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입자 - 우주가 답이라면, 질문은 무엇인가
리언 레더먼 & 딕 테레시 지음, 박병철 옮김 / 휴머니스트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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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머니스트 출판사의 서평단에 선정되어 서평을 올립니다

 

한 달 전 쯤 강유원 씨의 <숨은 신을 찾아서>를 읽고 글을 남겼다. 함축적인 글이라서 저자의 생각만큼이나 내 생각도 끼어들 공간이 많았다. 저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곡해나 오독을 맘껏 했으리라. 그런데 이번에도 읽은 책이 하필 <신의 입자>!! 제목만 보면 창조의 비밀을 파해치는 종교서적으로도 손색 없지만 과학을 다룬다. 그것도 입자물리학을 연구하는 실험물리학자의 눈으로 본 과학개설서. 물리를 돌이켜보면 생각나는 공식이 F=ma인데, 힘은 질량과 가속도에 비례한다고 설명할 수도 있다. 그리고 관련 문제를 열심히 풀었던 기억이 난다. 일상은 물리법칙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적어도 저러한 물리문제는 잊고 산 지가 오래다. 그런 내게 과학이라니, 물리라니. 생각하지 마라. 외우고 풀고 오답노트를 만들어야 하나.

 

다행히도 이 책은 문제집이나 논문이 아니다. 물리학의 역사를 다룬다. 총 9장 구성에서 전반부인 5장까지가 물리학의 최소단위인 원자를 찾기까지의 여정을 과학사의 큼지막한 발견들로 잘 버무려냈다. 6장부터 9장까지는 이 책의 주제이기도 한 신의 입자를 찾아낸 과정을 그린다.(이 책의 전체 여정을 초간단 역사로 정리한 표가 p.590-591 에 있다. p.589 도 참고.) 저자는 700 쪽에 가까운 이야기를 꽤나 유려하게 풀어낸다. 중간에 나오는 저자의 유머 덕분에 책을 끝까지 놓지 않았다. 이런 부분은 과학책에 대한 장벽을 그나마 낮춰주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과학에 대한 저자의 생각도 눈길을 끈다.

 

대중은 결코 나약한 집단이 아니다. 정치인이나 사회평론가가 조금이라도 이상한 발언을 하면 가차 없이 융단폭격을 퍼붓고 잘못을 바로잡는다. 그러나 '과학'이라는 간판을 내걸면 대중은 한없이 나약해진다. ...... 가장 큰 요인은 과학을 불편하게 생각하거나 과학이 발전해나가는 과정을 잘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일반대중은 과학을 '확고한 법칙과 신념으로 건조된 난공불락의 요새'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 그러나 내가 장담하건대, 과학은 그 어떤 분야보다 유연하다. 과학의 목적은 현상유지가 아니라 혁명이기 때문이다. (p.352-353)

 

미안하게도 저자가 직접 관여한 신의 입자를 찾는 원정단에서 길을 잃었다. 정말이지 저자는 자기가 몸담고 있는 입자물리학의 현재를 최대한 쉽게 쓰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최신의 물리학은 내 기준에서는 너무나도 많은 발견을 했다. 나는 고전물리학조차 버겁다. 그래서인지 가장 재밌게 읽었던 부분이 고전물리학을 설명하는 전반부다. 물리교과서에서 실험하는 내용이 먼 옛날 갈릴레이 갈릴레오가 했던 실험이었고, 주기율표로 친근한 멘델레예프 이름도 보인다. 그냥 익숙한 이름이 나와서 재밌다기보다 물리학의 발견이 법칙으로 정립되기까지의 에피소드를 들려주다보니 꼭 옆에서 같이 발견해 낸 공식같기만 했다. 과학 공부를 이렇게 역사 속에서 설명해주면 훨씬 흥미롭지 않을까. 전반부의 물리학 역사원정대를 따라 여행하는 것만으로도 매력적이다. 후반부는 이론물리학자들과 대비되는 실험물리학자의 삶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막간c에서 저자가 성공했던 실험을 들려주는 대목은 특히 흥미로웠다. 그간의 정립된 물리법칙에 위배되는 증거를 찾아낸 실험은 저자의 푸념처럼 생고생하는 현장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는 과정에서 성공했기에 훈훈하게 끝났지만, 실패했던 실험들은 훨씬 많았을 것이다.

 

책을 읽어나가는 내내 마음 한 켠이 씁쓸하기도 했다. 근현대에 이룩해놓은 물리학의 혁혁한 성과들을 접하면서 그 시기에 조선-한국은 어땠나 비교를 해보면 뭔가 아득해지는 느낌이다. 서양의 네트워크 내에서 성과들만을 기술한 것이 아닌가 의심도 해보지만 과학 분야는 이론이나 실험의 결과물이 사상에 따라 바뀐다고 볼 수는 없기에 서양이 주도권을 갖고 있는 점도 확인할 수 있었다. 책을 통틀어 내가 찾은 한국인은 벤 리(이휘소) 한 명이다. 과학에까지 국적놀이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국내에서 기초과학이 무너진다는 걱정을 들은 지 오래다. 일본에서 과학 분야의 노벨상을 꾸준히 받을 때마다 국내를 되돌아보는 뉴스가 한가득이다. 만성 걱정으로만 끝나지 않고 과학의 발견이 주는 기쁨을 많은 이들이 누리는 환경을 만들 때는 언제인가. 이런 과학책을 뒤적거리는 일도 하나의 실천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덧. 저자가 물리학자(과학자)로 사는 즐거움을 말하는 대목이 인상깊었다.

다른 사람이 발표한 아름다운 이론을 어느 순간 갑자기 이해하면서 기쁨과 성취감을 느낄 때도 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가장 강렬한 순간은 우주의 비밀을 스스로 발견했을 때이다. 상상해 보라. 당신이 새벽 3시에 연구실에 혼자 남아 방정식과 씨름을 벌이다가 문득 심오한 사실을 깨달았다. 바로 그 순간, 당신을 제외한 70억 명의 인류 중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이 얼마나 짜릿하고 강렬한 경험인가!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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