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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 골드만 - 사랑, 자유, 그리고 불멸의 아나키스트
캔데이스 포크 지음, 이혜선 옮김 / 한얼미디어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언젠가, 엠마 골드만의 저서 <저주받은 아나키즘>을 읽고, 세상을 바라보는 내 눈에 변화가 생겼음을 깨달았다. 입대가 곧 현실이었던 스물 두살 때의 일이다. 당시에는 엠마 골드만이 하는 얘기를 전부 이해하지는 못 했지만 적어도 강요와 부조리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여성의 성의 쾌락을 억압하는 이상 교회 역시 나의 적이다!"
세상에, 절대 선의 매카인 교회에 폭탄을 퍼붓다니! 나는 비로소 <의심 하는 버릇>이 삶을 제대로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방식이란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이 부조리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맞서 싸울 줄 알아야 한다는 것도.
엠마 골드만의 힌트로 인해 나는 나의 정체성을 알아가는 데 물꼬를 터 갔던 것 같다. 그리고 틈이 날 때마다 엠마 골드만의 새로운 저서가 나와주실 바랬다. 간신히 7년 만에 나온 책이 바로 요것. 엠마 골드만의 평전이다.
냉큼 구입했다. 긴 서문을 읽어 보고 저자의 글쓰기 능력과 목 넘김이 부드러운 번역이 가져다 줄 환상에 대해 나는 금세 흥분해 버렸다. "또 다시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겠어!"
엠마 골드만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 얘기를 간신히 넘기고(뭐, 대부분 평전이 그렇다), 이제 본격적으로 그녀가 뉴욕에서 활약할 단락에 근접했다. 그런데 이때부터 나의 의도와는 다른, 전혀 엉뚱한 한 인물이 나타난다. 엠마 골드만의 애인인 '벤'이다. 긴 서문에 지나가 듯 벤에 대한 언급이 떠올랐다. 자칫 엠마의 위상에 상처를 줄 수 있겠으나 자신은 엠마와 벤과의 사이게 정치적 결단에 영향을 줬다고 생각한다는 투의 말이었다.
알고보니 이 책은 엠마 골드만의 현장의 목소리 보다는 치정 관계에 얽힌 얘기에 거의 모든 비중을 싣고 있었다. 그의 모습을 이해하는데 또 다른 단면이라곤 해도, 기껏 치정에 얽힌 엠마의 얘기 따위에 귀를 기울이고 싶은 마음은 없었는데... 그것도 어찌나 구질구질한 지.. 엠마 골드만에 대한 애정과 서술 방향의 실망이 교차하면서 몇 번이고 책을 읽다 던져 버리곤 했다.
그래, 저자의 말대로 엠마 골드만을 이해하는 한 단면이라고 하자. 그래도 그것이 강연회에 저술에서 엠마 직접적으로 내맽은 말들 보다 더 직접적일까? 당당이 아나키스트로서 이름을 날린 엠마 골드만을 굳이 사생활과 치정 관계의 시각으로 그녀를 이해할 필요가 있을까?
차라리 그녀의 자서전이나 어록이 번역이 됐었더라면.. 끔찍하게 재미없는 멜로 드라마(그런 정도의 수준이나 될까?) 보다는 좋았을 텐데... 강한 아쉬움이 든다. 그리고 결국 정치사적으로도, 한 인물의 위인전으로서도 독자의 만족 시키지 못한 이 책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부디 이번 기회로 제대로 된 엠마 골드만의 저서가 번역 돼 나오길 바라는 심정이다.
아무튼 나는 이것이 엠마 골드만을 이해하기 위한 모든 과정의 결과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작일 뿐이다. 다음에는 현장에서 일어났던, 좀더 현장감 넘치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길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