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나의 우리 사람 열린책들 세계문학 294
그레이엄 그린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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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인 워몰드는 아바나에서 진공청소기 대리점을 운영하며, 딸 밀리를 홀로 키우고 있다. 밀리는 아름답지만 씀씀이가 커서 워몰드는 항상 주머니 사정이 고민이다. 그런 그에게 '호손'이란 남자가 접근해 카리브해의 영국 정보 요원으로 일할 것을 권유한다. 워몰드는 얼떨결에 영국 첩보 요원으로 일하며 가짜 요원들과 가짜 보고서로 활동비를 타낸다. 그가 한 거짓말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영국 정보부는 물론 반대파들까지도 오리엔테 산맥에 '무언가'가 있다고 믿게끔 만든다. 그저 돈을 벌어보고자 시작한 일들이 감당할 수 없는 선으로 커지게 된다.
 
쿠바 혁명 전 혼란스러운 아바나에서 벌어지는 가짜 첩보 요원의 활약상을 그린 풍자소설이다. 워몰드가 가짜 요원을 만들어내고, 진공청소기를 분해한 도면을 보고서로 보내는 장면은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도대체 호손은 어쩌자고 평범한 진공청소기 판매인을 상업계의 거물로 그려내고 스파이 짓을 맡겼을까?🙄 이것도 영국 첩보부의 무능을 비웃는 장치 중 하나인 듯 하다.

  여기서 정말 웃긴 장면은 워몰드가 보낸 도면을 보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영국 첩보부이다. 심지어는 반대편도 이걸 믿고, 워몰드가 가짜로 꾸며낸 요원을 총으로 죽이려고 한다. 이 모든 일들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워몰드는 자신도 모르는 새 스파이 거물이 된다.

  이후 벌어지는 일련의 일들은 정말 눈을 뗄 수 없다. 엉킨 실 하나를 풀려고 했는데 모든 게 다 엉켜버리는 엉망진창을 보고 있는 느낌? 워몰드는 브레이크가 고장난 기차에 탄 것처럼 끝을 모르고 폭주한다.

  이 와중에 벌어지는 캡틴 세구라와 워몰드의 체스경기도 아주 일품이다. 캡틴 세구라는 고문이 가능한 부류와 그렇지 않은 부류로 인간을 나눌 수 있다고 말한다. 워몰드처럼 백인이고 잘 사는 나라에서 온 사람은 고문이 가능하지 않은 부류이다. 그러나 하셀바허처럼 독일인에, 전쟁 참여이력까지 있으면 항상 이 나라에서 추방될 위험을 겪고 살아가야 한다. 이 소설은 모든 걸 비꼬고 조롱하며 당시 사회에서 벌어지던 문제들을 날카롭게 꼬집는다.

소설의 백미는 마지막 영국 첩보부의 비밀 회동 장면에 있다. 그들은 이 모든 것을 알게 되었음에도 워몰드를 처벌하지 못하고 오히려 훈장을 수여하려 한다. 자신들이 웃음거리가 되고, 또 자신의 자리를 잃는 것이 두려워 워몰드의 가짜 첩보 행위를 비밀에 부치기로 한 것이다.

실제로 그레이엄 그린이 MI6에 근무한 경험이 있다고 하니, 아마 국가 정보원은 미션임파서블이나 본 시리즈처럼 실제로 세상을 구한다기 보다 정치공작이나 자리보전에만 힘썻나 보다. 이를 통해 당시 벌어지던 첩보전이 얼마나 의미가 없고 무능했는지가 드러난다. 실제로 그린이 요원으로 일할 당시 포르투갈 요원들이 보너스를 받기 위해 가짜 보고서를 내는 데서 이 소설을 착안했다고 하니.. 갑자기 국가정보원에 대한 신뢰가 우수수 떨어지는 것 같다.😇

이 소설을 읽고 나서 당시 쿠바 상황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아 바티스타, 피델 카스트로에 대해 추가로 찾아보았다. 쿠바의 독재자였던 바티스타를 축출하고 사회주의 정권을 수립한 사람이 피델 카스트로라고 한다. 그레이엄 그린은 피델 카스트로에 대해 호의적이었다고 하는데.. 흠.. 쿠바를 해방시킨 민족운동가와 언론 탄압을 자행한 독재자라는 상반되는 평가가 인상깊었다.

  당시 바티스타는 친미, 피델 카스트로는 소련이었다고 하니 쿠바는 결국 미국과 소련의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터였을 뿐이다. "아바나의 우리 사람"은 영국 정보원 국장이 워몰드를 지칭하는 말인데, "우리"라는 단어부터가 당시 나 아니면 적이다 라는 사고방식이 만연했음을 짐작케 해준다. 당사자 뿐만 아니라 모든 국가들이 두 진영으로 나눠 싸웠고, 쿠바처럼 강대국의 소리 없는 각축장이 된 곳들이 많았다. (뭐 둘로 분단된 한국만 하겠냐만은..)

  가짜 첩보 요원의 활약상을 모두 믿고 진지하게 대응하는 것이 우스꽝스럽고 한편으론 정말 웃기다. 동시에 시대 상황에 대한 비판이나 문제의식도 녹아 있어서 생각해볼 거리도 많은 작품이었다.

🔖잔인한 사람들은 도시와 왕자, 권력처럼 왔다가 잔해만 남기고 사라졌다. 그것들은 영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작년에 밀리와 함께 서커스에서 봤던 광대, 그 광대는 영원했고, 그 광대의 공연은 절대로 바뀌지 않았다. 삶은 그러해야 했다. 그 광대는 대중의 변덕과 위대한 이들의 거대한 발견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p.53)

🔖제정신인 사람들이 당신을 둘러싸고 있어요.
가족의 오랜 친구들이죠.
그 사람들은 지구가 둥글다고 하지요.
제 광기가 화를 내요.
그 사람들은 오렌지에 씨가 있다고
사과에 두꺼운 껍질이 있다고 말해요.
출판사의 도서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열린책들 도서 지원으로 우주클럽 @woojoos_story
도서지원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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