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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첫 페이지를 읽어나갈 때부터, 미로처럼 꼬여있는 길에서 마침내 거대한 세계를 마주하게 되는 순간까지 한 시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 <1026>은 단순히 책을 읽어나가는 과정보다는 치열했던 것 같다. 경훈과 다를 바 없이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하며 사건을 풀어나가는 나의 모습을 어느새 발견할 수 있었다. 5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양의 장편소설이었지만 처음의 걱정과는 달리 술술 읽어갔다. 경훈과 그의 파트너 수연이 새로운 추리를 완성해나갈 때마다 더 빠르게 페이지를 넘겨가고 있었다. 나 또한 이 거대한 사건의 배후를 쫓아가고 있었다.
여기까지 생각하던 경훈은 갑자기 탁자를 내리쳤다. 왜 그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
“선배 왜 그래?”
그래도 한참을 더 말없이 있던 경훈이 갑자기 고함을 질렀다.
“그래, 바로 그거야! 연결이 돼, 그것까지도!”
“뭐가?”
“노벰버.”
“노벰버, 육사 11기?”
“그래. 네가 생각해냈지, 육사 11기라고.”
그리고,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마치 또 다른 세계와 마주한 느낌이었다. 손바닥보다 조금 큰, 이 책 한 권을 통해 이토록 깊은 이야기들을 풀어낼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했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나는 몰랐다. 그 이전에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1026>은 내가 발 디디고 살아가는 이 나라에서 일어났던 말도 안 되는 일들에 대해 나 몰라라 하며 살아왔던 지난 시간들에 부끄러움을 느끼게 해주었다.
경훈은 호텔을 나왔다. 하지만 발걸음을 어디로 옮겨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제껏 느끼지 못했던 미국이라는 그림자가 사방에서 옥죄어왔다. 자신이 지금까지 의미를 두어왔던 그 어떤 가치도 더 이상 진실과 부합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자 의식 자체가 무너지는 것 같았다.
…
신문의 지면을 메우는 그 많은 뉴스들도 결국은 공작의 하나라고 생각하자 갑자기 장님이 된 것 같았다.
책을 덮은 나는 마치 경훈과 같았다. 무겁고 무서운 진실이란, 때로는 우리를 더 괴롭게 만든다. 그 진실이 ‘이제와 어쩔 수 없는’ 종류의 것이라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경훈과 수연의 진실이 얼마간 고통스러울 종류의 것이라 하더라도 그 진실이 많은 이들의 죽음 위에 ‘기어코’ 피어난 것이라면 남은 이들 모두가 진실의 무게를 함께 나눠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경훈이 10․26의 거대한 배후에 가까이 다가가는 동안에 얼마나 많은 이들의 희생과 죽음이 있었나를 생각해 봐야할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소설의 극적 긴장감을 위한 장치가 아니었다. 실재하는 우리의 세계에서 실제로 희생되어야만 했던 많은 이들에 대한 지극히 사실적인 고찰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소설보다 더 극적인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입에서 천 조각이 빠져나가자 손 수사관은 쓰러진 채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누구야? 빨리 말해!”
“이, 이, 경훈…… 이경훈 변호사.”
“또?”
손 수사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진작 말했으면 아무 고통 없이 편하게 죽여주잖냐, 이 미련퉁아! 야, 이 새끼 구덩이 파고 묻어버려.”
사나이는 쓰러져 있는 손 수사관의 무감각해진 얼굴을 쳐다보며 휴대폰을 꺼내 버튼을 눌렀다.
“형님, 이 짭새 새끼가 그 서류를 이경훈이라는 변호사 놈한테 줬답니다.”
<1026>는 10․26이라는 사건 자체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사실상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그보다 강력했으리라고 짐작된다. 강력한 어떤 힘에 의해 왜곡되고 조작된 허상 위에 세워진 어설픈 애국심이 아닌, 희생을 감수하며 스스로가 밝혀낸 진실로부터 시작된 뜨거운 벅차오름은 경훈에게서 그대로 전달 받을 수 있었다.
“우리 국민은 우리의 동의 없이 미국이 일방적으로 북한을 공격했을 때 절대로 미국의 편에 서서 핏줄 간의 전쟁을 치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경훈은 더 이상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옆을 보니 수연의 얼굴도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이렇게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면, 이제껏 일방적이기만 했던 미국과의 관계도 조금씩 서로를 존중하는 대등한 관계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경훈은 기대감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대통령이 수연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힘주어 말했다.
“이것이 나의 대답입니다. 그리고 한반도의 모든 정치인들이 마음 깊숙이 간직해야 할 불문율이라고 나는 생각해요.”
<1026>이 <한반도>라는 이름으로 처음 출간될 당시는 아직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지기 전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십여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책이 많은 독자들에게 읽히고 있다는 점, 이 책이 여전히 독자들에게 또 다른 방식으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세계는 여전히 불안정한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26>은 또 어디선가 누군가의 세계에 잔잔하지만 큰 파동을 일으켰으리라 확신한다. 그렇다면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할 수 있다. 나는 그저 새로운 나의 세계를 더 견고히 만들어 가면 되는 것이다. 어떤 거대한 세력에도 왜곡되지 않을 조금 더 단단한 세계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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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잔 책은 요로코롬 생겼답니당 한 손에 쏙 들어와서 읽기 편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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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주제를 관통하는 듯한 마지막 소제목!
다들 한 번 읽어보셔요
넘나 재밌는 것ㅠㅠ
이 포스팅은 새움출판사 서포터즈 1기로 쓰는 첫 서평임을 밝힙니다!
아 그리고 요기 링크로 가시면 10•26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보실 수 있습니당 책을 더 재밌게 읽으실 수 있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