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떼기 권정생 문학 그림책 2
권정생 지음, 김환영 그림 / 창비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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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지만, 그 중에서도 유독 '아픈 손가락'이라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부모는 당연히 자식 모두를 공평하게 사랑한다고 하지만, 각각의 다른 사연과 숨은 마음을 어찌 다 알 수 있을까.


<빼떼기>는 순진이네 닭장 속 '아픈 손가락'이었던 수탉 '빼떼기'의 이야기다. 닭은 순진이네 가족이 처음 기른 가축이었다. 온 가족이 닭들이 알을 낳고, 또 병아리로 부화하는 모든 순간을 관심있게 지켜본다. 노란 암탉 턱주가리와 검은 암탉 깜둥이의 알에서 나온 서른 마리의 병아리들의 모두 가족의 기쁨이었다. 하지만 어느 겨울 날, 검은 병아리 빼떼기는 따뜻한 온기를 따라 아궁이 근처에 갔다가 크게 다치고 만다. 우여곡절 끝에 목숨을 건지긴 했지만, 만신창이가 된 빼떼기는 더 이상 가축의 역할을 할 수 없었다. 가축의 역할이란, 다소 잔인하게 들려도, 건강하게 자라나 식구의 식사가 되어 주거나, 식사를 마련할 수 있는 돈을 벌어다 줄 수 있어야 한다. 털이 타 버리고 부리마저 다친 빼떼기는 더 자랄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었다. 그러나 순진이네 가족은 그런 빼떼기를 오히려 지극정성으로 돌본다. 제 어미조차 알아보지 못하게 변해버린 빼떼기는 더 이상 다른 병아리들처럼 마당을 뛰어다닐 수도, 먹이를 마음껏 주워 먹지도 못했다. 오직 순진이네 엄마의 손길과 보살핌으로 느리지만 조금씩, 천천히 성장해간다.


어찌보면, 아니 누가 봐도, 한낱 '병아리' 혹은 '가축'으로 치부해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이미 순진이네에는 스무 마리가 넘는 병아리가 있고, 암탉이 또 알을 낳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순진이네 가족 중 누구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특히 순진이네 엄마는 자식을 키우듯이 그렇게 빼떼기를 키웠다. 깃털이 다 타 버린 빼떼기를 위해 추울 땐 옷을 지어주고, 잘 때는 바가지에 천을 깔고 그 안에 재웠다. 다른 집이 아니라 순진이네에서 태어난 빼떼기는 그야말로 행운아였다. 그런 가족들의 성원에 보답하듯, 빼떼기는 느리더라도 성장해 간다. 마지막으로 아쉽게 안녕을 고하기 전까지도.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심지어 집에서 키우는 반려동물도 흔해져 버린 지금, <빼떼기>는 오히려 낯선 신선함과 따뜻함을 준다. 닭을 가축으로 치부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같은 집에 사는 식구와 같이 관심을 가지고 소중하게 지켜본다. 느리고 더디고, 걸음걸이마저 우스꽝스러운 빼떼기는 잠깐의 관심을 끄는 신기한 존재가 아니라, 조금은 부족해도 가족과 같은 사랑과 보살핌의 대상이 된다. 작은 생명이지만 소중함은 전혀 다르지 않고, 아프고 다쳤어도 생명이 있기에 동일하게 귀한 것이다.


6·25 전쟁즈음을 배경으로 한 <빼떼기>는 다소 거칠지만 선명한 붓터치의 삽화와 함께 전개된다. 우리가 기억하는 시골의 모습, 투박할지라도 따뜻한 그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다소 글밥이 많아 어린아이들이 읽기에는 쉽지 않을 것 같지만, 부모님이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듯 찬찬이 읽어준다면 다른 그 어떤 이야기보다도 진하게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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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지 말걸 그랬어 스콜라 창작 그림책 96
요시타케 신스케 글.그림, 유문조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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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표지 보자마자 완전 반했었죠~ 소장은 물론이고 벌써 두 권이나 선물해줬어요! 다들 정말 좋아하는 사랑스러운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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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 8 - 망가진 여행 어떤 날 8
강윤정 외 지음 / 북노마드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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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사람은 내일 일을 알 수 없다. 아니, 내일 일은 둘째치고 5분 뒤에 일어날 일조차 알지 못한다. 불확실성과 예측 불가능성은 이미 보통의 하루 속에서도 부단히도 반복되고 있는데, 여행을 간다는 것은 그야말로 불확실성의 구덩이(!)에 뛰어드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요즘은 검색이 가능하니까 루트도 짜고, 후기도 보면서 여행 계획을 짜기도 하지만, 여행의 묘미는 그 모든 계획과 조사에도 불구하고 예측하지 못한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다는 데에 있다. 


'망가진 여행.' <어떤 날 8>의 주제는 그 어느 때보다도 내 마음을 아프게했다. 여행을 하는 동안보다도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계획을 세우고 또 희열을 느끼는가. '망가진 여행'이라는 어구는 그 모든 기대과 정성을 무참히 짓밟힌 기분이 들게 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 여행'이 망가진 것은 아니므로(ㅋㅋㅋ) 마음을 가다듬고 책을 펼쳤다. 


표지도 그렇지만 <어떤 날> 시리즈의 최대 장점은 바로 감성적인 사진들이다. 내가 가보지 못한 곳이라 괜히 더 멋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약간 낯선 종이 질감과도 잘 어울린다. 그리고 저자 한 명 한 명이 담담히 기록하는 여행 이야기는 마치 친한 친구의 이야기를 듣듯이, 혹은 남의 일기장을 몰래 펼쳐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정말 내 돈이 나간 것도 아니지만 비행기표가 아까운 이야기도 있었고, 머피의 법칙도 이정도일수는 없을 것 같은 사건들이 연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래도 일상에서의 하루하루와는 다른, 그래서 더 특별하고 기억에 남는 여행은 아니었을까. 비록 계획과 달리 '망가졌지만,' 그렇지 않으면 아무래도 재미가 없지. 책을 덮고 나의 '망가진 여행'을 조심스럽게 떠올려 본다. 아직은 망가진 상태 그대로, 재미있는 추억이 되기에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한 것 같지만.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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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 (양장) -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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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머리 속 편도체는 보통 사람들의 그것보다 작았다. 겉으로 봐서는 티가 나지 않았지만, 소년의 '아몬드'는 제 역할을 할 줄 몰랐다. 그래서 소년은 감정에 무감각했다. 소년은 지극히 평범해 보였지만, 자신의 '아몬드' 때문에 별난 사람 취급을 받았다. 소년의 엄마는 이런 소년에게 끊임없이 교육을 시켰다. '희노애락애오욕' 각 글자를 종이에 적어 집안 곳곳에 걸어두기도 하였고, 남들의 말과 표정에 대해 대답하는 훈련도 시켰다. 한 떄는 늘 손가락질받는 아이였어도, 시간이 지날수록 평범하게 살아가는 듯보였다. 그리고 그것은 어디까지나 교육의 결과였다. 


손원평의 장편소설 <아몬드>는 4부로 이루어져 있다. 소년의 어린시절부터 비극의 그날까지 1부, 우연처럼 필연처럼 만나게 된 '곤이'와의 이야기가 2부,  '도라'를 통해 조금씩 다른 무언가를 느끼는 이야기가 3부, 그리고 마지막이 4부이다. '감정 표현 불능증'을 앓고 있는 소년이 겪게되는 인생의 굴곡과 성장 과정을 소년의 시각에서 풀어내고 있다. 감정에 대해 무감한 소년이기에 담담한 어투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때로는 끔찍한 사건들조차 평이하게 묘사되기도 하지만, 감정을 모르는 소년의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깊이 몰입하게 되는 소설이다. 길지는 않지만 아몬드처럼 단단한 이 소설에 마음을 빼앗겼다. '감정 표현 불능증'이라는 색다른 소재가 흔히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부르는 청소년기가 결합된 설정도 흥미로웠다. 소년은 누가봐도 불행한 상황 가운데서 오히려 담담했다. 분노를 느끼고 좌절하기보다는 오히려 현실을 직시했다. 감정을 느낄 수 없기에 가능한 일일지도 몰랐다.


우리는 자신이 느끼는 다양한 감정을 말하는 것을 즐기면서도, 때로는 주체할 수 없는 감정 때문에 괴로워한다. 기쁘고 즐거운 일은 계속해서 말하고 싶어하고, 표현하고 싶어한다. 누구도 슬프거나 분노하길 원하지 않는다. '부정적인 감정'이라 부르는 그것들은 억누를수록 괴롭고, 그렇다고 무조건 표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자연스럽기에 더 괴롭기도 하다. <아몬드>의 소년은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웠다. 본인의 의지는 아니었지만, 그랬기 때문에 '괴물' 취급을 받았다. '로봇'이라고 놀림받기도 했다. 하지만 소년의 시각을 통해 '정상인'들이 오히려 당연하다고 여기는 감정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리가 느끼는 것은 과연 진짜일까? 우리가 말하는 '그 감정'과 실제로 느끼는 '그 감정', 그 또한 사회적 교육의 산물은 아닐까? 우리 역시 감정을 가슴이 아닌 머리로 판단하는 것은 아닐까?

멀면 먼 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대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내가 이해하는 한,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았다.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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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3 1호 - 2017년 1호, 창간호
문학3 기획위원회 지음 / 창비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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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3>은 누가 봐도 문학잡지임을 알 수 있는 명확한 제목이자, 숫자 3의 정체가 다소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문학3>의 3은 문학지이면서 문학웹, 그리고 문학몹의 형태로 <문학3>이 보여줄 모습이면서 연간 발행 횟수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 단순히 오프라인 문학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온라인상에서도 활발하게 문학을 공유하며, 독자와의 만남을 비롯한 모든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문학3>의 목표인 것이다. 어쩌면 문학이 '사치'로 다가올지 모르는 팍팍한 세대에 문학은 여유 있거나 고상한 자들이 향유하는 것이 아닌, 우리의 실생활 속에서 찾을 수 있고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이 바로 문학임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이러한 시도들은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매우 반가운 일이고, 감상하는 문학을 넘어서서 '실행' 또는 '실천' 가능한 어떠한 형태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된다.


<문학3>은 크게 주목, 시, 소설, 현장, 시선으로 나누어져 있다. '주목'은 <문학3>이 추구하는 문학의 공공성, 현장성, 실험성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을 담은 글인 것으로 보인다. 에세이 같기도 하고, 논설 같기도 하고, 또 소설의 형태로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문학3>의 커버에서 받았던 인상처럼 딱딱한 느낌이 없지 않았다. 문학을 더 많은 이들과 함께 하고 싶어 하는 목표와는 거꾸로, 다소 어렵고 진지한 이야기들이라 도입으로 넘어서기에는 조금의 용기와 시간이 더 필요했다.


'시'와 '소설에서는 현재 활동하는 한국 작가들의 시 5편과 단편소설 5편을 담았다. 그리고 '중계'라는 이름으로 각각에 대한 독자들의 대담이 실려있다. 서로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5편의 시와 소설을 비평가, 뮤지션, 녹색당원, 영화감독 등이 모여서 감상과 각자의 의견을 나눈다. 어떤 작품이 나오고 그 후에 그에 대해 대담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작품 소개와 동시에 해설같이 대담이 소개되는 시도는 매우 신선했다. 특히, 여러 방면으로 해석될 수도, 해석이 되지 않을 수도 있는 현대시 5편은 나와 같은, 혹은 다른, 혹은 전혀 새로운 숨은 의미들을 대담 속에서 찾아보는 재미도 있었다. 하지만 모두 문학에 대한 전문가들은 아니기 때문에 어쩌면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들이 많았다. 문학이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은 장점이지만, 해석 또는 감상에 대한 비전문가들의 의견을 오프라인으로 출간한다는 것은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독자들이 문학작품을 좀 더 친근하게 느끼게끔, 다양한 이해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 출판사의 의도는 존중받을 만하다고 본다. 장르의 차이이겠지만, 일반 단편보다도 더 짤막한 형태의 단편소설 5편은 짧은 만큼 아쉬운 점도 있고 강렬한 여운도 있었다. 성석제 작가의 <고마워요>와 임솔아 작가의 <병원>은 읽은 후로도 계속이 잔상이 남는 느낌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시' 중계보다 '소설' 중계가 좀 더 흥미로웠는데, 시 중계보다는 덜 무거운 느낌이 들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발표되지 않은 시 또는 소설을 읽고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중계'에 참여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나는 어떤 이야기를 했을까? 혼자 읽을 때와 여럿이 함께 읽을 때 다른 감상과 평들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신선하고 또 문학을 좀 더 live 하게 만드는 것 같다.


몇 안 되지만 그간 봐 온 문학잡지들-<계간 문학동네>, <악스트>, <미스테리아>, <릿터>-에서도 느꼈던 부분 중에 하나는 문학잡지의 서평 또는 세태 비판 등이 어렵게 쓰였다는 것이다. 나 역시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겠는데, 전문가들이 아닌 일반 독자들이 대상인만큼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가고자 하는 시도가 좀 더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개개인의 차이도 있기 때문에 독자들마다 공감하고 느끼는 지점은 분명 다를 것이다. 진지하고 힘이 있는 그런 문학도 필요하지만, 약간은 소프트하고 즐길 수 있는 그런 문학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정답은 없다.  


우리 삶에 문학이 왜 필요한지 생각해 본다. 독서는 여가활동이 아니라, 치열하게 살아가는 중에 내 스스로를 돌아보고 정비하는 데에 있어서 꼭 필요한 활동이다. 그중에서도 문학이 필요한 것은 문학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세상의 다양한 모습들을 체험하고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어쩌면 문학은 거창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서 돌아보면 '문학적'인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매일매일 속에 존재한다. 거칠고 팍팍하게 여겨지는 삶이라고 할지라도, 한 페이지의 문학이라도 느끼고 공감할 수 있다면, 그게 바로 문학의 역할이 아닐까? 다양한 형태, 새로운 시도로 우리 삶 속에 다가오고자 하는 <문학 3>의 행보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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