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연대기 클래식 호러
로버트 E. 하워드 외 지음, 정진영 엮고 옮김 / 책세상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2017 상반기 책세상 독서단으로 활동하게 되어 서평을 남깁니다

 

공포. 우리는 어떤 대상과 현상을 알지 못할 때 공포의 감정을 갖는다. 동시에 호기심도 생긴다. 이런 양가적인 감정은 공포영화가 재현해놓은 상상력의 장막에서도 중요한 동력이 된다. 무서움을 피해 달아나면서도 무서움의 근원을 향한 호기심때문에 극은 갈등구도를 만들어낸다. 이미 알고 있는 자명한 어떤 것에 대해선 공포와 호기심이 아니라 좋고 나쁜 취향의 정도로 바라본다. 그런 면에서 현대까지 살아남은 공포의 대상과 현상들은 오롯이 미지의 영역을 품고 있다. 좀비 또한 그렇다.

이상하겠지만 좀비는 현재 사랑받고 있다. 드라마나 영화, 소설을 넘나들며 곳곳에 등장하는 중이다. 이쯤 되면 우리는 더이상 좀비를 모른다고 말하기가 어색해진다. 어떤 좀비는 뛰어다닌다. 어떤 좀비는 사람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어떤 좀비는 사랑한다. 이제 좀비는 단순한 언데드가 아니라 언데드의 특징을 가진 '인간'이 될 날이 머지 않은 것 같다. 이렇게 사랑받는 좀비는 어디서 온 것일까? 이런 물음에 힌트를 줄 수 있는 작품이 바로 <좀비 연대기>이다.

총 12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 선집을 통해 좀비 문학의 초창기 원형을 살펴볼 수 있다. 대다수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키워드가 있다. 바로 아이티, 부두교, 흑인, 노예. 아이티의 부두교에서 성행하는 마술을 통해 죽은 이들을 살려낸다. 좀비라고 일컫는 이들은 주로 대형 농장에서 노예로 일하는 흑인들이다.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행동과 초점없는 눈을 가지고 있다. 소설이 사실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좀비의 기원은 아이티의 부두교에서 출발한다는 공통의 관점을 보여준다. 또한 이 단편들은 좀비 이야기의 무대가 흑인 노예가 일하는 대규모 농장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어쩌면 좀비이야기가 정착한 것도 당시 신대륙 미국에서 성행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영화 <장고>도 비슷한 시기를 배경으로 농장주와 노예, 자유민과 노예, 백인과 흑인으로 대표되는 갈등을 폭력적으로 해소한다. 마찬가지로 당대의 좀비물은 이런 갈등을 공포스럽게 발설하고 있다. 사실상 언데드라는 특성을 제외한다면 좀비는 흑인, 주술사는 농장주에 자연스럽게 매칭이 된다.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이 제거되고 초점 없는 눈에 부자연스러운 몸동작은 현대 산업사회의 노동계층에도 적용할 수 있는 특징이다. 이쯤부터 주술사가 통제하는 좀비라는 원형에서 벗어나 감염을 통한 전파를 선호한 것 같다. 사장님이 통제하기에는 이미 노동자의 숫자가 너무나 많지 않은가.

 저자들 중 내가 알고 있던 사람은 잭 런던 뿐이었다. 흥미롭게 읽었던 글 또한 잭 런던의 <천년의 죽음>과 앨피어스 하이엇 베릴의 <좀비 감염 지대>였다. 이 두 작품의 세계관은 좀비가 현대에도 사랑받는 좀비물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두 작품은 실험을 통해 좀비가 탄생되는 과정을 그린다. 특히 주술적으로 처리한 공포의 분위기를 과학적으로 바꾸면서 변용을 시도한다. 불로장생의 꿈을 가진 인간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미치광이 과학자는 열심히 연구한다. <천년의 죽음>에선 심지어 아들을 실험체로 쓰기에 이른다. 반면 <좀비 감염 지대>는 이성적인 과학자가 무척 진지한 자세로 연구를 진행한다. 살아있는 생명체의 해부를 꺼릴 정도로 나름의 도덕적 기준도 확고하다. 이성적인 실험의 결과로 좀비들이 대거 만들어지지만 원치 않은 부작용은 소설 속에서 대충 해소해버렸다. 그러나 이 두 작품에 나오는 좀비가 과학적인 실험의 부작용때문이라는 상상력 덕분에 현재도 활발하게 재해석되고 있는 소재로 사랑받는다.

사랑받는 공포. 좀비의 원인에 대해서는 조금 더 과학적인 틀에서 해석하는 중이다. 대개 좀비물의 주인공은 좀비의 공격을 피해 좀비가 발생한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제거하려고 고군분투한다. 가까운 이들이 좀비가 되어가는 과정은 무척 슬프고 감내하기 힘든 고통으로 다가온다. 그렇다. 우리는 주인공에 감정이입을 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좀비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토록 무서운 공포의 대상은 죽지 않고 무슨 생각인지 모른 채로 오직 살아만가는 우리 사회의 욕망과 구조, 이를 오롯이 수행하는 우리들.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의 공포스러운 자화상을 보고서.

 

너무 피곤해, 너무 피곤해(p.255)

그들이 나를 찾아와서 살려낸 건 아주 오래전이야. 하지만 난 여전히 죽은 사람이야. 그들이 살려낸 건 육체뿐이지. 난 돌아가서 쉬고 싶어.(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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