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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검추풍초
후지사와 슈헤이 지음, 안윤선 옮김 / 신원문화사 / 2008년 1월
평점 :
우리나라에서는 낯선 후지사와 슈헤이라는 작가의 단편집이다.
이 책은 감히 만점을 준다.
후지사와 슈헤이는 조금 독특하다. 그는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무라이 소설만을 써왔다. 때문에 나는 그가 단지 검호소설 작가가 아닐까? 하는 선입관이 있었다. <비검추풍초>가 나오기 전까지 그만큼 그의 소설은 좀처럼 국내에 번역된 적이 없었고, 나는 무지했다.
이 책을 읽고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그가 만든 주인공들 하나하나가 모두 살아 숨쉬듯 생생했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가만가만 그들의 얼굴을 그려 본다. 정말이지 눈 앞에서 그들과 마주한 것처럼 나는 온전히 얼굴들을 떠올릴 수 있다. 하나같이 절박함이 묻어있는 주인공들. 나는 그들을 품에 안고서 밤새 그들의 얘기에 귀 기울인다.
그의 소설을 읽기 전, 나는 왜 착한 주인공들을 늘 악당에게 당하고 마는 걸까? 하는 의구심을 품은 적이 있다. "그야 이야기를 끌어가기 위해선 사건이 필요하기 때문이지. 나중엔 보상 받잖아?" 하지만 슈헤이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삶과 운명에 순응하기 보다, 보란 듯이 자신의 검으로 그것을 갈라 보인다. 바로 그런 장면에서 나는 매번 벅차 오르는 설렘을 느꼈다. 살아있다! 너무도 처절하게!
침착한 글의 분위기도 좋다. 그들을 부조리한 삶으로 몰아넣는 힘은 너무나 거대해서, 쉽게 넘어설 수 없다. 주인공들은 현실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는 지독한 고독을 맛본다. 삶이 그렇다. 그래서 마지막 검은 더더욱 생명력을 발휘한다. 나의 간절함과 함께.
그의 소설이 더이상 국내에 번역되고 있지 않아 유감천만이다. <비검추풍초>가 좀더 선전을 했더라면... 일개 무협소설처럼 보이지 않게 출판사에서 좀더 신경을 써줬더라면... 나의 삶도 날로 번역되어 시판되는 슈헤이의 책과 함께 풍요로워지지 않았을까?
아쉬운 마음을 야마다 요지 감독의 영화로 달랜다. 그의 영화 사무라이 3부작은 사실 슈헤이의 단편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즉, <황혼의 사무라이>, <숨겨진 검, 오니노츠메 >, 기무라 타쿠야가 주연으로 나온 <무사의 체통> 등이 그것이다. 원작의 분위기가 정말 잘 표현되어 있다. 영화로서의 완성도도 높다. 함께 추천해주고 싶다.
마지막으로 영화 세 편의 원작 모두 <비검추풍초>에 실려있다.
그의 소설들이 좀더 번역, 출판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