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편엽서
안느 브레스트 지음, 이수진 옮김 / 사유와공감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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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느 브레스트의 장편소설 『우편엽서』는 홀로코스트를 배경으로 한 실화 소설이다. 어느 날 '나'에게 도착한 엽서에는 네 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 이름들은 모두 아우슈비츠에서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 바로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 이모, 외삼촌의 이름이었다. 누가, 왜 보낸 건지 의문을 가지던 '나'는 엄마와 함께 엽서의 비밀을 파헤치기 시작하며 소설이 시작된다.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소설은 꽤 긴 분량을 가지고 있지만, 한 번 읽기 시작하면 길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흡입력이 있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홀로코스트 학살을 배경으로 쓰인 다른 소설들도 여럿 있지만, 『우편엽서』가 차별화되는 지점은 실화 소설이라는 점이다. 작가 안느 브레스트는 이 책을 끝내며 말했다. 어머니의 조사와 어머니의 글쓰기가 없었다면 이 책을 쓰지 못했을 것이라고. 그만큼 『우편엽서』는 생생한 묘사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소설이었다.

히브리어 음조의 이 이름들은 마치 피부 아래에 있는 또 다른 피부 같아. 우리 이전에 존재했고, 우리를 초월하는, 우리보다 더 큰 역사의 피부. 나는 그것들이 어떻게 우리 안으로 '운명'이란 개념과 같이 혼란스러운 무언가를 들여보냈는지 알 것 같아. (395p)

위 인용은 『우편엽서』에서 기억에 남는 문장 중 하나다. '나'가 엽서에 대해 조사하며 선조들의 이야기를 알게 되면서 느끼는 감정들을 잘 함축시킨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이 문장 말고도 밑줄 친 문장들이 많았다. 미스테리한 엽서에 의문을 가진 채 시작하지만, 엽서에 적힌 이들의 이야기를 알게 되며 감동과 진정성이 담긴 이야기로 진행되는 『우편엽서』, 읽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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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 - 자연의 재발명 Philos Feminism 4
도나 J. 해러웨이 지음, 황희선.임옥희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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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테 북서퍼 1기가 되어 도나 J. 해러웨이의 <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를 읽어보게 되었다. 책을 받아보고 처음 든 생각은 역시나 책의 두께에 대한 놀라움(…)이었다. 이 책은 도나 J. 해러웨이가 1978년부터 1989년까지 쓴 논문 10편을 모은 책이다. 그리고 무려 21년 만에 복간되어 출간된 책이라고 한다. 기대감 반, 두려움 반을 가지고 천천히 책을 읽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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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는 원숭이와 유인원의 사회생활과 행동에 대한 지식, 그리고 그 의미를 생산하는 양식을 둘러싼 페미니즘의 투쟁에 대해 이야기한다.
2부는 영어권 세계에서의 자연과 경험에 대한 이야기들을 결정하는 권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3부는 사이보그의 체현, 젠더에 대한 다양한 페미니즘 개념의 미래, 페미니즘의 윤리적 인식론적 목적에 맞게 시각의 은유를 재전유하는 문제, 미래에서의 차이의 주요 체계를 생명정치의 지도로서의 면역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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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을 합쳐놓은 책이다 보니 읽기가 쉅지는 않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많은 생각과 지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싶다.
생물학을 위시로 근대 과학이 주는 결과에 안주하지 않는 객관성에 대한 허구와 사이보그라는 용어를 택하며 여성에 대한 은유적인 표현을 하는 점이 인상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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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계에 있는 특이한 존재들, 즉 영장류, 사이보그, 여성이 이 책을 채운다. 이들은 모두 진화와 기술, 생물학이라는 서구의 거대 서사에서 불안정한 위치에 놓여 있었다. 이 경계에 존재들은 말 그대로 괴물(monster)로서, 보여주다(demonstrate)라는 단어와 어근 이상을 공유한다. 괴물들은 의미하는(signify) 존재다. (<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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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에게
최현우 지음, 이윤희 그림 / 창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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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우 시인의 시에 이윤희 작가의 일러스트레이터의 그림을 입혀 출간된 그림책 <코코에게>.
반려동물을 키웠던, 혹은 키우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분명 마음 한편이 찡해질 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주인공 ‘나’가 반려견 코코에게 건네는 따뜻한 마음, 그리고 코코가 ‘나’에게 건네는 따뜻한 마음.
반려동물과 함께 산다는 것은 어쩌면 끊임없이 서로에게 사랑을 주고 받는 일이지 않을까?

마지막 페이지에는 최현우 시인의 시 전문이 나와 있다. 그림과 함께 읽는 시와, 텍스트만으로 읽는 시의 차이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림과 함께 읽는 시는 확실히 한층 더 입체적이게 읽히는 느낌이다.

그리고 시와 잘 어울렸던 그림. 현실적이고 춥고 외롭게 보이기도, 하지만 또 어떻게 보면 어딘가 따뜻한 구석이 있는 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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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쉬운 이름을 골라주었지
다른 이름을 가졌던 네가
같은 상처를 생각할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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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고 단순하고 반복하는 발음처럼
내 마음이 네게 어렵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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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궁금해
너는 나를 뭐라고 부르는지
네가 골라 준 나의 진짜 이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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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처럼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7
임솔아 지음 / 현대문학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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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솔아 작가님의 장편소설 <짐승처럼>은 작가님 특유의 간결하고 담백하고 어딘가 건조한 문체가 한층 돋보이는 소설이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을 누구라고 지칭해야 할까. 사람과 동물, 이라고 하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람과 동물 사이의 (고착화된) 관계성, 고착화된 관계성에서 벗어나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서 결국 보이는 고착화됨.

소설에서 말하고 있는 것들이 임솔아 작가님의 문체 덕분에 더 크게 와닿을 수 있었다.

더불어 현대문학 핀 시리즈의 특징 중 하나는, 한 손으로 집고 읽기 좋은 책의 판형이라고 생각한다. 소설책에서 보편적으로 많이 사용되고는 하는 판형보다 가로폭이 조금 좁은 핀 시리즈는 외출할 때 버스나 지하철에서 읽기 쉬운, 손이 자주 가는 모습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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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 도둑 - 삶의 궤도를 넓혀준 글, 고독, 연결의 기록
유지혜 지음 / 놀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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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일링 구독을 통해 알게 된 유지혜 작가님의 신간이 나왔다. 몇 년 전, 한 달 동안 메일링을 받아 본 후, 나는 그녀의 모든 책을 섭렵했다. <조용한 흥분>부터 시작해 <나와의 연락>, <쉬운 천국>,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까지. 자유롭고 유쾌하고 당당한 그녀의 팬이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번에 받아 본 유지혜 작가님의 신간 <우정 도둑>은 유지혜 작가님다운 글 같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새로운 느낌을 주기도 했다. 어찌 보면 단순히 여행기로 시작된 작가님의 글들이 이제는 여행기로만 불리기에는 아까운 느낌. 이번 신간은 읽는 나에게도 깊고 넓어지는 그녀의 사유와, 글로 그것을 풀어내는 능력이 사뭇 놀랍게 다가왔다.

여행과 우정, 사랑, 고독, … 모든 것을 아우르는 그녀의 글을 오랫동안 읽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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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일에는 부재를 끌어안을 상상력과 용기가 필요하다. (p.16)

서로가 없는 자리에서도 서로를 생각하지만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는, 각자의 고독을 이해하기에 연락이 뜸해도 불안해하지 않는 관계. 그 고독이 결국은 너를 위한 일이 되는. 함꼐 있을 때는 애인으로서의 부분이 전체가 되는. 아름다운 안심은 두 사람이 온전히 각자 존재할 때 태어났다. 연인이 있어도 여전히 나로 존재할 수 있게 하는 사랑. 때에 따라 친구였다가, 애인이었다가 하는 변형 가능한 유연한 사랑. (p. 20)

고독은 아름다운 억울함이다. 우리의 내면은 의미심장한 상태를 유지하고, 우리의 가장 좋은 점은 결코 발설되지 않는다. 서로 끝내 알지 못할 미지의 세계, 그 안에서 우리는 몰래 아름답다. 공개된 곳은 당신의 아름다움을 결코 다 담지 못한다. 우리가 서로의 모르는 시간을 상상할 때 우리는 자랑하고 싶은 애초의 마음을 깨끗이 잊어버린다. 네 숨은 걱정을 내가 끝내 몰라도, 책상 앞에 앉은 내 모습을 네가 영영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전시되는 삶과 이별하고 고독을 연마하는 그대, 자기 안으로 걸어가는 이기심이 사실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있다는 비밀. (p. 30-31)

어떤 것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것을 발견했던 우연의 순간까지 포함하고 있으며, 다시는 그것을 알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명시한다. (p. 80)

살 수 없는 그것을 눈으로 어루만지는 법을 배운다. 건강한 조급함과 함께, 기억하고 느껴서 나의 언어로 저장하려 애써본다. 얼마 만인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무언가를 소유하지 않고 감상만 하는 것이. 돈을 지불하며 감탄을 미루던 습관에서 벗어난 것이. 김틴도 배설도 직관적으로 이루어진다. 다음, 이라는 말은 허탈하고 무책임해진다. 내 손에 들어와서 다음과 그 다음이 보장되는 순간, 그 소중함을 잊곤 했다. 가지지 않아야만 진정 소유할 수 있는 역설을 자꾸 까먹는다. 살 수 없는 그 치마를 보러 쇼윈도 앞에 매일 갔을 때, 서점에 매일 가서 천 페이지가 넘는 소설을 다 읽었을 때, 나는 무엇을 얻었나. 막상 그걸 결국 소유했을 때, 글쎄, 나는 진정 행복을 느꼈나? (p. 12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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