지 읽어야지 그런 부담 없이 그냥 마음 가는대로 읽어야만 될 것 같은, 아니 그렇게 읽을 수 밖에 없는 책이네요.
황량한 들판인데 외로운 느낌이 없네요.
꾀죄죄한 아이들인데 그냥 뽀뽀해 주고 싶네요.
허술하고 보잘 것 없는데 그냥 그 속에 눕기만 하면 깊고 단 잠을 잘 것만 같은 집이네요.
미인은 아닌데 수줍게 손 잡고 거리를 거닐고 싶은 여인들이네요...
“네가
아무리 쏘아대도
난
안 뚫어진다
이 녀석아 “
--- 마흔여덟 꼭지 ‘햇살’ ---
제일 마음에 든 작품입니다.
오늘 같이 추운 날에 그냥 웃음짓게 만드는 정말 예쁜 시입니다.
렌즈는 작가의 마음의 창이라지요.
이런 글 이런 사진을 찍어내는 작가가 참 얄밉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