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가 아니었다면 - 실패를 찬양하는 나라에서 71일 히치하이킹
강은경 지음 / 어떤책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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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쓴 글이 기억납니다. ‘지금 당장은 수익이 안 나는 것 같아도 자신의 길에 짧게는 10년, 길게는 30년을 정진하면 그 분야에서 뭐라도 성취를 이룬다’라는 글이었는데 이 책을 읽고 저는 대체 무엇을 이루며 살아왔을까 생각했습니다.

이 책을 참 오래 시간을 들여 읽었습니다. 근 2주간 강누나와 함께 아이슬란드의 바람불고 차가운 길들을 헤매고 다녔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기분, 그것은 이역의 낯선 마을에서 아침에 홀로 깨어날 때다(85쪽)”를 읽고 혼자 여행갔을 때를 생각했습니다. 20대 중반의 어느 날 스쿠버다이빙을 배우러 제주도에 일주일간 혼자 머문 적이 있습니다. 혼자 하는 여행의 가장 큰 장점은 나 스스로 모든 일정을 조정할 수 있다는 것이고, 단점도 거기에 있습니다. 나 혼자 내 모든 시간과 일정을 오롯이 조율하고, 혹여 일정 조율이 실패하더라도 그 책임이 온전히 나에게 있다는 것. 그것은 기쁨이 되기도 했지만 외로움과 답답함이 되기도 했습니다. 강누나도 너무나 외로웠다고, 그토록 바라던 아이슬란드에 왔지만 너무도 외롭고 슬퍼 눈물을 흘렸습니다. “여행 31일째, 모든 걸 혼자 선택하고 결정하고 행동해야 하는 이 여향이 갑자기 피곤하게 느껴졌다(253쪽).” “나도 의지할 수 있는 동행이 있으면 덜 추울까? 이 바람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히치하이킹을 하고 있다면, 오히려 더 슬프고 비참할 것 같았다. 상대방이 추워하는 모습까지 지켜보려면 마음이 곱절로 더 힘들 테니. 지금은 나만 추위를 견디면 된다(267쪽).”
또 누군가가 쓴 글이 생각납니다. ‘혼자 하는 여행에서는 나 자신은 고독한 관찰자에 지나지 않는다. 풍경이나 감상을 나눌 누군가가 없는 여행은, 여행지에 완전히 녹아들지 못하고 방관하는 관찰자에 지나지 못하게 된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저 또한 제주도에 1주간 머물며 그런 느낌을 많이 느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혼자 먹습니다. 멋있는 그림을 보아도, 풍경을 보아도 혼자 느끼고 맙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감상과 감동이라는 것은 얼마나 외로운 것인지요. 지금도 그 때의 제주도 여행을 생각하면, 1인분을 식당에서 해 주지 않아 2인분을 혼자 시켜 꾸역꾸역 먹었던 것, 차 운전을 할 줄 몰라 혼자서 8시간 동안 낯선 올레길을 헤매며 길치인 자신을 탓했던 것들이 먼저 기억납니다. “나는 혼자이고 아무것도 할 일이 없어 고독했다(213쪽)”. 강누나의 굶주린(배고픈이 아니라)여행길을 따라가다보면 나 자신도 춥고 배고픈 강누나 옆에 있습니다.
혼자하는 여행은 가슴 서늘한 일도 많이 생깁니다. 퍼핀의 모습을 쫓다 한 남자의 뷰파인더 속으로 들어가서 심장이 쪼그라들었던 일-“좀 전의 긴 머리 남자가 두 여자를 붙들고 그 불상사에 대해 털어놓고 있었다.…나는 또 재빨리 고개를 돌리고 자리를 피했다. 다시 얼굴이 달아올랐다. 살면서 이렇게 나의 부주의나 방심 때문에 타인에게 상처나 손해를 준 일이 얼마나 많았겠나.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어도 내 감정에만 빠져 있다가……(285쪽)”-을 읽고 마음속으로 얼마나 분개했는지 모릅니다.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었는데, 강누나가 얼마나 무렴했을까 생각했습니다. 저 또한 이런 일이 얼마나 많았던지요. 눈치가 없어 내 감정에만 빠져있다 다른 사람 마음을 헤아리지 못해 빈축을 샀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작가 김영하는 수천 권의 책을 읽고 고작 스무 권의 책을 썼다고 했는데, 나는 한 권의 책도 쓰지 못했다. 이젠 제목을 봐도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 책들이 늘고 있다. 두세 번 반복해서 읽은 책들조차 가물가물해졌다. 내 방의 책들은 이제 나의 지적 허영심을 자랑하는 훌륭한 소품 역할만 하게 됐다(201쪽).”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부터 읽은 책에 대한 키워드를 꼭 기록해두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인생은 철과 비슷하다. 사용하면 마모된다. 그러나 사용하지 않으면 녹슨다(279쪽, 카토의 말).” 살아있어서 미치도록 좋았을 때도 있었을 텐데(302쪽), 기록하지 않으니 모든 것을 잊어버립니다.

추운 날씨를 무척 싫어합니다. 추위를 잘 견디지 못하는 편입니다. 그런데도 이 원시자연을, 용암을, 퍼핀을, 여우들을 보고싶고 히치하이킹을 경험하고 싶어 얼마나 걸으러 가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혼자 설렜고, 마음이 나도 모르는 먼 곳으로 휙 떠났다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리고 요즘 신체의 나이듦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었는데, 많은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우라질!몸은 가속도를 내며 더 망가져 갈 테고, 사는 데 제약들이 늘어 가겠지(426쪽).”그저 내 몸과 함께 늙어가는 것을 수용하는 것, 그것이 중요할 것이란 걸 다시 한 번 생각했습니다.


걷고 싶습니다. 걸으러 가고 싶습니다. 오롯이 나 자신을 느끼고 싶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 실패하지 않은 인생인 이 작가처럼, 저 또한 그런 삶을 살고 싶습니다. 안희적 성폭력 고발 554일간을 기록한 <김지은입니다>를 요즘 읽고 있는데, 열악한 환경 가운데서도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세워나가는 의지를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은 타인의 삶의 큰 빛이자 힘이 됩니다. 저 또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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