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환자혁명 - 약과 병원에 의존하던 건강 주권을 회복하라
조한경 지음 / 에디터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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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은 본인이 관심을 가지고 챙겨야
건강해질수 있어요
의사들의 단골손님이 될것인가
약의 부작용에서 살것인가..

건강은 예방이 최선입니다.
이런 좋은내용을 주위의 편견과시선 권력자로부터도 지지않고 책을 내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책 내용이 너무 좋아서 선물했더니 지인분들 좋아하시네요
이런책도 있냐고 하시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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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퀘스천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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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글라스 케네디 책은 언제나 신선한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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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 -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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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를 통한 배움의 의미를 새로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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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데이비드 실즈 지음, 김명남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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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코미디언 겸 배우 제리 사인펠트는 아버지가 되었을 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 아이가 너무나 사랑스럽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상에 아기들이 태어난 목적을 잊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아기들은 우리를 대체하려고 왔다. 아기들은 귀엽고, 안아주고 싶고, 달콤하고, 우리가 사라지기를 바라는 존재들이다' (p173)


개체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세포들의 생명을 전달해주는 매개동물에 지나지 않아요. 대대손손 유전자를 물려주는 불멸을 갖는 대신 우리는 늙어 죽는 대가를 치러야 해요. 이 사실은 영혼을 갈가리 찢기는 것처럼 느끼죠. 제가 보기에 삶은 단순하고 비극적이예요. 그리고 기이하리만치 아름다워요. (312)


나는 최근 죽음에 대한 화두에 끌려 알라딘 사이트에서 죽음에 관한 두 권의 책을 구입했다. 한 권은 데이비드 실즈가 지은 이 책 <우리는 언제가 죽는다>와 셜리 케이건이 지은 <죽음이란 무엇인가>였다.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먼저 잡았으나 살짝 어렵고 지루해 보여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를 읽기 시작했다.


먹고 살기 바빴다는 변명을 자주하게 되는 나이가 되다보니 죽음이라는 단어가 멀게 느껴지지 않는 살고 있는 요즘이다. 죽음은 삶에 어떤 의미를 주는가? 죽음을 위해 어떤 생각과 자세로 삶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힌트를 찾기 위해 이 두 권의 책을 골랐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 제목은 참 잘 지었다.


하지만 죽음과 삶에 대한 깊은 철학적 화두를 얻기 위한 의도라면 이 선택은 틀렸다. 사람은 모두 다 자신의 렌즈로 세상을 보고 책을 해석하는 존재인터라 이런 단정이 속단으로 비쳐질 수도 모른다. 다만 우문현답을 기대했거나 저자가 깊은 화두와 통찰을 제시하는 책을 기대했다면 이와는 거리가 멀다는 뜻이다. 


옮긴이는 이 책을 스포츠와 언어에 관한 에세지라고 부르고 싶다고 옮긴이의 말에 전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 책은 우리의 존재이자 한계인 육체의 애틋함에 관한 에세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이 책이 가진 유익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책은 처음 유년기와 아동기부터 시작해 마지막장 노년기와 죽음에 이르기까지 우리 몸이 겪는 변화의 수치를 과학적으로 제시한다. 인구 집단의 질병과 사망 그리고 통계, 수명을 연장하기 위한 각종 노력들의 효과에 관한 수치들. 이런 수치들은 책의 절반을 차지한다. (처음에는 끔찍할 정도로 지루하지만 오히려 나중에는 이 수치들이야 말로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를 일깨워주기도 한다) 


수치에 따르면 우리는 6, 7세 유년기에 인생의 절정기를 맞이하는 동물이다. 청년기는 오직 후손을 남길 생각에 몸이 달아하는 동물이고, 임무를 완수한 후인 중년과 노년에는 살든 죽든 자연의 관심 밖에 놓은 잉여의 목숨들이다.


죽음을 철학적 포장으로 미화하지 않는다. 단순히 삶은 개체를 전달하기 위한 과정일 뿐이며 죽음은 과정적 측면중 하나 일뿐이라고 매몰차게 말한다. (개인적으로 이런 시니컬함을 좋아한다) 오래 전부터 살았던 수많은 성인들과 유명인사들이 생각하는 죽음과 과학적 통계사실을 버무려 이야기 하고 있는 책이 바로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라는 책이다. 


그렇다고 책이 딱딱하지만은 않다. 저자 데이비드 실즈는 자신과 아버지 그리고 자신이 평생에 걸쳐 몰입했던 스포츠라는 테마를 책의 양념장으로 선택했다. 저자는 어렸을 때부터 인정받았던 훌륭한 농구선수였지만 그도 나이가 먹어가면서 대머리가 되어버렸고 요통으로 시달리는 나이가 되었다.




Closing

인문학의 탈을 쓴 자기계발서의 범람으로 인해 자의적으로 혹은 타의적으로 죽음이라는 키워드를 끌어 안을 수 밖에 없는 나이가 되었다. 직간접적으로 죽음을 자주 맞이하게 된터라 인류가 평생 동안 끌어 안고 살았던 강력한 주제 '죽음'에 너무 힘을 주고 접근한 것은 아닌가 하는 자문을, 이 책을 읽고 나서 떠올랐다. 죽음을 바라보는 생각이 고상해야 하고 삶에 대한 비장한 마음을 갖고 있어야 하는 무게감이랄까.


책에는 저자가 인터뷰한 택시 운전사 호세 마르티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죽으려고 사는 겁니다. 살다가 죽는거죠. 낚시나 좀 하고 여자친구랑 놀고, 세금내고, 책도 읽고, 그러다가 나가 떨어질 때가 되겠죠. 내가 가고 나면 다른 사람들이 오겠죠.'


우디 앨런도 말했다. ' 우리는 홀로 우주를 누비며, 절망과 고통에 못이겨 서로 끔찍한 폭력을 휘둘러대는 존재들이다.'


내가 원해서 태어난 삶이 아니요, 이 삶은 그저 내게 주어진 삶을 뿐이다. 무슨 대단한 목적 때문에 살아 있는게 아니다. 그저 살아 있으려는 본능일 뿐이라는 죽음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은 삶에 대한 목적을 발견해야 한다는 중압감으로부터 우리를 가볍게 해 준다. 


주어진 선물을 그저 즐겁게 받고 모든 것을 다 쓰고 즐기고 마쳐라라는 말이 떠오른다. 프랜시스 치체스터 경의 말로 후기를 마친다.


시도가 실패한다고 해도 무슨 상관인가? 모든 인생은 결국 실패한다. 우리가 할 일은 시도하는 과정에서 즐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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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6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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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문학이라 불리우는 작품들은 대체 어떤 특성들을 가져야 하는 걸까? 일반인들에게는 난해하고 지루하며 복잡하여 알 수 없는 모호한 특징이 느껴져야, "적어도 이 정도 난해함은 가져야 문학걸작이지, 암 그렇고 말고"라는 말을 듣게 되는 걸까? 소위 먹물 꽤나 먹은 식자층들에게만 출입이 허용되고 일반인들을 동경어린 눈으로 담너머에서 기웃기웃거리는 그들의 사유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국가와 인종을 초월한 전 세계인들이 모두 공감하는 건 너무나 대중적이고 싸구려같아서 노벨문학상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쥘 수 없는 걸까? 아니다. 그런 작품이 있긴 있지. 하지만 모든 작품들이 다 그렇지는 않지 않은가? 많은 대중들이 고전, 세계문학에 대해 이런 선입견이 가지고 있지 않은가? 이 마저도 부정한다면 현실감을 의심해봐야겠지. 어쨌든 <이방인>을 다 읽고 나서 든 생각은 어려운 문학작품을 읽을 때마다 생각났던 그 질문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포털 사이트에 카뮈의 <이방인>을 검색어를 입력하면, <이방인>에 대한 리뷰와 함께 번역논쟁에 대한 많은 검색결과가 나오는데 의외였다. 불문학의 권위자인 김화영 교수가 쓴 <이방인>이 오역이 많아 '우리가 읽은 <이방인>은 카뮈의 <이방인>이 아니다'라는 도발적인 표지를 담은 새움 출판사간의 공방과 사람들의 편가르기가 낯설다. 오히려 웃긴다. 번역이란 자체가 원문을 온전히 담아 낼 수 없는 한계를 가진 태생적 문학임을 어쩔 수 없을 뿐인데... 역시나 결국은 알량한 인간들의 밥그릇 싸움일 뿐이다. 적어도 난 그렇게 본다.


그럼 책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자.

총 2부로 나뉘어 이야기되는 짧은 소설 <이방인>은 지극히 냉소적인 아니 일상의 모든 것을 무덤덤하게 느끼는 한 사내의 이야기다. 카뮈가 이 소설을 통해 어떤 주제를 드러내고 싶었는가를 나 혼자의 힘으로 발견하기는 무리였다. 소설을 다 읽고 난 후, 작품 해설집을 통해서야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내가 읽었던 대개의 고전 문학작품들이 다 그랬듯이...


어머니의 부고소식을 받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되고, 주인공은 어머니가 말년에 기거했던 요양원에 상을 치르기 위해 다녀온다. 이후 옛 직장 동료와의 밀회를 나누고 이웃 친구와 해변으로 놀러갔다가 우발적인 살인을 하게 된다. 그리고 살인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는데 주인공에게는 사형이 선고된다. 무미건조함이 느껴지는 이 이야기가 <이방인>의 줄거리다.


어머니 죽음도 그렇고, 자신과 왜 결혼하고 싶으냐는 애인의 질문도 그렇고, 주인공 뫼르소는 자기 감정을 극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세상 모든 일에 무덤덤하다. 그런 뫼르소의 모습이 사회화 된 사람들에게는 정나미 떨어지는 일일수도 한편으로는 허무주의자처럼 보일 수 있게 한다. 적어도 1부에서 뫼로소는 그렇게 묘사된다. 뫼르소의 이런 특징은 <달과 6펜스>에 나오는 주인공을 스트릭랜드를 연상케했다.


시시껄렁한 이야기로 1부가 지나고 나자 2부에서는 살인에 대한 뫼로소의 재판과정을 다룬다. 재판과정에서 1부에서 보여준 뫼르소 태도들이 판결에 불리하도록 흘러간다. 하지만 뫼르소는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적극적으로 항변하기는 커녕 이 역시 무덤덤하게 받아들인다. 심지어 나중에는 귀찮아하기까지 한다. 결국 뫼로스의 이런 태도는 세상사람들로 하여금 사형이라는 판결에 이르게 한다. 


네이버캐스트의 해설에 의하면 카뮈는 어머니의 죽음과, 아랍인의 죽음, 뫼르소에게 선고된 죽음을 통해 인간의 실존에 대한 질문을 던지려 했다고 한다. 주인공의 거짓없는 자기 드러내기를 통해 카뮈는 인간의 삶에서 이방인이었던 인간 존재가 부조리를 자작하도록 이끌어 낸다고 적혀 있다.


아니, 이게 무슨 개소린가?


20세기의 지성이자 실존주의의 대표라고 불리우는 작가 카뮈의 대표작 <이방인>에게 이런 작가의 의도가 숨어 있었다니... 현실에서 소외되어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현대인의 초상이라는 책 표지 타이틀에는 아무래도 수긍이 가질 않는다. 

아니 못했다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나 혼자서는 전문가적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작가가 어떤 말을 하고 싶겠구나라는 지레짐작은 가야 할 것이 아닌가? 대체 얼마나 더 지식수준이 올라가야 읽으면서 작가가 의도한 상징성을 해석해 낼 수 있단 말인가?' 


'정말 짜증나는구만'


순수한 등반을 즐기는 게 아니라 산을 탄다면 적어도 이 산은 꼭 올라가야 대화에 낄 수 있다라는 의무감에서 읽은 듯 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한편으로는 내 자신의 저질스럽게 낮은 지력이 더 아쉽고.


<이방인>을 읽으면서 카뮈가 실존주의에 대해 그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는 몰라도, 적어도 문학의 즐거움은 커녕 화딱지를 일게 한 책의 고리타분함은 확실히 느꼈다. 리뷰라는 이름으로 이런 글을 쓴다는 자체가 쓰레기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이 글을 쓰려고 몇날 몇일을 투여한 시간이 아깝기도 하고...


여러모로 젠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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