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이라는 모험 - 미지의 타인과 낯선 무언가가 하나의 의미가 될 때
샤를 페팽 지음, 한수민 옮김 / 타인의사유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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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요즘 '관계'에 관심이 쏠려있는데, 사실 그 시작은 '나'였습니다. 내 삶,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고민 속에 '나를 아는 것'이 꼭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의 취향, 선호, 추구하는 가치를 아는 것만큼이나 남들과는 다른 나의 유일성과 독특성을 아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그것은 반드시 '타인'이라는 대상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 아닌가, 더 나아가 그것은 나를 아는 일뿐만 아니라 '나와 너'라는 개별 대상, 그리고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해주었습니다. <만남이라는 모험>은 타인과의 만남을 통해 나를 인식한다는 것, 그리고 타인과 존재 대 존재로 만난다는 것과 같은 요즘 저의 새로운 관심사를 담은 책이어서 잔뜩 기대를 안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만남이라는 모험>의 저자 샤를 페팽은 프랑스의 국립고등학교와 파리정치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하는 교수로, 철학, 예술, 문학 작품과 창작자의 사적인 관계에 대한 탐구를 통해 만남에 대한 자신의 통찰을 풍성하게 보여줍니다. 저자는 '심리적인 동요, 호기심, 인식, 만남에 자신을 던지려는 갈망, 타자성의 경험, 변화, 책임감, 구원'을 만남의 징후로 설명합니다. 이 중 한 가지 예를 살펴보자면, 우리가 상대의 시선과 마음을 통해 어떤 일을 생각하는 것을 '타자성의 경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타인의 시각을 통해 세상을 보고, 나라는 한 사람의 관점이 아닌 두 사람의 관점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죠. 저자는 이러한 만남의 징후들을 통해 상대와 내가 '마주침'을 넘어선 '만남'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어 우연을 우리 편으로 만들고 만남을 더 특별하게 만들기 위해 필요한 태도로 '자기 틀에서 빠져나오기, 특정한 것을 기대하지 말기, 자신의 취약성을 보이는 가면 벗기'를 소개합니다. 우리 앞에 펼쳐진 여러 만남의 기회에서 우리가 이런 태도를 갖고 있다면, 기억조차 나지 않을 스쳐 지나가는 만남이 한 사람의 생을 뒤흔들 만남의 시작이 되게도 한달까요. 마지막으로 만남의 인류학적· 존재론적· 종교적· 정신분석학적· 변증법적 관점을 조망하여 한층 더 깊은 철학적인 차원에서의 만남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합니다.

책에서 말하는 '만남'의 첫 부분에서는 그 대상으로 '연애 감정의 대상'이 떠오르며 지나온 여러 관계에서 사랑과 만남이 시작될 때가 떠올랐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다양한 대상과의 관계에 두루 적용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친구, 선생님, 멘토, 혹 살다 한 번 마주친 누군가, 그리고 신(神)까지. 특히 저의 경우 요즘 저의 고민에 닿아있는 '신'과의 관계에 '만남'을 적용하니 오히려 종교 서적에서 설명하는 만남보다 더 정확한 묘사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예외 없이 적용이 되었습니다. 다만 정작 신과의 만남을 다루는 종교적 만남의 부분에서는 실제 신과의 만남을 설명하기엔 조금 모자란 느낌이 들어 아쉬웠지만요. '자신의 틀에서 나오라는 말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집에서 나오는 것'을 우선적으로 의미한다 (p.174)' 는 저자의 말은 파워 집순이인 저의 실소와 함께 공감을 자아냈습니다. 온라인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졌지만 새로운 관계나 만남, 그로부터 시작되는 '무언가'는 아무래도 집에서 나갈 때 가능한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였거든요.


책을 읽으며 '사랑을 느낀 관계와 그렇지 않은 관계'의 특징을 보다 명확하게 정리해 볼 수 있었습니다. 호의나 희생, 베풂은 형식 측면에선 언제나 상대를 향해 있지만, 그 중심이 자신을 지키는 것 혹은 베푸는 자신에게 있는지 아니면 자신의 변화를 감수하고서라도 상대를 존중하며 수용하는지에 따라 그 관계를 사랑으로 느끼는지 아닌지가 나뉘는 것 같다구요. 더불어 용해되는 사랑보다는 건설적인 사랑이 내가 바라는 형태의 사랑과 더 가깝다는 것도요. 나의 세계를 벗어나 상대의 세계를 존중하는 존재 대 존재로의 만남은 생각만으로도 충만한 경험일 듯하지만 그 일이 왜 이리 드물고 또 어려운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다른 무엇보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구요.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 받았으며, 내용에 대한 요구 없이 저의 견해가 담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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