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가상의 경계에 있는 듯한 이 소설의 매력은 첫 장을 읽는 동시에 바로 확인할 수 있다. 특히나 추천하고 싶은 독서법은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먼저 읽은 후 이 책, <카뮈로부터 온 편지>를 정독하는 것이다. 어렵지 않은 문장들과 살아있는 듯한 표현들은 책을 '순식간에 정독'하게 만드는 신기한 능력을 지녔다. 평소 '정독'에 대한 약간의 강박이 있는 탓에 문장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읽어 내려가다 보면 비교적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놀랍게도 '빠르게 정독하는 것'이 가능했다. 저자가 여러번 강조하듯이 번역에 있어서는 감탄사 하나, 쉼표 하나가 매우 중요하다. 이 책도 한 글자 한 글자 놓치면 안 되는 디테일들이 가득하다. 그러나 저자의 매끄러운 문장들과 생동감 있는 묘사들은 읽는 내내 내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이유였다.

"저 둘은 남매가 아니었던 거예요."
"예?"
"당시의 무어인과 아랍인이 어떻게 한 식구가 될 수 있었겠어요? 그건 부부 사이나 가능한 것이지요. 카뮈는 그것을 보여주고 있었던 거예요. (...) 지식인인 뫼르소는 레몽이 불러주는 그녀의 이름을 듣고 그녀가 '무어 여자'라는 것을 알았고, 이후 레몽이 말한 그 오빠가 무어인이 아니라, '아랍인 사내'라는 것까지 알게 되면서, 두 남녀가 남매가 아니라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던 거지요."
"......!"
(...)
"아......!"
"아무튼 그래서 저 둘은 남매가 아니라 오히려 기둥서방과 창녀의 관계였던 거예요. 그것도 아주 질 나쁜. (...)"
"......"
강팀이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 또한 고등학교 때 읽었던 <이방인>은 너무나 어려웠고, 지루했다. 재미는 커녕 책의 전반에 깔려있었던 우울한 분위기만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러나 책 속의 책으로 다시 읽게 된 <이방인>은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다. 정말이지 감탄사 하나, 쉼표 하나에 따라 '뉘앙스'가 달라졌고, 나는 조금 더 '진심으로' 작품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책은 순식간에 읽혔다. 위에 옮겨 놓은 부분을 읽는 동안에는 정말 허겁지겁 읽어나갔다. 발문에서 김진명 작가가 말했듯이 두 개의 번역본을 비교해 나가는 것만으로도 스릴이 넘쳤고, 때론 통쾌했다.
 물론, 힘겹게 하루하루 번역 연재를 이어나가는 이 책의 주인공 이윤은 그 와중에도 끊임없이 고민한다. 정말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겉잡을 수 없는 실례를 범하고 있는 것인지, 오역된 명작을 보고 찬사를 보내는 '거짓말쟁이 어른'들이 잘못된 것인지,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던 번역에 자신이 괜한 트집을 잡고 있는 것인지. 어쩌면 그가 완전히 단단하지 않아서 더 와닿았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맹목적인 확신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서, 나는 읽는 동안 더 자주 그와 함께 고민했고, 진정한 의미의 '정의'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번역이 맞고 틀리고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문제일지도 모른다. 정말 중요한 것은 감탄사 하나에, 쉼표 하나에, 카뮈가 진심으로 담아내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그치지 않고 고민하는 우리들의 자세가 아닐까.
  마지막으로 이 책의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정체불명의 편지, 카뮈로부터 온 편지는 끊임없이 독자들의 궁금증을 자극한다. 이 미스테리한 한 통의 편지는 기어코 이윤을 <이방인> 번역에 끌어들였고, 또 다시 독자들을 이 책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편안한 길을 두고 새 길을 만들어가는 길...... 그 길에 서는 사람의 어려움과 고뇌를 봅니다. 처음, 그 후는 다들 또 당연한 듯 새 길을 뒤따라가겠지요. 응원합니다. 치열하게 걸어간 발자국 하나하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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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퓨어바디'라는 낯선 이름의 무언가는 나를 미래의 또다른 현실로 끌고갔다. 마치 나에게 끔찍한 미래를 경고해주고 있는 듯한 이 소설의 마지막은 그래도 결국 살아가야하는 어느 퓨어바디의 조소로 마무리되고 있었다. 오염된 환경과 그 속에서 날로 황폐해져가는 도시들, 지하세계에서 난민처럼 살아가는 어떤 이들과 기괴한 모양을 한 채 거리를 활보하는 이형인들, 그리고 결코 정상적이지 못한 정상인들. 이 끔찍하고 어두운 미래 세계를 결코 작가의 공상 혹은 망상이라고만은 치부할 수 없었다.

빈은 얕은 숨을 겨우 내뱉으며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침상 주위로 하나둘 이형인들이 보였다. 네 개의 팔을 가진 사람, 세 개의 눈을 가진 사람, 길게 늘어진 귀를 가진 사람, 코끼리 코를 가진 사람, 얼굴 전체가 털로 덮인 사람...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현실이었다. 너무나 당연하게 거리를 활보하는 이형인들과 그 틈에서 추악하고 탐욕스러운 욕망들을 감춘 채로 살아가는 정상인들이란 인간의 허영과 밑바닥, 그 자체였다.

물은 이미 쏟아졌고 재앙의 씨앗은 회수할 길이 없다. 연구소가 보유하고 있던 엄청난 양의 약물과 그 약물로 오염된 동물의 썩은 살과 피가 수많은 매개체를 통해 빠른 속도로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이미 그것들은 이형의 모습으로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지상의 인류는 이형인들로 바뀔 날이 머지않았다. 당신들은 당신과 당신 아내의 몸속에 변형된 생명을 맞을 마음의 준비나 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네 신문에 지금 당장 실린다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내용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수많은 오염물질을 대량으로 배출해내는 공장들이 즐비한 산업화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가까운 예로 시차도 없는 일본에서는 원전 사고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언제 태어날지 모르는 기형아들과 언제 발병하게될 지 모르는 질병들에 하루하루 불안에 떨며 살아가고 있다.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지금도 어디선가 진행되고 있는 우리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빈의 아버지는 사라지는 것들은 흔적을 남긴다고 말하곤 했다. 그리고 사라진 것들이 남기고 간 흔적은 남은 이들의 그리움이 된다. 우리는 언제나 잃고난 후에야 알게된다. 그것들이 소중한 우리의 낙원이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닫곤 한다.

이 세상의 사라진 것들과 지금도 계속 사라지고 있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건 허무하게도 끝없는 주제였다. 이를테면 유적지, 식물종, 동물종, 언어, 삼각주, 섬, 만년설, 그리고 그 밖의 다양한 사물과 현상들... 언젠가 빈은 "그런 걸 카메라에 담고 글로 남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죠?" 하고 물었다. 아버지는 턱을 어루만지며 희미한 미소로 이렇게 말했다.
"의미는 주어지는 게 아니라 만드는 거야. 그리고 말이다. 사라진 것들은 흔적을 남기고 싶어 하지. 흔적은 말을 해. 나는 그 말을 들어주기 위해 이 일을 한다. 그것이 존재했던 것들에 대한 예의라고 믿기 때문이지."

 빈의 혼란처럼 나 또한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쉽게 결론 내리지는 못하겠다. 퓨어바디들을 모두 자유롭게 놓아주어야 하는 것인지, 그래도 그들이 두 개의 눈, 한개의 코와 입, 두 팔, 두 다리의, 최소한 외적으로 정상처럼 보이는 정상인들을 생산해내는 만큼 그들을 그곳에 잡아두어야 하는지.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미 잿빛이 되어버린 도시에서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은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다는 사실이다. 정상인이라 불리는 이들조차 자신의 정체성을 확신하지 못하는 사회는 더 이상 가망이 없다. 무엇이 진실인지, 무엇이 정상적인 것인지 그들 스스로가 판단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세상은 결코 우리가 상상하는 미래가 되어서는 안 된다. 당장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나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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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대로 상징되는 유교 전통 사회에서 근대 사회로 변모하고 있는 현실을 그린 작품’

‘삼대의 삶과 가치관의 갈등을 당시 사회 현실과 함께 사실적으로 드러내는 작품’

‘염상섭의 대표적 장편소설이자 한국 가족사 소설을 대표하는 작품’

 

 그동안 한국현대소설의 대표적 작품 ‘삼대’를 수식해온 친숙한 문장들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많은 이들은 염상섭의 ‘삼대’를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심지어 줄거리, 인물관계, 특징, 문학사적 의의 등을 줄줄 꿰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책의 무게감을 직접 느끼며, 직접 책장을 넘기며, 이 책의 진가를 알아본 사람은 몇이나 있을까 싶다. 교과서에 밑줄 그으며 암기하던 바로 그 책 ‘삼대’는 실제로 처음 접하는 듯 낯선 세계였다.

 

덕기는 안마루에서 내일 가지고 갈 새 금침을 아범을 시켜서 꾸리게 하고 축대 위에 섰으려니까, 사랑에서 조부가 뒷짐을 지고 들어오며 덕기를 보고,

“얘, 누가 찾아왔나 보다. 그 누구냐? 대가리 꼴하고…….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하는 거야. 친구라고 찾아온다는 것이 왜 모두 그따위뿐이냐?”

  조의관, 조상훈, 조덕기. 이외에도 홍경애, 김병화 등 익숙한 이름들이 계속해서 등장하니 신기한 생각마저 들었다. 인물들 간의 미묘한 감정변화와 이를 섬세하게 드러내는 표현력들은 지금의 소설들과 다른 분위기를 풍기기도 했다. 인물들의 관계가 매우 복잡하고 한편으로는 부도덕하게 얽혀있다고 생각했던 이전과는 달리, 700페이지 내내 이들의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니 신기하게도 이들의 감정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되는 색다른 경험을 했다.

  불륜과 첩, 며느리보다 젊은 시어머니, 아들의 동창에게 사랑을 느끼는 아버지 등 파격적인 설정들이 가득한 이 소설은 다소 충격적이었지만 소설 속에는 교과서에서나 배우던 딱딱하고 지루한 인물들 대신 역동적이고 열정적인 인물들이 가득했다.

 

“그럼 늦기 전에 어서 가우. 그리고 공연한 생각 말고 잘 다니면 차차…….”

하고 상훈이는 말을 얼버무려뜨리며 헤어지려는 눈치더니 다시 발을 아래로 떼어 놓으며 어두워서 호젓할 테니 데려다주마고 한다. 경애는 싫다고 하였으나 역시 따라설 수밖에 없었다.

“성가시고 괴롭기는 피차일반이오.”

상훈이는 애수에 잠긴 목소리를 가라앉혀서 이런 소리를 하다가 자기의 감정을 좀 더 분명히 표시하고 싶어서 다시 말을 잇는다.

“남이 들으면 웃을지 모르지만, 사십이나 된 놈이 나이 아깝다고 욕을 할지 모르지만, 아직 이십 때의 생각, 내 자식 보기가 부끄럽고 경애 양에게 눈치를 보일까 봐 부끄러운 그러한 10년 전 20년 전의 정열과 얼마나 싸웠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오.”

기어코 이런 소리를 하고야 말았다.

 

  가장 특이한 것은 결말이었다. 모든 사건이 마무리 되고 이제 ‘끝’이라는 느낌을 주는 결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마지막 장의 <끝>이라는 문구가 오히려 의심스러웠다. ‘삼대’는 계속되고 있었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쯤의 식상한 결말이 아니었다. 책을 다 읽은 후에도 마치 끝나지 않은 미완성의 글을 읽은 것처럼 여운이 남았고, 그만큼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책인 듯싶다.

 

시체를 침대차로 옮겨 오니 안면 있는 형사들이 호위하듯이 따라왔다. 병원에서 미리 약속이 있어서 기별을 해준 모양 같다.

덕기가 경찰부 소식을 물으니까 부친의 사건과 서조모 들의 사건은 불원간 검사국으로 넘어가게 되겠지만 김병화 사건은 폭탄의 출처 때문에 아직도 끌리리라는 말눈치였다. 폭탄은 실험해 본 결과 놀랄 만한 위력을 가진 것인데 외국에서 들어온 것 같지 않은 특수성을 띤 것이 더욱 의문이라 한다.

 

  700페이지가 넘는 장편 중의 장편이었지만 가독성이 좋은 페이지 구성 덕에 읽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한 페이지 가득 빽빽하게 들어찬 글자들에 취약한 나로서는 이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또 부자연스러운 일부 표현들은 수정되었으며, 현재 잘 쓰이지 않는 우리말이나 한자어 등이 아래에 간략한 설명으로 붙어있어 더 구석구석 꼼꼼히 곱씹을 수 있었다.

  처음으로 아주 세련된 고전을 마주한 것 같아 기분 좋은 날이다. 어제를 살아가던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지금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대답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고전만이 줄 수 있는 행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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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양을 그려 본 적이 없었으므로 그에게 내가 그릴 수 있었던 두 개의 그림 가운데 하나를 그려 주었다. 그것은 보아뱀의 바깥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어린 친구가 내게 대답한 것을 듣고 놀랐다.
"아녜요! 아녜요! 나는 보아뱀 안의 코끼리를 원한 게 아니에요. 보아뱀은 매우 위험하고, 코끼리는 신경 쓰여요. 내가 사는 곳은 모든 것이 매우 작아요. 내가 필요한 것은 양이에요. 내게 양 한 마리만 그려 주세요."

 언젠가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는, 나 또한 저 그림을 보고 저것이 모자가 아닌 보아뱀 속의 코끼리라는 것을 단 번에 알아맞힐 수 있었을까. <어린 왕자>가 가지는 가장 큰 매력은 아마 내 안의 아이를 아주 오랜만에 마주할 수 있게끔 해준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나에게 당연한 '모자'를 전혀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여기며, 나에게 당연하지 않은 '보아뱀 속의 코끼리'를 아주 당연하게 여기는 어린왕자의 모습이 나에게는 커다란 파격으로 다가왔다. 나도 다를 바 없이 어느새 아이의 언어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니 슬퍼졌다.

아! 어린 왕자여, 나는 차츰차츰 조금은 쓸쓸한 네 인생을 이해하게 되었다. 오랫동안 너는 석양을 바라보는 그 감미로운 즐거움에서 유일한 유희를 찾곤 했었지. 네가 내게 말했던 넷째 날 아침에 나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석양을 무척 좋아해요. 가요, 우리 해 지는 걸 보러 가요."
(...)
"어느 날은 석양을 마흔네 번이나 봤어요!"
그리고 조금 후에 너는 덧붙였다.
"당신 아세요... 너무 슬퍼질 때도 석양을 사랑하게 된다는 걸..."
"마흔네 번 석양이 있던 그날은 그렇게 슬펐던 거니?"
그러나 어린 왕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늘 밝고 낙천적이던 어린왕자가 자신의 슬픔에 대해 처음으로 입을 열던 때이다. 슬픔에 잠긴 그는 의자를 몇 걸음씩 당겨놓으며 하루 종일 마흔네 번의 석양을 봄으로써 슬픔을 씻어낸다. 슬픔을 애써 떨쳐내려 애쓰지 않아도, 빛나는 저녁 하늘을 바라보는 일만으로도 슬픔을 위로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누구보다 아름다운 방식으로 슬픔을 맞이한다. 슬픔 또한 내 안에 존재하는 자연스러운 감정의 하나로 받아들이며, 이를 자연으로 치유하는 어린왕자의 모습에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단지 길들인 것들만 이해할 수 있단다." 여우가 말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어떤 것도 알 시간이 없어. 그들은 가게에서 전부 준비된 것을 사. 그러나 어디에도 친구를 취급하는 가게는 없어. 사람들은 더 이상 친구를 가질 수 없는 거야. 만약 네가 친구를 원한다면, 나를 길들이렴!"

 <어린왕자>는 '길들이다'에 대해 아주 독특한 정의를 내리고 있다. 누군가에게 길들여진다는 것은 서로에게 '단 하나'의 존재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장미정원에 수백 송이의 장미가 피어있더라도 서로에게 길들여지지 않았다면 그들은 아무 의미도 지니지 않게 되는 것이다. 어린왕자와 여우가 그렇듯이, 비행기 조종사가 그렇듯이 그들은 서로에게 길들여진 존재들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어린왕자의 별에 피어난 꽃 한 송이가 그러하다. 그 꽃은 어린 왕자의 자아이다.
 누구나 자기 안에 조그만 별을 띄우고 살아간다. 그 별에는 꽃이 한 송이 피어있을 것이고, 인생은 그 한 송이의 길들여진 장미꽃을 잘 가꾸며 살아가는 과정이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한다. 어린왕자가 말했듯이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믿는 것은 결국 모든 곳에 존재한다. 그리고 기어코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내 비밀은 말이야. 그것은 아주 단순한 거야. 오직 마음으로 봐야 잘 볼 수 있단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어린 왕자는 그것을 기억해 두기 위해 되풀이했다.
(...)
"네가 길들인 것은 영원히 네 책임이 되는 거야. 너는 네 장미에 대해 책임이 있어..."
"나는 내 장미에 대해 책임이 있다..." 어린 왕자는 그것을 기억해 두기 위해 되풀이했다.

 

 

 


 

 

요 링크를 따라가시면 새롭게 번역된 <어린왕자>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들을 읽어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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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첫 페이지를 읽어나갈 때부터, 미로처럼 꼬여있는 길에서 마침내 거대한 세계를 마주하게 되는 순간까지 한 시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 <1026>은 단순히 책을 읽어나가는 과정보다는 치열했던 것 같다. 경훈과 다를 바 없이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하며 사건을 풀어나가는 나의 모습을 어느새 발견할 수 있었다. 5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양의 장편소설이었지만 처음의 걱정과는 달리 술술 읽어갔다. 경훈과 그의 파트너 수연이 새로운 추리를 완성해나갈 때마다 더 빠르게 페이지를 넘겨가고 있었다. 나 또한 이 거대한 사건의 배후를 쫓아가고 있었다. 

 

여기까지 생각하던 경훈은 갑자기 탁자를 내리쳤다. 왜 그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선배 왜 그래?”

그래도 한참을 더 말없이 있던 경훈이 갑자기 고함을 질렀다.

“그래, 바로 그거야! 연결이 돼, 그것까지도!”

“뭐가?”

“노벰버.”

“노벰버, 육사 11기?”

“그래. 네가 생각해냈지, 육사 11기라고.”

 

그리고,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마치 또 다른 세계와 마주한 느낌이었다. 손바닥보다 조금 큰, 이 책 한 권을 통해 이토록 깊은 이야기들을 풀어낼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했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나는 몰랐다. 그 이전에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1026>은 내가 발 디디고 살아가는 이 나라에서 일어났던 말도 안 되는 일들에 대해 나 몰라라 하며 살아왔던 지난 시간들에 부끄러움을 느끼게 해주었다.

 

경훈은 호텔을 나왔다. 하지만 발걸음을 어디로 옮겨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제껏 느끼지 못했던 미국이라는 그림자가 사방에서 옥죄어왔다. 자신이 지금까지 의미를 두어왔던 그 어떤 가치도 더 이상 진실과 부합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자 의식 자체가 무너지는 것 같았다.

신문의 지면을 메우는 그 많은 뉴스들도 결국은 공작의 하나라고 생각하자 갑자기 장님이 된 것 같았다.

 

책을 덮은 나는 마치 경훈과 같았다. 무겁고 무서운 진실이란, 때로는 우리를 더 괴롭게 만든다. 그 진실이 ‘이제와 어쩔 수 없는’ 종류의 것이라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경훈과 수연의 진실이 얼마간 고통스러울 종류의 것이라 하더라도 그 진실이 많은 이들의 죽음 위에 ‘기어코’ 피어난 것이라면 남은 이들 모두가 진실의 무게를 함께 나눠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경훈이 10․26의 거대한 배후에 가까이 다가가는 동안에 얼마나 많은 이들의 희생과 죽음이 있었나를 생각해 봐야할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소설의 극적 긴장감을 위한 장치가 아니었다. 실재하는 우리의 세계에서 실제로 희생되어야만 했던 많은 이들에 대한 지극히 사실적인 고찰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소설보다 더 극적인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입에서 천 조각이 빠져나가자 손 수사관은 쓰러진 채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누구야? 빨리 말해!”

“이, 이, 경훈…… 이경훈 변호사.”

“또?”

손 수사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진작 말했으면 아무 고통 없이 편하게 죽여주잖냐, 이 미련퉁아! 야, 이 새끼 구덩이 파고 묻어버려.”

사나이는 쓰러져 있는 손 수사관의 무감각해진 얼굴을 쳐다보며 휴대폰을 꺼내 버튼을 눌렀다.

“형님, 이 짭새 새끼가 그 서류를 이경훈이라는 변호사 놈한테 줬답니다.”

 

<1026>는 10․26이라는 사건 자체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사실상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그보다 강력했으리라고 짐작된다. 강력한 어떤 힘에 의해 왜곡되고 조작된 허상 위에 세워진 어설픈 애국심이 아닌, 희생을 감수하며 스스로가 밝혀낸 진실로부터 시작된 뜨거운 벅차오름은 경훈에게서 그대로 전달 받을 수 있었다.

“우리 국민은 우리의 동의 없이 미국이 일방적으로 북한을 공격했을 때 절대로 미국의 편에 서서 핏줄 간의 전쟁을 치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경훈은 더 이상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옆을 보니 수연의 얼굴도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이렇게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면, 이제껏 일방적이기만 했던 미국과의 관계도 조금씩 서로를 존중하는 대등한 관계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경훈은 기대감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대통령이 수연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힘주어 말했다.

“이것이 나의 대답입니다. 그리고 한반도의 모든 정치인들이 마음 깊숙이 간직해야 할 불문율이라고 나는 생각해요.”

 

<1026>이 <한반도>라는 이름으로 처음 출간될 당시는 아직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지기 전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십여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책이 많은 독자들에게 읽히고 있다는 점, 이 책이 여전히 독자들에게 또 다른 방식으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세계는 여전히 불안정한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26>은 또 어디선가 누군가의 세계에 잔잔하지만 큰 파동을 일으켰으리라 확신한다. 그렇다면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할 수 있다. 나는 그저 새로운 나의 세계를 더 견고히 만들어 가면 되는 것이다. 어떤 거대한 세력에도 왜곡되지 않을 조금 더 단단한 세계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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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잔 책은 요로코롬 생겼답니당 한 손에 쏙 들어와서 읽기 편해요!

책의 주제를 관통하는 듯한 마지막 소제목!
다들 한 번 읽어보셔요
넘나 재밌는 것ㅠㅠ

이 포스팅은 새움출판사 서포터즈 1기로 쓰는 첫 서평임을 밝힙니다!
아 그리고 요기 링크로 가시면 10•26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보실 수 있습니당 책을 더 재밌게 읽으실 수 있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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