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인간
성석제 지음 / 창비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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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이런 남자가 존재한다태어날 때부터 비실비실하게 태어난 남자어릴 때부터 남다르게 똑똑했던 장남 형과는 달리 기대할 것도 없고 남동생에게 형이라는 변변한 호칭 한 번 제대로 못 들은 채 무시당하며 산 남자그러나 자신의 몫은 꼭 성에 차지 않게 하더라도 꼭 자신이 해내는 남자그런데도 늘 무시당하는 시선이 일상이었던 남자장남이 고엽제로 인해 베트남에서 죽은 후에는 장남의 무거운 직분도 어깨에 매달고 어렵지만 뿌리치지 않고 힘들다는 말 하나 없이 해냈던 남자두 동생들 대학 학비 때문에 직장이 끝난 후 아르바이트를 몇 개나 하는 짠돌이의 생활을 해야 했던 남자회사 경영자들이 도망가 버린 회사를 바보 같이 끝까지 지켰던 남자동생의 아들도 결국 자신의 아들로 여기고 책임진 남자나를 위해보다는 가족을 위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렸던 남자성석제의 소설 투명인간의 주인공 만수가 바로 이런 남자다그리고 소설 속에서 이 모든 사건들은 1인칭 혹은 3인칭으로 독자에게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만수의 가족친구혹은 직장 동료 등의 생각과 입으로 독자에게 전해진다.

 

 그리고 만수는 위에 적은 사건 외에도 비극적인 사건들을 더 겪은 후에 투명인간이 된다만수 말고도 아내와 연탄가스 중독 때문에 바보가 된 작은 누나남동생 석수의 아들이지만 자신의 아들로 키웠던 아들도 투명인간이라고 한다책을 완독하고 나 뿐만 아니라 모든 독자들은 성석제 작가가 왜 만수를 투명인간이 되게 했는지 그 뜻과 속셈을 궁금해 했을 것이다나 또한 고민을 많이 했다그리고 네이버 국어사전에 투명의 뜻을 찾아봤다.

 

 투명 물 따위가 속까지 환히 비치도록 맑음.

 

 투명인간이라 함은 보이지 않는 인간그래서 무엇을 해도 되는 보통 사람들이 한 번쯤은 얻고 싶어 하는 초능력 중 하나다하지만 초능력으로신비한 능력으로의 관심을 두지 않고 단어 그대로 투명한 인간이라는 뜻이면 어떨까국어사전에 투명이라는 단어를 검색하고 결과가 나온 후 나는 조금 놀랐다만수의 삶은 투명이라는 단어에 딱 떨어지게 속까지 환히 비치도록 맑은 생이었기 때문이다.

 

 많은 투명인간 서평에서 우리 모두는 투명인간이다라는 논지를 펼친 것을 볼 수 있었는데 나는 전혀 다르게 생각한다만수는 초능력의 일종인 투명인간 능력을 가진 것뿐만 아니라 이미 투명인간이 되기 전부터 투명의 단어 뜻과 꼭 맞는 속까지 환히 비치도록 맑은 삶을 살았다만수와 같은 남을 위해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가족을 위해 나를 버리고 희생하는 삶이 어렵다는 것은 만수와 같은 핏줄임에도 불구하고 만수를 형으로 여기지 않다가 끝내 자신의 삶에서 도망쳐 버린 석수만 보아도 알 수 있다만수의 삶은 책임감이라는 단어 하나 만으로 옭아 버리기에는 너무 어려운제 어깨에 짊어 져야 하는 부담과 수고를 기꺼이 얹어 뒤뚱거리며 걸어가는 놀라운 삶이었던 것이다그런 삶이 평범하다고우리는 만수와 같은 삶을 사는 것이라고납득하지도동의하지도 않는다.

 

천지지간 만물지종 인간이 가장 귀한 이유가 뭔지 아느냐염치를 알기 때문이다염치는 제 것과 남의 것을 분별하는 데서 생긴다염치이 두 글자를 평생의 문자로 숭상하여라그러면 너는 어디를 가든 사람답게 살 수 있다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인정 받으리라. (28p)

 

 위 말은 만수의 할아버지가 한 말이다만수는 평생 할아버지가 해주신 말에서 벗어나 살지 않았다신념이나 목표를 꺾고 세상에 지는 것이 얼마나 쉬운 것인지 잘 알기에 만수가 염치를 아는 삶을 몸소 실천한 게 얼마나 대단한지 알고 있다.

 

 염치 모르는 사람에게 잠식 당한 이 세상이 여러 타인들의 눈으로 본 만수의 염치 있는 삶 앞에서 죽은 듯 엎드려 있다소설에서는 만수의 주변인물들이 본 시선으로만 만수가 그려져 있다주변인물들이 보지 않은 곳에서만수가 얼마나 버둥거리며 열심히 살았으니 생각하니 저절로 고개가 숙여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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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14 14: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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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지음, 김희정.안세민 옮김 / 부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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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대에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가 붙여진지 꽤 지났다. 그동안 여러가지 일이 일어났다.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에 화답하는 대자보가 붙여지기도 하였으며 별로 찬성하지 않는다는 논지의 대자보가 붙여지기도 하였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김치녀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가 붙여지기도 하였다. 나도 이 시류에 편승해 대자보 같은 것을 붙일 용기는 없지만 서평 제목으로 '안녕들하십니까'를 붙이고 싶다.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가 '보이지 않는 손'을 주장한 이래로 많은 경제학자들이 모습을 들어냈고 많은 경제학자들이 나타났다. 그 중 장하준이 이 책에서 말하는 '그들'이란 자유시장경제학자들을 말한다. '작은 정부'를 외치고 설파하는 그들의 문제점을 장하준은 조목조목 지적한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그러니까 그들의 오류는 23가지나 된다는 말이다. 그 중 우리가 그들의 세뇌로 인해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던 것도 상당수 존재한다. 예를 들면 'thing9 우리는 탈산업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던지 'thing 13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든다고 우리 모두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던가 'thing15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부자 나라 사람들보다 기업가 정신이 투철하다'같은 것들이었다. 이 챕터 하나하나 장하준씨의 논리를 들어보면 그들의 세뇌로부터 내가 당하고 있었구나 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실제로 나는 진보주의저인 성향을 띄면서도 큰 복지정책에는 반대를 했던 사람이었다. 그 이유는 너무 큰 복지정책을 쓰다보면 사람들이 게을러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장하준씨가 하나하나 열거해준 통계와 과학적인 분석에 따르면 그 생각이 틀렸음은 물론 그 생각 역시 자유시장경제학자들의 세뇌의 결과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장하준씨가 내놓은 통계가 너무 많아 직접 책을 읽기를 추천한다.) 책 속 구절 <상당한 양의 물이 밑으로 내려오기 위해서는 복지 국가라는 이름의 전기펌프가 필요한 것이다>(196p)에 책을 완독한 나는 항복(찬성 및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복지정책을 철저히 밀고 있는 나라들이 오히려 경제성장을 더 이루고 있는 이 확실한 통계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지 않은가.

 

 또한 나는 장하준씨가 말하는 결과의 균등에도 찬성하게 되었다. 모두가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하는 것 뿐만 아니라 모두가 같은 출발선에서 출발했을 때 어떤 아이의 발에 모래주머니가 채워져 있지 않도록 하는 노력 또한 필요하다는 그의 논리에 수긍하게 되었다. 기회 뿐 아니라 '결과' 즉 소득() 같은 것들도 어느 정도 균등하게 분배되었을 때 비로소 같은 '균등'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 민망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책의 각 챕터마다 말머리에 신자유주의를 옹호하는 '그들'이 이렇게 주장한다며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라고 그들의 주장들을 늘어놓는다. 다음 구절에 그들이 믿고 싶지 않거나 숨기고 싶어하는 진실을 '이런 말은 하지 않는다'라며 덧붙여 놓는다

 

본질에 호도되지 않고 똑바로 보고 살아가는 것은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나 뿐만 아니라 그렇게 살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은 좋은 표시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정녕 안녕들 하게 살고 있는 것일까

다른 사람들을 설득할 수 없다면 나라도 설득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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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6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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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인을 읽었다. 개인적으로 한 2008년부터 자주 챙겨 구경 갔던 블로그가 있었는데 그 블로그의 주인장께서 극찬하신 책이라 꼭 읽어봐야지 하고 샀던 책이었다. 읽고 난 후의 감상은 한마디로 '잘 쓴 문학작품'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는 것이었다. 소설 자체는 136p 정도로 그리 길지 않은데 그 길지 않은 소설 안에 작가의 메시지를 정확하게 담고 있다고 적어도 나는 생각한다. 그 '정확하게'라는 것이 단순히 작가의 생각을 '내가 이렇게 생각해!' 라고 주입 시켜 놓는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장치들을 사용한다. 단적으로 존재만으로 특이한 주인공 뫼르소라던지. 주인공 자체를 평범함과 거리를 둠으로서 알베르 카뮈가 얻어낸 효과는 상당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지만 뫼르소가 장례식장에서 보인 어머니의 죽음에 울기는 커녕 슬퍼한 기색조차 없는 행동에 대해서 나는 그렇게까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느낄 것이냐에 대해서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여러가지 면에서 다른 면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우리 아버지도 우리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으신 장본인이시기 때문이다. 글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내가 '생각'이라는 것을 가지기에는 너무 어렸기는 하지만 확실히 우리 아버지가 울지 않으셨다는 것. 또 감정히 절제될대로 절제되어 있었다는 것은 다른 의견이 올라올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주인공 뫼르소가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도 그런 태도를 보이는 것에 대해 '남자들은 다 이런 태도를 보이나?'라는 생각을 가지며 읽은 것 또한 사실이다. 


 나에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사형 집행을 받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와서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뿐이다.

 

 마지막 페이지에 주인공이 하는 생각이다. 아마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뫼르소가 이런 생각을 할 만 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재판 과정에서 뫼르소가 받는 스트레스는, 또 직전의 사제와 있었던 일은 뫼르소의 심리를 극도로 몰아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는 뫼르소가 동정을 조금이라도 재판관들과 배심원들에게 호소했더라면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뫼르소는 정말 특이한 사람이긴 하다. 

 

 그러나 이런 부조리, 혹은 모순이라고 말하는 사회의 편견과 보고싶은 것만 보고 싶어하는 그들의 행태를 동정심에 호소하려는 주인공과 함께 두었다면 이 책은 고전으로 읽히기 보다는 그저 그런 흔한 책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 또한 든다. 이방인 속 등장하는 사람들. 특히 뫼르소의 유죄와 아마 사형이라는 형을 요구하는 검사의 주장 혹은 행동들을 보고 있자면 2014년 현재도 얼마나 같은 현상이 되풀이 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굳이 이런 사회적인 이슈의 범죄 뿐 아니라 좌와 우로 나뉜 사람들의 주장 또한 그렇다. 전혀 상관 없는 것을 들먹거리며 "너 이런 사람이잖아!"를 외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의미에서 고전이 고전인 이유는 당대를 뛰어넘어 미래, 과거를 아우르는 보편적인 진리 혹은 현상을 품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정리해보자. 이방인은 잘 쓴 소설이다. 찬찬히 읽어보고 곱씹을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소설이다. 이런 책을 읽고 머리가 깨어질 수 있다면, 아니 머리에 바람이라도 들어간다면 얼마나 다행이겠는가. 인간의 머리만큼 딱딱한 것도 없는데. 박수를 쳐주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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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경제학
이원재 지음 / 어크로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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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기업의 '탐욕'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건이 대한민국에서 일어났다. 대형마트 이마트에서 1인 시위 중인 이마트 노조위원장 전수찬씨를 폭행하는가 하면 노조 시위 대응 메일을 보내 조직적으로 노조활동을 방해하고 사찰까지 했다는 것이다. 국민들은 발끈했고 이마트 불매운동도 벌어졌다. 기업의 탐욕이 얼마나 무서우며 어디까지 심한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현대사회의 가장 큰 병폐가 바로 탐욕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를 시작으로 골드만 삭스와 같은 거대 증권회사를 필두로 이마트 사측에서 벌인 것과 같이 조직적으로 탐욕의 씨앗을 뿌리고 키워 현대인들을 탐욕이라는 가치로 세뇌시켰다. 탐욕의 씨앗을 뿌리고 키워 놓았더니 그 다음은 세뇌된 사람들끼리 알아서 잘 탐욕을 키워갔다. 그리고 그 탐욕의 정도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 버렸다. 여기저기서 탐욕의 폐해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그 정점은 2008년 발발해 지금까지도 세계에 막대한 손실과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세계금융위기였다. 이처럼 탐욕의 시작과 원인. 발전과 결과. 그리고 미래에 대해 조명한 책이 바로 이원재씨가 쓴 <이상한 나라의 경제학>이다.

 

 

 이상한 상식은 대기업이 돈을 많이 벌어야 모두에게 좋다는 이야기에서 정점을 찍는다.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서 직원들과 협력업체들에게 흘러내려가며 부를 나누어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일단 부자가 많이 벌어야 경제가 살아난다는 가르침도 있다. 지갑을 열어 소비를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정말 대기업이 번 만큼 일자리를 창출했는지, 부자가 지갑을 열어 부가 분배되었는지는 누구도 입증하지 못했다. (11p)

 

 이 책은 11페이지라는 책의 시작 부분부터 강한 메시지를 남긴다. 대기업이 잘 벌어야 그 혜택이 우리에게도 전해진다는 그야말로 이상한 나라의 경제원리가 사실은 누구도 입증하지 못한 원리라는 것이다. 이런 원리 말고도 여러가지 원리가 사실은 큰 오류가 있고 틀린 것이 많다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피력한다. 그 오류 중에 가장 대표적인 오류가 덩컨 폴리 교수가 이름 붙인 '애덤의 오류'다. 애덤의 오류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기심은 그 자체로 윤리적이다'라는 논리가 오류라는 것으로 이 애덤 스미스의 주장 덕분에 많은 폐해가 생기게 된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출발선이 '경제는 다르다'논리다. 뉴스나 인터뷰를 보면 기업인들이 은근히 자주 하는 말이 있는데 바로 '기업과 사회는 다르다'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러니 저러니 같다 붙여도 저 말의 핵심은 경제를 위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윤리적 프레임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 사고방식이 애덤의 오류 덕분에 현대인들에게 뿌리 깊게 자리잡은 경제 인식 병폐일 것이다. 그리고 이 병폐는 생각보다 심각해서 윤리와 경제를 분리해 생각함으로써 마땅히 경재인에게 들이댔어야 할 잣대를 들이대지 못하게 만들었다. 애덤 스미스의 학설은 당시 큰 반향을 이르켰고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저자의 말처럼 고분고분 애덤 스미스의 학설을 인정하기는 힘들 정도로 유효기간은 끝나가고 있다.

 

 처음 같은 선에서 출발해도, 문제는 성장한 뒤에 다시 나타난다. 보수주의 경제학자들은 경제성장이 자동적으로 평등한 분배를 낳는다고 역설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정부나 사회의 힘이 개입되지 않고는 분배가 일어나지 않았다. 가장 시장주의적인 정책을 펼친 1980년대 이후 미국에서 벌어진 일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121p-122p)

 

 

 2011년에 일어난 일이지만 지금도 알고 있는 국민들에게는 비웃음을 사는 한 일례가 있다. 현대자동차 노사는 정년퇴직자와 25년 이상 장기근속자 자녀의 신규 인력 채용 우대에 합의했다. 사실상 자신의 직업을 아들 딸들에게도 물려주게 되는 합의다. 경제성장이 과연 평등한 분배를 자동적으로 이룰 수 있을까? 2011년 현대자동차 노사의 합의만 봐도 알 수 있다. 더 폐쇄적으로. 자기들만의 리그로 변화해 간다는 사실을 말이다. 결코 모든 평등한 분배가 아닌 부의 쏠림 현상이 노골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일자리가 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말이다. 매출이 늘어도 대기업은 일자리 창출에 뒷짐이었다. 그리고 이 논리는 내 자신의 '복지'가 필요하다는 생각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 무조건적인 퍼주기 복지는 안 되겠지만 위의 내용대로 정부와 사회의 힘이 개입되지 않고는 부의 분배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정부나 사회의 힘을 빌려 부의 분배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전체 행복에 도움이 된다면 말이다.

 

 

 나는 이원재씨가 제시하는 개선책에 대해서 상당 부분 동의하는 편이다.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협동소비, 기업들의 사회책임 경영과 탈성장은 현재 현대지구를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어쩔 수 없는 최선책일지도 모른다. 특히 '탈성장'은 현대 지구인들에게 더이상 선택을 하고 말고를 떠난 필수불가결의 반드시 내세워야만 하는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환경적 가치다. 탈성장을 내세우지 않은 국정운영은 멀지 않은 미래에 파국으로 끝나는 지름길임을 이제 많은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다.

 

 

 최근 많은 연구에서 끊임없이 확인되느 사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사람들이 돈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또는 돈으로 환원되지 않는 가치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가치에 따라 많은 의사결정이 내려진다는 사실이다. (270p)

 

 돈은 효용 그 자체일 수는 없다. 인간에게 돈만이 모든 가치일 수 없다는 소리다. 이기심을 쫒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면, 이타심에 이끌리는 것도 인간의 본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돈 그 자체가 주 목적이 아닌 기업들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공공선(公共善)이라는 단어가 있다. 개인을 포함한 공동체 전체를 위한 선(善), 즉 공익성을 말하는 것이다. 이 책을 보며 생각한 것은 공공선을 잘 지키면 지금보다 행복하면서 평등하게 부가 창출되고 분배되는 세상이 올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원재씨도 아마 이런 생각을 밑바탕으로 두고 이 책을 쓰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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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 20대와 함께 쓴 성장의 인문학
엄기호 지음 / 푸른숲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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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서론에서 이 책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의의를 소개하려 한다. 이 책의 특별한 의의는 바로 청춘에 대해 무조건적인 찬사를 바친다거나 맹목적으로 옹호, 긍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냉소로 청춘을 바라봤다는 점에서 이 책은 특별하고 특이한 의의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내가 읽었던 청춘에 대한 다른 책. '아프니까 청춘이다'와 같은 청춘을 인정하고 사랑하라는 보듬어주라는 책과 다른 생각을 가진 책이라는 점이다. 책과 책의 소스는 다양해야 의미가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기에 이 책은 남다른 의의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이 체제로부터 '탈주'할 바깥이 없다. 저들은 이미 바깥으로 내쳐진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착취당할 권리'조차도 박탈당했다. 그래서 이들은 바깥이 아니라 안으로의 편입을 위해 목숨을 걸고 노력한다. (55p)

 

그러나 이들에겐 냉소주의만이 현실에 대처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기본 장비이다. 그렇지 않으면 도저히 맨 정신으로 살아갈 수 가 없다. 사실 이들이 말하는 본질이 틀린 것이 아니지 안은가? (89p)

 

 

  이처럼 이 책은 초장부터 냉소주의니 바깥이 없다느니 청춘에 대한 극단적인 생각들을 쏟아 놓는다. 그리고 그 생각들은 20대 청춘인 내가 보기에 그리 틀리거나 오버하여 말하는 것 같지 않다. 오히려 가장 현실적으로 말한 것 같아 내심 통쾌하기까지 하다.

 

  이 책의 제목.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이가>를 보자면 제목부터 필(?)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왠지 청춘에 대한 보편적인 사고를 하는 것이 아닌 조금은 비뚫어진. 통념과 다른 사고를 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 때문에 제목에 끌려 이 책을 샀고 이 책은 제목 그대로 기성세대한데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에요?"라고 일갈한다. 청춘은 변했다. 아니, 청춘 뿐 아니라 세대, 환경 등 청춘의 배경들이 모두 급속도로 변했다. 한 마디로 청춘의 인프라가 변했다는 소리다. 이런 상황에서 기성세대들은 그들이 살았던 시대의 청춘만을 추억하고 생각하며 강요한다. 그 외의 청춘은 청춘이 아니라고 치부하며 무시하고 밟기까지 한다. 특히 386세대들이 그렇다.

 

 지금의 20대는. 지금의 청춘은 정치를 생각하지만 정치적 쇼에 지치고 냉소하고, 이제껏 어떤 세대, 누구보다 스펙을 위해 노력하지만 자신의 노력과는 무관한 다른 태클 덕분에 절망하고 냉소한다. 학교 시스템의 폭력성에 냉소하고 지친다. 누구보다 가족을 사랑하지만 가족애라는. 소통이라는 이름의 또다른 폭력에 비틀거린다. 사랑하고 싶지만 금전적 여유라는 무시하고 싶지만 중요한 벽에 부딛혀 허덕인다. 다이어트, 성형수술 등 자신을 전시하는 일에 매달리며, 돈이 모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지만 자유를 위해 돈을 모은다. 그리고 잉여 잉여와 삽질 삽질. 열정 사이에 존재한다. 나는 이런 현재의 어른들이 인정하지 않는 치열한 20대를. 이 책에 자주 등장하는 김예슬도. 아니, 누구도 비난할 자격은 없다고 단정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20대는 위와 같다. 그리고 상당 부분 공감한다. 그렇다면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나에게 청춘은 어떤 것일까?" "내가 생각하는 청춘이란 어떤 것일까?"라는 주제로 사유를 해보았다. 이런 생각을 다시금 해 볼 수 있게 한 이 책의 저자 엄기호씨에게 감사한다.

 

 사람은 나이에 맞혀서 성장한다고 생각한다. 10대는 10대대로 20대는 20대대로. 30, 40대도 자신의 나이에 맞춰서 성장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개인차는 존재하지만 말이다. 그런 점에서 20대는. 10대에 빵빵하넣은 생각. 더 정확히는 사유 에너지를 마침내 샘솟는 행동 에너지와 함께 성장해야 하는 나이가 아닐까 생각한다. 내 생각에 10대에는 20대 보다 더 많은 생각이 넣어지고, 사유에 대한 충격을 가장 많이 받는 세대인 것 같다. 그렇지만 여러가지 이유 때문에 행동하기에는 제약이 많다. 아직 어리고, 어리다는 어른들의 좋든 싫든 보호심 때문이다. 하지만 20대는 자유가 생긴다. 비록 무거운 짐이기도 하지만 이것은 매우 달콤한 것이다. 그리고 이 시기부터 넘치는 행동 에너지가 집중적으로 뿜어져 나온다. 그렇기 때문인 것 같다. 좀 불편하지만 왜 기성세대가. 더욱이 같은 20대마저 열정 열정 하면서 열정 노동을 착취 당하게 하는지 이유는 알 것 같다. 열정을 사회가 착취하든 말든 어쨌든 20대가 열정 에너지가 샘솟는 나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청춘을 찬양하는 시나 노래가 그렇게 많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엄기호 씨. 그리고 이 책에 나왔던 여러 대학생들의 생각과는 조금 다른 결론을 내렸다. 착취를 당하든 말든 어느 정도의 열정은 쏟아보자는 것이 내 생각이다. 너무 과하지는 않게. 어느 정도의 열정은 청춘의 권리이며 오버해서 말하면 의무이지 않을까?

 

  마지막을 덧붙이자면 이 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점이 있는 책이다. 그 이유는 바로 나에게는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마음이 들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제대로 된 결론이라던지 대책 같은 것들이 소개되어 있지는 않다. 물론 어떠한 책이 꼭 결론이나 대책을 내놓아야 되는 것은 아니지만 잘 만들어진 책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저자의 대책이라는 것이 존재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청춘은 마냥 즐겁지 않고 어쩌면 즐겁기보다는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아프니까 청춘이다>와 같은 책도,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와 같은 책도 나온 것이라 생각한다. 두 책 다 필요한 책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다양성은 너무나 좋은 가치이고 세상을 풍요롭게 만든다. 청춘. 나도 한 번 크게 말해보고 싶다.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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