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양을 그려 본 적이 없었으므로 그에게 내가 그릴 수 있었던 두 개의 그림 가운데 하나를 그려 주었다. 그것은 보아뱀의 바깥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어린 친구가 내게 대답한 것을 듣고 놀랐다.
"아녜요! 아녜요! 나는 보아뱀 안의 코끼리를 원한 게 아니에요. 보아뱀은 매우 위험하고, 코끼리는 신경 쓰여요. 내가 사는 곳은 모든 것이 매우 작아요. 내가 필요한 것은 양이에요. 내게 양 한 마리만 그려 주세요."

 언젠가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는, 나 또한 저 그림을 보고 저것이 모자가 아닌 보아뱀 속의 코끼리라는 것을 단 번에 알아맞힐 수 있었을까. <어린 왕자>가 가지는 가장 큰 매력은 아마 내 안의 아이를 아주 오랜만에 마주할 수 있게끔 해준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나에게 당연한 '모자'를 전혀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여기며, 나에게 당연하지 않은 '보아뱀 속의 코끼리'를 아주 당연하게 여기는 어린왕자의 모습이 나에게는 커다란 파격으로 다가왔다. 나도 다를 바 없이 어느새 아이의 언어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니 슬퍼졌다.

아! 어린 왕자여, 나는 차츰차츰 조금은 쓸쓸한 네 인생을 이해하게 되었다. 오랫동안 너는 석양을 바라보는 그 감미로운 즐거움에서 유일한 유희를 찾곤 했었지. 네가 내게 말했던 넷째 날 아침에 나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석양을 무척 좋아해요. 가요, 우리 해 지는 걸 보러 가요."
(...)
"어느 날은 석양을 마흔네 번이나 봤어요!"
그리고 조금 후에 너는 덧붙였다.
"당신 아세요... 너무 슬퍼질 때도 석양을 사랑하게 된다는 걸..."
"마흔네 번 석양이 있던 그날은 그렇게 슬펐던 거니?"
그러나 어린 왕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늘 밝고 낙천적이던 어린왕자가 자신의 슬픔에 대해 처음으로 입을 열던 때이다. 슬픔에 잠긴 그는 의자를 몇 걸음씩 당겨놓으며 하루 종일 마흔네 번의 석양을 봄으로써 슬픔을 씻어낸다. 슬픔을 애써 떨쳐내려 애쓰지 않아도, 빛나는 저녁 하늘을 바라보는 일만으로도 슬픔을 위로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누구보다 아름다운 방식으로 슬픔을 맞이한다. 슬픔 또한 내 안에 존재하는 자연스러운 감정의 하나로 받아들이며, 이를 자연으로 치유하는 어린왕자의 모습에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단지 길들인 것들만 이해할 수 있단다." 여우가 말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어떤 것도 알 시간이 없어. 그들은 가게에서 전부 준비된 것을 사. 그러나 어디에도 친구를 취급하는 가게는 없어. 사람들은 더 이상 친구를 가질 수 없는 거야. 만약 네가 친구를 원한다면, 나를 길들이렴!"

 <어린왕자>는 '길들이다'에 대해 아주 독특한 정의를 내리고 있다. 누군가에게 길들여진다는 것은 서로에게 '단 하나'의 존재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장미정원에 수백 송이의 장미가 피어있더라도 서로에게 길들여지지 않았다면 그들은 아무 의미도 지니지 않게 되는 것이다. 어린왕자와 여우가 그렇듯이, 비행기 조종사가 그렇듯이 그들은 서로에게 길들여진 존재들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어린왕자의 별에 피어난 꽃 한 송이가 그러하다. 그 꽃은 어린 왕자의 자아이다.
 누구나 자기 안에 조그만 별을 띄우고 살아간다. 그 별에는 꽃이 한 송이 피어있을 것이고, 인생은 그 한 송이의 길들여진 장미꽃을 잘 가꾸며 살아가는 과정이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한다. 어린왕자가 말했듯이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믿는 것은 결국 모든 곳에 존재한다. 그리고 기어코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내 비밀은 말이야. 그것은 아주 단순한 거야. 오직 마음으로 봐야 잘 볼 수 있단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어린 왕자는 그것을 기억해 두기 위해 되풀이했다.
(...)
"네가 길들인 것은 영원히 네 책임이 되는 거야. 너는 네 장미에 대해 책임이 있어..."
"나는 내 장미에 대해 책임이 있다..." 어린 왕자는 그것을 기억해 두기 위해 되풀이했다.

 

 

 


 

 

요 링크를 따라가시면 새롭게 번역된 <어린왕자>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들을 읽어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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