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정의로운 시장의 조건 - 동양의 애덤 스미스 이시다 바이간에게 배우다
모리타 켄지 지음, 한원 옮김, 이용택 감수 / 매일경제신문사 / 2020년 9월
평점 :
이 책은 일본의 18세기 학자 이시다 바이간이 창시한 '석문심학'의 본질과 형성 과정에 대해 논하고 있다.
책 전반에 걸쳐서 이시다 바이간이 누구인지, 석문심학이 무엇인지, 그의 사상을 현대의 관점에서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지 아주 쉽게 풀어써준다
우선 이 책에서는 시장에서 도덕성이 왜 필요하며 어떤 역할을 하는지 석문심학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처음 부분에는 근대 시기 일본의 선진적인 경제발전에 대해 논하며, 서양과의 교류 없이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는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공생의 경제질서와 지속가능한 부 창출에 대해 논하며 전반부에서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이시다 바이간의 관점에서 꾸려간다.
개인적으로는, 최근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높아지면서 어떤 CSR이 올바른지에 대한 회의가 있었는데 이 책에서 어느정도의 답을 찾은 것 같았다. 18세기, 생산성이 없다는 이유로 상행위가 홀대받던 일본에서 상인으로 활동했던 이시다 바이간은 상인은 왜 존재하는가? 무언가를 '생산'하지 않는 그들이 사회에 기여하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에 따른 답을 내놓는다. 그리고 이는 현대에 이르러 기업은 왜 존재하며, 사회에서 그들의 '책임'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로 확장된다. 단순 기부나 봉사활동을 넘어서서 그들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다.
개인적인 입장에서 이 책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동양철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시장과 기업'이라고 하고싶다. 철학과 경영학이라니, 어떻게 보면 굉장히 양 극단에 동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두 개념은 사실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어떤 시선에서는 경영학 또한 사회의 존속과 유지를 위해 만들어진 인위적인 조직과 체계이며 그 기본적인 구성단위는 인간이기에, 인간 그리고 공동체에 대한 고민 없이는 올바른 체계를 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
학제 간의 소통 없이 경영학을 따로 떼어서만 볼 때는 온전한 실용학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리고 철학 또한 뜬구름 잡는 얘기라고 보기 쉽다. 하지만 이렇게 양 극단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두 학문이 만나면 경영학은 철학적 토대에 기반한 발전 방향을 설계하며, 철학적 논의는 드디어 현실로 새 발을 딛게 된다.
이 책 또한 그러한 융합적 부분을 잘 녹여낸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 전반에서 과거 문헌을 계속해서 인용하면서도 이를 현실에 적극적으로 적용하려 하는 부분이 대표적이다. 또한, 책의 길이가 길지 않고 일본어를 번역해서 그런지 번역서치고 아주 매끄럽게 술술 잘 읽힌다. 어려운 책을 읽어낸다기보다는 저자의 명쾌한 강연을 한 번 들은 기분이다. 게다가 각 챕터가 소제목으로 잘게 쪼개져 있어서 독서하는 내내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다.
이 책은 또한 이시다 바이간의 과거 논의를 현대적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것을 넘어서, 후반부에서 서양 학자인 애덤 스미스와의 비교를 통해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논의의 지평을 확장한다. 270여 쪽에 달하는 분량의 책이지만, 책의 논의가 일관적이고 명확한 점도 마음에 들었다. 공동체, 공감, 이타성, 본성에 대한 이해, 직업의 의의, 기업의 역할 및 책임. 이 책을 구성하는 많은 키워드들이 마침 내가 평소에 관심있던 부분이라서 더 재미있게 읽은 점도 있다. 나처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나 그들의 존재 의의, 또는 공동체와 이타성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를 경영학/철학적으로 풀어낸 이 책을 재밌게 읽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 인용문에 종종 비문이 섞여있는 경우가 있어서 편집 및 구성에서 별 하나를 뺐다. 전체적으로 책을 읽는 데에는 크게 문제가 없고 구성은 아주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