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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 도둑 - 삶의 궤도를 넓혀준 글, 고독, 연결의 기록
유지혜 지음 / 놀 / 2023년 5월
평점 :
메일링 구독을 통해 알게 된 유지혜 작가님의 신간이 나왔다. 몇 년 전, 한 달 동안 메일링을 받아 본 후, 나는 그녀의 모든 책을 섭렵했다. <조용한 흥분>부터 시작해 <나와의 연락>, <쉬운 천국>,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까지. 자유롭고 유쾌하고 당당한 그녀의 팬이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번에 받아 본 유지혜 작가님의 신간 <우정 도둑>은 유지혜 작가님다운 글 같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새로운 느낌을 주기도 했다. 어찌 보면 단순히 여행기로 시작된 작가님의 글들이 이제는 여행기로만 불리기에는 아까운 느낌. 이번 신간은 읽는 나에게도 깊고 넓어지는 그녀의 사유와, 글로 그것을 풀어내는 능력이 사뭇 놀랍게 다가왔다.
여행과 우정, 사랑, 고독, … 모든 것을 아우르는 그녀의 글을 오랫동안 읽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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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일에는 부재를 끌어안을 상상력과 용기가 필요하다. (p.16)
서로가 없는 자리에서도 서로를 생각하지만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는, 각자의 고독을 이해하기에 연락이 뜸해도 불안해하지 않는 관계. 그 고독이 결국은 너를 위한 일이 되는. 함꼐 있을 때는 애인으로서의 부분이 전체가 되는. 아름다운 안심은 두 사람이 온전히 각자 존재할 때 태어났다. 연인이 있어도 여전히 나로 존재할 수 있게 하는 사랑. 때에 따라 친구였다가, 애인이었다가 하는 변형 가능한 유연한 사랑. (p. 20)
고독은 아름다운 억울함이다. 우리의 내면은 의미심장한 상태를 유지하고, 우리의 가장 좋은 점은 결코 발설되지 않는다. 서로 끝내 알지 못할 미지의 세계, 그 안에서 우리는 몰래 아름답다. 공개된 곳은 당신의 아름다움을 결코 다 담지 못한다. 우리가 서로의 모르는 시간을 상상할 때 우리는 자랑하고 싶은 애초의 마음을 깨끗이 잊어버린다. 네 숨은 걱정을 내가 끝내 몰라도, 책상 앞에 앉은 내 모습을 네가 영영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전시되는 삶과 이별하고 고독을 연마하는 그대, 자기 안으로 걸어가는 이기심이 사실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있다는 비밀. (p. 30-31)
어떤 것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것을 발견했던 우연의 순간까지 포함하고 있으며, 다시는 그것을 알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명시한다. (p. 80)
살 수 없는 그것을 눈으로 어루만지는 법을 배운다. 건강한 조급함과 함께, 기억하고 느껴서 나의 언어로 저장하려 애써본다. 얼마 만인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무언가를 소유하지 않고 감상만 하는 것이. 돈을 지불하며 감탄을 미루던 습관에서 벗어난 것이. 김틴도 배설도 직관적으로 이루어진다. 다음, 이라는 말은 허탈하고 무책임해진다. 내 손에 들어와서 다음과 그 다음이 보장되는 순간, 그 소중함을 잊곤 했다. 가지지 않아야만 진정 소유할 수 있는 역설을 자꾸 까먹는다. 살 수 없는 그 치마를 보러 쇼윈도 앞에 매일 갔을 때, 서점에 매일 가서 천 페이지가 넘는 소설을 다 읽었을 때, 나는 무엇을 얻었나. 막상 그걸 결국 소유했을 때, 글쎄, 나는 진정 행복을 느꼈나? (p. 122-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