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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길 2 - 노르망디의 코리안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그러나 그는 여전히 카메라의 눈과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그런 그의 몸짓이 눈을 부러 치켜뜨게 한 형용이어서 조금 자세히보면, 그는 마치 카메라의 시야 바깥에 있는 또다른 누군가를 노려보는 듯도 하다. 그러나 차라리 그의 눈은 초점 없이 허공을 향하고 있다고 말하는 게 나을 것이다. 그의 뒤에는 그와 마찬가지로 무장해제를 당한 또다른 독일군 포로가 유타 해변에 내리쬐는 맑은 날의 햋빛에 흰 얼굴을 찡그린 채, 앞에 있는 노란 얼굴과 왜소한 체격을 지닌 동방대대 병사의 뒤통수를 쏘아보며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으며, 사진의 오른쪽 하단에 보이는 미군 병사는 빈 탄약상자 위에 놓인 서류에 급히 포로의 인적사항을 기재하고 있었다”
위의 글은 2007년에 발간된 조정래의 소설 ‘오 하느님’(이후 ‘인간의 탈’로 제목이 변경됨) 뒷 부분에 실린, 이 작품의 모티브가 되었던 독일군 복장을 입고 포로가 되어 심문 받고 있던 한 조선인의 사진을 설명한 글이다. 이 사진은 노르망디에 투입된 미공수부대의 증언을 바탕으로 제작된 TV시리즈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원작자이자 전쟁사학자인 스티븐 앰브로스가 자신의 책 [D-DAY]에서 소개되었고 이후 입소문을 타기 시작해 2005년에 SBS에서도 2부작으로 다루어졌으며 조정래 역시 그 프로그램에서 큰 도움을 받아 저서 ‘오 하느님’을 저술하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나는 이 책을 발간 즉시 사서 읽었었고 이재익의 ‘아버지의 길’을 읽고 나서는 다시 한번 재독하게 되었다. 두 책의 모티브와 전체적인 얼개는 큰 차이가 없다. 둘 다 한 장의 사진에 찍힌 노란 얼굴의 한국인이 어떻게 멀고먼 이역의 땅에서 독일군의 복장을 입고 미군의 포로가 되었는지를 픽션을 가미해 추적해 가고 있으며 그 추적의 과정의 상세 구조만 작가의 상상력에 따라 틀릴 뿐 일본에 의한 강제 징집, 노몬한 전투에서의 소련군에게 사로잡힘과 이어 소련군으로 참전과 함께 독일군에게 사로잡힘 그리고 다시 독일군의 군복을 입고 전투에 참가하여서 노르망디에서의 미군에게 사로잡힘. 그리고 죽음이라는 뼈대는 동일한 역사적 사건을 따라서 소설은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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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하느님’에서는 이 사람의 이름이 양경종이며 포로로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송되어 미국에서 살다가 1992년경에 생을 마쳤을 것이라는 후기를 적는다. 하지만 이재익은 소설 도입 부분과 후기에 김건우라는 기구한 운명의 탈북자 노인을 통해 그의 아버지 김길수라는 사람의 일대기임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의 이런 설정 전체(PD로서 소재를 찾다가 우연히 김건우를 만나 김길수의 일대기를 건네 듣는다는)가 소설일 수도 있지만 소설 앞뒤의 문맥으로 봐서는 그 부분만큼은 사실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이 소설들은 역사 앞에서 인간의 목숨이 얼마나 깃털처럼 가벼운지를 철저하게 보여주지만 반대로 주인공의 기구한 삶을 통해 인간의 삶의 무게가 또한 얼마나 무겁고 존엄한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이재익은 전업 작가이기 이전에 방송국 PD여서인지 그가 풀어 나가는 소설의 장면은 조정래의 그것에 비해 작위적이고 마치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한다. 전쟁 영화를 보면 주인공은 쏘기만 하면 적들은 죽어 자빠지고 주인공은 그 무수한 총탄 앞에서도 무사히 살아 남는 것과 같이 말이다. 거기에 ‘아버지의 길’에 나오는 주인공 김길수는 거의 완벽한 인간이다. 고아로 태어나 종노릇을 하지만 스스로 머리를 깨우쳐 민족의식을 가지게 되어 독립군의 길로 들어서 일본군과 싸우고 이후 일본군, 소련군, 독일군으로 이어지는 전쟁의 이력에서 그는 억세게 좋은 운과 또한 싸움 실력으로 살아남는다. 더욱이 그는 정의감도 남달라 자신의 몸 하나 지탱하기 힘든 가혹한 포로시절에도 그를 의지하는 영수를 간수해가며 포로로 잡혀온 아내를 탈출시키기도 한다. 또한 그런 와중에서도 그의 아들에 대한 사랑은 절대적이기만 하다. 즉, 그는 모든 면에서 완벽한 사람이다. 그리고 곁가지로 이어지는 그의 아내 월화의 이력과 그 월화가 풀어내는 삶 역시 남자 못지않은 싸움실력과 함께 극단적인 우연으로 이어지는 일생을 살아가게 된다. 그런 면에서 ‘아버지의 길’은 빛바랜 사진에서 보여지는 왜소한 사진속의 한국인과는 이질적이다. 낯설기까지 하다. 반면 ‘오 하느님’에서의 주인공 신길만은 좀 더 사실적이고 사진속의 인물과 좀 더 부합해 보인다.
그래서일까, 아니면 조정래와 이재익 이라는 작가로서의 이름의 크기 때문일까.. 아무래도 소설로서의 완성도에서는 ‘오 하느님’에 한 표를 던지게 된다. 하지만 ‘아버지의 길’은 분량면에서 ‘오 하느님’의 두배이다. 그러다보니 작품 중간 중간 작가는 당시의 역사적 흐름 등을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어서 마치 교양소설을 읽듯이 독자의 입장에서는 좀 더 많은 지식들을 소설의 재미와 함께 얻어가게 된다. 그리고 노몬한의 전투와 포로수용소의 묘사 등은 ‘아버지의 길’이 가진 미덕이라 하겠다. 그래서인지 나는 ‘아버지의 길’을 읽으면서 소설이 아닌 마치 한편의 다큐를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역사는 영웅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진시황과 만리장성’이라는 그 단순한 명제 아래 그 성에 돌을 하나하나 쌓다가 죽어간 수많은 이름 없는 민초들의 삶은 흔적도 없다. 이 소설들의 미덕이라면 전 세계적 격변기의 역사적 상황에서 오로지 이런 민초들의 삶과 한만으로 글줄기를 풀어 냈다라는 점이 아닐까 싶다. 두 책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먹먹해져 오는 가슴을 가눌길이 없다. 부디 이 책들이 그렇게 풀지 못할 한을 가지고 이 땅을 떠난 망자들의 넋을 위로해 주는, 이제 당신들의 억울함을 우리 후손들이 이렇게 기억하고 있노라는, 그러니 이제 편안히 눈감으시라는 한마당 살풀이가 되었기를 소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