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식자들의 시간
줄리아노 다 엠폴리 지음, 이세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줄리아노 다 엠폴리의 [포식자들의 시간]


"현재의 기술혁명은 정치 과정보다 빠르게 움직이면서 의원들과 유권자들의 통제를 벗어나고 있다."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 2017출간作, 512쪽)


2017년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가 한국에 출간되었을 당시, 이 문장은 단지 미래에 대한 경고에 불과했다. 하지만 2026년 현재 그것은 하나의 '사실에 대한 진술'이며, 하나의 '시대 선언'이 되었다.

근대 이후 인간은 정치가 권력을 통제한다고 믿어왔다. 선거를 통해 대표를 선출하고 법을 통해 권력을 제한하며, 제도를 통해 사회를 운영한다는 믿음. 그것이 민주주의의 근본 전제였다. 그러나 하라리의 이 문장은 그 전제가 더 이상 자명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권력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것이 발생하고 작동하는 중심이 정치에서 기술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줄리아노 다 엠폴리의 [포식자들의 시간]은 바로 이 이동의 순간을 포착한다. 그는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등장하고 있는 새로운 권력자들, 즉 ‘포식자’라 불리는 인간 유형을 통해 우리가 이미 하나의 새로운 권력 질서 속으로 진입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질서는 기존의 법과 정치가 충분히 이해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영역, 말하자면 하나의 ‘무법지대’ 위에서 형성되고 있다.

이 무법지대는 법이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 아니라, 법이 아직 도달하지 못한 공간으로 포식자들의 주 활동무대가 된다. 그곳에서 알고리즘은 이념과 인종을 초월하며, 데이터는 국경을 넘어 흐르고, 의사결정은 인간 이해의 범주 밖에서 이루어진다. 자유민주주의 정치가 여전히 토론과 절차, 합의와 타협을 통해 움직이는 동안 알고리즘은 침묵 속에서 빠르게 작동한다. 이때 기계와 인간 사이에 발생하는 시간의 간극, 즉 기술과 정치 사이의 비대칭이 바로 새로운 권력이 탄생하는 토양이 된다.

엠폴리는 이 새로운 권력을 행사하는 자들을 ‘포식자’라고 지칭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들이 기술을 발명한 주체가 아니라 기술이 창출한 '권력의 작동방식'을 누구보다 빠르게 이해한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일론 머스크, 마크 저커버그를 비롯한 기술 창시자들은 단순한 기업가가 아니라 새로운 권력 구조의 설계자들이다. 그들의 권력은 전통적인 의미의 군대나 영토에 기반하지 않는다. 그것은 데이터, 알고리즘, 그리고 예측 능력에 기반한다. 그들은 인간의 행동을 강제하는 대신 행동을 예측하고, 그 예측을 통해 행동 이전에 존재하는 선택의 구조를 구축한다.

한편 이러한 변화는 포식자들로 하여금 기존의 정치 질서에 도전하도록 만든다. 그들에게 정치의 느린 속도는 신중함이 아닌 무력함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작동구조는 본질적으로 느릴 수밖에 없다. 그것은 합의를 형성하고 권력을 견제하며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과정 위에서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포식자들이 활동하는 세계에서 권력은 더 이상 속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알고리즘은 토론하지 않고, 타협하지 않으며, 기다리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계산하고 그 결과를 즉각 실행에 옮긴다. 다시 말해, 정치가 여전히 권력을 행사한다고 믿는 동안 권력은 이미 다른 장소에서 다른 차원의 방식과 속도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간극 속에서 또 다른 유형의 권력자가 등장한다. 도널드 트럼프, 나이브 부켈레, 자이르 보우소나르, 하비에르 밀레이와 같은 인물들이다. 엠폴리는 그들을 르네상스 시대의 권력자들에 빗대어 ‘보르자형 인간’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질서를 유지하는 데 관심이 없고, 오히려 질서를 파괴하며 그 과정 속에서 새로운 권력을 창출하는 데 집요한 관심을 보인다. 게다가 그들은 혼돈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혼돈은 언제나 구질서와 신질서가 만나는 교차점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 '보르자형 인간'들은 AI 포식자들과 깊이 닮아 있다. 그들은 속도를 신뢰하고, 효과를 중시하며, 기존의 규범과 절차를 장애물로 간주한다. 그들은 진실이 아니라 영향력을 추구하고, 윤리적 정당성이 아니라 결과를 통해 자신을 정당화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기술 권력과 결합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이로써 기술은 그들에게 전례 없는 정밀성과 수단을 제공하고, 그들은 기술에게 정치적 방향성과 목적을 제공한다. 이 결합 속에서 그들은 혼돈을 조장하는 한편 그 혼돈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사로 인정받기를 희망한다.

이 지점에서 권력의 본질은 근본적으로 변화한다. 과거 권력은 힘에 기반했다. 군대와 경찰, 법과 제도는 권력을 물리적으로 행사하는 수단이었다. 그러나 알고리즘 권력은 물리적 강제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앞서 언급했듯이 그것은 인간의 행동을 직접 통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행동 이전에 선행되는 선택에 관여한다. 따라서 인간은 여전히 스스로 선택한다고 믿고 있지만, 그 선택은 이미 구조화된 가능성 중 하나일 뿐이라는 명백한 한계를 극복할 수 없다. 이 순간 권력은 가시권에서 벗어나 자취를 감춘다. 알고리즘은 철저히 블랙박스 속에서만 작동하므로 극소수의 전문가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작동방식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이처럼 이해할 수 없는 권력은 비판할 수 없고, 비판할 수 없는 권력은 점점 더 신뢰의 대상이 되기 마련이다. 즉, 권력은 더 이상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믿어야 할 대상으로 승화한다. 이때 우리의 지식은 더이상 판단의 근거가 아니라 신념의 근거로 대체되며, 오로지 절대적 믿음만이 판단의 근거로 작용한다.

엠폴리는 이러한 변화가 궁극적으로 인간의 의사결정 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암시한다. 어느 시점이 되면 인간이 AI의 판단과 다른 결정을 내릴 경우, 오히려 AI에게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해야 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고 경고한다. 즉, 인간의 직관과 경험이 더 이상 최종 판단의 기준이 되지 않는 세계가 도래할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그리고 어쩌면 그 세계는 인간의 지식을 권위가 아니라 오류 가능성으로 치부할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러한 세계는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 [꿈을 빌려 드립니다]를 떠올리게 한다. 이 소설의 여주인공 프라우 프라다는 타인의 꿈을 대신 꾸어주고 해석하는 능력을 통해 점점 더 큰 권력을 갖게 된다. 처음에는 조언자로서 하루의 운세를 점치는 역할을 맡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해석은 단순한 조언이 아니라 선택의 절대적 기준이 된다. 그에 따라 사람들은 더 이상 자신의 생각을 신뢰하지 않고 그녀가 대신 꾸어준 꿈을 통해 자신의 삶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순간 그들의 삶은 조용히 프라우 프라다에게 종속되고 만다는 줄거리다.

이 소설에서 ‘꿈을 대신 꾸어 달라’고 하는 것은 단순한 호기심 충족의 문제가 아니라 주권의 이전을 의미한다. 즉,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타인의 해석에 의존하는 순간, 인간의 삶은 주인 없는 빈집과 같아지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 상실되는 것이 단순한 정보의 부재가 아니라, 자신의 가능성을 스스로 규정할 권리 그 자체라는 점이다. 이처럼 자신의 미래에 대한 해석 권한을 외부에 위임하는 행위는 오늘날 알고리즘이 인간의 결정을 대신하는 세계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전히 선택하는 존재일까?"

아니면,

"이미 제시된 선택지를 승인하는 존재에 불과한가?"

엠폴리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을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대신하는 것처럼 보인다.

"실리콘밸리의 엔지니어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하는 게 아니라 인간 행동을 프로그래밍하고 있다. 그러한 플랫폼을 우리가 현실과 맺는 관계를 의탁하는 전반적인 인터페이스로 삼는 순간부터 우리는 그들의 손아귀에 들어간다. 사회적인 온도를 높일수록 이득을 보게 마련인 스핀 닥터들, 여론 조작 요원들의 손아귀에 우리를 내맡기는 것이다." (118쪽)


만약 알고리즘이 인간 생활 전반을 장악하고 그 압도적인 우위가 인간의 선택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게 될 경우, 이것은 비단 '인간의 주권이 어디에 있는가' 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인간 존재 자체를 위협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다. 따라서 이것은 단순히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며, 우리가 이 새로운 권력 구조 안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근본적인 이유가 된다.

따라서 "개인과 사회는 삶의 어떤 영역을 인간 지능의 몫으로 한정하고 어떤 측면들을 AI에, 혹은 인간과 AI의 협업에 넘길 것인지 결정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인간 지능을 우선하기로 선택할 때마다, 그 영역이 인공 지능이 더 효율적인 결과를 낼 수 있는 분야라면 반드시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168쪽) 라는 점도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이다.

결국 포식자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기술이라는 성(城)을 건설했지만, 인간을 완벽히 예측가능한 존재로 전락시킴으로써 권력을 대다수의 인간에게서 분리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같은 의미에서 AI는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그 이해는 곧 인간 종 자체를 필요없는 변수로 만드는 과정이 되고 말았다. 요컨데, 예측이 완벽해질수록 선택은 불필요해지고 선택이 불필요해질수록 선택하는 존재 역시 불필요해질 수 밖에 없다는 의미다.

권력이 인간에서 기계로 이관됨에 따라 바야흐로 알고리즘은 '권력의 구조' 자체가 되어가고 있다. 결국 주권은 불가피하게 인간에게서 분리될 것이며, 인간은 주권을 빼앗긴 채 포스트 휴먼의 관리 대상으로 전락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 때가 되면 암브로시아를 맛볼 인류가 남아있긴 한 걸까?

*암브로시아 : 그리스 신화에서 신들이 먹는 불멸의 음식

<덧붙이는 말>

줄리아노 다 엠폴리의 [포식자들의 시간]은 AI변혁기에 출현하는 포퓰리스트와 AI기술자들이 新권력을 형성하는 과정을 조명하면서 정치구조와 AI시스템이 지닌 명백한 한계를 드러낸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인간의 본성과 무모한 권력이 결합하는 최악의 현상을 포착함으로써 다가올 포식자들의 시간을 예고한다.

특이한 것은 [포식자들의 시간]이 기존의 AI 서적들과는 다르게 기술발전을 하나의 선형적 진보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엠폴리는 기술의 발전이 인간을 더 현명하게 만들 것이라는 가정을 거부한다. 그의 관점에서 기술은 인간의 지혜를 증폭시키는 동시에 인간의 어리석음 역시 함께 증폭시키는 앰프일 뿐이다. 즉, 기술은 인간 본성의 평형추를 건드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단지 인간이 자신의 의지를 더 큰 규모로 실행할 수 있도록 만드는 수단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 통찰은 기술이 단순히 더 나은 세계를 만들 것이라는 환상을 깨는 동시에, 실로 더 강력한 세계를 만든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강력한 세계는 언제나 더 큰 창조와 더 큰 파괴를 가능하게 한다는 사실을 주지시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유발 하라리가 자신의 저서 [호모 데우스]에서 밝힌 '미래에 대한 경고장'을 소개하며 이 글을 마치려 한다.

"20세기 거대한 정치적 비전들이 우리를 아우슈비츠, 히로시마, 대약진 운동으로 이끌었음을 생각하면,(...) 신 같은 기술과 과대망상증적 정치의 결합은 재앙의 레시피나 다름없다."



**본 리뷰는 출판사 을유문화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

#포식자들의시간 #줄리아노다엠폴리 #을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