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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 - 권기태 장편소설
권기태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2월
평점 :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평범한 직장인 이진우의
우주인 선발과정 체험을 기록한《중력》은
책장을 덮으며 나모 모르게 한숨이 새어나왔다.
주인공 이진우의 회상과 더불어
마치 티브이서바이벌프로그램처럼
지금 이 자리에 없으니 평생 그 사람은 모르게
너와 나만의 이야기인 것처럼 얘기하는
참가자들의 인터뷰들이 교차되며,
전혀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진행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참가자들의 심리묘사가 적나라하게 표현되고 있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의 근원지가
원래는 이곳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평생에 기회조차 다시 오지 않을
단 하나의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그들의 내면은
예의상으로도 정정당당의 이미지와 거리가 있다.
w.146:21 중력을 이십오 초 정지시키듯이 불행을 이십오 초 멈출 수 있다면...... 차가운 비바람과 사나운 파도, 지진이나 해일도 이십오 초 멈출 수 있다면...... 시기와 질투, 탐욕과 의심, 증오과 공포의 시간도 그렇게 멈추고 진정시킬 수만 있다면...... 그래서 연민과 믿음을 지닐 수 있다면...... 용기를 가지고 가녀린 것들을 북돋고 암울한 것들에 맞설 수 있다면......
무중력 테스트에서의 짧은 현실도피.
이십오 초 후 현실로 강제소환된 이진우의 우주인 선발시험 진행과정과 맞물린
회사에서의 위태로운 입지와 가족의 병환으로 오는 고뇌가 드러난다.
그의 우주인에 대한 열망은 이제 현실에서 벗어나고픈 꿈일지도 모른다.
성실하고 묵묵한 인상인 주인공 이진우는
상성이 맞지 않는 팀장과의 갈등으로
업무평가에서 불이익당하는 처지에 놓이지만
부당한 일이 있어도 섣불리 폭발할 수 없는 신중함이 있고
겸손하게 항의하며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 자이다.
그것은 최종선발후보 4인이 되어 러시아훈련소에 들어가서도 변함이 없다.
자신보다 한발 앞선 것 같은 후보들 사이에서
편법에 휘말리지 않고 자신의 길만 묵묵히 나간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여러 사람의 구술인터뷰의 연속이다.
일단 책을 펼쳐든 독자는 자연스럽게
주인공에게 동조하여 감정이입하기 마련이지만
그들의 인터뷰를 보면 그의 인품에 의구심이 들기 시작한다.
주인공의 멀리바라 본 배려와 절박해서 쥐어짠 용기가
타인의 눈에는 불편하거나 집요해 보일 수 있듯이
오히려 동료들의 평가에 독이 되는 상황이 이어진다.
과연 작가는 독자에게 주인공을 실체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가.
본인의 입으로 하는 이야기와 주변의 평판이 엇갈리면서
엉뚱하게 튄 불꽃에 화를 입는 불행이 겹치는 주인공의 모든 상황이
사실은 모든 게 그가 자초한 일은 아닌가 의심케되는 것이다.
특히 주인공이 관찰한 인간상과 김태우의 구술은 차이가 많이 나는데
김태우 인터뷰는 잘난 척 일색이거나
모두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을 해도
밖으로 꺼내지 않을 것 같은 검은 속내를 무방비하게 드러내
보는 이로 하여금 불편하게 한다.
어디까지 자신의 밑바닥을 들여다보며 자책해야 하는 걸까.
나도 노력을 하지만 다른 사람들 또한 노력을 한다.
나는 최선을 다했고 이 이상 잘할 자신은 없지만
다른 후보들은 나보다 못했으면 좋겠다.
타인의 불행은 나의 럭키.
모르고 있는 사람이 잘못이지
내가 아는 정보를 굳이 타인과 공유할 필요가 있을까.
상대방이 노력한 것도 알겠고 축하는 해주겠지만
표정관리까지는 무리다.
이것은 누구 한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다.
제한된 공간에서 하루 종일 얼굴을 부대끼며 가족같이 생활하던
4인 전원의 마음의 소리이다.
서로 경쟁하면서도 전우애와 배려가 싹트다가도
오해와 갈등이 빗어내는 서먹함이 찾아온다.
우주선 발사일이 다가오며 단 한명의 탑승자가 선발된다.
이때부터 상황은 외부의 영향을 받게 되는데
이쯤되면 더 이상 그들의 노력과 성과와는 무관한
복불복 운명에 놓이게 된다.
그때마다 이진우에게 여러 번의 선택의 순간이 찾아오고
그는 그다운 선택을 했다고 생각된다.
내가 가지 못할지언정 후대에 초석이 되겠다는
이들을 누가 이런 정신고문의 희생양으로 만들었는가.
자력으로는 우주를 향해 뭐 하나 띄울 수 없는 정부가
억지로 우주인을 배출하려는 국가기관인가,
기술은 보고 듣는 티끌 하나라도 유출하고 싶지 않지만
막대한 우주관광수익을 벌고 싶은 러시아인가.
어릴 적부터 우주인이 꿈이었고
청춘은 떠났지만 연륜은 도착하지 않았다는
이진우의 이야기는 소설이면서도
바늘구멍 같은 꿈을 쫓는 이들의 리얼한 심리묘사가 압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