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보지 못할 밤은 아름다워
백사혜 지음 / 허블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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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보지 못할 밤은 아름다워>, 백사혜

🏷귀여운 표지에 그렇지 못한 스토리... 그림형제와 잔혹동화 그 어드메 쯤 있는 이야기로, 정말 매혹적인 소설이다. 그로테스크한 아름다움 이란 단어가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곳은 없을 것 같다. 정세랑의 <목소리를 드릴게요>나 김보영 작가님의 SF 소설 세계관을 좋아한다면 이 연작소설집도 꼭 봐야한다.

연작소설의 배경은 재벌과 기업가들이 '영주'가 되어 우주를 지배하고, 신으로 군림하는 세상이다. 인류는 기계와 결합하기도 하고 인어가 되기도 하는 등 더 이상 예전 인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럼에도 인간일 적 가지고 있던 욕망, 우러러봄에 대한 갈망, 경쟁심, 그리고 애증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런 인간적인 부분들은 영주들이 벌이는 끔찍한 기행들에도 드러나고, 한낱 벌레만도 못한 존재로 비참하게 살아가는 신민들의 모습에서도 느껴진다.

<황금 천국의 증언>에선 인간을 숙주로 황금영약을 키워내는 영주가 나오고, <그들이 보지 못할 밤은 아름다워>에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아이를 반려로 맞이하기 위해 인공 배아를 양육하고 끊임없이 폐기와 생산을 반복하는 영주가 나온다. <왕관에 불붙이는 자>의 여덟 쌍둥이 영주는 '빛'을 흠모하여 신인류를 광결시키고 유토피아를 건설하고자 한다.

이런 비인간성과 기괴함이 소설을 지배하고 잠식하는 와중에도, '사랑'은 조심스레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 <피가 시가 되지 않도록> 편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허상을 쫓았으나 결국엔 '쟝'의 사랑을 느끼고 눈물짓는 '얀', '인사'를 위해 몸을 바쳤던 '나', '아시라'를 위해 에테르의 편안함을 버리고 '도구'가 되기로 결심한 '라비'. 이 모든 행동의 기저에는 사랑이 있다. 이 사랑은 얀의 말처럼 정말 징그러워서 미칠 것 같은 사랑이고, 한 줌 값어치도 안되는 사랑이기도 하다. 그럼에도..그럼에도 목숨을 바치게 하고, 내 전부를 바치게 하는 애증이란 점이 인상 깊다.

가장 좋았던 단편은 <황금천국의 증언>과 <그들이 보지 못할 밤은 아름다워>이다. 황금천국은 정말 그로테스크함의 정점을 찍은 단편인데 너무 충격적이라 기억에 남는다. 모든 걸 다 먹을 수 있으면서 결국엔 식인을 결심한 시즈 영주가 너무 징그럽다. <그들이 보지 못할 밤은 아름다워>에선 수조에서 유유히 유영하는 '나'의 모습이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사랑의 모양>이 연상되어 아름다웠다.

이 소설은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단편들을 시간 순서대로 배치하여 마치 장편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소설 말미에는 영주 체제에 반대하는 <부타의 선언> 집단이 승리하고, 불협화음 끝에 해체되는 모습이 스치듯 지나간다. 하지만 아시라를 위해 기꺼이 도구가 되겠다는 라비의 말은 이 이후에 벌어질 이야기들도 궁금하게 만든다. 작가님이 이 세계관으로 몇 가지 얘기를 더 해주셨으면 좋겠다. 얀과 쉬런의 뒷 얘기라던가, 영원히 광결된 판타콘의 모습, 그리고 에테르와 물리세계의 만남 등 말이다. 쥬벵씨와 카할, 아시라에 얽힌 얘기도 궁금하다. 정말 매혹적인 이야기들과 상상력으로 가득했던 소설이라 추천!

🔖사랑은, 삶을 견디기 위한 도구. 자신이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영혼에 광을 내기 위한 기만의 시약. 얀이 습득한 사랑에 낭만이 낄 자리는 없었다.(p.36)
🔖사랑이라는 게 정말 징그러워서 미칠 것만 같다. 어딘가에서는 억 단위의 돈을 벌 수 있는 사랑이 있는 데, 어딘가에서는 한 푼어치 값어치도 되지 못해 우주의 먼지와 함께 뒤섞이게 될 사랑이 존재한다는 게 참을 수 없이 역겨워진다. 하지만 결국 얀도 그 징그럽고 값어치 없는 짓을 매 순간 하고 있었다
(p.78)

🔖가짜는 잃지 않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잃지 않을 수 있으니까.(p.79)

🔖희생은 고귀한 상황에서나 아름다운 것이지 구더기 같은 곳에선 개죽음일 뿐이니까.(p.170)

🔖바람이나 온실 속 나무로 태어나지 않았다면 갈대가 되는 수밖에 없다.(p.171)

🔖무조건적인 순종에서는 권위의 양분을 찾을 수 없다. 영주들은 패배감과 갈망을 갈망했다. 그 감정은 그들과 세대의 일부를 공유하는 '인간'에게서만 뽑아낼 수 있다. (p.173)

🔖인사, 이만치 살아오고 나서야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되었어. 그러니 더는 죽듯이 살지 않을 거야. 살아가듯 죽을게.(p.208)

🔖"네 도구가되어줄게."
"무기로만 쓰지 말아줘."(p.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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