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행복은 어디에나 있어 - 공을 물고 달리는 개의 행복 ㅣ 베스트 세계 걸작 그림책 8
브루스 핸디 지음, 염혜원 그림, 공경희 옮김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22년 1월
평점 :
도서관에 가는 날. 빌려볼 책들을 잔뜩 적어놓은 종이를 잊지 않고 꼭 챙긴다. 아무 생각없이 서가를 돌며 책을 꺼내보고 싶지만 그럴 여유가 없을 때 꼭 들르는 곳은 반납대 근처의 책수레. 여러 사람들이 읽고 반납한 책들을 이리저리 들쳐보는 건 그곳에서만 누릴 수 있는 재미다. 타인의 서재에 관해 호기심이 많은 나에게 그 호기심과 궁금증을 해소할 만한 대체재(?)로 이만한 것도 없다.
오늘은 영어그림책들이 대거 눈에 띈다. 익숙치 않은 작가들의 책이지만 겉표지와 내부의 아름다운 그림들이 '나를 데려가세요~"하며 유혹한다. '아니지, 아니지. 오늘 나는 딱 열 권의 책만 빌려갈거야. 구르마도 안 가져왔는 걸. 너희들은 다음에, 다음에 꼭 데려갈게.'하며 휴대폰의 카메라로 맘에 드는 몇 권을 찰칵(최대한 소음이 나지 않도록 소음 나오는 구멍을 손가락으로 막는다.) 찍어 저장한다.
그런데 그중 유독 눈길을 끄는 제목의 영어그림책이 있다.
<The Happiness of a Dog with a Ball in Its Mouth>
'어라, 공을 물고 있는 개의 행복이라니?'
'개는 입에 공을 물고 있을 때 진짜로 행복한 걸까?'
사실 여부는 모르겠으나 그림 속 개가 행복해 보이긴 하다. 눈으로 웃고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
'작가가 누굴까? 브루스 핸디?' 처음 보는 이름이다. 그런데 옆에 나란히 적혀 있는 이름이 익숙하다. 어쩐지 그림체도 익숙하더라니. 염혜원 작가의 그림이다.
아, 이런 시간이 흐른다. 빨리 집으로 가야 한다.
그래, 이건 빌려가서 천천히 보자.
부지런히 서가를 돌며 종이에 적힌 책들을 찾아내 대출하고 책 소독기에서 차례로 소독을 한다. 이제는 서둘러 집으로...
이렇게 해서 나는 원서로 이 책을 처음 보게 되었다.
그리고 운좋게 서평단에 당첨되어 번역 출간된 책도 받아볼 수 있었다.
번역 출간되면서 <행복은 어디에나 있어>라는 새로운 제목으로 바뀌었다. 그러면서 원서의 제목은 부제목으로 쓰였는데, 한국어판 제목의 뜻을 보다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살려주는 역할을 한다. 개인적으로 <행복은 어디에나 있어 - 공을 물고 달리는 개의 행복> 이라는 제목이 훨씬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다.
책으로 들어가보면 우선 글도 글이지만, 염혜원 작가의 그림에 스르륵 긴장이 풀린다. 부드러운 선과 따스한 색감에 마음이 풀어지는 그 느낌. 작가가 보이지 않게 숨겨놓은 메시지나 장치들을 찾기 위해 힘들게 눈알을 굴릴 필요가 없다. 그저 보이는대로 보고 느끼면 된다.
이제 책 속으로 들어가 표지에서, 제목에서 언급되었던 개의 행복을 찾아본다.
"문 앞에 가만히 앉은 개의 기다림
...
공을 물고 달리는 개의 행복"
주인이 데리고 나가줄 때까지 보채거나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는 개의 모습과 바로 이어지는 공을 물고 달리는 개와 어린 소녀. 바로 이런 게 '행복'이란다.
이뿐만이 아니다.
"내 것 네 것 가르기
...
우리 것의 행복"
"가야 하는 먼 길
도착했다는 행복"
책 속에서 보여주는 행복은 어느 것 하나 특별할 게 없다.
우리의 일상에서 시시때때로 볼 수 있거나 경험할 수 있는 평범 그 자체다. 맛으로 소문난 떡볶이집 레시피에서 특별한 비법을 잔뜩 기대했는데, 신선하고 좋은 재료로 맛을 낼 뿐이라는 주인장의 말에 적잖이 실망할 때와 비슷하달까? 그래서 책 제목만 보고 행복의 비결 이런 것들을 기대할지도 모르는 독자들의 실망과 충격(? ㅋㅎㅎㅎㅎ)을 조금이나마 줄여보고자 <행복은 어디에나 있어>라고 단언하는듯한 제목으로 바뀌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후훗,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 또한 번역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얘기할 수준도 입장도 아니지만 책 읽는 내내 공경희 번역가의 공들인 흔적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럼에도 "행복은 어디에나 있어"라는 평범하다 못해 흔한 제목에 유독 안심이 되는 이유는 딱 한가지다. 행복이 소수의 특별한 사람만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행복을 발견할 수 있는 밝은 눈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또한 소소한 일상에서 벌어지는 여러 일들을 감사의 필터를 통해 불평불만을 걸러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곁엔 늘 행복이 머물러 있지 않을까.
서평단에 당첨되어 주니어RHK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