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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예수
엔도 슈사쿠 지음, 이평아 옮김 / 로만 / 2023년 2월
평점 :
P. 90
호숫가의 마을들은 작고 비참했지만, 예수에게 그것은 모든 세계였습니다. 그는 이 세상 모든 인간의 슬픔 하나하나가 자신의 어깨를 짓누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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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빛나고 반짝이는 삶이 아닙니다. 어려움과 고통이 매일 새롭게 눈 앞에 펼쳐집니다.
관계는 늘 어렵고, 그 안에서 맴도는 시간은 외롭게 흘러갑니다.
내 얘기 같은 이 삶은, 믿기 어렵겠지만 예수의 삶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예수를 유다교를 개혁할 인물이라고 여겼습니다.
자신들의 일방적인 꿈을 예수에게 투영한 것입니다.
기대에 어긋한 예언자, 무력한 사람,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이미지에 차츰 군중들은 분노합니다.
현실적인 기대를 채워 줄 수 없을 때, 사람들이 얼마나 격하게 노여워했는지 예수는 모두 보았고, 성경은 여러 장면을 통해 우리에게도 전합니다.
예수는 인간의 배신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잡히시던 날 밤, 숨고 도망친 제자들처럼 지금도 우리는 자주 숨고, 도망을 치고 모른 척 합니다.
엔도 슈사쿠의 <나의 예수>는 그럼에도 사랑을 주고, 사랑을 하는 예수님을 조명합니다.
온갖 무기력한 상황에서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우리에게 실망하고 배신도 당하지만, 앞으로도 그럴 것임을 알지만 사랑을 조금도 접지 않으시는 예수님, 진실로 포기하지 않으시는 예수님.
엔도 슈사쿠는 굉장히 다정한 소설가입니다. 성경말씀을 통해 그 시대의 배경, 주변 환경을 설명할 때 독자가 조금이라도 어려워하고 지루해할까 염려하며 설명을 합니다.
저는 예수를 배신한 유다의 심정을 서술한 부분에서 소설가다운 그의 면모가 잘 드러난다고 생각하는데요, 은돈 서른 닢에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의 일그러진 얼굴, 돈을 꽉 움켜쥔 표정과 자신을 탓하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머뭇거리며 손가락을 옷자락에 댄 그 짧은 순간 그녀의 모든 괴로움을 이해한 예수의 섬세한 감수성, 하혈하는 여인이나 나병환자, 혹은 창녀들이 어떤 표정과 어떤 슬픔 눈빛으로 예수를 바라보았는지 우리도 상상하게 합니다.
이처럼 <나의 예수>는 성경 구절이라는 ‘글자’에 갇혀 독자들이 놓치는 부분을 재조명합니다.
인물과 상황, 당시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여 성경을 읽는 이들이 장면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도와줍니다.
엔도 슈사쿠의 표현대로, 예수는 서민이었습니다.
노동자의 땀 냄새와 그들의 비참하고 가난한 삶을 몸소 겪으며 회당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구약의 여러 책을 읽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흔한 이름을 가진 채, 다른 사람들과 다름없이 평범한 일상을 보냈습니다.
예수를 통해 우리가 늘 마주하는 ‘평범함’을 살아가게 합니다.
평범한 하루 안에 주어지는 하느님의 사랑을 발견하길,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의 사랑을 찾고, 느끼고, 살아가며 결국 예수를 닮아가길.
그리하여 그처럼 우리 또한 ‘나의 예수’를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랐던 그의 신앙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아, 저의 예수님은 <프로 숨바꼭질러>이십니다.
가끔 툭 삐져나온 머리카락 한 톨에 금방 들키시는 날도 있고, 제 등 뒤로 숨으시는 날도 있어서 찾는 데에 하루가 다 지나는 때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가톨릭출판사 @catholic_book 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