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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 ㅣ 정진홍의 인문경영 시리즈 1
정진홍 지음 / 21세기북스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한국사회에서 잘 나가는 강사이자 저자인 정진홍. 그가 또한권의 경영경제 부문 베스트셀러를 만들어 냈다. 제목도 매력적이다.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 우리나라 평균적인 비즈니스맨들이 가장 콤플렉스로 느끼는 영역인 인문학을 경영학과 접목했다는 의미다. 정말 그가 안내하는 인문의 숲을 걷다보면 경영자로서의 통찰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도저히 책을 집어들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드는 제목짓기의 기술이다.
내용을 보았다. 역시 정진홍이다. 평소 엄청난 독서량과 폭넓은 분야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중국역사에서부터 창의성, 스토리텔링, 전쟁영웅, 남극탐험대, 로마제국 흥망사까지, 그야말로 한권의 책에 어떻게 담았을까 믿기지 않는 분량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야기를 푸는 솜씨도 수준급이다.
CEO 대상 강의에서도 그렇듯이 저자 정진홍은 어려운 개념을 그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하여 쉽게 전달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아울러 저자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주요 고객의 Needs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즉, 인문학을 전면에 내세워 시중에 넘쳐나는 자기계발 실용서들과 격을 달리 하면서도, 골치 아픈 원리와 논리 위주의 접근은 철저하게 배제함으로써, 고급스러운 자기계발도서로서의 자리매김을 훌륭하게 하고 있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난 후 무언가 허전하다. 저자는 서문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인문학을 통해 경영자에게 색다른 통찰을 주고 싶었겠지만, 나는 책읽는 내내 저자의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짜집기 기술에 휘둘리는 느낌이었다. 저자가 안내하는 '인문의 숲'은 인공적인 산책로를 따라 계획적으로 조림된 숲이었다. 산을 찾는 사람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조성된 등산로를 따라 걷는 상쾌한 느낌이 아닌, 지방자치단체에 의해 다분히 목적의식적으로 만들어진 산책로를 걷는 따분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게다가 그 산책로도 끝으로 갈수록 점점 어설프게 조성되어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6장 '유혹-소리없는 점령군'까지는 저자의 목소리가 군데군데 드러나면서 힘을 가지고 이야기가 전개된다. 하지만 7장 '매너' 부분부터 짜집기가 좀 엉성해 지더니, 8장의 '전쟁'에 이르러서는 미국 군인들인 맥아더와 패튼 장군이 인문학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급기야 9장 '모험'과 10장 '역사' 부분은 내용의 대부분이 단순한 인용과 뻔한 교훈으로 마무리되기에 이른다.
우려되는 것은 저자가 만든 산책로를 따라 반나절 걸었다는 것으로 인문학이라는 거대한 숲에서 3박4일 야영한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부천에 가면 아인스월드라는 곳이 있다. 세계 각지의 유명 건출물들을 축소한 모형물을 곳곳에 이쁘장하게 배치해 놓은 테마공원이다. 젊은 연인들이 날씨 좋은 날 사진찍기에는 좋을 지 모르나, 실제 건축물의 아우라에는 한참 못미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일부 성질 급하고 단순한 사람들은 부천 아인스월드에 있는 모형건물만 보고 실제 건축물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바라건대 이 책을 읽고 난 이들이 책 뒷편의 참고도서 목록을 유심히 살피어 그중의 한두권이라도 독파하면서 원저작물의 풍부한 의미를 바탕으로 진정한 통찰력을 얻었으면 한다. 이 책이 가지는 본연의 의미도 바로 여기에 있다. 단순한 인문학 다이제스트로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인문학이라는 통찰의 숲으로 비즈니스맨들을 이끄는 안내서의 역할을 할 때 이 책의 가치는 극대화 될 것이다.
이 책은 인문학적 소양과 담쌓고 살아온 비즈니스맨들을 위해 인문학이라는 쓴 약에 당의정을 입힌 것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살다 보면 쓴 약을 그대로 삼켜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때마다 누군가가 당의정을 발라 줄 순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