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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
카스 R. 선스타인 지음, 이정인 옮김 / 프리뷰 / 2011년 10월
평점 :
품절
집단극단화를 나타낸 사례들의 공통점은 ‘사람은 서로 생각이 같은 집단 속에 들어가면 극단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집단에 어떤 권위적인 주체가 소속되어 구성원들에게 어떻게 하라고 지시하거나, 특정한 사회적 역할을 맡기는 경우에는 대단히 좋지 않은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p.11)
사람은 자기와 유사한 생각을 갖는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이 가진 기존의 견해를 더 강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p. 19)
모험을 감수하는 경향이 있는 사람이 같은 성향을 지닌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답은 모험을 무릅쓰는 경향이 더 강해진다는 것이다.(p. 31)
‘넛지’를 저술한 작가 선스타인의 신작 “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의 첫 부분에 나오는 이 책의 대전제중 몇 구절이다.
저자는 왜 나찌의 그 말도 안되는 반인성, 반지성의 지시를 독일의 유능한 청년들이 맹목적으로 따라가야 했는지를, 그리고 인류사의 비슷한 류의 현상들을 예로 들어가면서 명쾌하게 설명해 가고 있다. 이미 ‘넛지’에서 보여준 인간 행태와 심리에 관한 통찰이 이 책에서도 유감없이 드러나고 있다고 하겠다.
이 책은 제 1장 극단의 정체, 제 2장 극단화는 왜 일어나는가, 제 3장 극단의 메커니즘, 제 4장 극단주의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 제 5장 착한 극단주의라는 꼭지로 이루어져 있다
서두에서 몇 군데 발췌했듯이 저자가 이야기하는 인간들이 극단에 끌리는 이유는 너무도 소박하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잔인한 인간의 행태를 너무도 간단하게 정의를 내려 놓으니 오히려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마치 그렇게도 점쟎던 사람이 예비군복만 입으면 아무데서나 바지를 내리고 용변을 보고 또 행동이 건들거리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라고나 할까...
저자는 맨 마지막 꼭지의 제목이 착한 극단주의이듯이 극단주의 자체를 악으로 보지는 않는다. 단지 극단주의로 나타났던 대표적인 양태가 너무 부정적인 것들이기에 전체적인 인식이 극단주의 자체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다. 자신이 인지하고 잇던 내용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확인되는 순간 내가 품고 잇던 확신은 더욱 강해지고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모이면 모일 수록 더욱 강화되어 나중에는 합리적 사고가 마비되어 버리는 결과가 일어난다는것이 이 극단화의 정체라고 할 때 정보를 어떤 상태에서 어떻게 접하느냐에 따라 극단화의 정도가 나타난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반대로 어떤 사람들을 한 가지 목적을 가지고 극단으로 몰고 가려 한다면 이런 극단주의가 나타나는 공통점을 살펴서 그대로 적용하면 일단의 사람들을 원하는 사고체계로 끌고 갈 수 있다라는 결론도 도출된다 하겠다.
이 책은 무엇보다 나를 다시 한 번 점검하게 만든다. 책의 제목이 ‘그들은 왜 극단에 끌리는가’가 아니다. ‘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이다. 다른 말로 하면 나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라고 하겠다. 내가 지금도 옳다고 믿는 것들 중에 극단은 없는가를 돌아보게 만드는 것이다. 너무 멀리 갈 필요도 없겠지. 정치에 있어서의 반한나라당과 반 민주당의 간극은 결코 넘어 설 수 없는 벽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기독교인의 절대적 믿음은 또 하나의 극단적 사고물의 결과는 아닐까?
나는 꼼수다의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이 방송을 듣지 않으면 대화가 안 될 정도다. 적어도 여당인 한나라당을 비판하는 이들에게 있어 나꼼수는 바로 이들을 극단주의로 몰고가는 매개체의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유교적 영향을 받아서인지 중용이라는 단어에 많은 의미를 둔다. 그 어느 누구도 극단적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극단적이란 이미지를 입고 싶지 않아서 좁게는 편견이 있다라는, 고집이 있다라는 등의 소리를 듣고 싶지 않거나 아니면 그냥 별다른 의견이 없어서 즉 소위 중간이라도 가기 위해서 남들의 의견에 묻어가다 보면 그 흐름이 하나의 극단으로 간다는 이 아이러니. 끊임없는 자기 성찰을 필요로 한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