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 - 장애인의 성과 사랑 이야기
천자오루 지음, 강영희 옮김 / 사계절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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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센터에서 일하는 마니(Mani)는 젊은 장애인 부부의 성생활을 도와준다. 두 남녀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부부의 육체관계를 맺을 수가 없다. 그러나 더 난처한 건 남편의 성적인 욕구가 깊어지면서 시작된다. 남편은 스스로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성기를 아내의 몸속으로 넣을 수가 없다. 절정으로 치닫는 순간 젊은 남편은 마니에게 부탁을 한다. 마니는 그런 상황이 매우 당황스럽다.

프랑스의 단편영화 <Prends-Moi>의 줄거리이다. 사랑스럽게 서로를 바라보는 젊은 부부. 그러나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 하물며 섹스야. 그렇지만 그들의 성적 욕구는 비장애인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스스로 아내의 몸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남편은 어떻게든 아내에게 다가가고 싶어한다.

보통 이런 경우 일반적으로는 장애인에게 성적 욕구는 없을 거라고 전제되거나, 혹은 부려서는 안 될 욕심처럼 치부된다. 몸이 불편하다고 하여 식욕, 수면욕 등이 없는 것이 아니듯 성욕 또한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들은 장애인들의 성욕을 당연하게도 사회적으로 거세시켜 왔다.

대만의 르포작가인 천자오루는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통해서 장애인의 성을 주제로 폭넓은 고민의 스펙트럼 속으로 독자들을 이끈다. 이 책은 다양한 장애인들의 인터뷰를 모아 장애인의 성을 주제로 여러 고민들을 펼쳐 보이는 에세이 겸 르포이다. 사회적으로 장애인들의 성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으며 장애의 정도와 형태에 따라 성생활에서 어떤 문제점들이 발견되는지 비장애인들의 시선이 장애인들에게 어떤 차별적 언어를 담고 있는지 등 저자는 장애인을 향한 왜곡된 시선을 보여준다.

누구도 장애인의 욕망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들릴 리도, 보일 리도, 의식될 리도 없고 그렇다면 존재할 리 없는 것으로 인식된다. 그들의 욕망은 꼼꼼하게 봉인된 채 외부 세계가 그 해제를 사력을 다해 막아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하지만 신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장애인들의 성적 욕망은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통념이 장애인들의 욕망을 고통으로 만든다. 그러나 저자가 말했듯이 몸이 거짓을 표현할 리는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장애인들의 성욕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만 장애인의 성을 둘러싼 제반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은 인간 존재의 궁극을 찾아가는 여정일 것이다.

장애의 정도와 형태에 따라 고민의 결은 매우 다양하게 드러난다. 지적장애인은 겉으로는 너무나 멀쩡해 보이기 때문에 자주 성추행이나 성폭력에 노출되곤 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이 당한 일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잘못된 일인지를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한다. 때로는 본인이 원해서 이루어진 성행위일 수도 있으나 주변인들은 본인의 선택이라고 믿지 않기 때문에 당했다고 보는 시선이 많다. 이 역시, 장애인에게 성적 욕망이란 비장애인에게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지적장애인의 성행위를 일괄적으로 성폭력으로 취급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지적장애인의 성적 필요를 무시한 것이자 약자를 보호한다는 미명하에 약자가 누려야 할 쾌락의 복지를 박탈하는 것이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인 <오아시스>에서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공주는 종두를 알게 되고 어느 날 둘은 섹스를 하게 되는데 이를 본 공주의 오빠는 성폭행이라고 생각한다. 공주는 말이 어눌해서 아무리 설명을 하려 해도 전달이 되지 않고, 어느 누구도 공주에게 의견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이는 우리 사회가 장애인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장애인들은 사랑하는 상대를 만나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기회 자체가 매우 적다. 가까스로 그 기회를 손에 넣었다 할지라도 유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장애인커플, 장애인-비장애인 커플, 장애인-성소수자커플 등 장애의 형태는 매우 다양하고 그 형태만큼 구체적인 고민의 내용도 제각각이다. 샤오치-이팡 커플은 장애인-비장애인 커플이다. 너무나 찰떡궁합인 이들에게도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많은 문제점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비장애인들도 육아는 혼자 감당하기 힘든 일인데 장애가 있는 이들 부부에게는 더없이 버겁기만 하다. 장애가 있기 때문에 아이를 돌볼 때 더 많은 위험요소가 따르기 마련이고 자연스레 다른 한쪽이 짐을 더 지게 될 수밖에 없다. 장애는 더 많은 현실의 짐을 지우게 한다.

일본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 비장애인인 남주인공은 자신의 등에 업힌 걷지 못하는 여자친구(조제)가 점점 무겁게 느껴진다. 사랑이란 본디 이별을 내재하고 있는 것이지만 장애 자체가 이별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리판도 처음엔 사랑에 어떤 조건도 있을 수 없다고 버텼으나 결국 그의 장애가 상대로 하여금 짐이 되었음을 조금은 인정하기에 이른다. 샤오위도 자상한 비장애인 남자친구가 있었으나 떠나버렸다. 샤오위는 남자친구가 양다리를 걸쳤음에도 남자친구를 비난하는 이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누군가 “에이, 그것도 무리는 아니지. 선배가 널 돌본 게 벌써 얼마야.”라는 이야기를 듣고 깨달았다. 장애는 관계를 불평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샤오위는 그제야 돌연 깨달았다. 그러니까 남들 눈에 그들은 대등한 관계가 아니었다. 밖에서는 그가 떠나지도 포기하지도 않는 것만 보였을 뿐 샤오위의 진심과 진의 따위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하나같이 그녀가 그럴 필요로 할 뿐 그에게는 그녀가 필요치 않다고 여겼다.

남녀의 사랑과 이별 그 안에는 무수히 많은 서사가 있다. 거기에 장애 서사가 들어가면 해석은 더 어렵고 복잡해진다. 상대가 장애인이기에 쉽사리 헤어지지 못하고, 장애 때문에 사랑이 실패했는지 아닌지 판단을 내리기도 쉽지 않다.

이승우의 <식물들의 사생활>에서 장애인이 된 형을 데리고 성 매매업소를 찾아다니는 엄마를 발견한 주인공. 형은 원래 자신보다 월등한 자식이었기에 엄마한테 형의 장애는 절망 자체이다. 그런 형을 데리고 엄마는 성 매매업소를 찾아다녔다. 우리는 모두 어느 날 갑자기 장애를 가질 수 있다. 장애는 삶의 조건이 뿌리부터 흔들리는 경험이다. 그 힘든 삶을 어떻게 짊어지고 가야 하는 걸까.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생활을 하기 어려운 마당에 성적 욕망을 드러내는 게 과연 합당한 일인가. 그렇다고 인간이라는 존재에 내재하는 욕망을 무시하고 외면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이 또한 개인이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인가.

저자는 무엇 하나 뚜렷한 방법을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의 욕망은 무시할 수 없으며 외면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기에 사회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에 대한 대안으로 일본의 화이트핸즈, 대만의 손천사 등 다양한 조직들이 만들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 <오아시스>가 나온 게 2002년이다. 그로부터 20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지만 우리 사회는 장애에 어떤 담론을 펼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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