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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맛 7작 - 제1.2회 테이스티 문학상 작품집
박지혜 외 지음 / 황금가지 / 2017년 11월
평점 :
골라읽는 재미, 일곱 개의 작은 음식 이야기
「7맛 7작」
사람들에게 음식이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어떤 이에겐 위로가 되고 어떤 이에겐 사랑을 확인하는 일이 될 것이며 어떤 이에겐 감동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어떤 이에겐 살아가는 에너지를 얻는 단순한 에너지 섭취작업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나에게 음식을 먹는 행위는 맥락에 따라 의미가 다르긴 하지만 같은 시간과 장소를 공유하는 정서적 유대감을 느끼는 거룩한 의식의 하나이다. 물리적으로 에너지만 채워주는 음식의 순수한 기능 이외에 나에게 음식은 대체로 따뜻함을 전달하는 매개체이다.
그런데 여기 음식을 매개로 다양한 감성을 자극하는 이야기가 있다. 배신, 복수, 감동 등의 감정 선들이 가족, 연인, 신하, 스승, 동료, 귀신 등의 관계에서 추리, 스릴러, 역사, 판타지, SF 등의 다양의 장르를 통해 음식을 매개로 우리들에게 다가온다. 황금가지에서 주관하는 음식 테마 장르소설 공모전인 테이스티 문학상에서 수상한 작품들을 한데 묶은 ‘7맛 7작’이 그것이다. ‘맛’으로만 평가되어지는 음식이야기에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가 존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선하고 매력적이었다. 온 나라가 ‘먹방’과 ‘맛집’, ‘레시피’에 음식을 소비하고 있을 때 상상의 영역을 넓혀 주는 이야기가 있음에 역시 소설의 힘이란 이런 거구나 싶다.
내가 아프거나 힘들 때 일반적으로 ‘엄마’를 떠올리며 엄마가 만들어 준 따끈한 ‘밥 한 끼’가 한국인의 정형화된 그리움의 한계라면 ‘엄마 된 자의 도리’를 저버린 엄마 대신, 동생으로부터 위로를 받는다는 설정으로 그 한계를 살짝 뛰어넘어 한국인의 정형을 거스르는 이야기 ‘해피 버스데이, 3D 미역국!’은 이 소설집에서 유일하게 미래의 시점에서 쓴 SF(라고 하기엔 미흡하지만 그래도)이다. 작가는 3D 프린터로 쿠키를 만드는 영상을 보고 충격을 받아 이 작품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 AI로 인해 다가올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예측 불가능한 데다가 상상 밖의 일들이 펼쳐지는 시점에 3D 프린터로 음식을 전송받는다는 설정은 선뜻 납득하기 힘들지만 그럴 수도 있지 라며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함에도 여전히 아날로그적인 감수성은 인간을 끝까지 인간이게 만드는 힘이 작동한다. 집에서 3D 프린터로 간단히 음식을 주문해 받을 수도 있지만 아직도 직접 만든 요리가 그리울 때가 있는 것이다. 그 옛날 ‘엄마의 미역국’ 대신 ‘동생의 미역국’이 전해 주는 따뜻한 추억은 ‘동생의 죽음’이라는 서늘한 반전으로 적당히 신파적이지만 ‘엄마의 집밥’이라는 정형을 깨뜨려 주는 신선함이 좋았다.
이와 비슷한 ‘엄마 감성’에서 ‘여성’이라는 주체를 세우고자 했던 마지막 ‘커리우먼’은 판타지라는 장르를 이용해 여성(자식)이 여성(엄마)을 바라보게 만든다. 그 매개자 역할을 하는 이 역시 ‘여자’이다. 음식이란 전통적으로 여자들의 주 업무였고, 그러다 보니 가족 이야기에서는 자연스레 ‘엄마’와 ‘음식’이 한데 엮이기 쉽다. 주인공은 엄마가 떠난 이유를 이해할 수 없고 엄마는 엄마 나름대로 자기인생을 찾아 떠나갔지만 주인공이 엄마를 추억하는 방식은 엄마가 큰 냄비 가득 끓이던 ‘카레의 지겨움’이다. 카레의 원형은 커리이니 주인공이 커리가게를 고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건 엄마의 삶을 독립시켜 떠나보내는 의식일 것이다.
이 두 이야기를 보면서 한국인은 언제쯤 ‘엄마’의 정형을 극복할 수 있을까, 왜 가족서사에 ‘아빠’는 늘 빠져 있으며 특히 ‘음식’의 서사에는 ‘아빠’는 없고 ‘엄마’만 있는 것일까 조금은 답답한 마음이 들기도 했으나 조금씩 한계를 벗기려는 시도들은 좋았다.
처음 ‘음식 테마 장르소설’이라는 문구를 보았을 때는 무슨 특별한 이야기가 있을까 싶었지만 막상 소설집을 읽고 나니 ‘음식’이 그저 만들고 먹는 행위만이 중요한 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왕에게 용의 간요리를 바친다는 이야기 ‘비님이여 오시어’나 일제시대 독립운동 활동근거지로 쓰인 냉면집의 이야기 ‘류엽면옥’, 청부살인자의 눈속임직업 이야기 ‘하던 가닥’에서는 ‘음식’ 그 자체보다 어떤 목적을 이루거나 감추려는 목적으로 ‘음식’이 이용되는 이야기이다. ‘비님이여 오시어’에서는 가뭄을 퇴치하기 위해 ‘용의 간’을 찾아보라는 어명(심지어 세종의 이야기이다, 물론 상상이겠지만)에 제주도에 산다는 ‘청용’을 잡기 위해 먼 길을 떠나는 숙수 이담과 동물과 말을 할 수 있다는 모량의 이야기이다. 모량의 역할이 부각되지 않은 점이 많이 아쉽지만(실제로 모량 없이 이담 혼자서 갔어도 별 무리가 없어 보인다) 조선시대의 기우제를 소재로 청용이라는 가상의 동물로 음식을 만든다는 이야기는 꽤 흥미롭다. 다만 마지막 요리하는 장면에서 갖가지 양념이 등장하는 장면은 아무리 소설이라 해도 고증이 부족해 보인다. 판타지라는 점을 감안하고 본다면 너무 현실적이고 현대적이어서 조금 실망스럽다 할까. 그에 비해 ‘류엽면옥’은 일제시대 냉면을 배달하는 장면이나 주인공이 범인을 추리해 나가는 과정은 꽤나 그럴 듯해 보여 현장감이 느껴져 좋았다. 추리과정이 단순하고 허술한 데다가 존경하는 선배가 범인임이 밝혀졌을 때 너무나 쉽게 자백하는 장면에서는 저래서야 어디 독립운동을 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의구심이 들었지만 말이다. ‘하던 가닥’은 일종의 스릴러인데 주인공 서문을 거두어준 은인이자 스승인 만장이 서문을 죽일 것인지 살릴 것인지 서문이 만장을 처리할 수 있을 것인지 마지막까지 긴장감이 느껴졌다. 만장의 본 직업이 청부살인임이 드러나고 중간 중간 서문을 위협하는 행동들이나 속을 알 수 없는 대사들이 긴장을 높인다. 작은 국수집에서 버젓이 살인이 일어나고도 아무도 눈치를 채지 못한다는 이야기는 누구나 다 알지만 모른 척하는 ‘안 비밀’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마지막으로 ‘음식’ 자체로 상대를 감동시키는 인류애적인 추리물 ‘스파게티의 이름으로, 라멘’과 ‘군대 귀신과 라면 제삿밥’은 코믹하면서도 짠하고 따뜻하면서도 어딘지 서글픈 이야기이다. ‘스파게티의 이름으로, 라멘’은 현재 젊은이들의 구질구질한 삶의 단면을 보여준다. 직업(경제력)과 생활(여가, 취미, 연애)의 균형을 잃고 하나를 취하면 하나를 포기해야만 하는 구조, 그 하나를 얻어도 채워지지 않는 삶의 다면성 등 여러 가지가 지금 우리사회를 대변한다. 그야말로 웃픈 현재를 살아가는 청춘남녀의 이야기가 ‘스파게티’로 상대를 설득시킨다는 따뜻한 이야기. 신파적인 요소가 있지만 과하지 않고 유머로 자연스레 넘어간다. 이에 비해 ‘군대 귀신과 라면 제삿밥’에서는 여전히 현실인 군대이야기를 아직도 한국전쟁의 귀신으로 살아가는 조상을 소환한다. 그 귀신은 어찌된 일인지 라면만 보면 환장을 하는 통에 주인공은 본의 아니게 군대에서 라면으로 제삿밥을 만들게 되었다. 라면의 역사로 귀신의 나이를 짐작해 본다는 건 재미있는 설정이다. 그러고 보니 라면이 나보다 나이가 많다. 라면이 특별식이었던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너무나 흔하고 종류도 다양해져 그리 특별하지는 않지만 라면보다 나이가 많은 귀신에게는 특별식이었나 보다. 어쨌든 귀신은 자신의 시신을 찾아준 대가로 귀신의 손녀로 추정되는 여인을 주인공에게 선사하였으니 주인공은 앞으로도 라면 제삿밥을 만들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상의 일곱 편의 짧은 이야기가 ‘7맛 7작’이라는 소설집에 들어가 있다. 각기 다른 시대적 배경과 다양한 장르, 진중하고 무거운 이야기에서부터 가볍고 코믹한 이야기까지 마치 골라먹는 재미가 있는 어느 아이스크림 집처럼 골라읽는 재미가 느껴지는 책이다. 겨울밤 따뜻한 방에 이불 뒤집어쓰고 읽으면 더 재미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