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구두쇠 영감의 이름은 아마도 ‘스크루지’일 것이다. 그는 괴팍하고 인정머리 없으며 부자임에도 나누는 법을 모른다. 많은 이들은 지금까지 <크리스마스 캐럴>을 읽어오며 그를 비난해 왔을 것이다. 나 또한 어릴 적 이 책을 읽으며 그랬었던 것 같다. 그런데 오늘 다시 읽게 된 <크리스마스 캐럴>은 나에게 전혀 색다른 질문을 던진 것이다.

 

스크루지는 이 말을 하면서 킥킥 웃고, 칠면조 값을 치르면서 킥킥 웃고, 마차 삯을 치르면서 또 킥킥 웃고, 소년에게 사례를 하면서도 킥킥 웃었다. 그러고도 그치지 않고 더 크게 킥킥거리다 숨이 차서 다시 의자에 앉았는데도 눈물이 날 때까지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이전에 <크리스마스 캐럴>을 읽을 때는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구절이다. 이토록 절절하게 나눔의 행복을 느끼고 있는 스크루지라니. 그의 이런 모습은 나에게 굉장히 낯설게 느껴졌다. 그가 만약 진실로 악한 사람이었다면, 간밤에 찾아온 세 유령과의 동행만으로 이렇듯 완벽히 개과천선했을 리가 없다. 그가 겪어온 과거의 크리스마스들을 나또한 동행하며, 나는 ‘스크루지’라는 인물을 우리 사회가 만들었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게 되었다. 그를 누구보다 고독하게 만든 것은 우리들이었다. 어쩌면 스크루지는 우리 모두의 모습일 것이다. 부유함과 빈곤함은 어쩐지 상관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느새 저자는 당시 시대상과는 또 다른, 인간의 고독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도 고독하지 않은 크리스마스처럼. 독자들에게 캐럴을 들려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우리 또한 스크루지와 함께 간밤에 세 유령을 만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둘러보고 새사람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크리스마스를 가슴 깊이 새기고 일 년 내내 기리겠습니다. 과거에 살고, 현재에 살고, 미래에 살겠습니다. 세 유령님 모두 제 안에서 도와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유령님들이 가르쳐주신 교훈을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

 

우리 또한 그러해야할 것이다. 따뜻한 마음과 나눔의 마음을 가슴 깊이 새기고 일 년 내내 기려야 할 것이다. 과거, 현재, 미래에 살아야 할 것이며, 이들이 가르쳐준 교훈을 저버리지 않아야 할 것이다. 스크루지는 모두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더 아름답고 행복한 다음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기 위해 언제까지고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한마디로 스크루지는 그냥 지나칠 수 없을 정도로 유쾌해보였고, 쾌활한 사람 서넛이 그에게 이렇게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크리스마스 즐겁게 보내세요!” 그 뒤로 스크루지는 그때까지 들어본 듣기 좋은 소리 중에 그 인사가 가장 듣기 좋았다고 두고두고 이야기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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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게 짝사랑하라’ 이 책을 읽으며 가장 깊이 와 닿았던 구절이다. 이 분의 에세이를 읽으면 희한하게도 자꾸만 나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 많아진다. ‘나는 어떻지?’, ‘나라면 어떨까?’, ‘나도 이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 등등. 끊임없이 나 자신에게 질문하게 된다. 때론 마음 깊이 새기며 나아갈 방향을 찾기도 하고, 때론 과거를 후회하며 반성하게 되기도 한다. ‘그래! 나는 이제 이렇게 살아야겠다!’라며 마침내 어려운 문제의 답을 찾은 사람처럼 갑작스레 홀가분해지기도 했다. 책 한 권을 읽으며 이렇게까지 다양한 감정들이 쉴 세 없이 찾아오는 경험도 신선했다.

그 중에서도 아프게 짝사랑하라는 저자의 조언은 나를 참 많이 반성하게 만들었다. 원채 주변을 살갑게 챙기거나 다정한 성격이 되지 못하는 나는 누군가를 티 나게 좋아해본 기억이 없다. 좋아하는 상대가 생겨도 상대방이 먼저 확신을 주지 않는다면 아무 노력도 해보지 않은 채, 스스로 포기해버리기 일수였다. 어찌 보면 사람에 있어서 방어적이었다.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것에 대해 무감했다.

 

사랑에 익숙지 않은 옹색한 마음이나 사랑에 ‘통달’한 게으른 마음들을 마음껏 비웃고 동정하며 열심히 사랑하라. 눈앞에 보이는 보상에 연연하여, 남의 눈에 들기 위해 자신을 버리는 사랑의 거지가 되지 말라.

언젠가 먼 훗날 나의 삶이 사그라질 때 짝사랑에 대해 허망함을 느끼게 된다면 미국 소설가 잭 런던과 같이 말하리라. “먼지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재가 되겠다”고.

 

저자의 말대로라면 나의 마음은 ‘사랑에 익숙지 않은 옹색하고, 사랑에 통달한 게으른 마음’일 것이다. 부끄러웠다. 갑자기 열렬히 사랑하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저자가 말했듯이 사람을 사랑하고, 학문을 사랑하고, 진리를 사랑하고, 저 푸른 나무 저 높은 하늘을 사랑하고, 내가 몸담고 있는 일상을 열렬하게.

진짜 참답게 사랑받는 사람이란 지금 뜨겁고 열렬하게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 아닐까. 내 사랑은 아끼고 아껴서 깊은 마음속에 담아두고 남들에게 사랑을 구걸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 사랑을 아낌없이 나누는 사람. 마음에 자리가 생겨야 누군가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처럼 마음속에 내 사랑만 가득 채워놓은 사람은 더는 다른 이의 사랑을 받아들일 자리가 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진짜’는 사랑받는 만큼 의연해질 줄 알고, 사랑받는 만큼 성숙할 줄 알며, 사랑받는 만큼 사랑할 줄 안다. ‘진짜’는 아파도 사랑하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남이 나를 사랑하는 이유를 의심하지 않으며, 살아가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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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에 유명한 책인 탓에 그 동안 읽어 볼 생각을 하지 못 했던 책 중 하나였다. 고아원의 어느 별 볼 일 없는 소녀가 후원자로부터 아낌없는 도움을 받게 되고, 결국 그 둘이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줄거리는 이 책을 식상한 옛날 이야기 쯤으로 여기게 만들었다. 그러나 <키다리 아저씨>는 내가 생각하던 신데렐라 이야기와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첫날에는 아주 끔찍한 실수를 저질렀어요. 누군가 모리스 메테를링크(벨기에의 상징파 시인이자 극작가로 노벨상 수상자)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저는 그 사람도 1학년생이냐고 물었어요. 그 이야기는 금세 학교 전체로 퍼졌답니다. 그래도 전 같은 학년들 중에서 명랑한 편에 속한답니다. 그리고 그 중 몇 명보다도 제가 훨씬 더 밝고 명랑해요!

 

나는 곧 주디의 이런 매력에 빠지게 된 것이다. 이런 매력이란 언제나 천진난만하고 사소한 것에도 감사할 줄 알며, 무엇보다 실의에 빠지지 않는, 극단적으로 낙천적인 그녀의 성격이다. 내가 만약 주디였다면 이 상황을 이렇듯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이런 보잘 것 없는 일을 감사히 여길 수 있었을까, 책을 읽으며 끊임없이 질문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지금의 삶에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너무나도 힘든 일이다. 우리는 아이러니하게도 내 삶이 불행한 이유를 찾아가며 살아가는 사람들 같다는 생각을 한다. 주디를 통해 행복은 주관적인 것이라는 아주 사소한 진리를 깨닫게 된 것 같아 고마웠다. 그녀의 성장기였던 대학 생활은 나에게도 참 많이 성숙해질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갚고 싶어요. 할 수만 있다면요. 그런데 이 장학금을 받으면 아저씨의 은혜를 갚기가 한결 쉬워져요. 전 평생이 걸리더라도 아저씨한테서 받은 은혜를 갚을 생각이었는데 이 장학금만 받으면 은혜를 갚아야 하는 기간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어요.

 

한 가지 더, 내가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오해하고 있었던 사실 중 하나는, <키다리 아저씨>가 신데렐라 이야기와 다름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주디는 굉장히 독립적이고 성숙한 아이였다. 나보다도 더 자신과 자신의 꿈에 대해 확고한 믿음을 가진 아이였다. 키다리 아저씨의 후원에 대해 ‘은혜’라고 생각하며 언젠가 자신이 성공하게 된다면, 아니, 성공하게 됐을 때 모두 갚아야 할 것이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참 멋진 소녀라는 생각을 했다. 마냥 천진하고 유쾌하기만 한 주디가 아니라서 더 매력적이었던 것 같다.

<공중그네>의 이라부처럼 <키다리 아저씨>의 주디 또한 나에게는 동경할만한 인물이었다.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은 언제나 나에게 큰 충격을 안겨준다. 주디는 나 또한 유쾌하고 멋진 소녀로 살아갈 수 있게끔 또 하나의 방식을 제시해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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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뭐랄까. 편지를 적고 있는 이들의 담담한 표현들에 비해, 읽는 이로 하여금 눈물 흘릴 수밖에 없게 만드는 묘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이들의 편지는 대개 한 장에서, 길게는 두 장 남짓 되는 짤막한 형식이었다. 또한 편지를 쓰고 있는 이들은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고통스럽고 아픈지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고 있었다. 아픔을 말하더라도 과거에 그러했었다, 혹은 그래도 힘을 내겠다, 이제 괜찮다는 식의 표현들로 자신들의 상황을 전하고 있었다. 죽은 이에게 닿을 수 없는 편지임에도 그들은 그렇게 하고 있었다. 하나같이 고인과 함께 했던 나날들을 그리워하면서도 그들을 마음에 묻고 더 잘 살아보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그러니 아직 네 곁으로는 갈 수 없겠구나. 유리의 착한 마음씨를 느낄 때마다 아직은 힘내야겠다는 생각이 든단다. 그리고 일 분이라도, 일 초라도 길게 네 몫까지 유리를 지켜봐 주고 싶으니까.

너는 훌륭한 ‘보물’을 엄마에게 남겨줬단다. 고맙구나.

노부에, 너도 내 보물이야.

 

소중한 사람을 영영 볼 수 없게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또, 그들을 아름답게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것, 바람이 불 때마다 그들을 떠올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이 책을 읽으며 배운 바가 있다면, 남아있는 사람들이 삶을 살아가는 올바른 방법이 그것이다. 떠난 사람을 그리워해주고 그들이 했던 말, 그들의 생각, 살아가는 방식 등을 계속해서 되새기며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숭고한 일인지 알게 되었다. 어쩌면 죽은 이들은 자신이 살아생전 가장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떠난 후 더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듯했다. 잃어본 사람만이 소중함을 알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이전보다 더욱 소중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뒤로 아비와 어미는 전보다 더 가까워지고 성실하게 일하며 사람과의 인연을 중요하게 여기고 소박하지만 다정하고 행복하게 산단다.

널 아는 모든 사람이 너를 생각하며 용기를 얻어 살아간단다. 고마워.

 

책에는 모두 153개의 편지가 실려 있다. 153개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 것이다. 새삼스레 벅찼다. 153명의 소중한 기억과 사랑이 짧은 편지 한 장으로도 충분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들의 삶이 앞으로 더욱 빛났으면 했다. 불어오는 바람에도 사랑하는 사람을 느낄 수 있는 이들이니 분명히 그러할 것이다.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불어오는 바람에도 새삼스러운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있잖아, 엄마. 엄마는 무덤에 있기 불편할 거 아냐. 빨간 옷을 입고 바람처럼 다시 고베에 꽃을 보러 올 거잖아. 그러니 난 무덤에 가지 않을 거야. 바람이 불면 엄마라고 생각할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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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카레, 내일의 빵>은 참 신기한 종류의 책이었다. 우리의 아주 일상적이고 평범한 생활들을 있는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이 책의 소소한 에피소드들은 책을 읽는 동안 나를 아주 따뜻하게 만들어주었다. 나와 다를 바 없는 이웃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다보니 별 볼일 없다고 생각되었던 나의 일상들이 갑자기 사랑스럽게 여겨지기도 했다. 책 속의 인물들은 모두 하나같이 사랑스럽지 않은 사람이 없다. 작가가 이 인물들을 통해 어떤 대단한 이야기를 풀어내려 하지 않았기에 더 그렇게 느껴졌던 것 같다. 우리는 우리들의 어제와 오늘이, 그리고 오늘과 내일이 크게 다르다고 여기지 않으며 우리의 ‘일상’을 소중히 여겨주지 않는다. 그러나 <어젯밤 카레, 내일의 빵>에 등장하는 이들은 자신의 ‘일상’ 그 자체를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이야기를 해나가고 있었다. 이 책은 나의 일상을 한 바탕 뒤흔들 만큼 나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대신, 나의 일상을 조금 더 사랑스럽게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응? 혹시 생사를 같이한다는 게 이런 건가?’하고 생각했지만, 그런 말을 하면 “아냐아냐, 데쓰코는 모를 거야.”라고 격하게 부정할 것 같아서, 아니, 그보다 이 우스운 상황을 잘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시부에겐 말하지 않기로 하고 다시 은행을 까는데, 또 절묘한 타이밍에 이번엔 짧게 “윽”하고 시부가 신음했다. 데쓰코는 혼자서 바보처럼 웃었다.

 

또 한 가지, 며느리와 시아버지라는 독특한 관계가 이토록 유쾌하게 그려질 수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들은 남편이자 아들이 일찍 세상을 떠난 후, 다소 독특한 형태의 가족이 되었다. 한 편으로 껄끄럽고 불편하게 여겨질 수 있는 이들의 관계가 이 책에서는 아버지와 딸의 관계와도 비슷하게 그려진다. 완벽히 가깝지 않지만 누구보다 가깝게 느껴지는 그들의 거리감은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깊게 공감할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며 참 많은 순간 데쓰코가 되어 생각했던 것 같다. 나라면 남편의 죽음이라는 참담한 상황 속에서 시아버지와의 소소한 일상을 담담하지만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을까.

 

“이걸 나한테 주면 가즈키 형을 잊게 되지 않을까요?”

“죽을 때까지 안 잊어.”

데쓰코가 단호하게 말했다. 왜 그런 걸 묻느냐는 얼굴로 도라오를 본다. 이 사람은 정말로 잊지 않을 것이다. 가즈키가 왜 데쓰코가 아니면 안 된다고 했는지, 도라오는 그제야 비로소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가즈키의 죽음은 너무 가볍지도, 너무 무겁지도 않게 다가왔다. 데쓰코와 시부가 이따금 떠올리는 가즈키와의 추억은 너무나도 담담하고 소소하게 그려지고 있어서 그의 죽음을 비극적이라거나 처참하게 느껴졌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단지 죽은 이를 이토록 아름답게 추억해낼 줄 아는 아내와 아버지를 둔 가즈키 또한 참 사랑스러운 사람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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