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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하는 인간 - 확증편향의 시대, 인간에 대한 새롭고 오래된 대답
박규철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2년 6월
평점 :

무언가를 의심하는 상태에서는 좀처럼 마음이 편안하기 힘듭니다. 한편 확신을 가지고 있는 상태일 때, 마음속에서 혼란은 찾아보기 힘들죠. 그렇다면 의심보다는 확신이 낫고 편안한 마음이 혼란스러운 마음보다 나은가? 아마 각자 추구하는 가치, 그리고 각각의 상태나 그 정도에 따라 다른 답을 할 것 같습니다. 만약 지금 저에게 선택권을 주고 어느 한쪽을 택하라면, 조금 괴롭긴 하겠지만 후자보다는 전자를 선택할 것 같습니다. 아마 예전의 저였다면 그야말로 '의심'의 여지도 없이 후자를 선택했겠지만요. 전자와 후자 모두에 깊게, 그리고 오랜 시간 머물렀고 또 그런 이들을 주변에서 지켜보면서, 후자의 상태가 한 사람의 삶을 얼마나 제한하는지를 크게 느꼈고 동시에 의심을 잘 다루어 좀 더 나은 상태로 발전시킬 수 있다면 전자가 더 낫지 않나 생각하게 되었거든요. 물론 나중에는 또 달리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지만요.
<의심하는 인간>의 부제는 '확증편향의 시대 인간에 대한 새롭고 오래된 대답'입니다. 철학자이자 교수인 저자 박규철 님은 이 책을 통해 고대 회의주의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전해주는 통찰이 무엇인지를 제시하고자 이 책을 썼다고 합니다. 그는 오늘날 현대인의 불안과 불행의 이유를 정치, 경제, 종교 각 분야에서 자신의 가치에만 빠져 정치적 배려, 경제적 절제, 종교적 관용을 잃어버린 공동체에서 찾습니다. 그리고 고대 그리스의 회의주의 철학자들과 그 영향 하에 있었던 중세와 르네상스 철학자들의 '회의주의'에 대한 탐구로부터 지금 우리의 독단과 아집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습니다. '고대 회의주의의 의미, 아카데미 학파의 회의주의, 피론 학파의 회의주의, 아우구스티누스와 몽테뉴의 새로운 회의주의, 21세기에 소환된 고대 회의주의', 총 5부로 구성된 이 책은, 서양 철학사에서 '회의주의'로 잘 알려졌거나 '회의주의'에 영향을 주었거나, 또는 새로운 형태의 회의주의자로 여겨질 수 있을 견해를 제시한 이들의 철학을 담고 있습니다. 저자는 고대 회의주의 철학이 '부정적인 철학'이나 허무적인 문제제기에만 매달리는 비학문적인 학문이 아니며 오히려 인간과 세계를 합리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새로운 지적 태도이자 학문적 방법론이라고 말합니다(p.24). 그리고 책을 통해 고대 회의주의자들의 철학이 21세기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의미함을 입증하려 합니다.
저자는 피론주의자 섹스투스의 이야기를 빌려, 고대 회의주의적인 삶의 기술은 가르침이나 배움에 의해 획득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대신 이것은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던 비인간적인 믿음의 대상들이 반박되고 부정되는 순간에 드러나는 통찰 같은 것일 수 있다(p.362)구요. 저 역시 이 말에 동의합니다. 내가 옳다고 믿었던 것이 사실이 아님을 알게 된다면, 그리고 그 경험이 반복된다면 그는 자신이 믿는 것들에 대해 이전보다 의심의 여지를 두게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 의심이 신경증적인 부분으로 나아가는 대신 저자가 말하는 '탐구'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면, 이는 한 개인의 삶을 보다 성숙하게 만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 구성원 중 그런 이들이 늘어날수록 공동체 역시 독단과 아집보다 관용과 배려의 태도가 늘어날 것 같구요. 그런 의미에서 '의심하는 태도'는 모든 사람에게, 특히나 우리 자신이 굳게 믿는 것에 대해 꼭 필요한 태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 받았으며, 내용에 대한 요구 없이 저의 견해가 담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