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생명의 지문 - 생명, 존재의 시원, 그리고 역사에 감춰진 피 이야기
라인하르트 프리들.셜리 미하엘라 소일 지음, 배명자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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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는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굉장히 가까운 신체기관이자 삶과 죽음을 나누는 중심에 있지만 왠지 낯설게 느껴집니다. 의료계 종사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피'를 떠올리라면 대체로 그렇지 않을까요? TV프로그램에서 등장하는 범죄 현장이 연상되거나 여성이라면 매달 하게 되는 월경, 아이라면 까진 상처에서 나오는 피, 그리고 저와 같은 크리스천이라면 성경에서 접했을 '예수님의 피'가 떠올랐을 수 있구요. 저는 종교적인 이유로 '피 = 생명'이라는 생각을 꽤 자주하는 편이었지만 잘 알지는 못했던 터라 피에 대해 다룬 이 책의 내용이 매우 궁금했습니다.


<피, 생명의 지문>의 저자 라인하르트 프리들은 심장외과의면서 사실은 '혈액 외과 의사'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합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하는 30년 차 의사입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심장과 혈액으로서의 '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여 혈관, 면역, 혈액형, 호르몬, 트라우마, 순환, 피와 관련된 문화-역사-과학 이야기, 월경, 탄생, 존재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주제를 신기할 만큼 자연스럽게 이어나갑니다. 덕분에 책을 읽고 나면 피의 역할과 같은 인체 관련 지식뿐만 아니라 '생명'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하죠. 책 후반부에 이르면 심장외과의인 저자는 이제 메스뿐 아니라 대화와 명상 등 우리가 '의학적'이라고 여기는 것 외의 방법을 포함하여 환자의 심장을 포괄적으로 살피는 방향으로 치료법을 전환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마치 책의 전개가 심장에서 피, 피에서 생명으로 그 관점을 넓혀가는 것처럼 저자의 선택 역시 이렇게 자연스러운 흐름에 의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많은 과학자나 의학자들의 책에서도 느꼈던 것처럼, 저자 역시 자신이 아는 것에 대해 절대적이라 여기며 고집하기보다는 '아직 진행 중'이며, 남은 부분이 있음을 인정하는 겸손함이 눈에 띄었습니다. '숨 쉬는 것'과 같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많은 활동들이 사실은 기적 같은 일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구요.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일상이라서, 혹은 너무 힘든 환경이라서 '기적'과 같은 일을 찾으시는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내 안에서 매일, 순간마다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을 잠시나마 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요.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 받았으며, 내용에 대한 요구 없이 저의 견해가 담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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