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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 등 뒤에는 보이지 않는 끈들이 이어져 있네. 그 끈들을 아름답게 가꾸는 일이 인생의 전부라네. …정말 그게 전부라네.”

“무슨 거창한 끈이기에 인생의 전부라 단언하시는 겁니까?”

“관계”

 

나는 어려서부터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일을 즐거워했다. 외동딸인 데다가 부모님 모두 맞벌이를 하셨던 덕에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다보니 나는 자연스럽게 친구관계 맺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 외향적이지 않은 성격에 부끄럼도 많이 타고, 앞에 나서는 일에 대한 거부감도 많은 성격이었지만 이상하게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서툴지 않았던 것 같다. 참 신기한 일이었다.

때문에 처음 이 책의 주인공인 신을 마주했을 때, 나는 그가 나와는 정반대의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는 냉철하고, 이성적인 사람이었으며 혼자 살아가는 삶에 대해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간의 ‘관계’를 부질없는 것이라 여기며 그 필요성을 전혀 모르는 사람, 정말 나와는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고 여겨졌다. 그러나 그가 조이사를 만나 변해가는 과정을 함께 지켜보며 나도 어쩌면 그 동안 신과 같은 삶을 살아온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는 나름대로 인연의 끈을 잘 가꾸며 살아왔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저 ‘많은’ 끈을 등 뒤에 달고 살아가느라 조금 벅찼을 수도 있겠다.

 

“인간을 좋아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물론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네. 하지만 인간으로서는 성공할 수 있지.”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코 끝이 찡했다. 신은 가슴에서 북받치는 뜨거운 무언가를 느꼈다. 그것은 작은 호의에 대한 인사말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직도 세상에 남아 있어준 바보들에 대한 고마움이었다. 신은 1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말을 잊을 수 없었다. 고맙습니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나는 정말 진정으로 인간을 좋아하며 관계를 맺어가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또 신처럼 누군가로부터 북받치는 뜨거운 무언가를 느낀 적이 있었나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만 명의 인맥보다 한 명의 친구를 가져라”

 

인생의 성공을 위해 달아놓은 등 뒤의 끈들은 언젠가 나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잡아두는 무거운 밧줄이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바람에 자유롭게 흔들리면서도 끊어지지 않을 소박한 몇 개의 끈을 달고 살아가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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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병이란 근본적으로 무엇이고 치료할 수 있는 종류의 병인가, 치료할 수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 치료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사실 이 책은 이런 심오한 종류의 질문들과 어울리지 않는다. 에피소드 형식으로 이루어진 이 책의 주인공들은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는 ‘불행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공중그네>는 그들을 믿기지 않을 만큼 유쾌하게 그리고 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는 순간 깨달은 바가 있다면, 살아가는 동안 심오하게 느껴지는 모든 것들은 ‘무겁게 생각하는 습관’과도 같다는 것이었다. 진실만을 말하고, 진중하게만 생각하고자 하며, 최선의 선택만을 하는 것. 작가는 어쩌면 그 해결책으로 ‘이라부처럼 생각하기’를 제시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살아가는 동안 모든 것들에 대해 좀 더 가볍게 생각해보는 것.

 

“얏호~!” 이라부가 천진난만하게 스윙을 했다.

고헤이는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예전에 번지점프 이벤트를 주최한 적이 있는데, 열이면 열, 좀처럼 뛰어내리질 못했다. “뛰어내려도 돼요?”라고 짜증이 날 만큼 되묻곤 했다. 이라부에게는 그런 면이 없다.

이 얼마나 결단력 있는 사람인가. 대개는 주저하게 마련이다.

 

이 얼마나 결단력 있는 사람인가. 나는 이 대목에서 작가가 이라부를 통해 해주고 싶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보다 확실하게 알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라부가 단순히 ‘결단력 있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미리 겁먹지 않는 사람이다. 어찌 보면 단순하게 생각하는 사람이고, 낙천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자신을 굳게 믿는 사람이기도 하고, 자기애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때문에 이라부를 찾아온 사람들은 그를 보며 자신들도 모르는 새에 치유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나 또한 이 책을 읽는 몇 시간만큼은 이라부가 되어 생각해볼 수 있었고, 책을 다 읽어갈 무렵에는 치유 받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소설 속 이라부는 뚱뚱하고 별 볼 일 없는 어느 작은 병원의 돌팔이에 불과하지만 어느새 나는 그를 동경하게 된 느낌이었다. 누구에게라도 이라부처럼 살아가는 삶은 매력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이라부처럼 살고 싶지만 살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공중그네>를 통해 대리만족하며 치유 받고 있다는 사실은 씁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를 통해 공중그네에서 결단력 있게 뛰어내릴 수 있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많아진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수확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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