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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폭주 노년
김욱 지음 / 페이퍼로드 / 2025년 8월
평점 :
‘노년’이라는 단어에 붙어 있던 무겁고 어두운 이미지를 조금은 벗어 던질 수 있었다. 흔히 노년을 떠올리면 ‘쇠퇴’, ‘병약함’, ‘은퇴 후의 무료한 시간’ 같은 단어가 먼저 떠오르곤 한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고정관념을 산산이 깨트리며, 나이 듦을 오히려 폭주 라는 단어로 비유한다. 이 표현이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졌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우리 사회가 '노년'이라는 단어에 부여하는 이미지는 대개 정적이다. 평생의 짐을 내려놓고 자연을 벗 삼아 소일하거나, 다음 세대를 위해 조용히 뒤로 물러나 지혜로운 조언자 역할에 머무는 모습. 하지만 김욱 작가의 '유쾌한 폭주노년'은 이러한 안온하고 수동적인 노년의 풍경에 통쾌한 돌팔매질을 가한다. 노년이란 삶의 쇠퇴기가 아니라 오히려 축적된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가장 나답게 질주할 수 있는 '황금기'임을 역설한다. 이 책은 단순히 나이 듦을 긍정하라는 위로의 말을 넘어, 세상의 편견과 스스로 만든 한계에 맞서 마지막 순간까지 삶의 주도권을 놓지 말라는 뜨거운 외침이다.
제목인 '폭주노년'은 자칫하면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이기적인 늙은이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폭주는 사회적 규범을 무시하는 난폭운전이 아니다. 오히려 이는 나이라는 계기판에 얽매이지 않고, 내면에 잠재된 에너지와 욕망의 액셀을 힘껏 밟는 주체적인 삶의 태도를 의미한다. 그는 사랑, 분노, 슬픔, 기쁨과 같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을 나이 들었다는 이유로 억누르는 것을 경계한다. 80대에도 열렬히 사랑하고, 부당한 현실에 대해서는 청년처럼 분노하며, 아름다운 것 앞에서는 소년처럼 감탄할 줄 아는 그의 모습은 '점잖음'과 '체념'이라는 미덕 뒤에 숨겨진 노년의 생명력을 일깨운다. 이는 인생을 마라톤의 마지막 구간처럼 숨을 고르며 완주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100미터를 남겨둔 단거리 선수처럼 온 힘을 다해 질주하라는 충고다.
'유쾌한 폭주노년'이 공허한 외침으로 들리지 않는 이유는 저자의 처절했던 실제 경험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60대 중반, 평생을 바쳐 이룬 모든 것을 잃고 나락으로 떨어졌던 그는 좌절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일을 통해 스스로를 구원했다. 저자는 '일'이 단순히 생계유지를 위한 수단을 넘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핵심적인 활동임을 강조한다. 규칙적인 노동을 통해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유지하고, 사회와의 연결고리를 놓지 않으며, 무엇보다 자신의 쓸모를 스스로 증명해내는 과정. 그의 이야기는 노년의 경제적 어려움이라는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함과 동시에 나이와 상관없이 새로운 것을 배우고 도전할 수 있다는 희망의 증거가 된다.
김욱 작가가 보여준 삶은 나이 듦이 상실의 과정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고 삶의 본질에 더 가까워지는 성숙의 과정임을 보여준다. '노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사라지고 어떻게 하면 나의 인생을 마지막까지 뜨겁고 유쾌하게 폭주할 수 있을지에 대한 즐거운 고민과 설렘이 그 자리를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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