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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어증 환자
계영수 지음 / 미다스북스 / 2025년 11월
평점 :
계영수 작가의 [실어증 환자]
계영수 작가는 서문에서 [실어증 환자]가 1980년대 민주화 혁명이 남긴 미완의 과제를 이민 가족의 서사로 풀어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나는 소설 속 인물들의 모습을 비단 특정 시대의 산물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지 의문을 품게 되었다. 시대와 국경을 넘어 욕망을 좇는 인간의 민낯은 역사 속에서 이미 익숙하게 반복되어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작가가 20세기 말에서 21세기 초라는 특정 기간을 소설의 배경으로 삼은 이유는, 그 시대가 보여준 극단적인 사회적 쏠림 현상이 인간의 욕망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급격한 정치적 변화와 경제적 성장, 그리고 그 과정에서 벌어진 권력과 부의 격차는 사람들 사이에서 삶의 방식과 가치의 차이를 크게 벌려 놓았다. 이러한 차이는 결국 서로의 세계를 이해하려는 최소한의 언어마저 붕괴시키며 인간 사이의 소통을 무너뜨렸다.
여기서 작품의 제목인 ‘실어증’은 단순한 의학적 해석을 넘어선다. 의학에서의 실어증이 표현 능력의 상실을 의미한다면, 소설에서의 실어증은 상대의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지 못하는 하나의 사회적 상태를 가리킨다. 계영수 작가는 이렇게 허공을 떠도는 목소리들에 주목한다. 그리고 무엇이, 왜 그들의 목소리를 지워버렸는지를 탐구한다.
인간은 각자 고유한 삶의 자리에서 '나'라는 세계를 살아간다. 즉,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은 언제나 특정한 환경과 관계 속에서 형성되며, 그 경험은 개인의 사고와 행동, 그리고 언어의 영역에서 일정한 패턴을 갖는다. 그리고 이러한 패턴은 관계 속에서 한 사람의 입장이 되고, 입장은 개인의 일상으로 굳어진다. 저자는 이처럼 개인이 안정된 삶 속에서 마땅히 누려야 한다고 느끼는 이것을 '일상성'이라고 규정했는데, 문제는 이 일상성이 언제나 균형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많은 경우 그것은 오히려 특정한 쏠림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상태에 가깝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온 방식과 가치를 보편적인 것이라고 믿고, 그것을 자신의 삶을 지탱하는 기본적인 조건으로 인식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그 질서가 침범받는 순간 그것은 단순한 의견 차이가 아니라 생존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된다. 이때, 타인의 생각은 더 이상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경계 대상으로 바뀌며, 소통은 단지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한 도구로 전락한다.
강장군(제너럴 캉)의 삶은 바로 이러한 일상성의 단면을 보여준다. 그에게 자신의 방식은 장시간 축적해 온 안정된 질서이지만, 그것은 가족 구성원의 삶을 끊임없이 침범하고 통제하며, 관계를 무너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에게는 합리적인 선택이 역설적으로 다른 이들에게 소통을 가로막는 장벽이 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작품의 제목인 실어증은 하나의 은유로 그 의미가 더욱 분명해진다. 사람들은 여전히 말을 하고 있지만 서로의 말을 듣지 않는다. 혹은 듣고는 있지만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말하지만 듣지 않는 상태, 듣지만 이해하려 하지 않는 상태.'
소설 속에 등장하는 회사와 노조, 독재 정권과 민중, 가족 간에 이어지는 침묵의 관계는 모두 이러한 '실어증'의 상태에 놓여 있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이 사회적 존재라는 근원적 명제와 정확히 배치된다. 즉, 우리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타인의 반응과 시선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고,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이해한다. 그러나 소통이 끊어진 세계에서 타인은 더 이상 나를 비추는 존재가 되지 못하고, 개인은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상실한다. 같은 의미에서 강장군이 마지막까지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은 이 단절의 상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이 소설이 단지 단절의 세계만을 보여주려는 것은 아니다. 작품 속에는 여전히 끊어진 관계를 회복하려는 움직임이 남아 있다. 그 중심에는 바로 강진희가 있다. 강장군이 자신의 생각을 절대적 기준으로 여기며 타인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 인물이라면, 강진희는 관계를 잇는 존재로 등장한다. 그녀는 서로 다른 입장 사이를 오가며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단절된 관계를 다시 연결하려 노력한다. 이러한 모습은 강진희가 단순히 캐릭터를 넘어 소통의 가능성과 필요성을 부각시키는 상징적 인물임을 드러낸다. 다시 말해, 저자는 인간에게 소통이란 삶의 방식이자 행복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강진희의 삶을 통해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김상만이 평택 트리오를 만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되는 순간이나, 서진애가 고립된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누군가에게 연락을 시도하는 장면 역시 인간이 타인을 통해 비로서 자신을 발견하는 역설적 존재임을 드러낸다.
인간은 홀로 세계를 완성할 수 없다. 우리는 서로의 생각을 교환하고 각자의 입장을 마주하며 살아가는 존재이다. 이러한 상호작용은 단순한 관계의 생성을 넘어 하나의 집단적 사고를 형성한다. 즉,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집단을 만들고, 그 집단은 자신들만의 가치와 세계관을 공유한다. 우리가 흔히 집단지성이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이러한 과정 속에서 생겨난다. 개인과 개인 사이의 소통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것은 단순한 의견 교환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사고 흐름을 만들어가는 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서로 다른 입장은 언제나 충돌한다. 다양한 가치와 이해관계가 얽힌 사회는 본질적으로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충돌은 때로 예측할 수 없는 갈등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동시에 그 충돌은 새로운 사고가 탄생하는 토양이 되기도 한다. 서로 다른 생각들이 부딪히고 조정되는 과정 속에서 사회는 또 다른 균형점을 찾아가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역시 이러한 끊임없는 상호작용 속에서 유지되고 발전해 왔다. 다시 말해, 안정된 사회는 구성원의 입장이 충돌하는 순간 하나의 복잡한 흐름 속으로 빨려 들어가지만 종국에는 그 속에서 새로운 시대를 이끄는 또 하나의 집단지성이 탄생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갈등은 단순한 개인적 비극이 아니라 서로 다른 세계가 충돌하는 과정처럼 보인다. 강장군의 삶이 하나의 완결된 질서처럼 보였던 이유는 그가 오랫동안 자신의 입장 안에서 세계를 이해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질서는 다른 인물들에게 전혀 다른 의미로 경험된다. 결국 가족과 사회 속에서 이어지는 갈등은 서로 다른 질서가 충돌하는 순간 발생하는 균열이며, 그 균열 속에서 인물들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틈을 발견한다. 강진희가 보여주는 소통의 태도 역시 바로 그 지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그녀는 결핍을 소통으로 채워나가려 하며, 오히려 단절된 관계 속에서 행복의 열쇠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즉, 관계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언제든 소통을 통해 회복 가능한 것임을 그녀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계영수 작가의 [실어증 환자]는 두 이민자 가족의 서사를 통해 소통이 부재하는 사회가 드러내는 비극적 단면을 조명한다. 저자는 사람들이 각자의 일상성에 갇혀 서로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게 된 상태를 ‘실어증'으로 은유한다. 이는 말은 존재하지만 그것이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언어는 오가지만 의미는 서로에게 닿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그러나 소통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타인의 말을 끝까지 경청하려는 자세, 서로 다른 입장을 이해하려는 노력, 그리고 그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려는 태도를 요구한다. 이해와 배려, 존중과 경청의 자세가 부재할 때 언어는 쉽게 단절의 도구로 전락한다. 하지만 남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려는 성숙한 태도가 마음 속에 자리 잡는 순간 언어는 서로 다른 세계를 이어 주는 다리가 된다. 즉, 소통은 인간이 더 나은 삶을 모색하고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태도가 된다.
인류의 역사 또한 이러한 소통의 과정 속에서 조금씩 확장되어 왔다. 서로 다른 생각과 경험을 지닌 사람들이 끊임없이 대화를 이어 가며 새로운 질서와 가치를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통은 단지 개인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기술이 아니라, 인간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힘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실어증 환자]는 우리에게 묻는다.
"귀담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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