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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은 영혼들
알리사 가니에바 지음, 승주연 옮김 / 열아홉 / 2019년 6월
평점 :
품절

작년 이 맘 때 러시아에 여행을 다녀온 이후, 나는 낯섦에도 매력적인 나라 러시아에 푹 빠져버렸다.
영화 아이스에서 느껴본 러시아 특유의 시니컬하면서도 빵빵 터지는 웃음과 그 안에 녹아들어있는 그들만의 진정성과 따뜻함이 참 좋았는데, 그래서 아마 이 책에 손이 갔던 것 같다.
러시아의 소설. 여류작가의 소설. 내게는 러시아의 소설이라고 하면 안나 카레니나나 전쟁과 평화를 쓴 톨스토 쯤에 머물러있는 것 같다. 벌써 100년은 더 된 러시아 문학이 내게는 러시아의 마지막인 것이다. 그리고 상당히 보수적으로 여겨지는 러시아의 문화 속에서 접할 수 있는 여류작가의 소설이라는 점도 흥미를 끌었다. 무엇보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내게 상처받은 영혼들이라는 매력적인 타이틀의 추리소설이라는 점이 더욱 인상깊었다.
책을 만난지는 조금 되었으나 그동안 너무 바빠 바로 손에 잡지 못한 것과는 다르게 막상 잡고 나니 뒷 내용이 궁금해서 자꾸만 손이 가고 자꾸만 페이지가 넘어갔다. 이야기는 15개의 장으로 이루어져있다. 첫 장에는 우연히 길에서 만나 찝찝한 상태에서 태우게 된 낯선 이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부터 이야기가 열린다. 이야기가 진행되면 진행될 수록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각 장마다의 사람들이 죽고, 또 그 죽음을 추리해 나가기 위하여 또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야기를 읽다보니 나는 추리를 해보려 하지만 막상 추리가 잘 되진 않아 아쉬웠지만, 마지막 장을 읽고 나니 모든 의문점이 풀리며 후련함을 맛볼 수 있었다.
사실 추리의 묘미도 즐겁게 읽을 수 있었지만, 더 인상 깊은 점이 있다면 이야기 속에 나오는 인물들의 배경 속에 러시아 현지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다는 점이었다. 여행으로서는 들여다보기 힘들었던 러시아라는 나라에서 살아가기 위하여 겪어야 하는 삶의 굴곡, 소련의 붕괴 이후 벌어지고 있는 부의 격차, 어느 사회에나 다 있겠지만 러시아의 측면에서 드러난 사람들 사이의 치부들을 접할 수 있다는 점이 참 좋았다.
내게 러시아라는 나라의 이미지가 차갑고 딱딱하기만 했다면 이 소설에 관심을 덜 가졌을텐데 지난 여행에서 러시아 사람들은 겉보기에는 딱딱하지만 막상 겪다보면 속정이 깊은 그런 사람들이라는 인식을 했기 때문에 더욱 그들의 속내를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작가가 내 또래의 여성이라는 점도 이야기에 더 몰입할 수 있는 요소가 아니었나 싶다. 우리도 세대마다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듯, 러시아 역시 그러하리라 생각하는데 유년시절에 소련의 붕괴와 자본주의의 도입 등을 겪은 혼란의 시대의 작가가 바라본 날카로운 시선들은 영국 가디언지가 왜 현대 러시아의 가장 흥미로운 목소리라 평했는지 알 수 있는 관점들이었다. 예전 여행에서 만난 고려인에게 들었던 소련과 러시아의 차이점과 그로 인해 향수를 느끼는 시민들, 또는 변화에 적응해나가는 이야기들이 꽤 흥미로웠기에 더 그러한 생각을 하지 않았나 싶다.
단순히 추리소설로 읽기에도 재미가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러시아라는 나라를 조금 더 들여다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