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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구석 사랑해
언주 지음 / 노란돼지 / 2022년 6월
평점 :
아이가 놀이터 모래사장에서 노는 걸 가장 좋아하던 4~5세 무렵,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옷을 벗기고 몸을 씻기는 일은 전쟁과도 같았다.
열심히 모래를 턴다고 털었어도 계속해서 떨어지는 모래알. 양말 속까지 침투해 발가락 사이사이에 낀 고운 흙먼지들. 더운 여름엔 땀과 엉겨 아이 목주름 사이에 선명하게 낀 먼지 때까지...
머리에서 발끝까지 구석구석 씻기 전엔 절대 거실이나 방으로 들어갈 수 없다고 몇 번을 말해도 말 안듣는 아이를 보며
'내 다시는 놀이터에 데리고 가나 봐라.' 단단히 마음을 먹어도 작심삼일이던 그 시절.
그때는 아이 목욕 시키는 일이 참 힘들고 고단했다.
아이 씻기느라 앉았다 일어났다, 허리를 굽혔다 폈다 하다보면 "아고고 등허리야!"라는 곡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런 시절을 지나 어느새 아이는
외출 후 돌아오면 아무것도 손대지 않고 팔꿈치로 욕실 스위치를 누르고(이런 건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손부터 씻는, 코로나 3년차에 완전 적응한 초등학생이 되었다.
이제 나는 아이 목욕시키기에서 해방되었을까?
놉. 아니다.
아이는 자신의 손은 아주 철저하게 씻지만 머리감고 목욕하는 일만큼은 여전히 엄마손을 빌려야 한다.
왜그런고 하니
몇 번 혼자서 씻어봤는데 시간도 오래 걸리고 샤워기로 몸에 거품을 쓸어내려도 계속 미끄덩거려서 싫다고 한다.
엄마가 해주면 5분이면 끝나는 목욕인데, 왜 자신이 하면 오래 걸리는지는 모르겠단다.
(비록 옷입은 상태에서 한 거긴 하지만)
목욕하는 순서, 방법을 그렇게도 많이 보여줬건만 아무 소용이 없다. 이건 그냥 씻는 게 귀찮고 싫은 게다.
올여름엔 부디 아이가 혼자서도 말끔히 목욕할 수 있게 되기를 꿈꿔본다. 어떻게든 되겠지. 일단 걱정은 접어두고 책을 보기로 하자. 언주 작가가 글을 쓰고 그림도 그린 <구석구석 사랑해>라는 그림책이다.
신나게 놀다가 집에 들어온 아이.
눈이 풀리고 다리가 풀려 그대로 소파로 직행. 땀에 절은 아이의 체취에 강아지도 찡그린 표정이다.
"소파에 바로 눕지 말랬잖니~"라고 말하는 엄마의 한손에 들려 있는 책 제목이 <인내심육아>라니. 엄마의 표정을 알 수 없게 어깨선 아래만 그린 언주 작가님의 센스에 슬며시 웃음이 나는 장면이다.
아이는 곧장 씻으러 욕실로 들어갔을까?
그랬다면 아이가 아니라 어른이겠지.
어떻게든 뒤로 미루려고 소파에서 뭉기적대다가
엄마의 폭풍 잔소리가 시작되어서야 욕실로 직행한다.
랩하듯 시작된 엄마의 잔소리. 여기에서도 엄마의 표정은 보이지 않지만 우리는 충분히 알 수 있다. ^^
아이는 제 몸에 걸친 것들을 뱀 허물 벗듯이 하나씩 바닥에 내팽겨쳐 놓고 욕실로 들어간다. (그런데 발판 위에 평화롭게 엎드려 자는 강아지는 뭐지 싶다. 덮고 있는 건 또 뭐고.)
드디어 시작된 목욕.
그런데 샤워기에서 물줄기 한 번 쏟아졌을 뿐인데 벌써 목욕 끝이라니. 아이 스스로 완벽하다고 느끼는 그 순간. 갑자기 몸이 아이에게 말을 걸기 시작한다. 머리카락에서 시작해서 엉덩이, 발가락 사이사이까지. 아이는 그제서야 몸이 건네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정성껏 구석구석 씻기 시작하는데 머리에서 발끝까지 이어지는 과정이 여간 귀여운게 아니다.
손으로 머리를 문질러 거품을 내고, 귀여운 엉덩이에 묻은 토끼 똥을 씻어내리고 , 꼼지락거리며 발가락을 뽀드득 소리나게 씻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 아이의 목욕하는 모습을 보는 것마냥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다. (이 장면은 꼭 그림책으로 만나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집 아이에게도 몸이 말을 거는, 마법처럼 신기한 일이 빠른 시일 내에 찾아오기를 기대하며... 갈비를 주문해야겠다.
그런데
워매, 한우갈비 값이 말도 안되게 올랐다. 어쩔 수 없지, 돼지등갈비로 선수 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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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이벤트를 통해 노란돼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