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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연한 인생
은희경 지음 / 창비 / 2012년 6월
평점 :
아름다움에 대한 매혹이 가진 고독감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긴 고통의 서사를 거쳐 고독을 껴안고 고독과 연대하면서 평화를 얻게 되는 이야기로 마무리되었다.
아주 오래전에 창비에서 연재할 때 부분 부분 읽어가던 소설이었는데, 그 때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읽었다. 무척이나 아름답고 또 슬픈이야기.
내가 그저 남길 수 있는 것은 서정과 서사의 시간, 고통과 고독의 시간에 대한 변주에서 많은 감동을 받았다는 것 뿐이다. 그 과정에서 내가 깊은 생각을 해 보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다시 고통받을 것이지만, 점점 고독의 시간으로 깊숙이 들어가면서 익숙해지고 평화를 얻을 수 있기를 바라는 것 뿐이다.
"태연한 인생", 너무나 은희경적인 제목이 아닌가
살아오는 동안 류를 고통스럽게 했던 수많은 증오와 경멸과 피로와 욕망 속을 통과한 것은 어머니의 흐름에 몸을 실어서였지만 류가 고독을 견디도록 도와준 것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삶에 남아 있는 매혹이었다. 고독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적요로운 평화를 주었다. 애써 고독하지 않으려고 할 때의 고립감이 견디기 힘들 뿐이었다. 타인이란 영원히 오해하게 돼 있는 존재이지만 서로의 오해를 존중하는 순간 연민 안에서 연대할 수 있었다. 고독끼리의 친근과 오해의 연대 속에 류의 삶은 흘러갔다. 류는 어둠 속에서도 노래할 수 있었다. - P265
요셉은 인간이라는 유한한 존재가 존엄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개인의 고유함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고유함이 없다면 인간은 시간이 되면 꺼지는 기계처럼 패턴에 의해 소비될 뿐이다. 패턴에는 매혹이 없었다. 타인이 지겨운 것은 관계를 맺기 위해 그런 패턴의 세계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타인에 대한 환멸에는 그나마 고독이 위로가 되었다. 환멸을 완성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염증이었다. 류가 공책에 쓴것과 달리 어두운 숲을 물려받은 자에게 움직이는 숲을 보는 날은 오지 않았다. 요셉은 검은 보자기로 덮인 어둠 속에서는 노래할 수가 없었다. - P256
이제부터는 쓸쓸할 줄 뻔히 알고 살아야 한다. 거짓인 줄 알면서도 틀을 지켜야 하고 더이상 동의하지 않게 된 이데올로기에 묵묵히 따라야 하는 것이다. 어머니는 그 세계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세계를 믿지 않게 되었지만 그렇다고달리 무엇을 믿는단 말인가. 상실은 고통의 형태로 찾아와서 고독의 방식으로 자리잡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어두운 극장의 의자에 앉아 모든 것이 흘러가고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고통은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침전될 것이었다. 하지만 원심분리가 안의 소용돌이 속에서 추출되고 있는 부유물은 고통으로 보이는 고독이었다. 그 봄날의 피크닉이 오랜 우기 끝에 찾아온 찬란 뒤에 불길함을 숨겨놓았든 모든 매혹은 고독의 그림자를 감추고 있었다.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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