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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번의 힌트
하승민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평점 :
📚<서른번의 힌트> #도서제공
🏷스무 개의 다른 세계를 만날 수 있는 앤솔러지. 짧게는 10여쪽, 가장 긴 단편도 20여쪽이 안되는 소설집에서 나는 어느 것 하나 똑같은 것이 없는 독특한 세계들을 엿볼 수 있었다. 이 단편들은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가들이 당선작을 바탕으로 풀어낸 이야기들이다. 당선작과 동일한 세계관을 공유하는 이야기도 있고,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수필의 형식으로 전하기도 한다. 궁금해서 찾아보니 내가 읽은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은 딱 5편이었다. 대부분은 모르는 소설들이었지만 다양한 티저들을 맛 본 느낌이라 좋았다.
가장 반갑고 뭉클했던 것은 아무래도 심윤경 작가님의 <너를 응원해>이다. 내가 정말 좋아하고 많이 울기도 했던 <나의 아름다운 정원>의 후속편으로, 동구가 나이 들어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을 키우는 내용이다. 동구의 행복을 간절히 바랬던 나로서 이 후속편이 너무 반가웠다. <나의 아름다운 정원>이 순수하고 어린 동구의 눈으로 5.18을 비롯한 당시 시대상을 다루었다면, 이 단편에는 그때와 별반 달라지지 않은 비상계엄이 나온다.
이 편 외에도 비상계엄을 소재로 다룬 단편들이 더 있다.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들 답게 시대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고 당당하게 소설로 표현하는 점이 인상깊었다.<너를 응원해> 외에도 기억에 남는 단편들이 꽤 있는데 대부분은 읽어보지 않은 당선작들이었다.
📖<유전자>, 하승민
피부가 파란 여자와 눈이 보이지 않는 남자의 결혼생활을 그린 작품이디. 수상작은 <멜라닌>으로, 파란 피부를 그린 세계가 궁금해졌다.
📖<진홍:박수 외전>, 강성복
무당을 소재로 맛깔나는 문체를 구사한 단편이다. 신명나는 굿 놀음이 눈 앞에 펼쳐질 정도로 묘사가 생생하다.
📖<힌트>, 김유원
야구팬으로서 지나칠 수 없는 단편. 야구에 흥미를 잃어가는 진호와 리틀야구단에서 투수로 활약하는 소녀 기현의 이야기이다. 우리나라는 여성이 야구를 할 수 있는 프로리그가 없어, 기현의 이야기를 다룬 <불펜의 시간>이 제일 기대가 된다.(어쩔 수 없는 야빠😚...)
📖<옥이>, 박서련
<체공녀 강주룡>의 번외! 주룡의 뒷얘기를 만나서 반갑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과연 세상은 주룡의 바람대로 변화한 것일까.
📖<종이탈>, 강화길
고딕 호러 소설의 대표주자인 강화길 작가님의 단편집. 역시 으스스한 분위기가 일품이다. 화자는 다차원 세계를 믿는 컬트 집단을 취재하고자 마을을 방문한다. 하지만 그녀 역시 종이탈을 쓰고 문지방을 넘고, 다른 차원의 '나'를 보게 되자 빠져나올 수가 없다. <다른 사람>의 줄거리를 찾아봤는데 이 단편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 알 수가 없어서 이 또한 궁금해졌다.
🔖곳곳에 내가 있다.
행복한 나. 슬픈 나. 고통받는 나. 억울한 나. 우울한 나. 활발한 나. 수줍은 나. 그러나 이것은 모두 나의 일부일 뿐이다. 나는 행복하면서도 억울하고, 고통받으면서도 웃는다. 우울하지만 섬세하고, 활발하지만 수줍다. 유독 슬픈 내가 있긴 하다.(p.149)
📖<빵과 우유>, 한은형
어머니가 되길 거부하고 두려워했던 미구의 이야기이다. 그녀는 아침식사를 만들고, 이를 그림으로 그리고 붓으로 마구 해체한다. 소설 속엔 미구의 딸 재인의 이야기가 스쳐지나가듯 나온다. 미구도 그렇고 남편도 딸에게는 딱히 애정을 준 것 같지 않아서, 재인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듣고 싶어졌다.
📖<외계인>, 주원규
다 읽고 이게 뭐지? 라고 외쳤던 단편. 1군 데뷔를 앞두고 있는 성윤은 야구장에서 이상한 여성을 본다. 이 여성이 너무 신경쓰인 나머지, 2군 마지막 경기에서 볼넷으로 만루를 내주고 만다. 성윤이 이 이상함을 지목하는 순간, 감독은 물론 포수와 더그아웃의 모든 선수들까지 침묵한다. 서서히 공포에 잠식되어가는 성윤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그나저나 열외인종 잔혹사는 도대체 무슨 소설일까)
📖<홍합,이시죠?>, 한창훈
이 앤솔러지에 거의 유일하다고 할 수 있는 회고록이다. 당선작을 쓸 당시 모티브가 된 인물과 과거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담고 있다. 한겨레문학상의 30년을 축하하며 쓴 감상이 재미있어서 적어본다.
🔖출판사에서 이 원고를 청탁해 왔을 때 나는 어째 한겨레출판에서는 한강 작가의 책이 한 권도 없단 말인가, 탄식하고 우리 수상 작가들이 노벨상을 못타서 정말 미안하다고 의견을 밝힌바 있다.(p.3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