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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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읽은 남성 독자라면 아래의 인용문에 스스로를 대입해서 읊조리고 있을 것이다.

내가 평범한 40대 남자였다면 끝내 알지 못했을 것이다. ... 나는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특히 아이가 있는 여자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 사실 출산과 육아의 주체가 아닌 남자들은 나 같은 특별한 경험이나 계기가 없는 한 모르는 게 당연하다.(p.170)

 

조남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는 주인공 김지영씨의 일대기를 빠르게 훑어가는 일대기를 그린다. 본문 중간중간 각주가 달려있는데 흥미롭게도 각종 보고서나 연구결과 혹은 관련 서적이다. 가상의 김지영씨와 그녀를 둘러싼 가족의 일대기를 그리면서 여성의 삶을 아주 보편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래서 실은 별 볼일 없는 한 편의 보고서가 탄생해야 하는데 흥미로운 소설이 되었다.

 

그녀의 삶은 멀리서 보면 나무랄 데 없이 평범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꽤나 험난하다. 에피소드는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데 부딪치는 세상살이의 고단함이 묻어난다. 유년기 부분에서는 주인공의 어머니 삶을 배치하면서 이 소설은 2대에 걸친 시대의 변화 속 여성의 삶을 묘사한다. 어머니는 남자형제들의 학비를 보조하기 위해 공장에서 일하는 전형적인 산업화시대의 여공이었다. 결혼 후에는 김지영 씨를 비롯해서 언니와 동생을 갖는데, 실은 둘째와 셋째 사이에 낙태의 경험이 있다. 요즘 화제에 오르는 EBS의 <까칠남녀>에서도 관련된 내용을 들었는데, 낙태를 하는 비율은 보통 미혼이 많을 거라는 통념과 달리 기혼이 더 높다고 한다.

... 성 감별과 여야 낙태가 공공연했다. 1980년대 내낸 이런 분위기가 이어져 성비 불균형의 정점을 찍었던 1990년대 초, 셋째아 이상 출생 성비는 남아가 여아의 두 배를 넘었다. ... (p.29)

보편을 묘사하는 소설이 충격을 주는 지점은 이런 데 있다. 모든 중간값을 넣으면 지극히 평범해야 하지만 얼마나 많은 평범함을 우리는 모르고 사는 것일까. 소설이라는 분류표에 들어간 보고서는 이처럼 뜨악한 평범함을 그려낸다.

 

주인공의 성장기는 한국에서 여성이 겪을 수도 있는 문제들을 그린다. 특히 직장에서, 결혼 후 가정에서 주인공이 겪는 어려움은 절절하게 다가온다. 주인공 김지영 씨는 어쩌면 복에 겨운 생활을 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녀를 잘 이해해주는 회사 동료와 상사. 그리고 남편이 있다. 경제적으로 풍요롭지도 않지만 부족하지도 않다. 이런 환경에서도 어김 없이 마주하는 어려움은 결국 사회의 문제로 남는다. 직장에서 여성은 환영받지 못한다. 개인으로서의 여성은 결혼 후에나 출산, 육아기에는 일터를 떠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고 회사 입장에서도 달갑지 않다. 같이 입사한 동기들은 성별에 따라 임금을 다르게 받는다. 핵심 업무는 점점 남성에게 집중되어 간다.

대한민국은 OECD 회원국 중 남녀 임금 격차가 가장 큰 나라다. 2014년 통계에 따르면, 남성 임금을 100만 원으로 봤을 때, OECD평군 여성 임금은 84만 4000원이고 한국의 여성 임금은 63만 3000원이다. 또 영국 <이코노미스트> 지가 발표한 유리 천장 지수에서도 한국은 조사국 중 최하위 순위를 기록해, 여성이 일하기 가장 힘든 나라롤 꼽혔다.(p.124)

결혼 후엔 2세를 얼른 보라는 주변 어르신들의 채근과 압박을 받고 임신을 하면서 직장을 포기한다. 육아를 하면서 동시에 부업을 알아본다. 공원에서 유모차를 세우고 벤치에 앉아 1,500원 짜리 커피를 마시는 자신을 향해 직장인들은 맘충 팔자가 상팔자라고 한다. 이쯤 되면 소설에서 그리는 한국의 여성문제를 '겪을 수도 있다'면서 가정법으로 퉁치기 무색해진다. 오히려 이 소설의 빠른 호흡때문에 실제 한국여성이 겪는 문제들은 많이 생략되어 있고, 주인공의 주변 인물들은 너무 착하다고 생각했다.

 

 주인공인 김지영씨는 특별히 모나거나 별난 인물도 아니다. 그 반대로 무척 신중하고 조금은 내성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녀가 유별난 순간은 별안간 다른 인물로 빙의하는 이상증세를 보이는 때다. 이러한 그녀를 진단하는 40대 남성 정신과 의사는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하는 세상이 있다'고 하면서 이 소설이 말하고픈 주제를 우회적으로 들려준다. 소위 미친 사람을 통해 미처 보지 못한 세상이라는 것이 사실은 멀쩡한 여성들이 살아내고 있는 일상의 세상이라는 점이다. 소설의 마지막 장에는 주인공을 진단하는 의사의 삶을 짤막하게 실었다. 의사는 아내를 통해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을 조금씩 이해한다. 그러나 직장에서는 병원 운영을 고려해서 상담사의 후임을 미혼 여성으로 알아봐야 겠다고 생각한다.이를 통해 저자는 여성문제를 이해할 수 있으면서도 여전히 진행중인 문제라고 이중의 암시를 남긴다.

  나는 아내가 그보다 더 재밌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 잘하는 일, 좋아하는 일, 그거밖에 할 게 없어서가 아니라 그게 꼭 하고 싶어서 하는 일. 김지영 씨도 그랬으면 좋겠다.(p174)

  아무리 괜찮은 사람이라도 육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여직원은 여러 가지로 곤란한 법이다. 후임은 미혼으로 알아봐야겠다.(p.175) 

 

사회문제는 한 개인에게만 해당하는 특수한 성격의 것이 아니라 구조적인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 문제나 사회적 문제를 가리지 않고 어떤 문제에 직면하는 개인은 그 문제를 짊어지고 있는 주체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개인이 겪는 문제에서 이것은 사회적 문제라고 똑부러지게 골라내기는 어렵다. 이런 이유로 어떠한 문제제기에 반대하는 측에서는 특수한 개인의 불만이나 잘못으로 치부하기 쉽다. 여성문제를 제기하는 경우만 봐도 이런 틀은 어김없이 작동한다. 문제제기를 하는 이들에게 '꼴페미'나 '메갈'이라는 틀로 가두면 끝나버린다. 페미니즘은 큰 틀에서 여성이 남성에 비해 성별로 인한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불이익은 공평하지 않기 때문에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82년생 김지영>을 읽으면 이런 주장에 많이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이 책이 독자들에게 '어떤 특별한 경험이나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여성문제를 더이상 한 개인이 해결해야 할 일이 아니라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며 시대에 따라 모습을 달리했을지언정 보편적으로 여성에게(마찬가지로 남성에게) 사회적인 문제점으로 작동했다고 생각한다면, 그만큼 이 소설이 인용하는 평범한 여성들(과 남성들)의 삶이 달라질 것이고 그 끝은 이렇게 달라질 것이다.

후임은 이 선생처럼 훌륭한 직원으로 알아봐야겠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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