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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는 처음이라 처음이라 시리즈 3
이용석 지음 / 빨간소금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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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뻔하지도 않고, 너무 어렵지도 않지만, 깊이가 있는 평화주의 개론서로 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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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 - 장애인의 성과 사랑 이야기
천자오루 지음, 강영희 옮김 / 사계절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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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센터에서 일하는 마니(Mani)는 젊은 장애인 부부의 성생활을 도와준다. 두 남녀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부부의 육체관계를 맺을 수가 없다. 그러나 더 난처한 건 남편의 성적인 욕구가 깊어지면서 시작된다. 남편은 스스로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성기를 아내의 몸속으로 넣을 수가 없다. 절정으로 치닫는 순간 젊은 남편은 마니에게 부탁을 한다. 마니는 그런 상황이 매우 당황스럽다.

프랑스의 단편영화 <Prends-Moi>의 줄거리이다. 사랑스럽게 서로를 바라보는 젊은 부부. 그러나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 하물며 섹스야. 그렇지만 그들의 성적 욕구는 비장애인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스스로 아내의 몸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남편은 어떻게든 아내에게 다가가고 싶어한다.

보통 이런 경우 일반적으로는 장애인에게 성적 욕구는 없을 거라고 전제되거나, 혹은 부려서는 안 될 욕심처럼 치부된다. 몸이 불편하다고 하여 식욕, 수면욕 등이 없는 것이 아니듯 성욕 또한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들은 장애인들의 성욕을 당연하게도 사회적으로 거세시켜 왔다.

대만의 르포작가인 천자오루는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통해서 장애인의 성을 주제로 폭넓은 고민의 스펙트럼 속으로 독자들을 이끈다. 이 책은 다양한 장애인들의 인터뷰를 모아 장애인의 성을 주제로 여러 고민들을 펼쳐 보이는 에세이 겸 르포이다. 사회적으로 장애인들의 성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으며 장애의 정도와 형태에 따라 성생활에서 어떤 문제점들이 발견되는지 비장애인들의 시선이 장애인들에게 어떤 차별적 언어를 담고 있는지 등 저자는 장애인을 향한 왜곡된 시선을 보여준다.

누구도 장애인의 욕망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들릴 리도, 보일 리도, 의식될 리도 없고 그렇다면 존재할 리 없는 것으로 인식된다. 그들의 욕망은 꼼꼼하게 봉인된 채 외부 세계가 그 해제를 사력을 다해 막아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하지만 신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장애인들의 성적 욕망은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통념이 장애인들의 욕망을 고통으로 만든다. 그러나 저자가 말했듯이 몸이 거짓을 표현할 리는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장애인들의 성욕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만 장애인의 성을 둘러싼 제반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은 인간 존재의 궁극을 찾아가는 여정일 것이다.

장애의 정도와 형태에 따라 고민의 결은 매우 다양하게 드러난다. 지적장애인은 겉으로는 너무나 멀쩡해 보이기 때문에 자주 성추행이나 성폭력에 노출되곤 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이 당한 일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잘못된 일인지를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한다. 때로는 본인이 원해서 이루어진 성행위일 수도 있으나 주변인들은 본인의 선택이라고 믿지 않기 때문에 당했다고 보는 시선이 많다. 이 역시, 장애인에게 성적 욕망이란 비장애인에게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지적장애인의 성행위를 일괄적으로 성폭력으로 취급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지적장애인의 성적 필요를 무시한 것이자 약자를 보호한다는 미명하에 약자가 누려야 할 쾌락의 복지를 박탈하는 것이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인 <오아시스>에서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공주는 종두를 알게 되고 어느 날 둘은 섹스를 하게 되는데 이를 본 공주의 오빠는 성폭행이라고 생각한다. 공주는 말이 어눌해서 아무리 설명을 하려 해도 전달이 되지 않고, 어느 누구도 공주에게 의견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이는 우리 사회가 장애인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장애인들은 사랑하는 상대를 만나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기회 자체가 매우 적다. 가까스로 그 기회를 손에 넣었다 할지라도 유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장애인커플, 장애인-비장애인 커플, 장애인-성소수자커플 등 장애의 형태는 매우 다양하고 그 형태만큼 구체적인 고민의 내용도 제각각이다. 샤오치-이팡 커플은 장애인-비장애인 커플이다. 너무나 찰떡궁합인 이들에게도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많은 문제점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비장애인들도 육아는 혼자 감당하기 힘든 일인데 장애가 있는 이들 부부에게는 더없이 버겁기만 하다. 장애가 있기 때문에 아이를 돌볼 때 더 많은 위험요소가 따르기 마련이고 자연스레 다른 한쪽이 짐을 더 지게 될 수밖에 없다. 장애는 더 많은 현실의 짐을 지우게 한다.

일본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 비장애인인 남주인공은 자신의 등에 업힌 걷지 못하는 여자친구(조제)가 점점 무겁게 느껴진다. 사랑이란 본디 이별을 내재하고 있는 것이지만 장애 자체가 이별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리판도 처음엔 사랑에 어떤 조건도 있을 수 없다고 버텼으나 결국 그의 장애가 상대로 하여금 짐이 되었음을 조금은 인정하기에 이른다. 샤오위도 자상한 비장애인 남자친구가 있었으나 떠나버렸다. 샤오위는 남자친구가 양다리를 걸쳤음에도 남자친구를 비난하는 이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누군가 “에이, 그것도 무리는 아니지. 선배가 널 돌본 게 벌써 얼마야.”라는 이야기를 듣고 깨달았다. 장애는 관계를 불평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샤오위는 그제야 돌연 깨달았다. 그러니까 남들 눈에 그들은 대등한 관계가 아니었다. 밖에서는 그가 떠나지도 포기하지도 않는 것만 보였을 뿐 샤오위의 진심과 진의 따위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하나같이 그녀가 그럴 필요로 할 뿐 그에게는 그녀가 필요치 않다고 여겼다.

남녀의 사랑과 이별 그 안에는 무수히 많은 서사가 있다. 거기에 장애 서사가 들어가면 해석은 더 어렵고 복잡해진다. 상대가 장애인이기에 쉽사리 헤어지지 못하고, 장애 때문에 사랑이 실패했는지 아닌지 판단을 내리기도 쉽지 않다.

이승우의 <식물들의 사생활>에서 장애인이 된 형을 데리고 성 매매업소를 찾아다니는 엄마를 발견한 주인공. 형은 원래 자신보다 월등한 자식이었기에 엄마한테 형의 장애는 절망 자체이다. 그런 형을 데리고 엄마는 성 매매업소를 찾아다녔다. 우리는 모두 어느 날 갑자기 장애를 가질 수 있다. 장애는 삶의 조건이 뿌리부터 흔들리는 경험이다. 그 힘든 삶을 어떻게 짊어지고 가야 하는 걸까.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생활을 하기 어려운 마당에 성적 욕망을 드러내는 게 과연 합당한 일인가. 그렇다고 인간이라는 존재에 내재하는 욕망을 무시하고 외면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이 또한 개인이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인가.

저자는 무엇 하나 뚜렷한 방법을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의 욕망은 무시할 수 없으며 외면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기에 사회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에 대한 대안으로 일본의 화이트핸즈, 대만의 손천사 등 다양한 조직들이 만들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 <오아시스>가 나온 게 2002년이다. 그로부터 20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지만 우리 사회는 장애에 어떤 담론을 펼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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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거짓말을 한다 - 구글 트렌트로 밝혀낸 충격적인 인간의 욕망
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 지음, 이영래 옮김 / 더퀘스트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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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은밀한 고백이 하나 있다. 남편이 아닌 다른 이와의 섹스가 어떨까 궁금하다. 하지만 이 고백을 누구에게 할 수 있을까. 누구에게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아마도 누구에게도 밝히지 못할 것이다. 아니, 궁금하다 정도는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구체적인 방법론을 현실에서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몹시 궁금해진 어느 때 스마트폰이 곁에 있다면 누가 보지 못하게 구글 검색창을 두드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누구에게도 구글 검색을 해 봤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런 속타는 고백 하나쯤 누구에게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생각건대 누군가에 대한 분노가 지글지글 타오르는 새벽녘 남모르게 살인방법을 검색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말하기 꺼려지는 정보를 얻기 위해 인터넷을 손쉽게 활용한다.


‘당신은 바람을 피웁니까?’ 혹은 ‘당신은 누군가를 죽이고 싶습니까?’와 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솔직하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설문조사나 인터뷰의 방식을 통해 질문을 받는다면 거짓을 말하는 이들도 꽤 많을 것이다. 나도 어떤 질문 앞에서는 ‘네’라고 할 것인지 ‘아니오’라고 할 것인지 망설일 때가 있으니 말이다.


사람들의 생각을 알아내는 데에 설문조사나 인터뷰의 방식보다 인터넷 검색을 수집하는 것이 더 정확할 수 있는 이유이다. 소위 말하는 ‘빅데이터’를 분석하면 좀더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남자들이 성매매를 하고, 리벤지포르노를 보러 소라넷에 접속할까. 적어도 내 주변에는 그런 남자들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배우, 작가, 저명한 교수 등 절대 그런 짓을 할 리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소라넷에 접속한 이들의 정보를 분석해 보면 사회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람들이 접속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조회수 또한 어마어마하다. 한국사회의 여자들이 느낀 공포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빅데이터를 연구한 <모두 거짓말은 한다>의 저자 세스는 이 책에서 ‘사회적 바람직성 편향’ 때문에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한 적이 있냐든지, 누군가를 죽이는 상상을 했냐와 같은 부정적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러니 성매매를 한 적이 있냐, 리벤지포르노를 본 적이 있냐는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할 남자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세스는 이처럼 민감한 주제일수록 사람들은 거짓을 말할 가능성이 매우 높음을 지적하고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들키지 않을 안전지대인 인터넷 상에서 진실을 말할 가능성이 높다고 얘기한다. 


빅데이터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거짓말을 한다는 걸 알았다. 그렇다면 빅데이터를 통해 얻게 된 진실은 과연 정의로울까. 세스는 빅데이터의 힘을 긍정하지만 때로는 윤리의 문제를 야기시키기 때문에 무서울 때가 있다고 고백한다. 가령 고용주가 입사지원자를 살필 때 소셜미디어를 샅샅이 뒤질 수 있다. 또한 기업은 빅데이터를 통해 고객의 주머니를 어떻게 털어야 하는지를 알아낼 수도 있다. 더 나아가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빅데이터를 이용할 수도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여자친구를 죽이는 방법’이 2014년 한 해 동안 6000번 검색됐다고 한다.


세스는 철학을 공부한 사람답게 빅데이터를 다루는 태도에 대해서도 진지하다. 빅데이터로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있으니 말이다. 또한 빅데이터가 마치 세상의 모든 진실을 알아낼 수 있는 만능 도구인 것 마냥 다루어서도 안 된다고 한다. 학생들이 객관식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측정할 수 있지만 비판적 사고나 호기심, 자아 계발 등은 쉽게 측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이 책에는 빅데이터가 지닌 힘에 대해 풍부한 예시를 들어가며 설명하고 있다. 사람들은 섹스나 증오, 편견, 페이스북 친구 등에 대해 얼마나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상식이 진실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는지를 상술한다.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다.


최근에 본 영화 ‘버닝’에서 주인공들은 세상이 수수께끼 같다며 서로를 불신한다. 그들이 빅데이터를 알았다면 수수께끼 같은 세상을 이해하는 데 작은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삶의 구체성까지 빅데이터가 해결해 줄 수 있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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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맛 7작 - 제1.2회 테이스티 문학상 작품집
박지혜 외 지음 / 황금가지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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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라읽는 재미, 일곱 개의 작은 음식 이야기

77

 

 

 

사람들에게 음식이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어떤 이에겐 위로가 되고 어떤 이에겐 사랑을 확인하는 일이 될 것이며 어떤 이에겐 감동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어떤 이에겐 살아가는 에너지를 얻는 단순한 에너지 섭취작업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나에게 음식을 먹는 행위는 맥락에 따라 의미가 다르긴 하지만 같은 시간과 장소를 공유하는 정서적 유대감을 느끼는 거룩한 의식의 하나이다. 물리적으로 에너지만 채워주는 음식의 순수한 기능 이외에 나에게 음식은 대체로 따뜻함을 전달하는 매개체이다.

그런데 여기 음식을 매개로 다양한 감성을 자극하는 이야기가 있다. 배신, 복수, 감동 등의 감정 선들이 가족, 연인, 신하, 스승, 동료, 귀신 등의 관계에서 추리, 스릴러, 역사, 판타지, SF 등의 다양의 장르를 통해 음식을 매개로 우리들에게 다가온다. 황금가지에서 주관하는 음식 테마 장르소설 공모전인 테이스티 문학상에서 수상한 작품들을 한데 묶은 ‘77이 그것이다. ‘으로만 평가되어지는 음식이야기에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가 존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선하고 매력적이었다. 온 나라가 먹방맛집’, ‘레시피에 음식을 소비하고 있을 때 상상의 영역을 넓혀 주는 이야기가 있음에 역시 소설의 힘이란 이런 거구나 싶다.

 

내가 아프거나 힘들 때 일반적으로 엄마를 떠올리며 엄마가 만들어 준 따끈한 밥 한 끼가 한국인의 정형화된 그리움의 한계라면 엄마 된 자의 도리를 저버린 엄마 대신, 동생으로부터 위로를 받는다는 설정으로 그 한계를 살짝 뛰어넘어 한국인의 정형을 거스르는 이야기 해피 버스데이, 3D 미역국!’은 이 소설집에서 유일하게 미래의 시점에서 쓴 SF(라고 하기엔 미흡하지만 그래도)이다. 작가는 3D 프린터로 쿠키를 만드는 영상을 보고 충격을 받아 이 작품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 AI로 인해 다가올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예측 불가능한 데다가 상상 밖의 일들이 펼쳐지는 시점에 3D 프린터로 음식을 전송받는다는 설정은 선뜻 납득하기 힘들지만 그럴 수도 있지 라며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함에도 여전히 아날로그적인 감수성은 인간을 끝까지 인간이게 만드는 힘이 작동한다. 집에서 3D 프린터로 간단히 음식을 주문해 받을 수도 있지만 아직도 직접 만든 요리가 그리울 때가 있는 것이다. 그 옛날 엄마의 미역국대신 동생의 미역국이 전해 주는 따뜻한 추억은 동생의 죽음이라는 서늘한 반전으로 적당히 신파적이지만 엄마의 집밥이라는 정형을 깨뜨려 주는 신선함이 좋았다.

 

이와 비슷한 엄마 감성에서 여성이라는 주체를 세우고자 했던 마지막 커리우먼은 판타지라는 장르를 이용해 여성(자식)이 여성(엄마)을 바라보게 만든다. 그 매개자 역할을 하는 이 역시 여자이다. 음식이란 전통적으로 여자들의 주 업무였고, 그러다 보니 가족 이야기에서는 자연스레 엄마음식이 한데 엮이기 쉽다. 주인공은 엄마가 떠난 이유를 이해할 수 없고 엄마는 엄마 나름대로 자기인생을 찾아 떠나갔지만 주인공이 엄마를 추억하는 방식은 엄마가 큰 냄비 가득 끓이던 카레의 지겨움이다. 카레의 원형은 커리이니 주인공이 커리가게를 고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건 엄마의 삶을 독립시켜 떠나보내는 의식일 것이다.

 

이 두 이야기를 보면서 한국인은 언제쯤 엄마의 정형을 극복할 수 있을까, 왜 가족서사에 아빠는 늘 빠져 있으며 특히 음식의 서사에는 아빠는 없고 엄마만 있는 것일까 조금은 답답한 마음이 들기도 했으나 조금씩 한계를 벗기려는 시도들은 좋았다.

 

처음 음식 테마 장르소설이라는 문구를 보았을 때는 무슨 특별한 이야기가 있을까 싶었지만 막상 소설집을 읽고 나니 음식이 그저 만들고 먹는 행위만이 중요한 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왕에게 용의 간요리를 바친다는 이야기 비님이여 오시어나 일제시대 독립운동 활동근거지로 쓰인 냉면집의 이야기 류엽면옥’, 청부살인자의 눈속임직업 이야기 하던 가닥에서는 음식그 자체보다 어떤 목적을 이루거나 감추려는 목적으로 음식이 이용되는 이야기이다. ‘비님이여 오시어에서는 가뭄을 퇴치하기 위해 용의 간을 찾아보라는 어명(심지어 세종의 이야기이다, 물론 상상이겠지만)에 제주도에 산다는 청용을 잡기 위해 먼 길을 떠나는 숙수 이담과 동물과 말을 할 수 있다는 모량의 이야기이다. 모량의 역할이 부각되지 않은 점이 많이 아쉽지만(실제로 모량 없이 이담 혼자서 갔어도 별 무리가 없어 보인다) 조선시대의 기우제를 소재로 청용이라는 가상의 동물로 음식을 만든다는 이야기는 꽤 흥미롭다. 다만 마지막 요리하는 장면에서 갖가지 양념이 등장하는 장면은 아무리 소설이라 해도 고증이 부족해 보인다. 판타지라는 점을 감안하고 본다면 너무 현실적이고 현대적이어서 조금 실망스럽다 할까. 그에 비해 류엽면옥은 일제시대 냉면을 배달하는 장면이나 주인공이 범인을 추리해 나가는 과정은 꽤나 그럴 듯해 보여 현장감이 느껴져 좋았다. 추리과정이 단순하고 허술한 데다가 존경하는 선배가 범인임이 밝혀졌을 때 너무나 쉽게 자백하는 장면에서는 저래서야 어디 독립운동을 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의구심이 들었지만 말이다. ‘하던 가닥은 일종의 스릴러인데 주인공 서문을 거두어준 은인이자 스승인 만장이 서문을 죽일 것인지 살릴 것인지 서문이 만장을 처리할 수 있을 것인지 마지막까지 긴장감이 느껴졌다. 만장의 본 직업이 청부살인임이 드러나고 중간 중간 서문을 위협하는 행동들이나 속을 알 수 없는 대사들이 긴장을 높인다. 작은 국수집에서 버젓이 살인이 일어나고도 아무도 눈치를 채지 못한다는 이야기는 누구나 다 알지만 모른 척하는 안 비밀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마지막으로 음식자체로 상대를 감동시키는 인류애적인 추리물 스파게티의 이름으로, 라멘군대 귀신과 라면 제삿밥은 코믹하면서도 짠하고 따뜻하면서도 어딘지 서글픈 이야기이다. ‘스파게티의 이름으로, 라멘은 현재 젊은이들의 구질구질한 삶의 단면을 보여준다. 직업(경제력)과 생활(여가, 취미, 연애)의 균형을 잃고 하나를 취하면 하나를 포기해야만 하는 구조, 그 하나를 얻어도 채워지지 않는 삶의 다면성 등 여러 가지가 지금 우리사회를 대변한다. 그야말로 웃픈 현재를 살아가는 청춘남녀의 이야기가 스파게티로 상대를 설득시킨다는 따뜻한 이야기. 신파적인 요소가 있지만 과하지 않고 유머로 자연스레 넘어간다. 이에 비해 군대 귀신과 라면 제삿밥에서는 여전히 현실인 군대이야기를 아직도 한국전쟁의 귀신으로 살아가는 조상을 소환한다. 그 귀신은 어찌된 일인지 라면만 보면 환장을 하는 통에 주인공은 본의 아니게 군대에서 라면으로 제삿밥을 만들게 되었다. 라면의 역사로 귀신의 나이를 짐작해 본다는 건 재미있는 설정이다. 그러고 보니 라면이 나보다 나이가 많다. 라면이 특별식이었던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너무나 흔하고 종류도 다양해져 그리 특별하지는 않지만 라면보다 나이가 많은 귀신에게는 특별식이었나 보다. 어쨌든 귀신은 자신의 시신을 찾아준 대가로 귀신의 손녀로 추정되는 여인을 주인공에게 선사하였으니 주인공은 앞으로도 라면 제삿밥을 만들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상의 일곱 편의 짧은 이야기가 ‘77이라는 소설집에 들어가 있다. 각기 다른 시대적 배경과 다양한 장르, 진중하고 무거운 이야기에서부터 가볍고 코믹한 이야기까지 마치 골라먹는 재미가 있는 어느 아이스크림 집처럼 골라읽는 재미가 느껴지는 책이다. 겨울밤 따뜻한 방에 이불 뒤집어쓰고 읽으면 더 재미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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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나의 춤을 추고 있잖아 - 어느 TV 중독자가 보내는 서툰 위로
이승한 지음, 들개이빨 그림 / 한겨레출판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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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도 찾아 있는 이승한님의 글. TV 칼럼니스트로서 이처럼 냉정함과 따뜻함을 동시에 지닌 글이라니. 생각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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